67화. I’m Only Sleeping (5)
“교수님?”
유진이 그를 불렀으나 대답은 없었다.
스테파노 멜리에스는 한참 동안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디서, 고양이 소리 안 들리나?”
“예……?”
“방금 야옹 하고 울었는데, 못 들었나?”
해괴한 질문이었다. 고양이로 가득한 이 방에서 지금 들리고 있는 거라곤 고양이 소리뿐이었다.
그럼에도 멜리에스는 자기 귀에 들려오는 소리의 출처를 찾아 당혹스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야옹.
아. 지금.
똑똑히 들었다.
고양이가 우는 소리.
주인을 부르는 소리다.
“밖이야. 밖에서 울고 있어.”
스테파노 멜리에스는 멍하니 속삭였다.
그러고는 대뜸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성큼성큼 방안을 건너 유유히 어딘가로 나아갔다.
그는 지하실 철문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현관 밖으로 나와 철벅거리는 흙길을 걸었다.
빗속을 헤쳐 향한 곳은,
마당 귀퉁이의 흙탕물 앞.
봉곳 솟아오른 둔덕. 얕게 쌓은 무덤.
어제 죽은 고양이를 묻어 줬던 장소다.
스테파노 멜리에스는 땅에 바짝 엎드렸다.
그리고 맨손으로 진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철떡, 파드득―.
검게 물든 흙물 사이를 쭈글쭈글한 손가락이 힘겹게 파고들었다. 물에 젖어 녹아내렸음에도 땅은 이상하리만치 단단했다. 자갈에 긁힌 손톱이 깨져 질척한 감탕 속에 섞였다. 노인은 찢겨진 손끝의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계속해서 흙을 팠다.
“제발, 제발…….”
여기에 있어야 한다.
고양이 시체를 묻었으니까.
그러나 혹시라도. 정말 만에 하나라도.
묻혀 있는 게 고양이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때, 틱―.
손가락 끝에 무언가 걸렸다.
바위였다. 땅은 이제 가진 흙의 밑천을 드러냈다. 더는 파고들 틈이 없는 완전한 밑바닥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빈 구덩이였다.
고양이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살아 있는 것은 없었지만, 죽어 있는 것 또한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허어.”
멜리에스는 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어디서부터가 착각이었던 걸까. 애초에 죽은 고양이를 묻어 준 적조차 없었던 게 아닐까.
그래, 맞아. 틀림없이 그러하리라. 이 모든 것은 단지 노망 난 늙은이의 망상이었던 것이다!
허나 그리 생각한 그를,
호되게 질책이라도 하듯이.
―야옹.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부터, 좀 더 선명하게.
“…….”
멜리에스는 깨달았다.
장소를 잘못 찾았음을.
“여기가, 아니야…….”
그는 몸을 일으켰다.
다시 어딘가로 향했다.
집의 뒤편에는 창고 같은 건물이 있었다.
그곳의 자물쇠는 잠겨 있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자라면 필히 그 주변에 접근하기를 꺼려할 터였다.
검붉은 진물 자국으로 칠해진 입구.
시종일관 삐거덕거리는 기이한 소음.
내장이 썩어들어가는 듯 고약한 악취.
스테파노 멜리에스는 그 창고로 들어갔다.
앞서 언급한 온갖 흉물스러운 요소들이 그의 감각을 괴롭혔지만, 그는 그 자극들을 느끼지 못했다.
계단을 내려가자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희미한 조명이 가까스로 시야를 도왔다. 멜리에스는 자연스럽게 벽에 손을 기대어 짚고는 한쪽 벽면을 찬찬히 쓸었다. 그러다 중간에 멈춰 섰다.
커다란 캐비닛이 있었다.
그는 캐비닛을 열어젖혔다.
투욱―.
무언가 안에서 데구르르 굴러떨어졌다.
싸늘하게 경직된, 검은 고양이의 시체였다.
“아.”
캐비닛 안에는…… 인간의 시체가 있었다.
상반신의 한쪽 절반이 완전히 드러나, 갈비뼈 안쪽에 미트볼 스파게티처럼 주렁주렁 얽힌 핏빛 장기들, 머리 쪽은 갈라진 두개골 틈으로 희멀건 뇌가 미약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
….
그즈음.
시체와 눈이 마주쳤다.
「……교수…… 님…….」
그리고 시체가 말을 했다.
「……죽여…… 주세요…….」
교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아, 아, 아아아……!!”
멜리에스는 기겁하며 고꾸라졌다.
그의 눈은 간질에 걸린 듯 뒤집혀졌으며,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연이어 구토를 했다.
“누, 누구야? 이 자는, 내 집에, 대체……!?”
처음 보는 인물. 끔찍한 몰골의 시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자기 집 뒷마당에 어째서 이런 게 있는 것일까.
“아…….”
설마,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자신이 저지른 짓이란 말인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멜리에스는 머리를 싸맨 채 괴로워했다.
“나는, 나는 그냥 고양이를 묻어 줬을 뿐이야. 흑요석처럼 까만 털을 가진 그 아이. 이름이 뭐였지? 벨라? 데이지? 야니? 제기랄, 기억이 안 나. 어째서, 왜 아무것도 안 떠오르는 거야, 왜……?”
「……교수…… 님…….」
“입 좀 닥치게, 마커스! 생각 중이잖아!”
교수는 시체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내 머릿속이 지끈거리며 아파 왔다.
“윽…….”
평상시에 으레 느끼는 단순한 두통이 아니었다. 통증은 얼마 안 가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멜리에스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에게 찾아온 아픔의 정체는, 아프다는 것마저 곧 까맣게 잊어버리게 될, 영원한 상실의 아픔.
‘망각’이란 이름의 바이러스였다―.
***
시작은 생명을 위해서였다.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였던 검은 고양이.
녀석이 암에 걸렸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발견해 버려 치료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수의사가 녀석의 시한부 소식을 알렸을 때.
스테파노 멜리에스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는 하나뿐인 친구를 도저히 떠나보낼 수 없었다.
그때 떠올린 것이 바로 혼효 마법이었다.
신성 마법의 치유력에 타락 마법의 살상력을 적절히 혼합한다면, 암세포를 사멸시킬 수 있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그 시도는 실패했다.
금지된 술식을 사용하면서까지 고양이를 살리려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의도대로는 되지 않았다.
허나 그 과정에서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신성 언어를 기반에 둔 술식의 조합식이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알려진 양식으로 작성되었음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멜리에스는 이를 주제로 논문을 저술했다.
당시 신성 마법은 마법계의 주류가 아니었으나, 멜리에스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 그 흐름은 완전히 뒤바뀌어 변혁의 사조를 불러일으켰다.
환갑이 넘도록 변변한 실적 하나 없었던 스테파노 멜리에스는 그렇게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환상적인 나날이었다. 명예, 돈, 평소 꿈만 꿨던 온갖 재화들이 그의 품에 마구잡이로 들어왔다.
그런 영광을 맛보고도,
어찌 그만둘 수 있으랴.
멜리에스는 지속적으로 타락 마법을 연구했다. 신성 마법과 타락 마법, 그 둘의 조합을 통한 연구에서는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다수의 신비한 현상들이 우후죽순으로 발견됐다. 그는 그걸 논문으로 썼고, 대박이 났다. 그것이 반복됐다.
국제신성마법학회의 학회장으로 추대.
샌제이비어 마법학교의 이사장 자리에 올라섰고, 디바인 마스터라는 별호까지 수여받았다.
그의 인생은 노년에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허나, 신의 뜻을 거스르고 감히 사악한 어둠의 마법에 손을 댄 벌을 받게 된 것일까.
칠순을 넘겼을 즈음.
알츠하이머― 치매가 찾아왔다.
사소한 일을 깜빡깜빡 잊는 것은 예사였다.
수십 년을 알고 지낸 지인의 이름을 까먹거나, 정신을 차려 보면 낯선 장소에 와 있곤 했다.
하루하루 두루뭉술한 기억 속에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증상은 점차 더 심해져 갔다.
치매에 걸린 사실이 공표되면 커리어는 끝장.
멜리에스는 자신의 치부를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강의 커리큘럼을 통일시키고, 최대한 타인과의 접촉을 피했다. 추한 비밀은 가까스로 유지됐다.
치매는 현대 의학으론 치료가 불가능.
멜리에스는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물론 타락 마법에 관한 연구였다.
타락 마법의 연구에는 재료가 필요했다.
멜리에스는 집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같은 동물들을 주워 와 실험체로써 사용했다.
처음으로 인간을 실험에 사용한 것은 9년 전, 그의 불법적인 실험을 목격한 연구생의 입막음을 위해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날이었다.
그날 연구 성과는 역대 최고였다. 이후로 그는 고양이 대신 인간 중심의 실험을 주로 진행했다.
10여 년에 걸친 연구. 그리고 살인.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새까만 녹은 이미 그의 뇌를 오후의 간식처럼 갉아먹은 뒤였다.
무엇을 위해 연구를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인을 하고 있는지.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미 망각의 수렁에 빠져 있었기에.
시작은 생명을 위해서였다.
마지막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적어도 그가 기억할 일은― 없었다.
***
멜리에스는 창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땅바닥이 젖어 있는 걸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잠깐 사이에 비가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왜인지 손가락이 욱신댔다. 어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손가락을 먹을 기회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마커스는 똘똘한 친구였다. 제발 좀 죽여 달라고 했지만, 고양이 밥을 줄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여긴 대체 어디일까. 깜깜한 걸 보니 밤이 분명한데. 근데 왜 이렇게 깜깜한 거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더라.
아, 손가락을 먹으려고 했었던가.
“교수님.”
엄지손가락을 으득으득 씹고 있었던 그때.
누군가 자신을 불렀다. 이름 모를 사내였다.
“자네는…… 누구인가……?”
유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교수에게로 걸어갔다.
“왜, 나한테, 다가오는 겐가……?”
멜리에스는 뒷걸음질을 치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알츠하이머로 쇠약해진 신경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안 돼. 오지 마. 오면 안 돼…….”
늙은 교수는 흐느끼듯이 말했다.
유진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내, 내게…….”
흐느낌에는 점차 분노가 섞였다.
그리고 이어서, 분열하듯 폭발했다.
“내게 다가오지 말란 말이다!!”
***
교수의 외침은 마력의 분출로 시각화됐다.
휘황찬란한 순백의 탑. 신성 마법의 대가만이 이룩할 수 있다는 성스러운 상징― 백색 마력.
그러나 그 순수한 하양의 결집체에는 거무스름한 물결이 검댕 묻은 듯이 드문드문 돋아나 있다.
고결한 백색 마력과 반대되는 사악한 타락 마법의 표상― 흑색 마력.
“갈 데까지 가셨군.”
후천적으로 무채색 마력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족히 수십 년에 걸친 마나 수련이 필요하다.
멜리에스는 백색 마력과 흑색 마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타락의 흔적이었다.
어쩐지 그 광경을 보고 나자,
복잡한 기분은 외려 사라졌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자는 존경받는 교수도 뭣도 아닌, 그저 노망 난 연쇄살인마일 뿐이다.
그러니 아무 죄 없는 선량한 시민을 살해했다는 죄책감만큼은 느낄 일이 없으리라.
―좋아. 해보자.
굳게 마음을 먹고,
한 발짝 다가간 순간.
멜리에스의 주위로 수많은 마법진이 연성됐다.
중상급 이상의 강력한 마법을 위한 준비 과정. 싸움의 전조로서는 그닥 좋지 않은 신호였다.
이윽고―
백색 마력의 불덩어리들이 나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