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23화 (23/201)

23화. Night Prowler (3)

오전 7시.

에덴파크 모텔.

“자, 여기. 175달러. 됐지?”

“…….”

껄렁껄렁한 외양의 늙은 흑인 남자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지폐를 세어 보는 금발 소녀.

“10달러 부족한데요.”

“미안. 스쿠터에 기름 좀 넣었다.”

“빨랑 내놔요. 오늘 들를 방 많단 말예요.”

“거 쫀쫀하게 이러기야? 내가 그동안 며칠이나 묵었는데. 10달러쯤은 에누리해줄 수 있잖아?”

“돈 줄래요, 아님 할머니 부를까요?”

“에잉, 기집애 승질머리 하고는.”

페니 베인스는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모텔 관리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었다.

매월 1일, 그녀는 모텔 방들을 쭉 돌면서 장기 투숙객들의 밀린 숙박비를 일제히 수금한다.

“하루만, 진짜 하루만 기다려 줘. 내일은 내가 진짜로 돈 들어올 데가 있으니까. 응?”

“체크아웃 시간은 오전 11시까지예요.”

“거 즉지 않은 돈 내고 쓰는 방인디 관리나 좀 똑바로 해주쇼, 아가씨. 으이? 도대체 뭔 놈의 화장실 변기가 허구한 날 막히냐 이 말이여.”

“콘돔을 거따 버리지 마세요, 제발.”

“에킈하르잣늄? 윔비엑칸텝?”

“제임스, 영어 못하는 척해도 소용없어.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돈이나 내놔.”

“시발련.”

“뭐랬냐?”

달이 바뀔 때마다 겪는 끔찍한 고충.

이제 겨우 1층을 돌았을 뿐인데, 벌써부터 스트레스로 이마의 핏줄이 죄다 터질 지경이다.

‘아으, 빨리 취직을 하든가 해야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째 집에서 빈둥거리며 살던 식충이 딸을 못마땅해한 부모는, 결국 그녀를 외할머니댁으로 귀양을 보내 버렸다.

그리고 할머니는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웨스트록의 허름한 모텔 관리인 자리에 그녀를 낙하산으로 꽂아 넣었다. 급여는 용돈 수준이었다.

‘여긴 진짜 뭐랄까, 오래 있을 곳이 아니야.’

에덴파크 모텔은 흉흉한 곳이었다.

묵는 사람들을 보면 한 달 이상 장기 투숙객이 대부분. 게다가 하나같이 마약이나 불법 무기를 사고팔러 다닐 것 같은 수상한 사람들뿐이다.

근데 그런 것치고는 모텔에 경찰이 들락날락한 적은 거의 없고, 큼지막한 소동이나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진 적 또한 여태 한 번도 없었다.

‘께름칙하지만, 뭐…… 당분간은 별수 없지.’

당장은 그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뿐.

대충 하다 할머니한테 혼나기는 싫으니까.

‘그나마 2층은 얼마 없네.’

페니 베인스는 숙박료 연체자 리스트를 찬찬히 살피며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녀가 멈춰 선 곳은 208호였다.

‘윽. 여긴…….’

208호라면 분명 지난달에도 들렀었다.

얼마나 기억에 남았는지, 숙박계에다 따로 메모까지 적어 놓았었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208호

개씨발새끼

─208호에 대한 인상은 최악이었다.

생긴 건 더럽게 지저분하고, 말투는 개싸가지 없고, 하여튼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이 모텔에서도 탑급으로 역겨운 인간이었다.

‘하, 아침부터 진짜 이게 뭐냐…….’

페니 베인스는 투덜거리며 노크를 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허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저기요. 방값 걷으러 왔는데요.”

똑똑똑―.

다시 조금씩 뒤척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여전히 아무도 나올 기색이 없다.

“이봐요? 지금 안에 있는 거 다…….”

페니 베인스가 목소리를 높이려던 찰나.

철컥―. 잠금이 풀리고, 뒤늦게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나온 이는,

훈훈한 외모의 금발 청년.

“무슨 일이시죠.”

잔뜩 갈라진 목소리.

피로에 찌들어 퀭한 눈.

부르튼 입술 끝은 살짝 찢어져 있고, 얇은 와이셔츠 속에 살며시 드러난 어깨 쪽에는 덕지덕지 붙인 파스들이 보인다.

……뭐지?

……이 퇴폐미 쩌는 훈남은?

“관리인인데요. 그, 숙박비 때문에요.”

“아.”

“세금 신고해야 해서 수요일 치까지는 미리 내셔야 돼요. 밀린 거랑 합쳐서 딱 1,000달러요.”

남자는 “잠시만요.” 하고 방 안에 들어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현관 쪽으로 돌아왔다.

그가 가지고 온 것은,

팔뚝 굵기의 지폐 다발.

“얼마라고 했죠? 1,000달러?”

페니 베인스는 그대로 벙쪘다.

남자는 지폐 다발에서 지폐를 대강 몇 장 꺼내고는 페니 베인스에게 떠넘기듯 건넸다.

“늦게 내서 죄송합니다.”

“…….”

“더 필요한 거 없으시죠.”

“앗, 잠깐만, 저기, 저기요? 이거 1,000달러 지폐인데요? 지금 9,000달러나 더 주셨어요!”

다급히 잡아 세우려는 그녀에게,

남자는 초췌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지세요.”

그러고는 문을 닫았다.

페니 베인스는 한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빠릿빠릿한 1,000달러 지폐 10장을 손에 쥔 채.

“뭔데, 진짜……?”

4월 1일 월요일.

기묘한 만우절 아침이었다.

***

인정하자.

어젯밤은 좀 무리했다.

“어우, 뻐근해 죽겠네…….”

새벽 3시쯤에 겨우 귀가해서 잠깐 자고 일어나 보니 온몸에 근육통이 난리도 아니었다.

강화 마법을 통해 근육을 억지로 강화해서 움직이는 것이니, 아마 웨이트에서 빡세게 치팅을 하고 났을 때와 비슷하게 반동이 오는 게 아닐까.

물론 어젯밤의 수확을 생각하면,

이 고통을 감내할 가치는 충분했다.

지하투기장 승리 수당 1만 5,000달러.

10연승 베팅의 배당금 62만 3,300달러.

하룻밤의 수익이― 도합 63만 8,300달러.

3연승쯤부터 내가 너무 강하다는 게 들통 나서 배당률이 확 낮아진 게 아쉽긴 하나, 어쨌든 한 번에 60만 달러가 넘는 거금을 얻을 수 있었다.

여기에 매주 들어오는 3만 달러 상당의 주급과, 경매를 맡겨 놓은 완드의 예상 판매 수익금 10만 달러 이상이 더해지면, 당분간 돈 걱정은 없다.

사채로 빌린 돈까지도 갚고 나면,

당장 발등에 붙은 불은 끈 셈이다.

“남은 건 회사랑 내 몸 간수인가…….”

3개월 뒤 벌어질 우드게이트 창고 습격 사건.

그 사건으로 인해 윌슨앤코 그룹은 사회 안팎에서 큰 타격을 받아 결국 도산까지 가게 된다.

일이 그렇게 되기 전에 얼른 여기서 탈출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A급 전과자인 나는 이 회사 말고는 달리 적을 둘 곳이 없다.

윌슨앤코가 망하는 것을 막고,

이 도시에서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

사실, 걱정되는 건 후자 쪽이다.

아무래도 이놈의 몸뚱이 속에 들어 있는 심장이 제법 고급품이라, 온 동네 마법사들의 수집 욕구를 아주 그냥 뿜뿜 자극하는 모양이다.

일단 이전에 겪었던 불의의 습격 등에 내 몸 하나 지킬 수 있을 정도로는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수준의 강함으로는 아직 한참 모자란다. 시에라시티에는 전에 만난 엘프 마법사처럼 어중이떠중이 같은 악당들만 있는 게 아니다.

술식의 극의를 깨우친 마도사.

수백 명의 용병을 살해한 사이코 킬러.

저녁 무렵의 심심풀이로 세상을 한번 불태워 볼까 매일같이 고민하는 가장 위험한 드래곤.

지금은 잠잠하지만, 때가 되면 시에라시티는 ‘악의 도시’로서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 상태로는,

혼자서 살아남기란 버겁다.

“동료가 필요해.”

<사이버판타지>에는 동료 시스템이 있다.

돈을 주고 용병을 고용하거나, NPC와의 관계도를 높임으로써 동료 영입 제안이 가능했다.

스탯이 약한 초반부, 난이도가 오르는 중반부, 스케일이 말도 안 되게 커지는 후반부까지.

솔로 플레이가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스트레스를 덜 받아 가며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다면 동료 시스템은 <사이버판타지>에서 필수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요소였다.

“용병은 못 믿겠고.”

돈으로 고용한 용병은 대부분 신뢰도가 낮아서 언제 관두거나 도망갈지 모른다.

“친한 사람은 없고.”

관계도는 금방금방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동료로 영입하려면 NPC마다 정해진 필수 퀘스트를 깨거나 해야 하니 상당히 번거롭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그것도 꽤 좋은 방법이.

귀찮게 내가 일일이 동료가 될 사람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다른 이가 먼저 내게 찾아와 자기를 동료로 받아 달라 부탁하게 할 수도 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유명해져 볼까.”

명성이다.

***

노스네스트 3구역.

으슥한 뒷골목의 한 술집.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시큼한 알코올 내음과 담배 연기가 더부룩하게 콧속을 누빈다.

바텐더가 한 명. 술손님이 두 명.

나를 향해 인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나는 후드를 벗고 바에 가서 앉았다.

마스크는 내리지 않았다. 손님 둘이 번갈아 가며 내 쪽을 흘깃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주문은?”

그즈음 바텐더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처음 온 손님 취급이 좋지 않은 가게다. 메뉴판이라도 요청했다간 뺨 맞고 쫓겨날 듯하다.

“커피.”

“음료값은 선불이오.”

나는 볼멘소리 대신 100달러 지폐를 꺼냈다.

짤그랑―. 스테인리스로 된 술청에 잔돈 떨어지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귓속에 울렸다.

“당신,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전자레인지에 돌린 우엉즙 같은 맛없는 커피를 홀짝이고 있자니, 바텐더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 동네는 처음인가?”

나는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바텐더는 과묵한 손님에게서 도통 관심을 끊으려 하지 않았다.

“커피만 마시러 온 건 아니겠지?”

“…….”

“역 앞 스타벅스에나 갈 것같이 곱상하게 생겨 가지곤, 이딴 시궁창 술집에서 별안간 커피를 찾고 앉은 얼간이는 당신이 처음이야. 괴짜 양반.”

나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물론 대답 대신 입에 머금기에 그 커피는 좋은 대안이 아니었다.

“여긴 무슨 볼일로 왔나? 응?”

이번에는 대답을 해야 할 성싶었다.

나는 구정물 같은 커피가 담긴 잔을 내려놓고, 바텐더의 눈을 향해 시선을 쏘며 말했다.

“요새 뭔가 괜찮은 일거리는 없나?”

그러자 바텐더가 피식 웃었다.

“아하, 일거리를 찾는단 말이지.”

“…….”

“기껏 찾아온 와중에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가게에선 무경력자는 안 받아줘. 보아하니 이 동네 저 동네 떠돌아다니는 프리랜서 같은데, 노스네스트에서 일자리 구하려면 신용은 필수야, 필수.”

바텐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쨌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갸륵하니 당신 이름 정도는 메모해 두지. 뭐라고 부르면 되나?”

그가 물었고,

나는 바로 답했다.

“카이트.”

그 이름을 말한 순간.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게 당신 이름인가? 카이트?”

“그래.”

바텐더는 찡그린 눈으로 나를 훑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피식 웃었다.

“설마, 어젯밤에 맥스페인에서 칸투를 발라 버리고 10연승을 했다는 그 카이트?”

나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커피를 마셨다.

대화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건지, 그의 목소리 톤은 눈에 띌 정도로 살갑게 변했다.

“이런, 진작 말하지 그랬나!”

“…….”

“나 그거 동영상도 봤어! 어쩐지 처음 딱 들어올 때부터 어디서 본 것 같더라니…… 우리 가게에 유명인이 다 오셨구만 그래! 크하하핫!”

“일거리를 받고 싶은데. 가능한가?”

“당연하지!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연락받은 게 하나 있거든. 기관 쪽 일이라 아마 보수도 넉넉하게 챙겨줄 거야.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바텐더는 성큼성큼 안쪽으로 들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꽤 길게 이어졌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카이트’의 명성은 이미 꽤 높다.

“지금 의뢰인과 연락했어. 칸투를 발라 버린 실력자라니까 믿고 맡길 수 있겠다 하더군.”

“어떤 일이지?”

“별거 아니야. 밀항자 하나 호위하는 건데. 자세한 인적 사항은 기밀이지만, FBJ랑 인터폴이 노리고 있어서 쪼끔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지.”

“보수는?”

“40만 크레딧. 다만,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서 이등분해야 할 거야. 먼저 찜한 사람이 있거든.”

40만 크레딧은 환산하면 대략 4만 달러.

내게 주어질 2만 달러의 보수는 주급 3만 달러를 넘게 받는 입장에서 그리 매력적인 금액은 아니었지만, 당장의 내 목적은 돈이 아니었다.

내가 노리는 것은,

뒷세계에서의 명성.

<사이버판타지>에서 플레이어는 선행이나 악행을 통해 카르마 포인트 혹은 바이스 포인트를 획득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포인트 수치의 합산이 곧 플레이어의 명성이 된다.

명성이 높을수록 플레이어의 영향력은 커진다. 행동과 선택지의 폭 또한 넓어진다.

높은 명성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도 있지만, 이득을 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카이트’의 명성과 영향력을 키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어때, 할 건가?”

그것이 내 계획이다.

‘유진 연’의 인생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좋아. 하지.”

원래는 가능한 숨어 지내려 했다.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이 정신 나간 게임 속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이미 늪지에 발을 들이밀었고, 이대로 가만히 있어 봤자 수렁에 빨려 들어갈 뿐이다.

그러니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빠져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작업일은 다음 주야. 이건 의뢰인 연락처. 직접 얘기하기 싫으면 날 통해서 연락하면 돼.”

“그럼 오늘은 이걸로 끝인가?”

“뭐, 일단은. 쨌건 축하의 의미로 내가 술 한 잔, 아니, 커피 한 잔 더 따라주도록 하지!”

바텐더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커피 한 잔을 더 받아 마셔야 했다.

밍밍한 커피를 꾸역꾸역 삼키고 있었을 무렵.

끼익―.

가게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발소리가 엄청났다. 지진이라도 난 줄 알았다.

그자는 쿵쿵 소리를 내며 걸어오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의자를 거의 부술 기세였다.

나는 슬쩍 옆에 앉은 이를 보았다.

희멀건 피부와 매끈한 스킨헤드. 가죽으로 된 검정색 코트를 걸친 거구의 남자.

“손님, 주문은?”

바텐더가 묻자, 남자는 입을 열었다.

“사람을 찾고 있다.”

들입다 집어던진 벽돌처럼,

건조하고 딱딱한 목소리였다.

“자색 마력을 가진 마법사를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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