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Killing In The Name (1)
“뭘 찾는다굽쇼?”
바텐더는 남자가 주문한 것이 새로 나온 칵테일 따위가 아니란 사실에 살짝 역정이 난 듯 보였다.
“2주 전 목요일 밤 사우스아치 6구역에서 거대한 마력 폭발을 일으킨 마법사를 찾고 있다.”
“흠, 금시초문인데.”
“보라색 마력을 가진 흑마법사, 수염과 머리털이 덥수룩한 금발의 남자다. 아는 바 없나?”
“미안하지만 전혀 모르겠군.”
술청을 사이에 두고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갔다. 다른 손님들은 이미 그에게서 신경을 끈 지 오래였고, 바텐더도 그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는 헝겊으로 유리잔을 닦으며 건성으로 말했다.
“이봐, 손님. 여기서 이러는 건 시간 낭비야. 애초에 여긴 흥신소가 아니라 술집이라고.”
“이곳 주인장이 노스네스트에서 제일가는 정보통이라 들었다.”
“설령 아는 게 있더라도 공짜로 아무나한테 막 떠벌릴 것 같아? 뭐 떡고물이라도 있어야지.”
“떡고물이라……. 만약 쓸 만한 정보를 준다면, 당분간 이 구역 상권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허? 안전을 보장? 당신이 뭔데?”
바텐더가 키득대면서 물었다.
남자는 뜸 들임 없이 답했다.
“블랙 대거즈.”
그 순간,
바텐더가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놓쳤다.
―쨍그랑!
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불길한 음파가 귓속을 찌르며 울렸다. 허나 가게 내부는 이미 그보다도 훨씬 더 불온한 기류에 휩싸여 있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페스트처럼 순식간에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 술집 안의 모든 이들에게 전염됐다.
“저, 정말인가……?”
쓸데없는 물음표였다. 이 도시 안에서 농담으로라도 그들의 이름을 빌리는 머저리는 없었다.
블랙 대거즈Black Daggers.
마법사를 찔러 죽이는 암살자들의 모임.
시에라시티에 거점을 둔, 마법과 마법사를 증오하는 이들이 모인 테러리스트 단체다.
그들의 목적은 이 땅의 모든 마법사를 죽이고, 마법이란 개념을 지구상에서 없애 버리는 것.
때문에 도시의 마법 관련 단체들과는 매일 전쟁에 가까운 피투성이 마찰을 일상처럼 빚는다.
게임 내에서도 그 존재감은 확실한 편.
<사이버판타지>의 이런저런 굵직한 이벤트 라인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주요 팩션이다.
“이, 이야, 손님은 그, 거물이셨구만……?”
“정보를 제공할 마음이 생겼나?”
“무, 물론! 근데 그, 아까 말한 흑마법사 어쩌고 하는 거는 사실 진짜로 아는 게 없어서……. 하지만 지, 지금부터 열심히 함 수소문해봅세!”
남자가 정체를 밝히고 난 뒤 바텐더의 태도는 눈에 띄게 살가워졌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이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뒷골목의 주민들은 경험과 직관으로 숙지하고 있었다.
“거, 좁은 동네니 사람 한 명쯤은 금방 찾고도 남을 거야. 게다가 마법사란 것들은 원체 저들끼리 건너 건너 다 아는 사이지 않나!”
“이 집엔 마법사들이 자주 들락거리나 보군.”
“응? 아, 그게, 음, 그런 편이지. 여기서 부업으로 용병업 중개를 해주고 있거든.”
주인장은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다행히 이 가게에 마법사 단골이 많다는 사실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지는 않았다.
블랙 대거즈는 마법사를 향한 과격한 테러 행위를 일삼기로도 유명하지만, 그들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만큼 어느 정도는 법을 준수한다 이미지와는 달리 눈에 보이는 모든 마법사를 때려죽이려 드는 미치광이들의 모임은 아니란 얘기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마법사인 입장에선 가급적 그들의 눈에는 띄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긴 하다.
“그러면.”
하물며,
그들이 찾고 있는 게 나라고 한다면―
“내 옆에 앉은 손님도 마법사인가?”
지목과 동시에 남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이 자리에 있을 뿐인 사람처럼.
“응? 아, 이 친구는 마법사는 아니고. 무투가야, 무투가. <맥스페인> 투기장 알지? 최근에 거기서 한바탕 치르고 유명해졌어. 주먹질이 참 매섭더만.”
바텐더가 자기 자랑을 하듯이 말했다.
스킨헤드 남자는 잠시간 나를 노려보았다. 마치 습격하기 직전 먹잇감을 살피는 맹수처럼.
“나는 자색 마력을 가진 흑마법사를 찾고 있다.”
“…….”
“뭔가 아는 것이 있나, 무투가?”
위협처럼 느껴지는 질문이었다.
나는 우선 침묵했다. 혹여나 긴장한 티가 나지 않도록 호흡을 조금 줄이고, 최대한 여유로운 동작으로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블랙 대거즈가 나를 찾고 있다.
이유는 뭐지? 내 심장을 노리는 건가?
생각은 길 필요가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이 남자에게 내 정체가 드러나는 것만은 피해야 했다.
“글쎄, 잘 모르겠네.”
무엇보다도 지금은 자리를 뜨는 것이 최우선.
그대로 자연스럽게 일어나 유유히 가게 밖으로 나가려던 바로 그 찰나―
“거기. 멈춰라.”
스킨헤드 남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우뚝, 나는 부자연스럽게 멈춰 섰다.
“나한테 뭐 볼일이 남았나?”
“그래. 거짓말을 했더군.”
“내가?”
“아니. 주인장이.”
“……?”
“걷는 자세에서 싸움꾼의 기백이 느껴지지 않는다. 체간의 골근도 튼튼하지 못하고, 아녀자의 것 같은 손에는 굳은살이라곤 전혀 박혀 있지 않아.”
남자는 으름장을 놓듯이 말했다.
“너는 무투가가 아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싸늘한 분위기에 다른 손님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뜬 지 오래였다.
“후드를 벗어라.”
남자가 명령조로 말했고,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천천히 후드를 벗어 머리를 드러냈다.
“금발이군.”
“뭐, 흔한 색깔 아닌가?”
“내가 찾고 있는 흑마법사는 금발의 남자다.”
“흔한 머리색에 흔한 성별이라 생각하는데 말이지.”
“외견, 체형, 분위기, 걸음걸이. 모두 내가 찾고 있는 인물과 흡사하다. 동일 인물이라 봐도 좋을 정도로.”
그의 말투에서 불길한 확신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상황은 점점 더 내게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했다.
“마력을 보여 봐라.”
“잠깐만. 당신, 어째 지금 날 마법사라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이 도시에서 47명의 마법사를 죽였다. 그동안 오해 같은 걸 한 적은 없다.”
“…….”
“48번째가 되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협조해라. 네가 가진 마나의 색채를 확인하겠다.”
이제는 좆됐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발뺌이 통할 것 같지도 않았다. 지금 내가 부릴 수 있는 마지막 여유는 그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하는 것 정도. 그러는 동안에 나는 필사적으로 대가리를 굴렸다.
―도망칠까?
―시키는 대로 해?
―싸운다면 이길 수 있나?
머릿속에 떠오른 몇 가지 선택지들.
자연스레 귀결되는 질문은 하나였다.
―상대의 수준은 어느 정도지?
<사이버판타지>에서 블랙 대거즈는 일반 잡몹 단원만 해도 레벨이 무려 35로 책정되어 있다. 간부급 NPC라면 50레벨 이상인 경우도 허다하다.
‘무지막지하게 강하다.’
눈앞의 남자가 잔챙이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피부로 느껴지는 위압감은 이전에 싸운 칸투 이상.
―상대의 직업은?
일단 마법사는 아닐 것이다. 그야 블랙 대거즈는 마법사를 혐오하는 단체니까.
체격만 보면 육탄전에 능할 듯하지만, 무투가나 칼잡이의 복장치고는 거추장스러운 느낌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무기는 없으나, 코트 안에 총이나 작은 날붙이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시티헌터.’
무기를 가리지 않는 전투의 프로.
레벨 50 이상의 시터헌터로 추정.
―그래서 결론은?
도망치는 건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추적과 탐색에 능한 시티헌터 클래스를 상대로 무지성 도주가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다. 특히나 밤의 뒷골목은 그들의 홈그라운드나 다름없으니.
싸워서 이긴다는 것은 더더욱 어불성설.
애초에 나는 무기도 뭣도 없는 강화 마법 1툴따리 마법사이지 않은가. 기습 공격을 시도해 본다 한들, 지금의 내 능력으로 저 덩치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결국,
생존이 최우선이기에.
“하나만 묻지, 테러리스트 양반.”
나는 짧게 숨을 내쉬고는 슬며시 운을 떴다.
“만약에 내가 당신이 찾고 있는 그 흑마법사라고 한다면, 그땐 어쩔 셈이지?”
“내 계획을 너에게 발설할 이유는 없다.”
“조금 맞혀 볼까? 일단 죽이거나 하진 않을 거야. 그럴 셈이었다면 굳이 지금처럼 이리 번거롭게 내 마나 색깔을 확인하려 할 것도 없지. 아마도 그 자색 마력을 가진 마법사를 모르고 죽여 버리기라도 했다간 곤란해지니까……. 맞지?”
스킨헤드 남자는 무언으로 답했다.
“그쪽은 날 못 죽여.”
“…….”
“하지만 나는 아니지.”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을 뻗었다.
―화아아아악!
약간의 진동,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공기의 출렁임과 함께 보랏빛 불길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실로 거대한 마력의 불꽃. 역사의 그 어떤 대마법사도 이르지 못했다 하는 초절정의 마나 출력.
수십 명의 마법사를 살해했다는 세기의 악당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 광경에는 필히 주춤하리라.
뭐, 어디까지나 내 희망 사항이긴 했지만, 여기서 놈이 조금이라도 쫄아 준다면 앞으로의 상황에서 내 쪽이 좀 더 우위를 가질 수 있을 터였다.
나는 그대로 약 5초간 마력 방출을 지속한 뒤, 뜸을 들여가며 서서히 오른손에 주었던 힘을 거둬들였다.
시야 이곳저곳에 공연히 남게 된 잔불을 제외하면, 가게 안은 곧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잠잠해졌다.
자아, 놈은 어떻게 반응해 올까?
기대대로 겁을 먹어 줄까? 아니면 내 허세를 알아차릴까? 설마 싶지만 무반응일까?
스킨헤드 남자는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그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아까 전과 같은 위협적인 적개심 또한 없었다.
“블랙 대거즈의 레오노프.”
나를 향한 눈빛 속에 어렴풋이 스며들어 있는 검은 불꽃, 샛별처럼 반짝거리는 칠흑의 의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경외였다.
“지금, 암귀 앞에 무릎을 꿇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