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A Taste of Honey (2)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어깨를 한 차례 으쓱했다.
“처음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어요. 자색 마력은 애초에 마법에 쓰일 일이 없는 기타 색채인데, 굳이 그런 걸 궁금해한다고? 게다가 색채별 마력의 성질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다면서, 자색 마력의 기본적인 특성조차도 몰랐다니? 누가 봐도 어색하잖아요?”
“…….”
“저는 있죠, 다른 건 몰라도 거짓말하는 남자만큼은 진짜 별로라서. 하여튼 유진 씨, 감점이에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여기서 어떤 주장을 펼친들 설득력은 추호도 없을 터였다. 왜냐면 구라뿐인 변명일 테니까.
“아무튼 맞죠? 흑마법사.”
더욱이 상대는 마법에 일가견이 있는 자.
제아무리 일장 설파를 늘여놓아봤자 조목조목 반박당할 게 뻔하다. 예상 승률은 명백히 제로.
“…….”
이렇게 된 이상,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지.
이미 저질러 버린 실수는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건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막는 것.
“……맞아요. 숨겨서 죄송합니다.”
“그쵸? 그럴 줄 알았다니까요.”
“저기, 이런 말 할 입장이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이 건은 비밀로 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으응? 비밀로 해 달라구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비너스 님.”
최악의 경우까지도 상정하고 있었다.
굉장히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긴 하지만, 오늘 처음 만난 남자의 위험한 비밀을 굳이 지켜줄 정도로 나를 신뢰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헌데,
예상과는 다르게도,
“아, 네.”
그녀는 마치 ‘영수증 버려 드릴까요?’란 편의점 알바생의 질문에 대답하는 손님처럼 말했다.
“어, 진짜요……?”
“뭘 그리 의심하신대, 속고만 사셨나. 제가 그걸 굳이 떠벌리고 다닐 이유가 없잖아요.”
“신고라든가…… 안 하실 겁니까?”
“흑마법은 딱히 불법이 아닌데요?”
잠시 침묵.
“그야 아직 학계 연구도 부족하고, 또 그쪽 방면을 험하게 파고들다가 잘못된 사람들이 많으니까 도의적으로 권장하지 않는 것뿐이지, 딱히 법적으로 뭐 문제 될 건 없어요. 흑마법이란 게.”
….
….
법적 문제가 없다?
흑마법이 합법이라고?
그러고 보니, 인터넷 어디서도 흑마법사랍시고 잡아갔다거나 뭐 그런 얘기는 본 적이 없었다.
흑마법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려준 마법 상점 여주인의 첨언도 ‘별로 추천은 안 해요’ 정도였고.
뭐야, 그럼.
나 잘못한 거 없네?
“유진 씨, 설마 몰랐던 거예요?”
“……그런 것 같습니다.”
“편견에서 비롯된 착각이었나 보네요. 흑마법사라든가 마녀라든가, 단어의 뉘앙스 때문에 일반인들한텐 자주 오해받곤 하죠. 그럴 만도 해요.”
나는 이마를 감싸 쥐고 길게 한숨을 뱉었다.
어리석은 자신에 대한 경멸의 의미도 물론 있었으나, 그보다는 안도의 의미가 훨씬 더 컸다.
“저기요, 썰 좀 풀어 봐요. 어쩌다 흑마법사가 되어 버린 거예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만약 안 그랬으면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거든요.”
“성물은 뭐를 썼는데요?”
“그게 아마, ‘카인의 단도’였을 겁니다.”
“오우, 꽤 네임드 악마랑 계약했네요?”
나는 그녀가 묻는 말에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잘 모르겠다. 수다하듯 떠벌릴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어쩐지 나는 그러고 있었다. 심문 중에 자백제라도 맞은 사람처럼 말이다.
“뭐어, 인터넷 같은 데 보면 흑마법사는 곱게 죽지 못한다거나 뭐 그런 무시무시한 얘기들도 있는데, 신경 쓸 것 하나도 없어요. 그런 건 그냥 SNS에 떠도는 출처 불명의 괴담 같은 거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겠네요.”
“으으음, 더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통금시간이 간당간당하네요. 허니라떼도 다 마셔 버렸구요.”
“다음에 또 시간 있을 때 만나면 되죠. 커피 정도는 제가 얼마든지 사 드릴 수 있어요.”
“아하핫, 커피만요?”
솔직히 꽤나 좋은 분위기였다.
이게 만약 소개팅이었다면 바로 다음에 만날 약속 잡고, 주선자한테는 초밥이라도 사 줬을 거다. 천천히 한 피스씩 나오는 녀석으로.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비너스 님.”
하여간 오랜만에 나쁘지 않은 만남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보내기 아쉬웠을 정도로.
“유진 씨, 잠시만요.”
그리고.
헤어질 때 즈음.
“예?”
“역시, 그냥 보내기가 좀 싫어서요.”
그녀가 나를 그런 말로 붙잡아 세웠다.
아무래도 그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모처럼 좋은 연구 소재를 발견했는데, 샌마대의 학도로서 얌전히 물러날 수는 없단 말이죠.”
“……예?”
“저기 혹시, 지금 저랑 같이 가서 마나 정밀 검사를 받아보지 않을래요? 저희 학교 연구실에 카이젠서도 검증받은 비싼 전문 장비를 들여놨는데, 저는 특기생이라 맘대로 쓸 수 있거든요!”
“…….”
그 생각의 방향성은,
조금 다른 듯했지만 말이다.
“어때요, 유진 씨?”
“으음, 죄송하지만, 제가 아직 오늘 일을 다 못 끝마쳐서, 다시 회사에 들어가 봐야 하거든요.”
“오래는 안 걸릴 거예요. 순수 검사 시간만 따지면 한 10분쯤? 결과도 금방 나오구요.”
그녀는 마나 정밀 검사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다.
‘마력의 구체적인 색조를 측정해 고유 성질에 관하여 보다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마나밀도, 결합구조, 정령친화도 등의 수치를 샘플과 비교해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내가 잘 모르는 어려운 전문 용어도 마구 쏟아져 나왔지만, 논지는 결국 하나였다.
검사를 받는 것은―
무조건 나에게 이득이다.
“유진 씨는 마법사로서 강해지고 싶은 것 아니었나요? 그래서 저랑 만나려고 했던 거잖아요.”
“아, 물론 흥미가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가까운 시일 내에 약속을…….”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요.”
그 한마디는,
제법 울림이 강했다.
“싫은가요? 저랑 같이 가는 거?”
다른 때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흔들리는 마음 따위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여기서는 분명하게 거절할 타이밍이었다.
“…….”
그런데 어째서일까.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괜찮잖아요. 오늘 하루쯤은.”
멍한 귓속에 메아리처럼,
그녀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같이 가요.”
기묘한 위화감은 계속 이어졌다. 어느새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카페 밖으로 나와 있었다.
“이쪽이에요.”
그녀는 카페 근처 갓길로 나를 인도했다.
주차 미터기 앞에 세워둔 차는 그녀의 머리칼과 눈동자처럼 영롱한 초록빛을 띠었다.
로마냐 세타지알라.
이탈리안 미드십 감성의 2인승 스포츠카.
“멋진 차네요.”
“작년에 대학 합격한 김에 질렀어요.”
대학생이 타고 다니기엔 너무 좋은 차.
누가 봐도 이상했다. 적어도 평범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깐 들었다 말았을 뿐.
이미 나는 시에라시티 모두의 드림카 조수석에 탄 채 고가도로의 석양 위를 달리고 있었다.
요염한 핑크색으로 물들어가는 저녁놀의 그라데이션은 이 도시를 잠시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의 재기발랄한 유토피아처럼 만들어 주었다.
허나 그런 기분 좋은 착각은 단지 한때의 것이다. 밤이 오면, 별빛을 거부하는 시커먼 하늘이 언제 끝날지 모를 엔딩크레디트마냥 펼쳐진다.
그러다 다시 짤막한 쿠키 영상으로, 어제의 노을을 재현하려고 시도하는 새벽이 밝아온다.
밤을 끌어오는 어둠이 짙어가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 영화 속에 있는 듯했다.
“학교까진 얼마나 가야 하죠?”
“제2캠퍼스가 이스트포레스트에 있어요. 앞으로 30분 정도 걸릴 거예요.”
나는 창밖을 보며 하품을 지었다.
방금 전에 커피를 그란데 사이즈로 두 잔이나 마셨는데도, 차분한 라벤더 향을 뿜어내는 방향제 냄새를 맡고 있자니 문득 졸음이 쏟아졌다.
“졸리면 잠깐 눈 좀 붙이셔도 돼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저도 혼자 운전하기 심심하니까 말동무라도 해 주실래요? 잠도 물리칠 겸.”
“그러죠.”
말동무를 해 준다고는 했지만 정작 말은 거의 저쪽이 도맡아 했고, 내 역할은 추임새 정도에 그쳤다. 그마저도 잠꼬대에 가까웠고 말이다.
대화의 흐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학교생활 얘기를 하다가, 자동차 얘기로 빠졌고, 그러다 보니 돈 얘기가 흘러나왔다.
대학생이 어떻게 로마냐를 끌고 다닐 수 있는 건지, 내가 졸린 와중에 넌지시 물어보자―
“사실, 저 살짝 위험한 알바를 하고 있거든요.”
그녀가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밤일 같은 건 아니구요. 밤에 하는 일이긴 한데, 뭐랄까. 음, 심부름꾼이라고 해야 되나?”
“용병 말인가요?”
“네, 맞아요, 그거! 이 동네 뒷골목에 가 보면 마법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꽤 많거든요.”
“그렇군요.”
“가―끔 떳떳지 않은 일을 하게 될 때도 있지만, 감내할 만큼 벌이가 상당히 짭짤해서 말이죠.”
나는 가만히 그녀가 하는 말을 들었다.
“지난주에도 한 건 뛰고 왔어요. 그게 아마 목요일 밤이었나, 사우스아치에서 아랍인 밀항자를 호위하는 일이었는데, 딱히 나설 순간이 없어서 엄청 지루했어요. 추가 보수도 못 받았고.”
“그랬나요.”
“뭐 어쩌겠어요. 그냥 집에 가서 맥주나 한 캔 마시고 자야겠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말했다.
“푸샤아아―! 하고 폭발음이 들리더라구요?”
그 시점부터 의미 없는 추임새를 멈췄다.
어쩐지 불길한 감촉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디서 들린 거지 싶어 돌아보니까, 엄마야 깜짝이야! 그런 건 살면서 처음 봤지 뭐예요!”
“…….”
“그건 정말로 집채만 한 크기의 마력 폭발이었어요. 진짜 말도 안 되는 거죠. 아이오와 사태 때에도 그 정도 규모의 폭발은 없었으니까요.”
나는 최대한 호흡을 죽였다.
혹여나 떨리는 숨소리가 들킬까 봐.
―목요일 밤의 사우스아치.
―말도 안 되는 규모의 마력 폭발.
알다시피,
모두 내 얘기였다.
“그리고 그때 딱 생각이 난 거죠. 옛날 옛적에 어디선가 들었던 무시무시한 괴담 같은 소문이.”
“누구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하지만, 4,000년을 살아온 어느 전설적인 대마법사가, 자신의 심장을 꺼내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숨겼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 심장을 찾아낸 어떤 운 좋은 사람이, 자기 몸에 그걸 스스로 박아 버렸다는 이야기.”
“누구 이야기인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나는 의심스러울 정도로 침묵만을 이어갔다.
그녀는 아랑곳 않고 자기 말을 계속했다.
“얼른 그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달려가 봤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어요. 한발 늦었던 거죠.”
“…….”
“그러다 근처 골목에서 뺀질이 경찰 두 명을 만나서, 폭발에 대해서 혹시 아냐고 물어보니까, 횡설수설만 하고 도움이 하나도 안 되더라구요? 게다가 분수도 모르고 저한테 집적대기까지 했죠.”
교차로의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그래서 둘 다 죽였어요.”
그녀는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그게 자연스러운 행동인 것처럼.
“가만 생각해 보니까, 그 폭발은 보라색이었단 말이죠? 근데 자색 마력이라면 그 폭발을 일으킨 사람은 마법을 못 쓰는 사람이란 얘기거든요?”
“현장에 잔존해 있는 마나의 순도를 보고 완전히 초짜란 걸 알았어요. 분명 마법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 사람들이 어디서 마법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하겠어요? 당연히 인터넷이죠.”
“힘들었다구요. 24시간 모니터링 하는 거.”
“그날부터 쭈―욱 컴퓨터 앞에 앉아서 화면만 보고 있느라, 안구건조증까지 생겼단 말이에요.”
“하지만 뭐, 그럴 만한 가치는 있었어요.”
“찾았으니까.”
그녀와 눈을 마주친 순간.
나는 암흑 속에 앉아 있었다.
“……어?”
차갑고 딱딱한 모랫바닥.
방금 전까지 앉아 있었던 시트의 느낌과는 모든 부분에서 아예 완전히 달랐다.
주위를 살폈다.
스포츠카의 내부가 아니었다.
깜깜한 밤하늘. 그보다도 더욱 짙은 어둠이 깔린 황무지 한가운데. 어느 폐교의 운동장.
옮겨졌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의식 역시 한순간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건……?
“순간이동 마법.”
그때.
먼발치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검은 시야를 훑었다.
30미터 정도 앞에, 마법 지팡이 같은 것을 한 손에 들고 있는 비너스가 어렴풋이 보였다.
“―은 물론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시공계 마도사한테도 10km짜리 포탈 하나 뚫는 게 기적 같은 일인데, 겨우 저따위가 그걸 어떻게 쓰나요?”
“…….”
“사실은 환영 마법에 결계 마법, 거기에 약간의 연금술을 더한 트릭이죠. 방향제 냄새 좋았죠?”
때마침 두통과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비틀―. 눈앞이 띵해지며 몸이 휘청였다.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니 방금 전까지 맡고 있던 냄새가 얼마나 독했는지, 비로소 체감이 되었다.
“오늘 뿌린 향수도 비슷한 작용을 하거든요. 대뇌피질에 주기적으로 자극을 줘서, 아마 지금 당신은 정상적인 판단이 안 될 거예요.”
그제야 알아챘다.
저녁 내내 감돌던 위화감의 정체를.
그녀가 처음 내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그 진한 향수 냄새를 들이마셨을 때부터.
진작부터 발목을 물려 있었던 것이다.
달콤한 로맨스인 척 위장한 허니 트랩에.
“어때요, 얼간이가 된 기분은?”
초록 눈의 엘프는 빙그레 웃었다.
“걱정은 마요. 거짓말로라도 몸에 좋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최소한 독성분은 없으니까.”
숲속의 유령 같은 그 눈빛은,
어둠 속에서 아스라이 반짝였다.
“소중한 심장이 더러워지면 안 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