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A Hard Day’s Night (2)
주식회사 윌슨앤코.
무역, 금융, 유통, 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는 어스테이트의 대표적 문어발 기업 ‘윌슨앤코 그룹’의 지주회사.
회사의 주된 업무는 계열사와 자회사의 경영 감사 및 보조, 재무 관리 및 투자.
총 사원 수 128명.
본사의 매출만 해도 연 2억 달러 이상.
어디 가서 명함 내놓기가 부끄럽지 않은, 번드르르한 1등급 대기업.
세간에는 대충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물론, 이 회사의 실상은 위키피디아에서 긁어모은 그런 잡소리들로 설명이 끝날 만큼 순수하고 바람직하지만은 못하다.
당장 사무실 풍경만 봐도 그렇다.
“……텅텅 비었구만…….”
삭막하다.
일단 책상 숫자만 봐도 128명은 개소리고 10명 자리나 간신히 채울까 싶다.
그마저도 출근 도장을 찍은 사람은 사장과 나를 포함해서 여태까지 단 3명뿐.
보면 알겠지만 이 회사, 윌슨앤코의 대외적인 기업 정보는 죄다 구라 일색이다.
특히나 재무제표에서 그 숫자가 올바르게 기입된 부분은 연도밖에 없다.
이것도 저것도 몽땅 거짓인 불량기업.
한마디로 정상적인 회사는 아니란 얘기다.
“이러니 타겟이 되는 거지.”
어스테이트는 무법자들의 나라다.
무법자가 노리는 것은 같은 무법자.
느닷없이 뒤통수를 후려 맞아도 하소연할 데가 없는 그런 자다.
“딱 좋은 먹잇감이야, 진짜.”
<사이버판타지>에는 정석 플레이가 있다.
자유도 빼면 시체인 게임에 웬 틀에 박힌 정석 플레이를 찾느냐는 소리도 나오곤 했지만, 게임 특성상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기에 가능한 편하게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이런저런 공략들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초반부 정석 플레이 중 하나가— 이른바 ‘불량기업 사냥’.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게임 시작 직후에, 곧장 으슥한 뒷골목의 술집으로 달려가 그곳 주인장에게 은밀히 말 한마디를 건넨다.
‘요새 뭔가 괜찮은 일거리는 없나?’
일반적인 RPG 게임과 마찬가지로, <사이버판타지>의 술집 주인도 역시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자잘한 퀘스트를 주는 역할을 한다.
이때 수주할 수 있는 퀘스트 중에서 가장 보수가 별로인 것이 하나 있는데…….
‘어디 보자, <윌슨앤코>라는 회사에서 야간 경비원을 한 사람 구한다더군.’
그 퀘스트의 내용은 어느 회사의 물류창고에서 일할 경비원 알바를 모집한다는 것.
보수도 낮고 클리어 시간도 오래 걸리는 데다 그다지 재미도 없어 보여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스킵해 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는 퀘스트지만, 그것은 크나큰 실수다.
해당 퀘스트를 수주하고 나면 매일 밤마다 물류창고 경비원으로서 출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정확히 근무 7일 차에 도시 갱단의 창고 습격 이벤트를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이벤트가 일어나기 전,
플레이어는 곧 창고를 습격할 갱단에 먼저 접근하여 이렇게 제안할 수 있다.
‘나 물류창고에서 경비로 일하는데, 혹시 거길 털 생각이라면…… 내가 좀 도와주지.’
이것이 바로 <사이버판타지>의 정석 플레이이자 진정한 묘미.
이 게임은 뒤통수치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어떤 캐릭터로 플레이하든 마찬가지다.
선행은 곧 손해. 악행은 곧 이득.
사기와 공갈, 배신과 밀고야말로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이 불한당들의 도시에서 가장 올곧고 정직한 덕목이다.
<사이버판타지>는 틈날 때마다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그러한 사실을 각인시킨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자연스레 도시를 더럽히는 불한당 중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이다.
좌우지간.
만약에 이 세상의 일들이 게임과 똑같이 흘러간다면, 문제의 창고 습격 이벤트가 벌어지는 건 오늘 날짜로부터 3개월 뒤.
갱단의 습격을 받은 물류창고는 지금 내가 다니는 이 회사 ‘윌슨앤코’의 소유다.
사실 그 창고는 밀수품, 마약 등 불법적인 물건들을 몰래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곳이었으며, 습격 사건으로 인해 그것이 발각되면서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더러운 이면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얼마 안 가 회사는 그룹째로 공중분해.
그 과정에서 지주회사 윌슨앤코의 사원들은 어째서인지 모두 실종 내지는 잠적했다.
……라는 소식을, 이벤트 이후에 뉴스나 신문 등지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3개월 뒤,
이 회사랑 나는 좆된다.
***
오전 9시 30분.
나는 책상 앞에서 한여름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마냥 기다란 숨을 내쉬었다.
“하아아아아…….”
오늘 쉬었던 한숨 중에 가장 큰 한숨.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아니, 오히려 알고 있기에 더욱 한숨의 크기만 커져 갔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장 그것부터가 명확하지 않았다.
마치 <사이버판타지>를 1회차 플레이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튜토리얼조차도 없는 불친절한 현실을 목전에 두고, 앞으로 뭘 어째야 하는지 그저 막막할 따름.
“…….”
여하튼,
이대로 가만있는 건 해답이 아닐 테지.
“좋아.”
그래.
게임이라고 생각해 보자.
나는 게임 속 캐릭터다.
방금 생성한 따끈따끈한 레벨 1짜리 초심자 캐릭터.
능력치는 분명히 보잘것없다.
인벤토리에도 아마 별다른 것은 없을 터.
그렇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레벨 올리기.”
게임에서 레벨은 어떻게 올리는가?
그야 몬스터를 잡거나 퀘스트를 깨서 경험치를 벌어야 한다.
“그리고 돈 벌기.”
게임에서 돈은 어떻게 버는가?
그야 몬스터를 잡거나 퀘스트를 깨서 보수를 받아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사냥터가 아닌, 그냥 사무실.
몬스터는 없었다.
퀘스트도 없었다.
대신에, 며칠은 손도 안 댄 듯한 서류뭉치들이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
도산까지 남은 기간은 3개월 남짓.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참담한 미래.
3개월 뒤에 살아남기 위해선,
먼저 오늘 하루를 살아남아야 했다.
[ 2. 사회의 톱니바퀴 ]
[ 당신은 회사의 충직한 일꾼입니다. ]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오전 11시 30분.
리타 스몰필드는 세면대 거울 앞에서 장마철 빗줄기마냥 기다란 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오늘 쉬었던 한숨 중에 가장 큰 한숨.
아마도 그녀의 한숨과 관련된 기록은 오전 내로 다시 갱신될 것이 분명했다.
“일하기 싫다…….”
그것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입버릇처럼 뱉곤 하는 푸념.
다만 지금의 리타 스몰필드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조금은 더 진심이라 할 수 있었다.
15일 연속 출근.
7일 연속 야근. 2일 연속 철야.
가뜩이나 체력과 면역력이 잔뜩 떨어졌을 차에, 숙직실에서 얇은 이불 하나 덮고 오들오들 떨면서 자다가 감기까지 걸렸다.
증세가 꽤나 심했던지라, 상사에게 조심스럽게 1일 병가를 요청했지만…….
‘병가?’
‘병신 같은 소리 말고, 가서 일이나 해.’
돌아온 것은 잔혹한 이행시뿐.
감기는 일주일째 낫질 않는 중이다.
“하아아아아…….”
오늘 쉬었던 한숨 중에 가장 큰 한숨.
사무실로 돌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그 기록을 세 번 더 갈아치웠다.
회사를 때려치우는 상상은 숨 쉬듯이 하는 것이지만, 언제나 상상에 그칠 뿐이다.
일을 해야만 했다. 이 정신 나간 도시에서 정상인인 척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끼익.
사무실 안에 들어서자마자, 불쾌할 정도로 밝은 형광등 빛이 안경 속 눈을 괴롭혔다.
리타 스몰필드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책상 위에 있던 프린트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러고서 향한 곳은,
망할 개자식 놈의 자리.
“팀장님.”
그녀의 직장 동료이자 상사.
윌슨앤코 영업팀장 유진 연의 자리였다.
“아, 예. 무슨 일이죠?”
모니터 화면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유진은 그녀의 부름에 곧장 반응했다.
제법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대비되는 꾀죄죄한 외모는 절로 불쾌감을 자아냈다.
‘면상 진짜 토 나오네.’
참고로, 유진에 대한 리타 스몰필드의 개인적인 평가는 대략 이러했다.
―인간쓰레기.
―사회적 오물의 표본.
―개똥 같은 회사의 개똥 같은 상사.
그녀는 유진을 끔찍이도 혐오했다.
무능력 낙하산에다, 일도 드럽게 안 하고, 예의랑 싸가지는 아주 밥 말아 처먹은.
하여간에 인간으로서 존중할 부분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는 그런 사내였기 때문이다.
“이거 결재 좀 해주실래요.”
“결재요?”
“비품 구매 확인서예요.”
리타 스몰필드는 프린트를 건넸다.
비품 구매 확인서와 관리대장이었다.
“복사기를 한 대 더 들여놨나 보군요.”
어머, 그 사실을 눈치채시다니 정말 유능하시네요! 라고 말할까 하다가 참았다.
“네. 결재 좀 부탁드릴게요.”
“으음. 잠시만요.”
그때, 어쩐지 유진은 받은 프린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대놓고 뜸을 들였다.
“저기, 팀장님?”
“…….”
그는 한참 동안 반응이 없었다.
리타 스몰필드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일거리가 한참 밀려 있는데, 비품 신청서 따위에 금 같은 시간을 뺏기고 있다니.
‘뭐 하자는 거야, 지금?’
오늘따라 이 인간은 많이 이상했다.
갑자기 존댓말을 써대질 않나. 책상 앞에 붙어서 일하는 시늉을 하고 있질 않나.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달할 찰나―.
“스몰필드 씨.”
유진이 입을 열었다.
“뭡니까, 이게?”
고드름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네?”
“원래 일을 이렇게 대충합니까?”
“……네, 네?”
리타 스몰필드는 당황했다.
그녀가 어버버 하고 있던 사이, 유진은 서류 더미에서 프린트 한 장을 찾아 꺼냈다.
“2주 전에 제출한 비품 구매 신청서에는 품목명이 ‘복합기’로 되어 있던데, 지금 건 ‘복사기’라고 되어 있네요. 두 개가 다른 겁니까?”
……2주 전에 제출한 신청서?
뭐라 썼는지 기억이 날 리가 없다. 애초에 복합기든 복사기든 그게 그거 아닌가?
“아, 아마 같은 걸 텐데요…….”
“당연히 같은 거겠죠. 근데 신청서랑 확인서랑 품목명이 다르잖아요. 이러면 관리대장에도 중복돼서 기입되지 않습니까.”
“아…….”
“나중에 회계 쪽에서 이쪽 내역만 보고 복사기 두 대를 들여놨다고 처리해 버리면, 세금 계산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는 겁니다.”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유진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힘을 받아 왔지만, 업무 내용과 관련해서 핀잔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소한 거긴 한데, 관리대장을 굳이 가로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요? 표 모양이 이래서야 괜히 가독성만 나빠지는 것 같은데요.”
“…….”
“인터넷에서 긁어온 양식을 쓰는 것까진 상관없지만,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죠.”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그녀는 대충 일했다. 왜냐하면 비품 구매서 따위에 노력을 쏟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그치만…….’
변명할 거리는 많았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애초에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업무량이었더라면.
지난 이틀 동안 단 하루라도 멀쩡히 집에 보내줬더라면.
“…….”
확 들이받아 버릴까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금세 관둔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죄송합니다. 다시 고쳐 올게요.”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리타 스몰필드는 움찔했다.
서, 설마 짤리는 건가?
겨우 비품 구매서 좀 대충 썼다고?
불안에 빠져 있는 그녀에게,
유진은 무심코 말을 툭 던졌다.
“제가 할 테니까, 오늘은 들어가 보세요.”
정적.
짧은 침묵이 흘렀다.
“……네……?”
“몸 상태도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무리하지 말고 이만 집에 가서 푹 쉬어요.”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리타 스몰필드는 귀를 의심했다.
“저기, 그 말씀은, 조퇴해도 된다는……?”
“오후 다 됐으니까 반차로 처리해 둘게요.”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며칠 전 급한 용무가 생겨 오후 중에 조퇴를 요청했을 때, 유진은 이렇게 말했다.
‘조퇴?’
‘조 까고 있네. 퇴사하시든가.’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진짜 가도 되나요……?”
“왜요? 집에 가기 싫어요?”
“아니, 그게,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그쪽이 오늘 하루 쉰다고 해서 회사가 망할 리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말투는 전혀 상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따뜻하게 들렸다.
“뭐 해요, 안 가고?”
오늘따라 유진은 많이 이상했다.
“가…….”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던 걸까.
그런 있을 수 없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감사합니다아…….”
오전 11시 48분.
그녀는 건물 밖을 나왔다.
오후도 채 되지 않은 한낮, 일주일 만에 쬐는 햇볕과 함께하는― 퇴근길이었다.
***
“오케이, 정리 끝.”
나는 만족스럽게 기지개를 켰다.
4시간.
대략적인 업무 방식과 지침, 회사 상황 등을 숙지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무슨 일이든, 할 거면 똑바로 하자.
그게 30년 인생 동안의 내 모토였다.
하물며 컴퓨터 게임조차도 결코 대충 하는 법이 없었기에, <사이버판타지>의 완전판을 내 손으로 직접 한번 만들어 보겠답시고 몇 날 며칠 그 고생을 했던 거였으니 말 다 했다.
“보자, 이제 더 할 일이…….”
책상이랑 바탕화면 정리도 마쳤고.
조퇴한 직원이 두고 간 일도 손봤고.
뭐, 잠깐은 쉴 수 있겠군.
사실 팀장인 나는 이 사무실에서 사장을 제외하곤 딱히 눈치 볼 사람이 없다.
지금은 그 사장마저도 점심시간 두 시간 전에 외출해서는 돌아오지 않는 중이다.
그나마 한 명 있던 부하 직원도 조퇴.
사무실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
“…….”
아무래도.
지금이 기회 같다.
아까 전에 문득 떠오른,
그것을 시험해볼 절호의 기회.
[ 이름: 유진연 ]
[ 직업: 마법사 ]
써볼까.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