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A Hard Day’s Night (3)
<사이버판타지>에는 캐릭터를 생성할 때 고를 수 있는 네 가지 직업군이 존재한다.
마법사Wizard.
칼잡이Blademan.
무투가Fighter.
시티헌터City Hunter.
각 직업군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마법 쓰는 놈.
칼 쓰는 놈.
주먹 쓰는 놈.
총 쓰는 놈.
이들 직업군은 세분화되어 다시 몇 가지 클래스로 나뉘는데, 어떤 클래스건 간에 각자 쓰는 것의 정체성만큼은 그대로 가져간다.
마법사는 그중에서도 가장 다양하고 복잡한 갈래를 가진 직업이다.
초반 육성이 어렵긴 하지만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기에, <사이버판타지>의 고인물들은 대개 마법사를 최고의 직업군으로 꼽곤 한다.
세계관 내에서의 취급 또한 남다르다.
어스테이트에서 마법사라 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최고급 인력으로 알아준다.
군대, 경찰 훈련소, 대기업 연구실, 뒷골목 깡패 모임……. 조금이라도 마법을 쓸 줄 안다면 어디서나 사짜 직업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마법사 캐릭터는 처음부터 기초 마법 몇 가지를 습득한 상태로 시작한다.
게임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도 분명히 쓸 줄 아는 마법이 하나 이상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어떻게 쓰는 거지?”
쓰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
게임에서는 그야 스킬 리스트를 열어서, 단축키 버튼을 지정해, 필요한 순간에 눌러서 사용한다.
여기에서는 무리다. 상태창이나 스킬 리스트 따위는 암만 육성으로 외쳐도 나와 주질 않았다.
그럼 도대체 마법은 어떻게 쓰는 걸까.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참.
“…….”
문득 시야에 컴퓨터가 들어왔다.
그 옛날 윈도우98 시절 감성이 절로 묻어나는 구형 컴퓨터. 인터넷은 잘 연결돼 있는 상태.
“흠.”
검색해 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인터넷 브라우저를 켰다. 저렴한 UI의 포털사이트가 열렸고, 이내 곧장 검색창에 커서를 갖다 댄 후 키보드를 두드렸다.
[ 마법 쓰는 법_ ⌕ ]
……회사에서 혼자 ‘마법 쓰는 법’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심히 부끄러웠다.
쪽팔림을 감수하며 엔터를 눌렀다. 다행히도 정신병원 홈페이지 안내는 뜨지 않았다.
그러자,
“음?”
좌르륵―.
생각보다 검색 결과가 엄청 많이 나왔다.
일일이 골라내기도 어려울 지경이었기에, 우선은 가장 위에 뜬 링크를 먼저 클릭해 보았다.
<마녀일기>
~세실리아 화이트럼의 마법 연구소~
블로그였다.
슬쩍 살펴보니 마법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의 포스트들을 올리는 공간이었는데, 전문성 없는 개인 블로그라 넘겨짚기엔 방문자 수가 상당했다.
[ 갯지렁이도 따라 할 수 있는 기초 마법 -1- ]
[ 조회수: 637,316 ] [ 추천수: 7,854 ]
마침 맨 위에 뜬 글의 제목은,
내 시선과 관심을 한방에 끌었다.
“……읽어라도 볼까?”
밑져야 본전.
나는 그 글을 클릭해 읽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세실리아입니다.
오늘은 마법의 기초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많은 분들이 마법은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네. 맞습니다.
마법은 재능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노력만으론 닿을 수 없는 경지가 있기 마련이지요. 2단 뛰기와 3점 슛처럼요.
본인에게 마법 재능이 있는지 궁금하시다고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것을 간단히 알아보는 방법에 대해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마력 분사 테스트 ☆
이 테스트는 제가 고안한 것으로, 기구를 활용한 전문적인 측정 결과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테스트 방법은 이렇습니다.
1.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이 얼굴 쪽을 향하도록 두고, 검지손가락을 올리세요
2. 전신의 근육을 이완시킨 후, 의식과 무의식을 통째로 모아 손가락 끝에 집중시키세요
3. 숨을 참은 상태로, 3초에 한 번씩, 손가락 끝에서 땀이 나오는 느낌(※중요)을 상상해 보세요
4.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면 성공!
불꽃을 피우신 여러분,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마법사로서 최소한의 재능을 가진 것으로 판명되신 겁니다. 바로 ‘마력의 보유’죠.
불꽃을 피우지 못하신 분들도 상심하진 마세요. 어스테이트 인구의 99%가 마력 비보유자니까요.
만약 마법을 쓰고 싶으시다면, 먼저 이 테스트를 통해 본인의 마력을 확인해 보도록 하세요.
─흐으음.
나는 그쯤에서 스크롤을 멈췄다.
“마력 분사 테스트라…….”
게임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개념이다.
방법도 수상할 정도로 간단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역시나 밑져야 본전.
나는 글에 나온 대로 따라 해 보았다.
“어디…….”
손바닥을 얼굴 정면에 향하게 놓고,
손가락을 올린 다음 몸에서 힘을 뺐다.
의식과 무의식을 모아,
손가락 끝부분에 집중.
“흐읍.”
숨을 참고.
3초에 한 번씩.
손가락 끝에서…….
땀이 나오는 느낌을…….
“……?”
그때.
손가락 끝에서, 미약한 열감이 느껴졌다.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정말로 땀이 나는 것처럼.
그리고 한순간.
작게 일렁이는 아지랑이가 보였다.
“……어……?”
손가락 주변의 공기를 살짝궁 간지럽히며 나타난 그건, 곧 자그마한 보랏빛의 불꽃이 되었다.
허나 잠시뿐이었다.
불꽃인 채로 있었던 것은.
“……어어……?”
작은 불꽃은 갑자기 저 혼자서 마구 부딪히며 사방팔방으로 세차게 흔들거렸다.
그러던 도중에 팟 하고 하얗게 빛나더니,
“……어어어……?!”
채 한 차례의 호흡이 끝나기도 전에,
이윽고 세계를 삼킬 기세로 폭발했다.
―푸샤악!
너무나도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파르르 떨리는 보라색 불꽃들이 연기처럼 흩날리며 온 사무실을 뒤덮었다.
“으아아, 뭐야 이거!?”
당연히 나는 미친놈처럼 놀랐다.
그 와중에 소화기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냅다 달려갔으니, 그런 점은 칭찬할 부분이다.
그러나―
“……얼레……?”
허겁지겁 소화기를 쏠 준비를 마쳤을 때.
사무실 전체에 퍼졌던 불꽃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허…….”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자리로 돌아갔다.
모니터 화면에는 아직 읽고 있던 포스트가 있었다. 글의 내용은 밑으로 더 길게 이어졌다.
─사실 이 테스트로는 마력의 유무 이외에도 꽤나 다양한 사실들을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꽃의 크기는 보유한 마력의 총량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게 됩니다.
3cm 이하
- 평범함. 대부분의 마법사가 이 분류에 해당됨.
3cm~30cm 사이
- 재능 있는 마법사. 크기를 1cm 늘이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7년 정도의 마나 수련이 필요함.
30cm 이상
-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준의 마법사. 필자는 살면서 딱 두 명 만나봄.
─나는 스크롤을 멈췄다.
그러고 나서 주변을 살폈다.
“…….”
이 사무실의 끝에서 끝까지가 과연 몇 센티미터인지, 감히 추측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 3. 마르지 않는 샘 ]
[ 당신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법사의 심장을 물려받았습니다. ]
블로그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기뻐할 일이다.
그런데 뭣일까. 이 뭔지 모를 찝찝한 느낌은.
나는 다시 읽던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렸다.
그리고 비로소, 찝찝함의 출처를 알아냈다.
─불꽃의 색깔도 중요합니다.
마력의 성질은 사람마다 제각각이지만, 몇 가지 범주로써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가장 신뢰성 높은 것은 바로 색채 계통에 따른 분류입니다.
1. 유채색
2. 무채색
어스테이트 마법 인구의 97% 이상은 유채색 마력을 지녔다 합니다.
색채별 마력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5대 색채>입니다.
전체 마법 인구의 95% 이상이 해당됩니다.
적색: 위력 특화
청색: 범위 특화
녹색: 유지 특화
황색: 변형 특화
갈색: 강도 특화
참고로, <5대 색채>에 해당하지 않는 유채색 마력은 <기타 색채>로 분류됩니다.
<기타 색채> 마력은 공통적으로 마나의 강도와 성질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현대 마법과 호환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쉽게 말해,
마법을 쓰지 못합니다.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후벼 팠다.
“보라색이었지, 나……?”
블로그 내용에 따르면,
나는 마법을 쓰지 못한다.
“하.”
마력이 넘쳐나는데 마법을 못 쓴단다.
어이가 없다. 12기통 엔진을 장착한 슈퍼카인데, 기름이 없어서 달리지를 못하는 꼴이라니.
……아니. 그게 아닌가.
오히려 기름만 잔뜩 있는 쪽에 가깝구나.
[ 4. 끔찍한 마술의 소양 ]
[ 당신은 마법에 재능이 없습니다. ]
이제 슬슬 감이 잡혔다.
내가 무슨 꼴로 어떤 세상에 떨어진 건지.
[ 예상 난이도: 매우 어려움 ]
애석하게도, 게임 속 주인공 라이프를 즐길 여유 따위는 내게 조금도 주어지지 않았다.
“지옥불 난이도에서 개똥캐로 살아남기냐…….”
해 볼 만한지 따질 신세조차 아니었다.
해 볼 수밖에 없었다. 죽기 살기로 말이다.
“후우.”
마법에 관해선 일단 미뤄두자.
나는 인터넷 창을 닫았다.
시간은 어느덧 2시가 가까웠다.
퇴근까지는 3시간. 그러나 이놈의 밀린 업무를 늦지 않게 처리하려면 13시간도 더 걸릴 터였다.
“당분간은 야근인가.”
아직 ‘유진연’의 정신이 ‘유진 연’의 몸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한 상태였기에, 환경 적응을 위해 직장에 오래 남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회사 주변 지리도 좀 알아둬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생각난 김에 잠깐 바깥 산책이나 다녀와 볼까. 커피도 사 올 겸.
“엇차.”
가볍게 기지개를 틀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따르릉!
돌연 전화가 울렸다.
내 자리로 걸려온 전화였다.
“…….”
받아야 하나.
받아야겠지. 아무래도.
“……여보세요?”
달칵.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윌슨앤코 팀장이신가?」
건너편에서 들려온 것은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고타르 담배의 맵싸함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아, 예. 제가 팀장 맞습니다.”
「말씨가 가늘군. 젊은 친구 같은데.」
“……예에. 무슨 일이시죠?”
업무 전화 같긴 한데,
어째 조금 꺼림칙했다.
「오늘 아침 그쪽에 팩스를 하나 보냈네.」
“팩스요?”
「그래.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에서.」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이라면…….
나는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뭉치의 중간을 휙 하고 뒤져 빠르게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아, 네. 팩스 받았습니다. 내일 오후에 LA로 보낼 물류 배송 위탁 건이죠?”
「승인했나?」
“아뇨, 아직입니다. 업체에서 보낸 선적 관련 서류가 몇 개 누락돼서요.”
「다행이군. 실은 이쪽 사정으로 일정이 한참 연기가 돼서 말이지.」
“아하, 그렇습니까?”
「그런데, 지금 물건이 창고에 그냥 박혀 있거든. 관리자한테 듣기로는 거기 창고에 공간이 없어서, 오늘 중으로 물건을 옮겨야 한다는 모양인데.」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말했다.
「혹시 그쪽에 맡겨도 되겠나?」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휴, 업무 전화가 맞았구나.
“으음, 글쎄요. 지금 저희 쪽 스케줄도 워낙 빠듯해서 말이죠…….”
「이런, 그거참 슬픈 소리군.」
“그, 창고 위치가 어떻게 되나요? 회사랑 멀지 않다면 한번 들러는 보겠습니다.”
포스트잇을 뜯어 메모 준비를 했다.
헌데 우연찮게도, 내가 잘 알고 있는 장소였다.
「사우스아치. 6구역.」
「우드게이트 웨어하우스.」
펜을 들고 있던 손이 멈칫.
잠시 굳어서 움직이질 못했다.
“……우드게이트…… 말인가요……?”
<사이버판타지>의 정석 플레이.
물류창고 야간 경비원으로 취직한 뒤, 갱단과 손을 잡고 그곳을 습격하는 그것.
그게 바로 거기다.
우드게이트 웨어하우스.
범죄의 온상이자 보물창고.
3개월 뒤 불타 없어질 장소.
그곳이 언급된 것만으로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건 단순한 업무 전화는 아닌 듯하다.
「꼭 좀 부탁하지. 팀장.」
남자의 목소리는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에서 보내온 이 서류는, 어쩌면 지옥으로의 이른 초대장일지도 모른다.
“…….”
이게 게임이었다면,
아마 선택지가 떴겠지.
[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
[ 예 ]
[ 아니요 ] ◁
그리고 내 선택은,
그야 이쪽밖에 없겠지.
[ 예 ] ◀
[ 아니요 ]
세이브는 없다. 일시정지도 없다.
죽으면 어떻게 되나? 알 턱이 없다.
확실한 건,
오직 하나뿐.
“예.”
클리어할 수 없는 게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제가 하겠습니다.”
불지옥 난이도에 개똥캐라 해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