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A Hard Day’s Night (1)
도시의 하늘은 우중충한 회색이었다.
창밖의 정보만으론 당장의 시간이나 날씨를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하늘은 싯누런 먼지를 머금은 탓에 햇빛조차도 잿빛인 채였고, 저만치 먹구름처럼 보이는 것은 남부 공장지대에서 뿜어져 나온 매연일 터였다.
드르륵―.
창문을 열어젖히면, 반쯤 열린 창 바깥서부터 많은 것들이 안으로 들어와 느껴진다.
자동차 소음.
금속과 그을음 냄새.
피부를 옥죄는 공기의 건조함.
이 모든 외부의 현실적인 자극들이 이곳은 현실이라고 강하게 다그치고 있었다.
허나 믿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이 도시가 그저 잘 만들어진 악몽의 세트장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누구라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적어도 이 도시에서는, 담배 연기가 신선한 공기를 해칠 염려는 없었다.
“후우.”
시에라시티Sierra City.
어스테이트 최대 규모의 인구 밀집 구역.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종과 종족들이 한데 모여 섞인 경양식 샐러드 같은 동네.
나는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제 겨우 체류 나흘째지만 말이다.
“쯧.”
다 태운 연초를 창가에 놓여 있던 재떨이 안에 던지듯 툭 털어 넣고 자리를 떴다.
계단참을 내려가 도착한 곳은 13층.
현관 입구의 얇디얇은 문짝에는 쓸데없이 두꺼운 문패가 떡하니 붙어 있다.
<주식회사 윌슨앤코>
여기가 내 직장이다.
일단은 그런 모양이었다.
철컥―.
사무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자, 종이 냄새가 열감과 함께 코를 감쌌다.
좁은 공간. 파티션도 없는 나무 책상들. CRT 모니터와 잉크 복사기…….
90년대 사무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
게임 속 이미지 그대로다.
<사이버판타지>의 구시대적인 도트 그래픽을 특유의 감성과 분위기만 유지한 채로 완벽하게 실사화시킨 모습이다.
처음 눈을 뜬 장소도 여기였다.
남아 있는 마지막 기억은 게임을 시작하겠냐는 메시지에 ‘예’를 클릭한 것뿐.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이곳에 있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게임 속 세계에 빠진 것 같다. <사이버판타지>의 세계에 말이다.
꿈도 아니고, 망상도 아니고, 정신병 같은 것도 아니다. 그딴 당연한 사실은 3일간의 방황으로 이미 충분히 깨달은 뒤다.
어쨌든 간에,
믿고 자시고는 더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빌어 처먹을 현실이다.
나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내 책상은 가장 안쪽에 있었다.
사장실 바로 앞이라는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위치였다.
의자에 풀썩 앉은 채로, 책상 위의 전원 꺼진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허어.”
둥근 화면에 반사되어 비치고 있는 내 모습은 도저히 눈 뜨고 봐주기 어려웠다.
무성한 머리털.
갈라진 피부.
덥수룩한 수염.
꾀죄죄한 옷차림.
몹쓸 꼴이다. 동네 거지도 이것보단 낫다. 빌딩 사무실 책상 앞보다는 지하철역 기둥 옆자리가 어울릴 법한 몰골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얼굴은 그때 내가 생성했던 게임 속 캐릭터의 초상화 이미지와도 얼추 비슷했다.
금발의 수염쟁이라서 토르 같은 외모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건만, 이건 뭐 메탈슬X그에 나오는 포로 아저씨 비주얼이지 않나.
“보통은 최소 훈남 아닌가…….”
필요 이상으로 기다란 수염을 어루만지며, 평소 즐겨보던 판타지 소설들을 떠올렸다.
게임 속 세상에 빠진 주인공들은 항상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나한테도 있지 않을까?
“…….”
밑져야 본전.
나는 입을 열었다.
“상태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테이터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벤토리.”
“스킬 리스트?”
“시스템 상점 오픈!”
……아무래도 소설 속 주인공을 위한 특전 따윈 내게 허락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아…….”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책상 키보드 맡에 머리를 박은 채 끄으윽 하며 갈데없는 신음만 뱉고 있었을 무렵.
“팀장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레들린 고양이 같은 목소리였다.
나지막이 고개를 들어 옆을 보자,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내 시야에 들어왔다.
김이 잔뜩 서린 동글이 안경.
필요 이상으로 두꺼운 마스크.
눈사람처럼 꽁꽁 싸매 입은 복장.
깜짝 놀랐다. 강도나 도둑인 줄 알았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번듯한 회사의 사무실에 어울리는 차림새는 전혀 아니었다.
“사장님이 부르세요.”
“예?”
순간 나도 모르게 물음표를 뱉었다.
“사장님이…… 엣츄!”
그러자 들려온 것은―
상당히 앙증맞은 재채기 소리.
“콜록, 콜록!”
잠깐 긴가민가했는데, 체구나 음색 등으로 보아 눈앞의 인물은 여성인 듯했다.
감기라도 걸린 것인지, 연신 마른기침을 해댔다.
“콜록, 사장님이 부르신다구요…….”
“저를요?”
“여기 팀장님이 팀장님 말고 또 있나요?”
내 직책은 팀장인가 보다.
아마도 이 사무실에서 유일한.
“아, 그쵸. 제가 팀장이었죠, 참.”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왠지 그녀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팀장님 지금 바쁘세요?”
“그게,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하던 일 있으면 잠시 멈추고, 우선은 당장 사장실로 들어오라 하시던데요.”
나는 몸을 쭉 돌려 뒤쪽을 보았다.
아까 전에도 말했듯, 내 자리는 사장실 바로 앞이었다. 저 안쪽에 계신 분이 책상 밑에서 속삭이는 소리라도 나에겐 들릴 터였다.
“저기, 왜 직접 부르시질 않고……?”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점잖은 분이시라 큰소리 지르고 그런 건 싫으신가 보죠.”
누차 말하지만, 그녀는 화가 난 듯 보였다.
마스크와 안경이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어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저는 분명 전달 드렸, 콜록!”
“아, 예. 고마워요. 그으, 저기……. 으음, 정말 미안한데 그, 이름이 뭐였죠……?”
내 물음에 그녀는 한차례 긴 숨을 뱉고서, 한껏 싸늘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리타 스몰필드예요.”
뿌연 안경 너머로 미세하게 보인 그녀의 눈빛은, 어째서인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제 좀 외우실 때도 됐잖아요.”
그렇게 그녀는 돌아서서 자기 자리에 가 앉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벌떡 일어나고는 묵묵히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뒤쪽으로 걸어가 사장실 문에 대고 노크를 했다.
“들어오게.”
방 안쪽에서 들려온 소리는 역시나, 내 노크 소리보다도 훨씬 크게 잘 들렸다.
***
“무단조퇴. 무단결근. 무단지각.”
사장실은 돼지우리 같은 곳이었다.
“월화수로 3일 연속 무단 행진이라니. 캬! 트리플 크라운이로구만, 자네! 파하핫!”
레고 빌딩마냥 층층으로 쌓여 천장에까지 닿은 종이상자들. 발밑에 차이는 이면지 뭉치. 거기에 쓸데없이 많은 화분들까지.
5평 남짓의 그닥 넓지 않은 공간을 필요 이상의 잡동사니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도 출퇴근 시간을 그리 잘 지키는 편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건을 기회 삼아 한번 진지하게 대화 정돈 나눠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응? 그동안은 회사 분위기에 적응도 시킬 겸 좀 풀어줬으니깐.”
그런데 이 돼지우리의 주인은, 겉모습만 봐서는 돼지보다도 수사자 쪽에 가까웠다.
치렁치렁한 금빛 장발과 유난히 잘 정돈된 턱수염. 그리고 졸라 비싸 보이는 넥타이.
그의 화려한 외모는 3년 차 노숙인 같은 내 처참한 몰골과는 확연하게 대비됐다.
“내 말 듣고 있나, 유진 군?”
이쪽 세계의 나는 ‘유진’이라 불렸다.
캐릭터를 생성할 적에 입력했던 이름은 내 본명인 ‘유진연’이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것이 ‘연’씨 성에 ‘유진’이란 이름을 가진 ‘유진 연’이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예, 듣고 있습니다. 사장님.”
어쨌거나, 지금 당장에 내가 아는 거라곤 눈앞의 인물이 바로 내 직장 상사란 것 정도다.
에드먼드 하인즈. 직책은 사장.
현재 이 회사 내의 직급 체계에서 팀장인 나보다 높은 유일한 인물이다.
그래, 직속 상사가 사장이란 얘기다.
듣기만 해도 참 행복한 직장이지 않나.
“무어, 자네가 말 잘 듣는 범생이 스타일이 아니란 건 알고 있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최근 3일간은 좀 심했단 말이지.”
“……죄송합니다.”
최근 3일간은 한마디로 개지랄이었다.
게임 하던 중에 정신을 잃었더니 갑자기 게임 속에 빠졌다 하는 양산형 웹소설 도입부 같은 지랄 맞은 상황에,
뇌에는 또 뭔 지랄이 난 건지 의식도 기억도 쭉 몽롱했던지라, 제대로 정신을 차린 것만 해도 겨우 오늘 아침 무렵의 이야기.
뒤죽박죽인 머릿속은 여전히 정돈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주 지랄 같은 상태다.
“있잖나, 유진 군. 난 자네가 꽤 맘에 들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
“자네는 뭐랄까, 약간 손 많이 가는 친척 같은 느낌? 으흠, 맞아! 딱 그거야! 실은, 내 조카 녀석 이름도 유진Eugene이거든.”
별것도 아닌 사실을 자랑하듯 말하며 파하하 웃는 사장의 말을 도중에 내가 끊었다.
“그 유진이 아닙니다.”
“음?”
“한국식 이름인 유진Yujin입니다. ‘E’가 아니라 ‘Y’를 쓰고, ‘gene’ 대신 ‘jin’이라 쓰죠.”
내 말에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나는 괜한 타이밍에 굳이 TMI를 꺼내서 분위기를 박살 내는 재주가 있다.
“……무튼, 나는 처음부터 자네를 신경 써 왔다 이거야. 물론 좋은 의미로.”
사장은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자네 이력서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긴가민가했다네.”
“…….”
“대학은 중퇴. 보유 기술은 전무. 나이 서른에 이렇다 할 경력도 없어. 시민권은 임시 발급 상태라 언제 날아갈지도 몰라.”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는,
“게다가 A급 전과 기록까지.”
제법 묵직하게 비수에 꽂혔다.
“자네는 말이야, 보통의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랑은 거리가 멀어.”
“…….”
“그런데도 나는 자네를 뽑았지. 왜냐고? 그건 바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야. 자네가 맡은 일을 훌륭히 해낼 것이라는 확신.”
그의 말은 그다지 논리정연하진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그 속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 1. 악독한 범죄자 ]
[ 당신은 전과자로 시작합니다. ]
A급 범죄자에게는 출소 후에도 굉장히 엄격한 사회 복귀 프로그램이 적용된다.
때문에 보호관찰기간 동안 범죄를 저지르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하여 바깥 사회 적응에 실패했다 판명될 시, 출소자 교육이란 명목으로 곧바로 재수감. 석방은 무기한 유예 처분된다.
즉, 말썽부리면 또다시 감옥행.
“무슨 말인지 알겠나, 자네?”
“……예. 사장님.”
빈말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아주 빌어먹을 정도로 말이다.
“입사한 지 이제 한 달쯤 됐지. 슬슬 자네가 제 몫을 해줄 거라 기대하고 있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훌륭한 자세야!”
사장― 에드먼드 하인즈는 호걸처럼 웃어젖히며 말했다.
“이렇게 훌륭한 자네니까, 이 훌륭한 회사에서 오래오래 같이 일해 보자고! 파하핫!”
나는 사장실 밖으로 나왔다.
사장의 웃음소리가 멎자 사무실은 곧바로 고요해졌다.
“…….”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되새겨 보았다.
이 훌륭한 회사에서, 오래오래 같이 일해 보자…… 그렇게 말했던가.
미안한 얘기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이다.
아까 전에 말하지 않았나.
내가 처한 상황을,
나는 아주 빌어먹게도 잘 알고 있다고.
3개월 뒤―
이 회사는 망하고,
사원들은 전원 실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