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42. 업보 (3)
제국의 결혼은 농부와 황제가 다를 바가 없다.
대부분 중매혼이다.
신분이 높을수록 중매혼의 비율은 점점 높아지는데 그러다 보니 고위 귀족의 경우엔 배우자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결혼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도펠죌트너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마를로네는 베르크 란과 함께 꽤 유명한 뚜쟁이를 찾아갔다.
뚜쟁이는 슈미트 부인이라고 불리는데 나이는 서른 정도 됐고, 드세게 생긴 용모와 커다란 체구를 가진 위압적인 여성이었다. 특히 그 목소리 또한 덩치에 걸맞게 걸걸하고 드높았다.
“마를로네라고 하셨죠? 용모는 괜찮네요. 초야에 신혼 방에서 내쫓길 일은 없겠어요.”
슈미트 부인이 사전에 작성한 서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눈이 좋지 않은지 그녀는 돋보기로 서류를 읽어 나갔는데 독해 속도는 그다지 빨라 보이지 않았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느리고 입으로 읽는 내용을 느릿하게 중얼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
서류를 읽던 중 슈미트 부인이 말했다.
“그런데 보통 결혼 당사자가 여기를 찾나요?”
뚜쟁이를 찾는 건 결혼 당사자가 아닌 결혼 당사자의 부모나 보호자다.
과년한 처녀가 보호자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와 중매를 요구하는 건 20년 경력의 슈미트 부인으로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마를로네도 자신의 행동이 상궤를 벗어난 걸 아는지라 어색한 미소로 부인의 말을 흘렸다.
슈미트 부인의 정독이 끝났다.
그녀는 마를로네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길쭉한 동방 담뱃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하아…….”
슈미트 부인은 연기부터 내뿜었다.
마를로네는 부인이 왜 저러는지 재빠르게 파악했다.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다.
곧 슈미트 부인이 입을 열었다.
“도펠죌트너라고 하는데.”
“문제가 있나요?”
“도펠죌트너는 받지 않아요.”
“여성은 안 되나요?”
“여자 도펠죌트너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요. 도펠죌트너는 제국의 반역자입니다.”
“내가 반역한 건 아닌걸요.”
“세간의 눈이 그렇다는 이야기에요. 생각을 해 보세요. 당신 배우자로 수틀리면 언제든지 당신을 간단하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을 맞이할 수 있겠어요?”
“안 될 게 뭐 있나요.”
“네?”
슈미트 부인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쳐다보자 마를로네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똑바로 말했다.
“제가 좀 예쁘잖아요?”
“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한데 저 부르봉 여자랍니다. 솔직히 길거리 돌아봐도 저보다 예쁜 여자 별로 없던 거 같던데요?”
“아니, 이 사람이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뭐, 정 안 되면 사랑으로 보듬어야죠. 왜요? 호라신님도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라고 하잖아요. 호라신님의 가르침대로 살면 도펠죌트너건 로이테르건 뭐가 중요하나요?”
순간 마를로네는 자기도 알지 못하는 어색함을 감지했다.
‘로이테르?’
아주 잠깐 그녀의 눈앞에 기이할 정도로 키가 큰 거인 병사의 섬뜩한 모습과 그가 휘두르는 할버드의 잔영이 어른거렸다.
‘뭐지?’
마를로네가 흐릿한 환영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슈미트 부인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나가 주세요.”
“네?”
“부모도 없이 젊은 여자가 여기에 올 때부터 알아봤지.”
“결혼하고 싶은 게 죄인가요?”
마를로네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슈미트 부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마 상대가 도펠죌트너가 아니었다면 물건을 집어 던지지 않았을까.
간신히 분노를 눌러 참으며 부인이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정 결혼하고 싶다면 길거리에서 아무나 잡아서 결혼하고 싶다고 말해요. 이런데 찾아오지 말고.”
“돈 많고 신분도 괜찮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여기에 왔는데요? 왜, 행복의 조건이란 게 풍부한 은행 계좌, 훌륭한 주방장, 괜찮은 소화력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왜 이렇게 꼬치꼬치 말이 많아! 나가요! 당장!”
결국 쫓겨났다.
“당신 같은 인간은 도펠죌트너가 아니라도 안 받아. 진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 있어? 뭐? 길거리에서 자기가 제일 예쁘다고? 후안무치에 양심도 없고. 스물도 안 된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돼! 매춘부도 당신보다는 사고방식이 똑바로 박혀 있을 거야!”
갖은 폭언을 들으면서도 마를로네는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별의별 욕에 구박을 받으며 살아왔으니 이 정도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결혼이란 게 그리 쉽지 않다는 걸 마를로네는 뼈저리게 느꼈다.
“이상하네. 고향에 있는 애들은 시집 잘만 가던데.”
갑자기 결혼 생각이 든 건 인쇄소의 끔찍한 분위기 때문이리라.
황궁이 아무리 숨 막히는 정치 암투의 장이라고 하지만 황궁 안은 아름답고 잘 꾸며져 있고 기분 좋게 머물 수 있는 장소도 몇이나 있었다.
하지만 황궁에서 나와 더럽고 어둡고 시끄럽고 잉크 냄새나는 인쇄소에서 직인의 잔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공허해졌고, 또 그런 곳에서 평생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당장 조부의 소원이 어느 정도 성취된 것도 마를로네가 결혼이란 걸 예사로 생각한 이유 중 하나이리라.
베르크 란은 지금 현재 묵묵히 붉은 명찰을 단 과거의 전우와 함께 더럽고 냄새나는 인쇄소에서 대형 롤러를 굴리고 있다.
검과 창을 쥐었고 피로 물든 손이 이제는 잉크로 검게 물들었다.
그가 원하는 장군직은 얻지 못했지만, 베르크 란이 진정으로 원한 것이 도펠죌트너의 복권이라면 그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게 아닐까?
분위기를 보아하니 황제는 선제와 달리 도펠죌트너를 대접해 줄 것 같은 분위기고.
‘그 슈발츠마인 사람. 지금 생각해 보니 괜찮은 사람이었네.’
이제는 예전처럼 황제를 편하게 만날 수 없다.
황궁을 떠나기 전엔 황제의 허락이 있었기에 자유롭게 황궁을 돌아다니며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할 수 있었지만, 황궁을 떠난 지금은 황궁에 들어가려면 허락부터 받아야 한다.
사실상 황제를 만날 일은 거의 없어진 것이다.
황제 본인이 부르지 않는 이상.
물론 그가 부른다는 건 하나같이 끔찍하고 기괴하고 목숨을 건 여정을 한다는 걸 의미하지만, 어째서인지 마를로네는 황제 루페르트가 다시금 자신을 불러 줬으면 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잠겨 들었다.
인쇄소로 향하는 골목에선 어린아이들이 총각 황제가 선제후의 딸과 밤마다 놀아난다는 상스러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요 녀석들이?! 어디서 배운 못된 노래를 하고 있어!”
마를로네가 작대기를 집어 들고 아이들을 몰아냈다.
왕겨처럼 흩어지는 아이들을 한동안 쫓던 마를로네는 고개를 돌렸다.
멀리 황궁의 솟아오른 첨탑이 보인다.
한동안 말없이 황궁을 응시하던 마를로네는 한숨을 내쉬고 더러운 하천이 흐르는 골목으로 돌아갔다.
“…….”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 * *
동굴 안쪽에 자리 잡은 노파의 방은 동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포근하고 안락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한스 징펠만은 벽면에 걸린 장식품 중에 동방의 물건도 섞여 있는 걸 발견했다.
은은한 녹색을 머금은 아름다운 도기다.
동방 제국보다 더 동쪽에 있다는 괴물과 경이, 사막과 밀림 너머에 자리 잡은 신 칼란이라 불리는 또 다른 제국의 것이리라.
그러한 물건은 부르는 게 값이다.
‘왜 과거에 약초사를 쥐 잡듯 잡아서 처형했는지 알 것 같군.’
노파가 차를 내왔다.
수상쩍은 곳에서 수상쩍은 사람이 내온 차라 섣불리 마시기엔 부담이 느껴졌지만, 한스 징펠만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국적인 향취가 나는 검은 차를 후루룩 들이켰다.
“음?”
한스 징펠만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치 예전에 맛본 또 다른 약초사의 사탕을 먹는 듯한 충격이 황제의 사냥꾼의 미각을 희롱했다.
“이건 뭡니까?”
“카카오 열매에 설탕과 버터를 섞어 만든 차지요.”
“카카오?”
“불사자의 땅 이남에서 나는 진귀한 열매입니다. 지금은 극소수만이 구할 수 있지요. 룸 반도 끄트머리의 항구 도시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저 악명 높은 동방 제국 해적의 갤리선을 피해야 하고 그걸 피해 뭍에 도착한다고 해도 저 악명 높은 불사자의 땅을 지나야 합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죠. 불사자는커녕 사람 자체가 없는 죽음의 땅입니다. 하지만 가끔 눈에 보이는 무의미할 정도로 거대하게 지은 구조물은 무더위와 작열하는 태양, 갈증과 더불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하죠. 거길 지난다고 해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독충과 사람을 잡아먹는 검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지요.”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주제에 어울리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구려.”
한스 징펠만이 찻잔을 내려놓고 노파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신의 회초리를 고칠 방법이 있나?”
노파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신의 회초리라는 병명은 누가 지은 걸까요?”
그녀가 추한 용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아한 음성으로 물었다.
한스 징펠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추측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수를 허락하지 않는 사냥꾼의 세계에서 살아온 그는 정확한 사실이 아닌 이상 굳이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침묵 속에서 노파가 말했다.
“우리가 지었습니다.”
“……그런가?”
“네. 일단 한 번 걸리면 손을 쓸 수 없이 죽어 가는 그 질병을 신의 회초리가 아닌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저 악명 높은 흑사병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노파가 한스 징펠만에게 물었다.
“신의 회초리에 걸리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딱히, 특별한 감정을 느끼진 않았다. 단지 졸음이 오더군.”
“그게 전부인가요?”
노파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시험하고 있다.
이 노파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이 약초사는 신의 회초리라는 미지의 역병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게 틀림없으리라.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누군가를 시험한다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무한하게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는 것과 같으니까.
한스 징펠만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담담하게 답했다.
“여자와 사슴을 보았네.”
“오. 그러신가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젊은 여성이었습니까? 아니면 저처럼 추하고 늙은 여자였습니까?”
“어느 쪽도 아니다.”
한스 징펠만이 딱 잘라 말했다.
“그중 하나인 적도 있었고 그 둘에 속하던 때도 있었다.”
노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목 쪽으로 손을 넣더니 목걸이 하나를 빼냈다.
뼈로 만든 사슴 형상의 목걸이.
다르타니아 신자들의 상징이다.
자신의 내밀한 신앙을 드러낸 채 노파가 사냥꾼에게 예를 표했다.
“당신은 정녕 숲의 주인을 보셨군요.”
“……나는 그것이 뭔지 모른다. 어쩌면 환각일 수도 있겠지.”
“그분이 당신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질문을 받은 한스 징펠만은 잠시 기억을 가다듬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본 건 환각뿐이지, 그 정체불명의 환영이 내게 뭐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신의 말씀은 그런 거니까요.”
노파가 미소 지었다.
“선지자가 아닌 이상, 신의 복음은 그걸 듣고도 기억할 수 없으니까요. 왜냐하면 신의 말씀은 오로지 신이 선택한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만 세상에 알려지는 법이니…….”
“그래서.”
한스 징펠만이 노파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이 노파가 신비로운 인물인 건 맞지만 마냥 휘둘릴 생각은 없다.
그는 황제의 사냥꾼이다.
그는 황제에게서 신의 회초리라는 역병을 사냥하라는 임무를 명 받았다.
“신의 회초리를 고칠 수 있는 법을 아는가?”
“그렇습니다.”
노파가 미소 지었다.
한스 징펠만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가 만들었으니까요.”
노파의 느닷없는 고백이 사냥꾼의 얼굴을 얼어붙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