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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133화 (133/225)

133화 34. 족쇄 (1)

룸 제국에서 마법을 금지한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마법을 쓰는 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고문을 동반한 가혹한 심문 끝에 죽임당했다.

룸 제국하에서 마녀와 마법사는 구분되지 않았다.

마법과 요술도 구분되지 않았다.

공명정대하면서도 엄격한 호라 신을 믿는 그들에게 세상의 섭리-인간에게 주어진 있는 그대로의 힘 이상을 사용하는 자는 빛에 따르는 그림자가 속한 존재니까.

그것이 마법이라고 부르든 요술이라고 부르든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마법사는 마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숨어 살았고 은둔했으며, 손가락질당했고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티그리트의 제국하에 마법사는 마녀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은둔자의 속성은 신비로운 속성으로 바뀌었고, 의지의 힘으로 사물을 그 자체를 변경하는 기이한 힘에 학문이라는 허울 좋은 옷이 씌워졌다.

이제 마법사는 제국의 보호 아래 제국을 지키는 기둥 중 하나로 격상했고 수많은 소년 소녀들의 선망을 산다.

피리스 홀리바레스가 마법사의 꿈을 꾼 건 단지 자신의 몸에 깃든 마법의 재능을 느낀 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긍정적인 이야기와 삽화가 그녀의 마음에 토양처럼 깔렸고, 그것들에서 자라난 동경심이 그녀를 마법사의 길로 이끌었다.

물론 그녀에게 가장 큰 기회를 제공한 건 현재의 황제다.

“루페르트 님.”

그를 위해서 강력한 마법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늦은 나이에 막냇동생뻘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덩치 큰 빨간 머리 여자라는 놀림을 받으며 초급 과정을 배우며 부단하게 자신을 갈고닦았다.

재능과 우연 덕에 그녀는 자신의 어린 동기보다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고, 운 좋게 오각의 마법사이자 그녀의 우상이라 할 수 있는 저 위대한 눈먼 자 헬브라이트 베틀렌의 제자가 되는 영광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거기가 한계였다.

삼각.

그녀는 삼각의 진리에서 정체했다.

책을 보고 마법의 권능을 이끌어 봐도, 죽은 마법사의 미라에 손을 올려 영감을 받으려고 해 봤자 그녀의 이해로는 그 너머의 진리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헬브라이트 베틀렌은 화를 내는 사람은 아니다.

다른 거장들처럼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그는 실망을 얼굴에 뚜렷하게 드러낼 뿐이다.

스승의 얼굴에 드리운 실망은 피리스를 나날이 위축되게 했다.

“나, 재능이 없는 걸까. 분명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파문을 당해도 피리스의 지위는 예전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그녀는 여전히 삼각의 마법사로 대학 외부에서 당당한 마법사로 활동할 수 있고 대학에 머물며 연구와 학업을 수행할 수 있다.

수입은 나쁘지 않고 숙소도 대학 안에서 얻을 수 있다.

눈칫밥을 먹으며 하녀 일을 하거나 보기 싫은 정원사 막스 같은 인간의 음습한 시선을 받으며 일할 정도로 바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 정도로 멈추기엔 그녀의 뜻은 낮지 않다.

피리스의 눈동자는 저 먼 곳, 황제의 궁전을 보고 있었다.

‘나를 이끌어 준 그분을 위해서라도 더 먼 곳으로 나아가야 해.’

그러나 이미 한계에 느꼈다는 건 자신도 알고 있다.

그때 스승이 그녀에게 언질을 줬다.

어두운 마법.

금지된 마법.

그러한 사마외도의 힘을 빌려서라도 벽을 깨라고 주문했다.

명시적으로 말한 건 아니지만 그녀는 그렇게 이해했다.

금단의 서적에 접근하는 건 사각의 마법사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그녀가 만질 수 있는 서고에 기이한 책이 한 권 꽂혀 있었다.

[ 네이의 책 ]

네이.

들은 적이 있다.

저 남쪽 끝, 불사자들이 살아간다는 사막에 나타난 악마.

그 악마가 사막 사람들에게 준 건 재앙이 아니라 선물이었다고 한다.

바로 영생이다.

불로불사의 축복을 받은 남쪽 사람들은 영원을 손에 넣었다며 자축했지만, 그 영원이 그들에게 준 건 영원히 계속되는 몰락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신의 속성을 모방하기 위해 섬뜩할 정도로 거대한 건축물을 무작정 짓던 와중 그들의 도시를 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그 악마에 관한 서적이 서가에 꽂혀 있다.

피리스는 책을 한번 펼쳐 보았다.

순간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허억!”

봐서는 안 될 걸 봤다는 감각이 그녀의 몸을 저리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짜릿함을 느꼈다.

그 소름 끼치는 진실이 결코 열리지 않던 진실의 문을 강하게 밀어젖히는 감각 또한 함께 느꼈기 때문이다.

성실한 학생으로서 피리스는 금지된 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단순하게 말해서 그러한 책은 읽는 자를 파괴한다.

죽음에 몰아넣기도 하고 죽음보다 더한 운명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대가는 거역하기 어려울 정도로 달콤하다.

진리가 저 너머에 있다.

그녀는 더 강하고 더 높은 경지로 끌어 줄.

그녀를 가장 높은 황제라는 봉우리 옆에 데려다줄.

육신이 뒤틀릴 것 같은 구역질을 느끼며 피리스는 검은 책을 폈다.

* * *

두 선제후, 혹은 황제와 신하의 대결은 싱겁게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마르틴 보엠의 영도 아래 동맹을 결집하고 황제에 대한 도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던 레벤호스트는 갑작스러운 침묵에 빠져들었고, 대외적인 활동도 그만뒀다.

그는 사냥을 하거나 아름답고 당찬 아내와 함께 명승지를 돌거나 자식에게 글과 문장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소일거리를 했다.

창고에 쌓인 무기도 시장에 내놓았고 직할 연대 하나를 최근에 해체했다.

그 모습을 보고 호사가들은 이야기했다.

“트라이아 선제후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군.”

“철혈대제는 명분이라도 있었지, 현재의 황제에게 무슨 명분이 있을까.”

“그의 멍청한 반역에 동조할 신교도 군주는 거의 없지. 장인인 앙쥬 국왕이 약간의 동맹군을 보내 주겠지만, 그게 전부겠지.”

레벤호스트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당연히 황제의 궁정에도 흘러 들어갔다.

“그런가?”

루페르트는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보고를 들었다.

기쁜 소식이지만 기뻐하긴 이르다.

루페르트는 레벤호스트가 직접 궁전에 찾아와 현재까지의 무례를 사죄하고 문서로 된 협정을 체결해야 비로소 끝이 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기미는 조금도 없다.

레벤호스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를 용서하는 건 황제의 권위를 실추하는 건 물론이고, 황제가 그에게 겁을 집어먹었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루페르트는 계속해서 지켜보기로 했다.

어차피 레벤호스트는 그가 거쳐 가야 할 수많은 시련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진정한 시련은 그날 오후에 찾아왔다.

“고어문트 선제후께서 예방하셨습니다.”

골트문트가 찾아왔다.

상궤를 벗어난 일이다.

자신에겐 관대하지만, 남에겐 엄격하고 규율을 지킬 걸 요구하는 저 까다로운 선제후가 약속도 잡지 않고 황제를 찾아온 것은.

꼭두각시 시절 골트문트와 거의 붙어 지내다시피 했지만, 그 수많은 만남 중에서 골트문트가 약속을 하지 않고 방문을 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꼼꼼한 약속은 루페르트가 골트문트를 그나마 우군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예의범절이었다.

그 골트문트가 사색이 된 얼굴로 찾아왔다.

처음 보는 선제후의 얼굴을 본 루페르트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한스 징펠만의 위기 감지가 아니다.

루페르트의 비참했던 인생 그 자체가 알려 주는 경고다.

‘설마……?!’

“제 딸을, 울피아나를, 한번 찾아가 위로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골트문트는 거의 애걸하고 있었다.

“제 딸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 선제후의 간청에 루페르트가 해야 할 일은 자명했다.

‘……빌어먹을.’

어쩔 수가 없다.

언젠가 본 농민반란의 구호가 황제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 * *

날씨는 쓸데없이 좋았다.

계절은 무더운 늦여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노르드마르크엔 무서운 역병이 돌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루페르트는 제국 의사를 파견해 진상을 조사하게 했다

과거 제국 북방은 괴멸한 신의 회초리라는 이름의 죽음에 이르는 병일 수도 있으니.

운이 없으면 그 역병은 슈발츠마인까지 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떠랴.

그전에 이쪽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루페르트에게 있어서 울피아나의 그림자는 그가 상상한 이상으로 컸다.

심약하고 유약한 남자가 드세고 난폭하며 폭력적인 여자 아래서 오랫동안 정서적인 학대를 당했다.

그 여자에겐 어떤 도전도 불가능했다.

그 여자의 부친, 장인이 이쪽의 생명 줄을 틀어쥐고 있었으니.

골트문트의 지원이 없다면 루페르트는 꼭두각시조차 아니었다.

그걸 알기에 고개를 숙이고 굴종했다.

울피아나도 그런 사정을 알기에 더욱 괴롭히고 인내심을, 아니 영혼을 극단까지 시험했다.

루페르트가 미치지 않았던 것은 낙천적인 천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여자를 달래러 간다.

전생과 현생, 양쪽에 여전히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운 여자를 위로하러 가야 한다.

사정은 전과 본질적으로 같다.

장인은 아니지만, 그녀의 부친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에 그녀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젠장.’

어쩔 수 없다.

골트문트는 가장 중요한 동맹이다.

아카이아 대주교가 구교의 정신세계를 이끄는 대표자라고 하지만 세속 군주에 비하면 실제로 그가 모집할 수 있는 병력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성직 선제후는 보통 제국에서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인물, 정치·종교적으로 지원한다면 모를까 직접 군대를 일으켜서 누군가의 도시를 점령하고 약탈하는 건 호라의 말씀을 받드는 성직 선제후가 할 짓이 아니다.

결국 세속 선제후 가운데서 동맹을 찾아야 하는데 골트문트 말고는 없다.

그는 강력하고 부유한 군주이며 휘하에 뛰어난 장군도 보유하고 있다.

그가 없었다면 루페르트의 죽음은 꽤 빨리 앞당겨졌을 것이다.

그 울피아나가 저 방에 있다.

그녀는 침대에 반쯤 누운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빛을 받아 드러난 얼굴은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손을 보았다.

해골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야위어 있다.

골트문트가 침통한 얼굴로 딸의 이름을 불렀다.

“울피아나. 보거라. 어떤 분이 오셨는지.”

울피아나가 고개를 돌렸다.

루페르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곧 눈과 눈이 마주쳤다.

“……!!”

감정이 요동친다.

증오, 애증, 회한, 동정.

뭐라고 특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방향의 감정들이.

그 수많은 감정은 하나의 목소리에 의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폐하.”

골트문트가 옆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뭐라도 해 보라는 신호다.

루페르트는 침대로 다가갔다.

“울피아나 님.”

황제가 손을 내밀었다.

울피아나가 미소 지으며 루페르트를 보았다.

그녀가 루페르트의 손을 공손하게 마주 잡았다.

그녀의 살결을 느끼는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녀의 앙상한 손의 촉감은 얼음처럼 차가우면서도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접촉은 루페르트가 알지 못하던 그녀의 일면을 깨우려고 했다.

그녀가 루페르트의 인장에 키스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불경함을 용서해 주시길.”

그 목소리는 또 얼마나 달콤한지.

루페르트는 애써 그 마음을 부정하며 그녀에게 평생을 단련한 꾸며 낸 미소를 머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울피아나 님. 쾌차하세요. 당신은 제국의 모범입니다. 부모를 잃은 수많은 아이들의 당신의 가호를 바랍니다.”

“폐하……!!”

울피아나가 울먹이며 갑자기 루페르트의 품으로 와락 달려들었다.

그녀가 루페르트의 품에 안겼다.

손의 감촉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안는 건 처음이었다.

부자연스럽게 안긴 그녀의 허리는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얇고 빈약했다.

순간 드는 생각 하나.

‘겨우 이런 작은 존재 하나에게 나는 그토록 휘둘리고 살았던 건가.’

그 회의가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울피아나가 고개를 들어 루페르트를 보았다.

그 순간 루페르트는 보았다.

그 푸른 눈동자 안에 만화경처럼 가득 찬 자신의 모습을.

광기와 집착, 끝없는 충동이 만인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아름다운 눈앞에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뇌운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

루페르트는 다시 한번 표정을 관리해야 했다.

‘아, 안 되겠어. 이 여자는 정말이지……. 안 되겠어……’

루페르트는 정정했다.

이 작고 연약한 여인은 여전히 자신의 가장 큰 상처라는걸.

“폐하……!!”

끔찍한 해후는 10분 동안 이어졌다.

루페르트에게 그 시간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 * *

하루가 이렇게 길었던 적이 있었던가.

확실히 울피아나를 상대하는 건 혼백을 빼놓는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충격이 알 수 없는 부분에서 찾아왔다.

갑자기 영혼을 지탱하는 끈 하나가 끊어진 느낌이 덜컥 들었다.

‘뭐지? 대체 뭐냐? 이 상실감은…….’

마치 끝없이 가라앉는 추락감이 이유도 없이 엄습했다.

황궁에 돌아올 무렵에 루페르트는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공허감 속에서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렇게 천신만고 미궁에 돌아온 루페르트 앞에 시종이 급히 뛰어와 인사를 올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뭐냐?”

황제가 물었다.

“폐하. 대학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무슨 일이냐?”

피로를 숨기지 않은 피폐한 얼굴로 루페르트가 시종에게 물었다.

“대단찮은 소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폐하가 아는 마법사 하나가 사고로 죽었다고 하더군요.”

“지겔슈타트가?!”

“아니오. 그분은 아닙니다. 성함이 아, 피리스 홀리바레스. 카스무어인인 거 같군요.”

“피리스……?”

루페르트의 흐릿한 눈앞에 붉은 머리카락과 고양이 같은 큰 눈으로 자신을 향해 미소 짓던 여성의 모습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리스가……?”

황제의 몸이 휘청거렸다.

충격과 슬픔보다 황제의 영혼을 더 짓누르는 건 회의 섞인 물음이었다.

‘그 짓을 또 해야 한다고……?’

눈앞이 어두워진다.

끝도 없이, 끝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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