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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36화 (36/225)

36화 10. 얼음 속에 숨겨진 것 (3)

[ 이 사람, 운명이 요동치고 있네요. 일견 평범한 운명으로 보였지만 당신이라는 존재와 만나 큰 변화를 맞이하려 하고 있어요. ]

루페르트가 돌아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렇습니까?”

[ 네. 천천히 지켜보죠. 그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요? ]

리프니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개처럼 질질 끌고 툴툴거리는 기괴한 나팔 소리가 낮에 울려 퍼졌다.

스크라엘링의 것이다.

아서 픽튼이 발리스타 앞에서 소리쳤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반쯤 깨진 종탑 위의 종이 거칠게 흔들리게 기괴한 경고를 정착지 전체에 퍼뜨렸다.

노약자들은 집 안에 대피했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무기를 들고 방책 위에 섰다.

궁금증을 뒤로 미뤄 두고 루페르트는 만슈타인에게 아서 픽튼의 지시에 따를 걸 명했다.

“알겠습니다. 남작님. 하지만 제 동료들은 제가 지휘하고 싶은데 윤허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만슈타인은 총기와 할버드 등으로 무장한 선원들을 데리고 방책의 한 구역으로 향했다.

건장한 체격, 영양 상태, 전투에 대한 열의.

그들은 정착민보다 훨씬 믿음이 가는 전투원이다.

그것도 선상 반란이라는 위험 요소 없는 자원자만 모였다.

루페르트는 아서 픽튼에게 향하기 전에 배 쪽을 보았다.

잦아드는 석양 너머로 어둠에 잠기고 있는 뱃전엔 한스 징펠만과 그의 도제들이 저마다 위치에 선 채 적은 물론 선상을 감제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불온한 기색이 보인다면 한스 징펠만의 총구는 스크라엘링이 아니라 반역자의 미간을 꿰뚫을 것이다.

루페르트는 아서 픽튼에게 향했다.

“어떻습니까? 전황은? 이길 것 같습니까?”

이겨야 한다.

이겨야만 한다.

적어도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아서 픽튼의 얼굴은 어둠의 베일을 한 꺼풀 뒤집어쓰고도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굳어 있었다.

“보,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놈들의 우두머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직감적으로 루페르트는 아서 픽튼의 당황을 읽어 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는 소린가.’

“분명 놈들의 우두머리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덩치가 크거나 우두머리라는 걸 알려 주는 조잡한 왕관과 장식을 두르고 있을 터인데 이번에 덮친 무리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발리스타의 발사대를 쥔 손가락 몇 개가 없는 손이 덜덜 떨렸다.

“놈들도 학습을 한 것이지요. 몇 번이고 공격이 격퇴됐으니.”

“우리 전력만으로는 막기 어렵습니까?”

“불가능할 겁니다.”

아서 픽튼이 절망적인 시선으로 방책 위에 선 정착민들을 둘러보았다.

“정착지의 인구가 천 명에 달하던 때에도 패배할 뻔했습니다. 지금보다 잘 먹고 추위에 시달리지도 않고 무기도 충분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열악하고 거기다 놈들의 숫자는…….”

“진정하세요. 총독. 아직 패배한 건 아닙니다.”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도 루페르트는 뼈저리게 체감했다.

패배의 그늘이 이미 정착지 전체를 뒤덮고 있다는걸.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시선이 바로 옆에서 따끔거린다.

베르크 란과 마를로네 란의 시선이다.

‘이대로는 저들의 불만도 터져 나온다. 하지만 적어도 실마리는 찾아야 한다. 무익한 회귀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포성이 울려 퍼졌다.

때까치호의 선회포가 불을 뿜은 것이다.

포탄은 정착지 위와 정착민의 머리 위를 지나 스크라엘링의 전열을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피 분수가 빙원 위에 흩뿌려지며 분리된 살점들이 빙원을 물들였다.

탕! 탕!

방책 위에 거치된 총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스크라엘링 몇 마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것은 노도처럼 몰려오는 마물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곧 마물의 파도가 방책에 닿았다.

성난 발톱이 머리 위의 인간을 해하려 벽을 긁어 댔고, 뒤편에서 달려온 스크라엘링들이 동료의 머리를 밟고 방책 위로 뛰어올랐다.

인간의 쇠붙이가 놈들의 복부를 찔러 떨어뜨렸다.

단창과 할버드, 파이크와 곤봉 등 잡다한 무기들이 춤을 추며 방책 위를 오르는 스크라엘링을 밀어냈다.

최초의 반격은 성공적이었으나 놈들의 숫자는 끝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어둠이 짙어지고 있다.

어둠 속에서 마물을 힘을 얻고 인간은 힘을 잃는다.

보이지 않은 깜깜함 속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비명은 폐허 안에 웅크린 인간들의 공포를 극한으로 자극했다.

아기가 우는 소리가 높게 울리고 아낙의 흐느낌과 기도가 낮게 울려 퍼졌다.

그 익숙한 아우성 속에서 루페르트는 마음이 차게 식는 걸 느꼈다.

‘그때와 같다. 그때와.’

테타우가 함락되던 날.

루페르트는 같은 소리를 들었다.

“…….”

베르크 란이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러나 루페르트는 그를 무시했다.

살기 어린 눈빛이 꿰뚫어 버릴 것처럼 루페르트의 옆얼굴을 찔렀지만, 루페르트는 잠시 위축됐을 뿐이다.

그는 다시금 아서 픽튼 앞에 섰다.

고지대의 발리스타 앞에서 그는 표적을 잃은 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방황하고 있었다.

“또 없습니까?”

루페르트가 달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까지 부드러움과 점잖음이 씻겨 나간 힘 있고 박력 있는 물음.

“우두머리의 특징 말입니까?”

“그, 그건.”

아서 픽튼은 전의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겁이 많은 성격은 아니었을 것이다.

장기간의 고통과 절망이 저 거한을 밑바닥부터 좀먹었고, 결국 공포에 굴복하게 만들었다.

루페르트가 위엄 있는 어조로 일갈했다.

“제국 기사 아서 픽튼!”

“!!”

갑작스러운 고함에 아서 픽튼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루페르트를 부릅뜬 눈으로 보았다.

“생각하시오. 우두머리의 또 다른 특징을!”

루페르트는 자신의 뒤편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도펠죌트너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나에겐 제국의 검이 있소.”

루페르트는 배를 가리켰다.

“여차하면 선원들을 전부 투입할 수도 있소.”

“…….”

아서 픽튼이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손자뻘밖에 안 되는 어린놈에게 한 소리를 들은 수치감, 보여 줘서는 안 될 모습을 보였다는 수치감.

두 가지 수치감이 뒤섞여 늙은 거한의 얼굴을 석양보다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우, 우두머리는.”

아서 픽튼이 입술이 터질 정도로 굳게 깨물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순간 총독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잠깐 망각했던, 영원히 떠오르지 않을 것 같은 기억의 사각이 훤히 드러난 것이다.

바로 저, 루페르트 가우저라는 젊은 태양에 의해.

“마법!”

아서 픽튼이 크게 뜬 눈으로 소리쳤다.

“놈은 마법을 쓴다오! 마법을 써요! 그래! 우두머리는 늘 마법을 썼어! 조잡한 것이지만!”

잠깐의 흥분은 그러나 곧 잦아드는 목소리와 함께 가라앉았다.

“그, 그런데 그걸 여기서 어떻게…….”

마법을 쓰는 걸 아는 것과 마법을 쓰는 개체를 찾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잠시 찾았던 희망의 불이 급속도로 꺼지려는 순간이었다.

루페르트가 종탑 아래로 내려갔다.

“갑시다.”

두 도펠죌트너를 거느리고.

등만을 보인 루페르트 가우저의 눈엔 기이한 녹색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한 여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손엔 그가 생각하는 여인의 카드가 들려 있었다.

[ 피리스 홀리바레스 ]

아직 꿈꾸는 완성되지 않은 마법사.

피리스 홀리바레스의 영혼 각인 능력은 마법사의 후각.

마법의 기운을 읽는 능력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지만 루페르트의 눈엔 보인다.

저 수많은 스크라엘링 중 유독 강렬한 마법의 기운을 품고 있는 녀석이.

다른 놈들처럼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루페르트는 알 수 있다.

‘아서 픽튼에게 말해서 저격을 하기엔 지나치게 먼 데다가 어두워. 거기다 한 발밖에 없는 발리스타가 빗나가면 정착민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질 게 뻔해.’

그가 믿는 건 또 다른 카드다.

아직 그의 손에 들어오지 않은 타인들.

“베르크 란 님.”

루페르트가 붉은 명찰을 단 초로의 사내를 향해 공손히 올려다보았다.

“죽여 줘야 할 녀석이 있습니다.”

루페르트는 종탑의 중간에서 문제의 스크라엘링을 지목했다.

“저 녀석을 처리해 줄 수 있습니까?”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다.

“…….”

베르크 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루페르트는 톱니바퀴가 어긋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침묵 속에서 베르크 란의 중저음의 음성이 이어졌다.

“내 임무는 당신의 경호지, 죽으러 가는 돌격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배로 돌아갑시다.”

‘이 사람.’

그뿐만 아니다.

그의 손녀도 불쾌하면서도 짜증 난 눈빛으로 배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루페르트는 머릿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었지. 이 사람들은 내 영혼 동맹이 아니야. 이들은 그저 대황후의 명을 받고 날 지켜 주는 사람들이었지.’

지나치게 많은 걸 요구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도 루페르트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루페르트는 들었다.

테타우에서 듣던 것과 같은 종말의 소리를.

‘이대로 회귀를 해야 하나.’

죽으면 끝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오기가 생겼다.

정확히는 두려움이 생겼다.

다음 시간 축에서도 지금처럼 몸이 뜨거울 것인지.

온몸을 감싼 영혼마저 태워 버릴 것 같은 열정을 다시금 느낄 수 있을까?

다시 저 아서 픽튼에게 소리치고 베르크 란의 시선을 무시할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루페르트는 조용히 두 주먹을 쥐었다.

‘해 보자.’

베르크 란이나 아서 픽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의 육체는 상당히 단련된 육체다.

검술과 기예 또한 평균 이상.

자랑은 아니지만 때까치호에서도 몇 명을 빼면 다 이길 자신이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 루페르트의 마음속엔 계산이 섰다.

‘나는 사람을 부리는 자다. 여신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루페르트는 만슈타인에게 다가갔다.

치열한 전투를 펼치며 적을 막던 중에도 그는 루페르트를 보고 이를 드러내며 웃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총독의 말에 의하면 우두머리만 쓰러뜨리면 놈들은 흩어진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우두머리를 알 수 있습니까?”

“느낌이 오는 놈이 있습니다.”

만슈타인은 기민한 사람이다.

그 치열한 전투 중에서도 몇 명을 추려 내어 특공대로 재편성했다.

‘이 사람.’

처음 본 게 틀리지 않았다.

만슈타인은 그 어떤 누구보다 자신의 운명을 굳게 믿고 있다.

총탄이 오가는 전장 한가운데에서도 나만은 죽지 않을 거라는 그런 종류의 믿음을.

“자,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어디로 모시면 될까요?”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도 베르크 란 조손의 살벌한 눈빛이 뒤통수를 찔러 온다.

‘그렇게 노려봐도 내 생각을 꺾진 않겠어.’

루페르트는 차오르는 미소를 억누르며 검을 빼 들었다.

“그럼.”

선원 하나가 신이 난 얼굴로 뿔피리를 불었다.

“남작님, 아니 황제 폐하의 행차시다!”

만슈타인이 쾌재를 부르며 가장 먼저 아래로 뛰어내렸다.

성난 스크라엘링들이 발톱으로 할퀴려 들었지만, 만슈타인과 뒤이어 따라온 선원들의 검과 할버드에 찢겨 나갔다.

루페르트도 방책 아래로 뛰어내렸다.

“미친 짓을!”

지켜보던 베르크 란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냈다.

그의 손녀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그의 조부를 응시했다.

“할아버지.”

쓴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는 두 손으로 자신의 조부를 밀었다.

“도와줘. 밥줄 끊기는 건 딱 질색이니. 거기다 그 할망구 성난 얼굴 볼 거 생각하면 어휴.”

“네가 가라.”

“싫어.”

“…….”

베르크 란이 움직였다.

순간 모두가 홀린 듯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기묘한 기운이 초로의 사내의 전신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발리스타 앞에서 망연자실 서 있던 아서 픽튼 또한 베르크 란을 발견했다.

횃불 아래 일렁거리는 그 얼굴을 본 순간 아서 픽튼은 빛바랜 기억의 일부분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저, 저 사람은?”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채 베르크 란이 방책 아래로 뛰어내렸다.

방책 아래엔 루페르트와 만슈타인 일행이 악전고투를 하며 스크라엘링과 싸우고 있었다.

우두머리의 목을 딴다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자기 목숨 건사하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한숨을 내쉬며 베르크 란이 말했다.

“미친 짓을 하는군.”

이에 루페르트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들을 움직일 수 없잖소?”

“!!”

한 방 먹었다.

저 그저 황실의 핏줄을 물려받았을 뿐인 애송이에게.

하지만 유효타다.

베르크 란이 얕은 한숨을 쉬며 묻는다.

“……어떤 놈이오?”

제국의 검이 고집을 꺾었다.

루페르트는 감정을 절제하며 전장 한구석을 가리켰다.

“저놈입니다. 저기, 두건 같은 걸 뒤집어쓴 놈 뒤에 웅크리고 있는.”

“…….”

베르크 란이 방책 너머로 소리쳤다.

“마리!”

그 이름을 부르자 모자를 쓴 소녀가 한 마리 새처럼 사뿐히 조부 옆에 착지했다.

“남작님을 지켜라.”

“응.”

마리라고 호명된 소녀가 약간의 불만을 담아 루페르트를 노려본다.

하지만 아주 싫지만은 않은 눈치.

적어도 몽환적인 안개를 머금은 눈동자엔 적대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베르크 란이 검을 뽑았다.

그의 검은 칼날이 불길처럼 휘어진 양손 대검.

“……우리는 제국의 검이니.”

검이 불타오른다.

감당하기 어려운 살의의 파동과 함께.

그 기세에 스크라엘링들이 일제히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이 사람.’

알고는 있었다.

이 베르크 란이라는 사내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실제로 본 그의 진심은 황제인 그조차 주눅이 들 정도였다.

“그럼.”

베르크 란이 섬전처럼 앞으로 뛰쳐나갔다.

수십 마리의 스크라엘링이 앞을 막아서지만 불타는 검 앞에 도륙이 나 흩어질 뿐이다.

“괴, 괴물이군.”

만슈타인이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불타는 궤적이 전장에 일직선을 새겨졌다.

단 한 명의 인간이 수백 마리의 마물의 벽을 뚫고 일점으로 돌파했다.

그 믿기지 않는 광경에 인간은 물론 스크라엘링마저 잠시 넋을 잃고 쳐다볼 정도였다.

폭풍처럼 전열을 가른 베르크 란 앞에 눈을 휘둥그레 뜬 스크라엘링이 보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검격이 마물을 둘로 갈랐다.

평범한 살육이나 루페르트의 눈엔 다르게 비쳤다.

구름처럼 모인 마법의 기운이 흩어지고 있다.

그 결과는 즉각적이다.

스크라엘링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왕겨처럼, 무질서하게.

빙해의 마물은 그들이 기어 나온 혹한의 대지로 돌아갔다.

부우우우우우--

만슈타인이 직접 승리의 나팔을 높이 불었다.

믿기지 않는 승리 속에서 종탑 위에 선 총독은 반평생을 함께한 무기 아래 스러져 내리듯 무릎 꿇으며 하나의 이름을 기억한다.

“이제 기억나는군. 외국인 연대에 부르봉 왕국 특유의 비음 섞인 사투리를 구사하던 촌놈이 있었지.”

아서 픽튼이 몸을 움츠리며 중얼거렸다.

“……쟝 끌로드 란.”

그의 시선은 유유히 돌아오는 한 사내를 노려보고 있었다.

“철혈대제의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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