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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12화 (12/225)

12화 4. 야수의 자취 (2)

불과 일주일 전, 메헨부르그의 야수가 숲속의 개척촌을 덮쳤다.

3명이 죽고 한 명이 실종됐는데, 그 실종된 어린 사내아이의 피 묻은 옷가지가 개울을 타고 마을에 흘러들어 왔다.

제국수렵대 소속 안투안 쿠르스트가 그의 사냥꾼들을 이끌고 이곳에 온 간략한 이유다.

“저희도 야수를 쫓고 있습니다만, 쉽지가 않네요. 워낙에 신출귀몰한 녀석이라…….”

루페르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투안 쿠르스트는 높은 빈도로 멀찍이 홀로 앉아 있는 한스 징펠만에게 눈길을 주었다.

관심이 있거나 용무가 있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루페르트는 선뜻 안투안 쿠르스트를 위해 자리를 비켜 주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밥상이 차려지니 거절한다.

그는 멋쩍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보기 힘든 특별한 옷차림을 하신 분이라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군요. 딱히, 저분과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멋들어진 차림새에 수려한 용모, 게다가 공손하며 목소리도 좋은 그는 호감형의 사내였다.

안투안 쿠르스트는 자신보다 어린 루페르트에게 끝까지 예를 갖추며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가지 당부를 했다.

“자세한 위치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이 근방에 유력 가문의 저택이 한 채 있습니다. 그 저택과 그 주위는 사유지니까 접근을 삼가시고 행여라도 자신이 사유지에 들어섰다면 그대로 되돌아가 주시길.”

야수를 물리친 자, 안투안 쿠르스트는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마을을 떠났다.

“어떤 것 같나요?”

자리가 파한 후 루페르트는 한스 징펠만에게 안투안 쿠르스트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한스 징펠만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수염을 매만지며 답했다.

“딱히 사냥꾼처럼은 보이지 않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그의 부하들도. 전문적인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취미로 사냥을 하는 무리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루페르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당신이 할 말은 아니지.’

루페르트는 마을 공터에 우두커니 서서 잡담을 하고 있는 어중이떠중이들을 눈동자에 담았다.

술집 여급에 절름발이 군인에 정신이 조금 이상한 노파. 인간이라기보다는 인형에 가까운 괴팍한 쌍둥이는 덤이다.

그런 루페르트의 생각을 알 리 없는 한스 징펠만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 예상이 맞다면 메헨부르그의 야수는 이 마을 주변에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휴식을 취하고 내일 사냥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실례지만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는지요?”

루페르트가 질문을 던졌다.

딱히, 그가 알 필요는 없는 일이다.

야수의 사냥은 황제의 영역이 아니니.

하지만 이번 사냥은 리프니에가 내린 퀘스트와 연결된 중요한 일이다.

행여라도 실패한다면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

한스 징펠만은 루페르트의 질문에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손가락을 튕겨 옆에 말없이 서 있던 소년을 불렀다.

“기. 지도를 꺼내라.”

“네, 주인님.”

처음으로 소년이 입을 열었다.

변성기가 오지 않은 앳된 음성.

그 소년은 무거운 금속제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복잡한 시건장치를 풀어 뚜껑을 열었다.

뚜껑이 열리자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상자 안엔 여간한 성벽 정도는 가볍게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의 화약과 위험한 느낌이 드는 약병들, 그리고 펜과 필기구, 종이 같은 잡동사니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소년은 그중 양피지로 만든 지도를 꺼내 한스 징펠만에게 넘겼다.

한스 징펠만은 한 손으로 지도를 받아 들고는 루페르트 앞에 펼쳤다.

양피지 위엔 메헨부르그 시와 어두운 숲 일대에 대한 지리 정보가 표시되어 있었다. 얼마나 세밀한가 하면 오솔길은 물론 인구수 10명 이하의 일가족이 사는 오두막까지 표시될 정도였다.

한스 징펠만은 소년에게 빨간색 유리구슬이 달린 핀을 건네받아 지도 위에 능숙한 손놀림으로 핀으로 지점을 표시해 나갔다.

그 작업을 지켜보던 루페르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 사내. 설마 메헨부르그의 야수가 일으킨 사건을 모두 기억하는 건가?’

사냥에 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메헨부르그의 야수가 마구잡이로 날뛴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야수가 구체적으로 어디서 몇 건의 살육을 벌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알아보기 어려울뿐더러 알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대단히 많다는 추상적인 관념으로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한스 징펠만은 다른 사람과 달랐다.

메헨부르그의 야수가 일으킨 모든 사건과 장소, 구체적인 희생자의 수를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겉모습 안에 갈무리해 두고 있었다.

빨간 핀의 행렬을 내려다보며 한스 징펠만이 입을 열었다.

“이 메헨부르그의 야수는 처음엔 메헨부르그 주변에서 활동했습니다. 표식이 도시 주위에 난잡하게 배치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토벌령이 떨어지고 사냥꾼들이 메헨부르그에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 야수의 행동반경은 어두운 숲으로 옮겨 갔습니다.”

한스 징펠만의 손가락은 어두운 숲 쪽에 빽빽이 꽂힌 빨간 핀들의 행렬을 훑었다.

“그런데, 이 형태.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

루페르트는 한스 징펠만이 손가락으로 훑은 지점을 가만히 응시하다 곧 뭔가를 발견해 내고 입을 열었다.

“도시 주변에서 나타나던 때와 달리 일직선을 이루고 있군요. 숲에 난 도로를 따라서요.”

“정확합니다. 깊은 숲에 들어간 이후 메헨부르그의 야수는 주로 큰길을 따라 이동하며 대로변을 횡단하는 개척민이나 개척촌을 습격하는 걸로 행동 방식을 바꾸었죠. 그런데, 보십시오.”

한스 징펠만은 깊은 숲 곳곳에 점점이 자리 잡은 정착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나 같이 도로와 연결되지 않은 고립된 읍락이었다.

“이런 좋은 먹잇감을 놔두고 굳이 금방 외부와 연락이 되고 눈 벌건 사냥꾼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대로를 따라 행동한다는 게 말입니다.”

“고립된 마을이니 변을 당해도 알리지 못한 가능성도 있지는 않을까요?”

루페르트는 외딴곳에 떨어져 사는 소규모 정착민들 주거지를 눈동자에 담으며 말했다. 한스 징펠만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그 점도 조사했지만, 여기 지도상에 표시된 개척촌 중에 그런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가요?”

“네. 게다가 놈이 최초로 출몰한 곳은 메헨부르그 시 한복판이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벽에 가로막힌 도시 한가운데에서 커다란 야수가 느닷없이 나타났다는 건 말입니다. 그리고 방금 말했다시피 녀석은 인간의 길을 따라다니며 살육을 일으키고 있죠.”

“기괴하군요.”

루페르트는 아까 한스 징펠만이 말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한 단어를 입에 담았다.

“사람?”

한스 징펠만의 잿빛 눈동자에 날카로운 빛이 번득였다.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것들이 더러 존재하죠. 자세한 건 직접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사냥꾼들의 의혹이란 대개 눈으로 직접 봐야 확인되는 법이니까요.”

“야수가 이 주변에 있는 건 확실합니까?”

루페르트의 질문에 한스 징펠만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전, 이 마을에서 4명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놈은 만족하지 않았겠지요. 아직 죽일 인간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 * *

다음 날 저녁,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됐다.

거기서 루페르트는 용병 아돌프와 술집 작부 메이어의 쓰임새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야수를 꾀어내기 위한 미끼다.

한스 징펠만은 그들에게 마을 주변을 돌아다닐 걸 요구했다.

대단히 위험한, 목숨마저 잃을 수 있는 임무지만 용병과 작부는 순순히 한스 징펠만의 명에 따랐다.

그들은 단지 선금으로 각각 1천 탈러를 요구했을 뿐이다. 이미 출발하기 전부터 합의된 사항으로 보였다.

돈을 받아 든 용병은 손때가 묻은 장창 한 자루를 든 채 술집 여급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

얼굴에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했지만, 기어코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루페르트의 감정에 미약한 파문을 일으켰다.

루페르트는 우회적으로 우려 섞인 생각을 밝혔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위험은 하겠지요. 하지만 쉽게 죽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겁니다.”

“혹 저들이 손쓸 사이도 없이 당한다면 그땐 어떻게 됩니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지만 설령 저들이 죽어도 사냥에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냉랭한 말투.

루페르트의 눈동자에 반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저들이 죽더라도 흔적은 남게 될 테니까요. 식지 않은 흔적만 있다면 야수는 저에게서 달아날 수 없을 겁니다.”

한스 징펠만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들이 죽길 바랍니다.”

선을 넘어선 발언이다.

루페르트는 명백한 반감을 눈동자에 흘려 넣으며 한스 징펠만을 노려보았다.

‘호오?’

한스 징펠만의 입술이 희미하게 뒤틀렸다.

범상치 않은 기도.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보아 왔지만, 저 나이에 저 정도 기백을 뿜어내는 이는 본 적이 없었다.

한스 징펠만은 놀라움을 의식 깊숙한 곳에 감춰 두고 태연한 표정으로 루페르트에게 말했다.

“저들이 걱정됩니까?”

둘 사이에 강한 바람이 불어와 타오르는 모닥불을 흔들리며 두 사내의 길게 늘어선 그림자를 뒤흔들어 놓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루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 휘하에 있는 사람이 죽는 건, 그다지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스 징펠만은 소리 내지 않고 피식 웃었다.

“보기 드문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시군요.”

“평균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루페르트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한스 징펠만은 고개를 숙여 유감을 표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딱히 제 방식에 변명하려는 건 아니지만 저 용병과 여급의 과거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한스 징펠만은 자신의 대원에 대한 충격적인 과거를 무덤덤한 어조로 구술했다.

“점령지에서 약탈과 학살, 강간은 흔히 있는 일상이지만 아돌프는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충족시키는 녀석이었습니다. 그는 아이가 있는 집에 들어가 아이들 앞에서 부모를 강간하고 죽이는 데 집착했죠. 나중엔 아이들마저 범하기에 이르렀는데 그의 잔인한 동료들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죠. 하늘이 도와 그의 무릎에 탄환이 박히기 전까지 그의 만행은 계속됐습니다.”

루페르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한스 징펠만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메이어. 그 여자는 어려서부터 수시로 순진한 남자를 꾀어 몇 명이나 지옥의 나락으로 보낸 여자지요. 깡패들과 합심해 돈 좀 있는 홀아비를 홀라당 털어먹는 게 주특기였습니다. 최근엔 하급 귀족가의 첩으로 들어가 전처소생의 벙어리 아들에게 뜨거운 수프를 강제로 먹여 죽여 버리기도 했지요.”

“…….”

듣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의 악행이다.

한스 징펠만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리라.

문득 전에 말했던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존재라는 말이 불현듯 루페르트 가우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스 징펠만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름 엄선한 미끼들입니다. 원래는 메이어 하나만을 쓰려고 했는데, 혼자서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해서 수소문해서 아돌프라는 자를 찾아냈지요.”

“일부러 악인들을 선택했다는 겁니까?”

“딱히 저들을 벌주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것은 법관의 관할이지요. 단지 저는 야수의 흥미를 끌 만한 미끼로 같은 야수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라 굳이 그들을 이곳에 데리고 온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저 사람들은 메헨부르그의 야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니까요.”

루페르트는 멀리 마을을 따라 엉금엉금 숲길을 걷는 두 명의 남녀를 바라보았다.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미지의 길을 헤쳐 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사람의 모습이다. 조금 전만 해도 그들의 의지하는 모양새는 루페르트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었다.

하지만 그들의 과거를 안 지금, 이 자들을 과연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루페르트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삼 일이 훌쩍 지나갔다.

개척촌 주위는 물론 미끼 역할을 맡은 이에게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또 다른 평온한 밤을 예상하던 때였다.

루페르트는 숲속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는 걸 듣고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스 징펠만은 그의 도제들과 함께 이미 바깥에 나와 있었다.

숲속에서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용병의 호각 소리다.

한스 징펠만은 모자를 고쳐 쓰며 두 눈을 반짝였다.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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