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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11화 (11/225)

11화 4. 야수의 자취 (1)

그는 겉모습부터 괴짜라는 분위기를 진하게 풍기고 있었고 행동도 그러했다.

“당신이 필요한 건 돈이오? 명예요?”

한스 징펠만은 다짜고짜 루페르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루페르트가 황위 계승자라는 사실을 귀띔받은 게 분명할 텐데 평범한 사람처럼 대접했다.

그 원인이 오만이나 멸시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루페르트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특이한 사람이군.’

루페르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둘 다 아니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야수를 처치하는 것뿐이오.”

“명예군.”

한스 징펠만은 루페르트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다 이내 검은 이각모를 벗어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종이 위에 무언가 흘려 쓰기 시작했다.

계약서다.

문구를 써 내려가며 한스 징펠만이 말했다.

“다시 한번 나를 소개하자면, 노르드마르크에서 온 한스 징펠만이라는 사람입니다. 원래라면 이 시기에 빙해의 괴수들을 사냥하며 돈벌이를 할 시기지만 친우의 죽음을 전해 듣고 허겁지겁 북쪽 땅에서 여기까지 내려왔지요.”

“친우의 죽음?

루페르트가 물었다.

그러자 한스 징펠만은 갑자기 펜을 멈추고 허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윽고 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그렁그렁한 눈물방울이 허연 분가루를 바른 눈자위를 타고 흘러내렸다.

“오! 루돌프! 코가 유난히 빨갰던 루돌프!”

한스 징펠만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며 슬피 울더니 우렁차게 코를 풀었다.

“…….”

옆에서 지켜보던 루시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루페르트는 개의치 않았지만, 저 한스 징펠만이라는 사내가 감정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했다.

“루돌프 슈미트는 나와 같은 불과 철의 형제단 출신이었소. 형제처럼 친하게 지낸 것도 함께 술잔을 기울인 적도 별로 없었지만, 몇 남지 않은 우리 형제단의 형제였지요.”

한스 징펠만이 목멘 목소리로 말했다.

루페르트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불과 철의 형제단이라.’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다.

노르드마르크 지방을 근거지로 활동한다는 폐쇄적인 총사(銃士)집단. 그들은 화약과 총에 대해 다른 어느 곳도 따를 수 없는 고도의 지식을 독점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비싼 값에 그들의 실력을 파는 존재라고 알려졌다.

안타깝게도 전생에서 루페르트는 이들을 만날 일이 없었다. 노르드마르크는 루페르트의 치세 중에 북쪽에서 긴 배를 타고 나타난 북부인 군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됐기 때문이다.

루페르트는 단지 그를 보필하던 제국 장군의 입을 통해 어렴풋이 불과 철의 형제단이라는 특이한 장인 집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뿐이다.

“빌어먹을, 불과 철의 형제단만 있어도 저 성벽 아래서 알짱거리는 놈의 마빡을 납탄으로 뚫어 버렸을 텐데!”

걸걸한 음성의 늙은 외눈 장군의 얼굴을 떠올리며 루페르트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고립된 루페르트에게 몇 없던 자기의 편.

그 늙은 장군은 난전에서 휩쓸려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직후 황제에게 최후의 시간이 다가왔었다.

“…….”

루페르트가 회상에 잠겨 있는 동안 한스 징펠만의 슬픔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한스 징펠만은 루시아에게 우유 한 잔을 청해 우유를 홀짝이며 한숨과 함께 자신의 사연을 마무리했다.

“내가 메헨부르그로 온 것은 첫째로 형제의 복수고, 둘째는 형제의 남겨진 피붙이들을 부양하기 위한 자금의 마련이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개인적인 의문을 해소하고 싶은 동기도 있지요.”

“……어떤 의문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루페르트의 물음에 한스 징펠만은 수염에 묻은 우유 자국을 옷 소매로 닦으며 의미심장한 어조로 답했다.

“루돌프는 나와 막상막하의 실력을 지닌 총사입니다. 메헨부르그의 야수란 녀석이 어떻게 그 노련한 사냥꾼을 처치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군요.”

순간 한스 징펠만의 눈동자에 떠오른 것은 강한 호기심이었다.

루페르트는 이 사내의 진짜 목적이 어쩌면 마지막 언급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 *

상당한 능력자답게 한스 징펠만은 높은 가격을 불렀다.

그는 10,000탈러의 착수금을 요구했다.

착수금을 받아 그 돈으로 자신이 직접 아래에 두고 부릴 사람을 고용하는 조건이었다.

어차피 그 이상을 쓸 생각이었던 루페르트에겐 오히려 싼 가격으로 남는 장사다.

약속한 기일, 루페르트는 메헨부르그 광장에서 한스 징펠만과 재회했다.

유독 눈에 띄는 화려한 제복을 입은 그는 총 5명의 사람을 대동하고 왔다.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용병 분위기의 중년 사내와 낡은 옷을 걸친 가난해 보이는 노파, 어떻게 봐도 술집 여자로 보이는 퇴폐적인 눈빛의 여인, 그리고 흑백으로 양분된 눈에 띄는 옷을 입은 창백한 피부의 남녀 쌍둥이.

특이한 구성이다.

루페르트의 눈에는 누구도 사냥꾼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 루페르트 님. 함께 사냥을 떠날 이들을 소개하겠소.”

한스 징펠만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선 순서대로 자신의 수행원을 소개했다.

먼저, 용병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는 아돌프. 루페르트가 본 것처럼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용병으로 최근 전쟁이 없어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단다. 루페르트는 그가 왼쪽 다리를 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낡은 옷을 걸친 노파의 이름은 사디. 메헨부르그 토박이 출신인 약초꾼이란다. 이단 심문관에게 잡혀 고초를 겪었는지 눌어붙은 흰머리 사이에 드러난 주름진 이마에 칼로 긁어낸 상처가 드러나 있었다.

젊음의 그림자가 간당간당하게 남은 풍만한 여인은 메이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는데 실제로 술집에서 일하며 간간이 매춘도 하는 소위 말하는 품행이 단정치 못한 여자였다. 그녀는 밤을 새운 듯 선 채로 꾸벅꾸벅 졸며 간간이 코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어 댔다.

마지막 쌍둥이는 열다섯 정도 되어 보이는, 감정이 없는 인형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소년, 소녀였다. 이들은 한스 징펠만이 직접 데리고 다니는 도제들이라고 한다. 이름은 소녀 쪽이 루, 소년 쪽이 기라고 한다.

한 바퀴 간단한 소개가 끝났을 때 루페르트 가우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의문이었다.

파격이라는 단어만으로 포장할 수 없는 토벌대원 전체의 낮은 수준이었다.

아무리 한스 징펠만이 강력한 사냥꾼이라고 하나, 이런 오합지졸을 이끌고 가는 것은 제대로 된 일 처리는 아닌 것 같았다.

루페르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략 8천 탈러의 여유자금이 있으니 그걸로 새로운 사냥꾼을 추가 모집할까?’

한스 징펠만은 그런 루페르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양 한발 먼저 선언했다.

“이 이상의 인원은 불필요합니다. 다른 사냥꾼들은 걸리적거릴 뿐이니 행여라도 추가 인원을 모집할 생각은 접어 두는 게 좋을 겁니다.”

한스 징펠만은 우스꽝스러운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어설프게 경험만 쌓인 우물 안 개구리들이라오.”

그 말을 듣자 루페르트는 어느 정도 한스 징펠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방해꾼을 배제하기 위함이군.’

노련한 사냥꾼 하나둘 고용하면 당장 전력엔 보탬이 되겠지만 중요한 순간 의견 대립을 일으킬 수 있다. 저마다의 경험과 자부심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으레 보이는 모습이다.

한스 징펠만은 아예 그런 경우의 수를 차단하기 위해 발언권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선발한 모양이다.

그들의 쓰임새가 뭔지는 저 특이한 총사만이 알고 있겠지만, 루페르트는 더 이상 한스 징펠만에게 인원 구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튿날, 루페르트 가우저가 대장을 맡고 한스 징펠만이 지휘하는 메헨부르그의 야수 토벌대가 도시의 정문을 나섰다.

정보에 따르면 메헨부르그의 야수의 행동반경은 사냥꾼이 많아짐에 따라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숲 일대로 옮겨졌다고 한다.

하늘마저 가릴 정도로 울창하게 나무가 자란 음침한 숲길을 걸으면서 루페르트는 시종일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기괴한 느낌을 받았다.

‘역시 마귀 들린 숲이라는 건가.’

지금은 그나마 간간이 숲속에 사람이 살고 있지만, 과거엔 감히 사람이 얼씬하지도 못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국경지대도 요충지도 아닌 메헨부르그 시를 둘러싼 두꺼운 성벽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고래(古來) 숲속은 인간이 상상도 못 할 것들이 창궐하는 악의 자궁이자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 쳐도 루페르트를 신경 쓰이게 하는 건 역시 한스 징펠만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다.

원래 평범하지 않은 무리지만 지금 단연 눈에 띄는 건 용병 아돌프와 한스 징펠만의 도제인 쌍둥이들이다.

아돌프는 마치 전쟁이라도 나서는 양, 길이 5m에 달하는 장창, 파이크를 지참하고 왔다. 제국 보병대의 표준 무장이다.

갑주까진 걸치진 않았지만, 문제는 그의 좋지 않은 다리가 창의 무게 때문에 보기 민망할 정도로 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득바득 일행과 속도를 맞추는 걸 보면 보통 악바리는 아닌 모양이다.

아돌프만큼 시선을 확 잡아끌지는 못하지만 한스 징펠만의 쌍둥이 도제들도 만만치 않은 짐을 지고 있었다.

둘은 각각 마치 관처럼 생긴 철제 상자를 등에 짊어 메고 있었다.

뭐가 들어 있는진 모르겠지만, 걸을 때마다 무른 땅이 푹푹 패는 게 보통 무게가 아닌 모양이다.

힘들 법도 한데 창백한 피부를 지닌 쌍둥이들은 한마디 불평도 힘든 기색도 없이 묵묵히 가벼운 지팡이 한 자루만을 든 주인의 뒤를 따랐다.

‘이유가 있겠지.’

도제식으로 운영되는 폐쇄적인 집단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종종 일어난다. 간섭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한스 징펠만은 일행을 로흐족이란 작은 마을로 안내했다.

세대수 삼십 개 남짓의 개척촌이다.

숲의 산물인 통나무와 가죽을 섞어 지은 집들을 보면서 루페르트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마을에 사람이 없다.

이윽고 루페르트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모두 숨어 있었다.

불과 며칠 전, 마을의 여자와 아이들을 찢어발긴 무시무시한 야수를 피해서.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은 그나마 튼튼하게 지은 촌장의 집에 모여 공포로 뜬 눈을 지새우고 있다고 한다.

루페르트는 마을 한구석에 마련된 초라한 무덤 앞에 놓인 아직 채 시들지 않은 들꽃들을 눈에 담았다.

한스 징펠만은 우유를 마시며 촌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언제 덮친 건가?”

그는 짧고 간결한 질문을 선호했고, 그렇게 많은 질문을 하진 않았다.

몇 마디 담화가 오간 후 그는 수염에 우유를 묻힌 채 흐릿한 시선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한스 징펠만은 자신이 정리한 바를 루페르트에게 보고했다.

“전부터 어렴풋이 추측한 바이지만, 메헨부르그의 야수는 늑대나 곰 같은 짐승은 아닌 것 같군요.”

“그렇다면?”

루페르트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한스 징펠만은 수염에 묻은 우유 자국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차가운 살기가 묻은 음성으로 답했다.

“사람.”

“사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존재겠지요.”

그때 마을 어귀에서 떠들썩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루페르트와 한스 징펠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수수하지만 손이 많이 간 멋들어진 가죽 갑옷을 걸치고 깃털을 단 멋진 모자를 쓴 사내를 필두로 또 다른 사냥꾼 무리가 마을로 진입하고 있었다.

곧 사냥꾼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루페르트에게 다가와 자신을 소개했다.

“이런 곳에 토벌대가 있다니. 놀랍군요.”

모르는 얼굴이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루페르트 가우저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저는 안투안 쿠르스트. 제국수렵대에서 파견한 사냥꾼입니다.”

사냥꾼의 우두머리가 외국의 억양이 섞인 경쾌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을 때 루페르트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안투안 쿠르스트.’

회귀 전의 역사에서 메헨부르그의 야수는 이 사내가 처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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