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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13화 (13/225)

13화 4. 야수의 자취 (3)

서둘러 도착한 현장엔 처참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중심에 선 것은 전직 제국 보병 아돌프였다.

그는 5m에 달하는 장창을 양손과 다리의 한 축을 이용해 지탱하며 숲속 어딘가를 향해 날카로운 창끝을 겨누고 있었다.

그의 이마는 땀으로 번들거렸고,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억센 두 손은 반평생을 함께한 무기를 굳게 움켜쥐고 있었다.

그가 꼬나든 창 아래엔 여급 메이어가 횃불을 들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주변을 필사적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그들의 땀방울 하나, 눈빛 하나엔 그야말로 순수한 생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루페르트는 그 모습에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백 번 고쳐 죽어 마땅한 자들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려고 하는 장면이 어딘가 어색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옆에서 그 장면을 함께 지켜보던 한스 징펠만이 비릿한 냉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악인들이 오래 산다는 말이 있죠. 별거 아닙니다. 자기밖에 모르니까,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겁니다. 뭐, 그 덕에 다른 사람보다 오래 버티더군요.”

루페르트는 착잡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악인들의 발버둥을 눈동자에 담았다. 한스 징펠만이 말한 것처럼 그 악인들은 그리 쉽게는 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메헨부르그의 야수는 보이지 않았다. 루페르트는 울창한 숲에 드리운 짙은 어둠 속을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야수를 발견할 수 없었다.

“잠시, 여기서 관망합시다.”

한스 징펠만이 손으로 루페르트의 앞을 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페르트는 지참한 석궁을 장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 징펠만은 루페르트의 석궁을 힐끗 보며 가볍게 말했다.

“높으신 분이 들 만한 무기는 아니군요.”

“손에 익어서요.”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그 순간, 앞쪽에서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

아돌프의 고함이다.

그는 안구가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숲속 어딘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스르륵.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루페르트는 숨을 죽이고 그쪽을 응시했다.

이윽고 멀리서 비추는 희미한 불빛을 받아 숲속에서 시커먼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꺄아아아아악! 호라신님! 제국 성인들이여! 염병할! 누가! 누가 도와줘!”

메이어가 날 선 비명을 지르며 뒤로 엉금엉금 기었다.

곧 루페르트는 그 검은 형체의 정체를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뭐냐? 저건?’

그것은 두 발로 걷는 생명체였다.

하지만 그 실루엣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떡 벌어진 상반신은 인간과 흡사했지만, 머리 위에 산양의 뿔을 방불케 하는 원형으로 굽은 뿔을 지녔고 두 다리는 네 발로 걷는 짐승의 것처럼 무릎이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저벅.

그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려는 찰나, 메이어는 괴성을 지르며 그만 횃불을 떨어뜨렸다.

“꺄아아아악!”

바닥에 떨어진 횃불은 단지 검은 형체의 발 부분만을 비췄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루페르트는 의문의 괴물이 발굽을 지니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 어머, 역시나! ]

이윽고 그의 의식 깊은 곳에서 리프니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추방당한 옛것들, 그 악의에 물든 가련한 존재가 메헨부르그의 야수의 정체였군요. ]

루페르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리프니에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그의 눈과 귀에 문자와 소리의 형태로 동시에 전송됐다.

[ 루페르트 가우저. 저 가련한 괴물을 처치하세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

루페르트는 희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리프니에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그의 눈앞을 덮어 나갔다.

[ 하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지체 없이 소라고둥을 부세요. 제가 모호하게 말한 것 같은데, 회귀의 수레바퀴는 스스로 동작하는 게 아니거든요. ]

“네?!”

[ 행여라도 야수의 급습을 받아 즉사라도 한다면, 당신의 열띤 소망은 그것으로 끝난답니다. ]

죽으면 끝이다.

그 말은 루페르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안 그래도 야수를 보고 놀란 가슴은 터질 듯이 뛰었고 넘칠 정도로 혈류 속을 흐르는 격한 흥분은 그의 몸을 떨게 했다.

한스 징펠만은 몸을 미세하게 떠는 루페르트의 창백한 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위험을 느끼신다면 뒤로 물러나셔도 좋습니다. 여기는 저에게 맡겨 주시지요.”

“아니오. 괜찮습니다.”

루페르트는 어느덧 이마에 흐르기 시작한 땀을 소매로 닦으며 앞을 주시했다.

‘물러서진 않겠다. 겨우 이 정도엔 물러서지 않겠다.’

그는 알고 있다.

앞으로 제국에 닥쳐올 무수한 위기를.

지평선 끝에서 끝까지 이르는 반란 세력의 대군.

기근과 역병으로 희생당해 산처럼 쌓아 올린 제국 시민의 시쳇더미. 그리고 그 시쳇더미가 되살아나 황궁의 벽을 기어오르던 모습.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 융커스 베샤문트의 군대가 제도 테타우를 휘젓고 다니며 모든 걸 불태우고 학살하던 장면.

이 모든 미래는 루페르트의 치세 중 다시 찾아올 수도 있는 것들이다.

겨우 이 정도로 겁을 집어먹고 내뺀다면 앞으로 닥쳐올 위기엔 어떻게 하겠는가? 그때도 내빼겠는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루페르트는 그동안 착실하게 단련된 육체의 견실함을 몸으로 떠올리며 당당하게 허리를 폈다.

“함께하겠습니다.”

루페르트는 사냥꾼 한스 징펠만에게 흔들림 없는 어조로 말했다. 최초에 보여 주었던 당황과 초조함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한스 징펠만은 미약한 탄성을 발하고는 앞쪽을 주시했다.

검은 형체를 드러낸 야수는 서서히 용병과 여급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아돌프는 필사적으로 장창을 휘두르며 야수의 접근을 막았다.

검은 형체가 루페르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루페르트는 석궁을 야수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물러나라. 추악한 괴물아.”

루페르트는 석궁을 정확히 야수의 몸통을 향해 발사했다.

어둠 속에서 검은 형체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번득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화살이 먹히지 않는 건가?’

루페르트의 심장이 싸늘하게 식었다.

검은 형체는 루페르트와 한스 징펠만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장창을 든 용병과 여급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크르르르르…….”

인간의 성대에서 나올 수 없는 극저주파의 파장을 머금은 소름 끼치는 숨소리가 어둠 너머에서 물결처럼 밀려왔다.

그 모습을 본 한스 징펠만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 기.”

도제들의 이름이다.

호명된 쌍둥이는 무거운 금속 가방을 멘 채 바람처럼 한스 징펠만 앞에 다가와 일제히 가방을 열었다.

관처럼 길쭉한 루의 가방 안에 담긴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기이한 형태의 금속 막대들이었다.

그런데 루는 그 금속 막대를 꺼내더니, 아주 능숙하게 섬세하고 유려한 손으로 빠르게 조립해 나갔다.

철컥. 척.

그 옆에서는 기라는 이름의 소년이 자신의 가방 안에 든 화약통을 꺼내면서 자신의 마스터에게 물었다.

“마이스터예거. 탄환은?”

“태어나서는 안 되는 부정한 존재에겐 정화하는 은이 좋겠지.”

기가 탄환을 찾는 동안 루는 어느새 금속 막대를 조립해 하나의 완벽한 형태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은 총이다.

루페르트는 거기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성인 남성의 키보다 긴, 나팔 모양의 총구를 지닌 기이한 형태의 총은 장담하건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물건이었다.

“마이스터예거.”

루가 두 손을 바들바들 떨며 자신이 조립한 창처럼 긴 총을 그의 주인에게 내밀었다.

한스 징펠만은 수염을 힐끗 매만지고는 한 손으로 가볍게 총을 들어 올렸다.

허옇게 분칠을 한 얼굴 위 눈동자엔 송곳같이 예리한 눈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장전해라.”

기는 마치 제국 포병처럼 능숙하게 삽입대를 이용해 자신의 키보다 큰 총신에 화약과 은의 탄환을 장전했다.

야수가 이쪽을 힐끗 보고 고개를 돌린 지 겨우 10초가 지났을 따름이었다.

기와 루는 끝이 새총처럼 갈라진 나무 막대기를 들고 한스 징펠만 앞에 섰다.

한스 징펠만은 그 갈라진 막대의 끝에 나팔처럼 생긴 총신의 끝을 걸친 후 한쪽 눈을 감고 어둠 너머 서린 검은 형체를 조준했다.

“사냥의 여신 다르타니아시여. 제 운과 목숨을 그대에게 맡기겠나이다.”

그는 낮은 숨을 내쉬며 희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옆에서 그 기도를 듣던 루페르트의 눈동자가 한스 징펠만의 상기된 얼굴을 향했다.

‘이교의 신을 모시는 건가.’

신심 깊은 신도나 완강한 성직자가 들었다면 필경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다.

현 제국의 국교인 호라교에서는 호라 이외에 다른 신의 숭배는 철저히 엄금하니까.

한스 징펠만은 숨을 멈추며 장창을 들고 선 용병 너머 시커먼 형체를 드러난 야수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야수는 파르르 떨리는 장창의 끝에 이르러 있었다.

핏빛 도는 검은 색 털로 뒤덮인 억센 팔이 바닥을 태우고 있는 횃불의 빛에 비쳤다.

“으아아아아! 서…… 선두! 대열 유지!”

이미 공포에 마비된 아돌프는 전장에서 내지르던 구령을 섞어 횡설수설하고 있었고 그 아래 웅크린 메아리는 손에 잡히는 대로 풀과 돌멩이를 집어 들어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야수에게 집어 던졌다.

야수의 억센 팔이 신경질적으로 자신을 막아선 장창 끝을 잡았다.

아돌프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는 단단한 물푸레나무로 만든 창대가 마치 활의 시위처럼 휘는 걸 보았고 다음 순간 그대로 압도적인 힘에 이끌려 창대를 잡은 채 앞으로 끌려 나갔다.

또 다른 야수의 손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아돌프의 목덜미를 움켜쥐려 했다.

메이어의 비명과 아돌프의 단말마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아!”

처절한 비명이 밤의 침묵을 깨뜨리던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이 비명을 지워 버렸다.

탕!

총성이 울려 퍼지는 순간, 야수는 순간적으로 루페르트 쪽을 보았다.

그곳엔 흑백의 옷을 입은 두 명의 도제를 좌우에 거느린 사내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긴 총을 자신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야수의 눈동자가 흠칫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 석궁 말고는 아무 무장도 없는 인간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긴 총을 꺼내 든 것이다.

다음 순간, 강렬한 충격이 야수를 강타했다.

픽!

검은 피가 튀었고 야수의 신형이 크게 휘청였다.

한스 징펠만은 싸늘한 눈으로 야수의 상태를 살피며 그의 도제에 명했다.

“재장전.”

“네. 마이스터예거.”

기와 루는 총에 달라붙어 재빠르게 새로운 탄환을 장총에 장전했다.

야수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두 다리로 선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나저나 이상한 일이군.”

한스 징펠만이 장전된 총을 야수에게 겨누며 중얼거렸다.

“겨우 이 정도 기형아에게 루돌프 마이어가 당했다고? 크라켄의 자식들을 청어마냥 채 써는 그 루돌프 마이어가?”

한스 징펠만은 둥글게 난 양 뿔의 중심을 겨누며 중얼거렸다.

“사냥의 여신 다르타니아시여. 제 운과 목숨을 그대에게 맡기겠나이다.”

한 방에 끝내리라.

총성과 함께 또 하나의 탄환이 야수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탄환이 야수를 맞히기 전 야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픽!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야수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어둠 너머에서 들려왔다.

바닥에 주저앉은 아돌프와 메이어 발밑에 무언가 떨어졌다. 피 묻은 뿔의 파편이다.

야수는 구슬픈 비명을 내지르며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루, 기. 푸주한의 망치를 준비해라.”

야수가 사라진 곳을 칼날 같은 눈빛으로 노려보며 한스 징펠만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루페르트는 앞서가는 그 사내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통찰의 권능은 진짜였군.’

제국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헨부르그의 야수. 그 괴물은 단 한 명의 사냥꾼에 의해 처참하게 당했고 곧 사냥당할 운명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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