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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10화 (10/225)

10화 3. 메헨부르그의 야수 (4)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청년의 뇌리에 떠오른 건 의문 부호였다.

‘뭐야?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인데.’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암기에 암기를 거듭한 제국 및 주변국의 주요 인명록에 실린 1천여 개의 이름 중 그런 이름은 물론 비슷한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닌 잔챙이라는 것이다.

청년의 눈동자에 살기가 떠올랐다.

“낯선 이름이네. 어디 촌구석에서 올라오셨나?”

청년이 손을 들어 올렸다.

길드 사무실 곳곳에 독버섯처럼 도사린 험악한 사내들이 루페르트를 둘러쌌다.

“저기…… 길드 내에서 폭력은 곤란합니다.”

길드의 직원들이 황급히 청년에게 달려와 애원하듯이 말했다.

청년은 히죽 웃으며 모자를 고쳐 쓰며 말했다.

“걱정 말라고. 피 볼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대신 눈물 콧물은 쏙 빼 놓겠지만!”

청년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루페르트를 거만한 눈으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루페…… 뭐시기 양반. 어디 출신이지? 미안한데 그다지 듣지 못한 이름이라서 말이야. 출신이라도 들으면 혹시 알아? 내 좋지 않은 머리가 기억을 되살려 낼지 말이야.”

“하켄하임.”

루페르트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켄하임……? 거기가 어디야?”

청년이 좌우를 둘러보며 묻자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그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거렸다.

청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실소를 터뜨렸다.

“하켄하임! 하켄하임!”

그는 명백히 루페르트를 조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청년은 주위를 둘러보며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떠들었다.

“이분, 촌 동네에서 오셔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누가 저분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가르쳐 줄 사람 없어?”

그가 말하자 장내의 험악한 사내들은 기다렸다는 듯 루페르트를 향해 다가왔다.

털이 숭숭 난 검은 손 하나가 루페르트의 어깨 위에 닿으려는 찰나였다.

“지금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건가?”

루페르트가 자신의 어깨를 건드리려는 사내를 노려보며 차갑게 물었다.

“그렇다면 어쩔 텐가?”

험악한 사내는 자신의 고용주와 비슷한 비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주변에서 같은 패들이 낄낄 웃어 댔다.

“감당할 수 있겠나?”

루페르트가 물었다.

사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루페르트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제국에 대한 반역을 저질러도?”

그 말이 나온 순간 떠들썩하던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제국에 대한 반역.

그것은 제국민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다.

철혈대제 클라우데 2세는 반역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반역이 개인 단위로 이루어지면 그 사람은 물론 그 일족을 처형했고, 도시 단위로 이루어지면 도시 전체를 학살했다.

반역에 대해서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스스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노인에서부터 갓난아이까지 반역죄에 연루된 이는 제국의 이름하에 피와 철로 심판받는다.

“제…… 제국에 대한 반역이라고?”

루페르트에게 시비를 걸던 사내가 움츠러들었다.

물론 저 시골 촌놈이 허풍을 떤다는 생각 정도는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철혈대제의 치세 속에서 살아온 이라면 반역이라는 말에 치를 떠는 건 당연한 일이니.

사내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의 상전인 청년을 응시했다.

도움을 청한 것이다.

청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청년은 혀를 차고는 자신이 직접 루페르트 앞에 나섰다.

그는 더 이상 미소라는 가면을 쓰지 않았다.

짜증으로 버무려진 딱딱한 얼굴과 사갈 같은 시선으로 루페르트를 노려보며 청년이 말했다.

“장난이 심하네. 설마 너 같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시골 촌놈 하나 건드린다고 제국에 대한 반역이 성립될 거 같아? 그딴 말을 내 앞에서 잘도 하네.”

청년은 뒤돌아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 끌고 나가서 죽여.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네가 책임을 진다고?”

등 뒤에서 루페르트의 비웃음이 비수처럼 그의 귓전에 꽂혀 들어왔다.

청년의 눈동자가 크게 일그러졌다.

그는 뱀처럼 홱 돌아서며 루페르트를 노려봤다.

“내가 누군지 아나?”

루페르트가 물었다.

불같은 감정 기복을 수시로 보인 청년과 처음부터 끝까지 당당한 자세를 변함없이 견지한 루페르트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네가 누군데?”

청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폭풍 전야.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가장 무식한 인간조차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을 다물고 루페르트의 입술을 지켜봤다.

왜냐하면 그의 입술이 열리는 순간 무언가가 벌어지리라는 예감이 당연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생의 황제는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루페르트 가우저. 위버하임 영지의 영주이자 제국 궁내부에서 인정한 황위 계승권자 중 한 명이다.”

“황위 계승권자……?!”

단 한마디가 청년의 눈을 튀어나오게 할 정도로 놀라게 했다.

‘황위 계승권자라고? 저놈이……?!’

그뿐만 아니었다.

길드 사무소에 위협적으로 자리 잡은 건달 패들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루페르트의 말이 맞다면, 황위 계승권자에 대한 위해 행위는 제국에 대한 반역과 다름없으니까.

눈을 부릅뜬 청년에게 젊은 여성이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최근 궁중백이 새로운 후보를 추천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내 예상이 맞다면 저 사람이 진짜 그 후보일지도 몰라.”

“나도 그 소문을 듣긴 했지만…….”

“궁중백. 고어문트 선제후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으음…….”

고어문트 선제후라는 이름을 듣자 로이겐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팼다.

골트문트라 불리는 수많은 영지의 군주는 세 가지로 유명하다.

제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딸로 두었으며 그리고 가장 음험한 책략가라고.

그의 위험성은 어릴 때부터 부친에게 귀에 박히게 들었다.

‘설마 이것도 그 자의 술수인가…….’

쥐새끼처럼 속닥거리는 그들을 향해 루페르트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이름을 밝혀라.”

거역할 수 없는 음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태도와 음성은 이제 갓 약관에 이른 청년에게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여 준 기백에 더해 황위 계승권자라는 지위에 압도당한 군중들은 그저 침을 꿀꺽 삼키며 그 모습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침묵 속에서 청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로이겐 뇌르겐틀링.”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루페르트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로이겐 뇌르겐틀링……?’

아는 이름이다.

왜냐하면 그 이름은 일곱 선제후 중 하나 디터팔츠 공작의 아들과 일치한다.

그러고 보니 생김새도 미묘하게나마 부친에게서 이어받은 걸로 보인다.

이어 청년이 말했다.

“너와 같은 황위 계승권자 후보다…….”

그 한마디는 루페르트의 마음속에 거친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루페르트가 자신 이외의 황위 계승권자 후보를 알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아무튼 반역죄에 대한 두려움은 디터팔츠 공작의 아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그는 모자를 벗고 머리를 숙이며 착잡한 감정이 묻어난 목소리로 말했다.

“무례엔 사과한다. 그래도 앙금이 있다면 합리적인 한도 내에서 배상할 용의가 있으니 청구 바란다.”

로이겐 뇌르겐틀링은 지친 목소리로 말한 후 부하들을 이끌고 길드 사무소를 빠져나갔다.

그것으로 메헨부르그 모험자 길드에서 일어난 단막극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결정적이었다.

그것은 루페르트의 상대방인 로이겐 뇌르겐틀링은 막강 일곱 선제후 중 하나인 디터팔츠 공작의 맏아들이라는 것이다.

같은 황위 계승권자 후보라고 하나, 아무 배경도 없는 루페르트 가우저와 동일 선상에서 볼 인물이 아니다.

더군다나 동쪽의 디터팔츠 영지는 제도 테타우보다 훨씬 가깝다.

힘없는 사냥꾼들이 어느 쪽에 붙을지는 명약관화하다. 루페르트가 점찍은 사냥꾼들은 모두 계약을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사정이 그렇게 됐습니다.”

“…….”

루페르트는 말없이 자신이 선택한 사냥꾼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역시, 힘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황제 시절 느꼈던 무력감이 그를 엄습한다.

오랜만에 맛보는, 더러운 기분이다.

하지만 낙담하고 있을 순 없다.

루페르트는 다시 한번 루시아에게 부탁해 새로운 사냥꾼을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통찰의 권능이 있는 이상, 새로운 사냥꾼은 얼마든지 발굴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루시아가 미처 방을 나서기도 전에 길드 사무소에 키가 큰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저 사람은?’

노란 제복에 허옇게 분칠한 얼굴, 장난감 병정 같은 콧수염을 기른 기이한 행색의 사내.

주점에서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너무나 강렬한 인상이라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주점에서 거뭇한 수염에 하얀 우유를 묻히고 있던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함께 말이다.

그런데 그 기이한 사내는 다름 아닌 루페르트에게 볼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이 현상금을 안 받는다는 고용주요?”

쓸데없이 좋은 목소리.

루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날 고용해 주시오.”

사내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말했다.

겉모습만 보면 미덥지 않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평가할 순 없다.

루페르트는 루시아에게 눈짓했다.

면접이 시작됐다.

루시아가 의문의 사내를 앞에 앉혀 두고 미리 준비한 선택지를 낭독하는 동안, 옆에 팔짱을 끼고 선 루페르트의 안대에 음울한 녹색 광채가 서렸다.

‘사냥꾼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의문의 사내에 대한 보고가 그의 눈동자 위에 떠올랐다.

< “고독한 총사” 한스 징펠만에 관한 보고 >

1. 개요

종족: 인간 - 북부 제국인

분류: 범인

성별: 남성

연령: 35세

명성: 유명함

신체상의 특징: 없음

2. 운명의 실타래

불과 철의 형제단의 야수 사냥꾼: A+

근위 엽병대대의 총사: A+

등 뒤에서 찔려 죽은 자: B-

3. 특기사항

- 특별히 없음

4. 등급

- A+

[ 어머. ]

실로 오랜만에 리프니에의 목소리가 소리와 문자 두 가지 형태로 동시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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