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3. 메헨부르그의 야수 (3)
모험자 길드가 제공한 별실.
한 여성과 사냥꾼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냥 경험은 얼마나 되나요?”
“열두 살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녀 산천과 들을 누비고 다녔으니 이십 년은 족히 될 거요.”
험난한 삶이 고스란히 얼굴에 새겨진 사내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답했다.
“야수급의 짐승을 사냥한 적이 있습니까?”
젊은 여성이 앞에 놓인 질문지를 보며 물었다.
사냥꾼은 설렁설렁 질문에 답했다.
거기까진 평범한 선발 과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장이다.
진짜 테스트는 별실 구석에서 팔짱을 낀 채 사냥꾼을 지그시 노려보고 있는 루페르트의 몫이다.
검은 안대 너머에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곧 그의 눈앞에 빛나는 문자가 나타났다.
< “사냥꾼” 도르가스 릴리에에 관한 보고 >
1. 개요
종족: 인간 - 부르봉인
분류: 범인
성별: 남성
연령: 31세
명성: 알려지지 않음
신체상의 특징: 없음
2. 운명의 실타래
준수한 사냥꾼: C-
엽병대대의 병사: D+
잘나가는 피혁업자: C+
3. 특기사항
- 특별히 없음
4. 등급
C
‘C등급이라.’
루페르트는 기록지에 새로운 기록을 추가했다.
나쁘지 않은 등급이다.
통찰의 만화경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의 등급은 크게 일곱 개로 분류된다.
리프니에의 말을 빌려 설명하면 각 등급의 가치는 아래와 같다.- F, 입에 담을 가치도 없는 무가치한 존재.
- E, 운명에 짓눌려 인생의 나락을 전전하다 죽어 가는 가련한 존재.
- D, 재능은 평범. 인생은 가혹. 결국 보잘것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
- C, 그럭저럭 자기 영역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
- B, 행운도 따르고 능력도 있지만, 최고는 될 수 없는 범재.
- A, 어떤 방면에서 마스터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는 존재.
그리고.
- S, 천재. 시대를 움직이는 자.
이 일곱 개의 등급에 리프니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붙여 같은 등급 중에서 그나마 나음, 평균보다 떨어짐을 세부적으로 표시했다.
그런데 리프니에의 평가엔 특별한 점이 있다.
개인의 평가에 환경이 끼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기준이다.
리넨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청결하고 아늑한 자신의 방에서 가족의 관심을 받아 가며 자라나는 아이가 있는 반면, 일가족은 물론 돼지와 함께 잠을 자야 하는 아이도 있으니까.
후자 쪽의 아이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해도 아마도 평생 그 재능을 알지 못한 채 무의미한 일을 하다 죽어 갈 확률이 높다.
리프니에식 평가에 따르면 도르가스 릴리에라는 사냥꾼은 딱 보통 정도의 사냥꾼이다.
루페르트는 조용히 자신의 메모지에 도르가스의 등급을 적으면서 도르가스에게 질문을 던지는 여성에게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질문은 이 정도로 할게요. 도르가스 씨. 결과는 추후 급사를 통해 알려 드릴게요.”
“거참, 이런 질문으로 날 알 수 있다고 생각하나!”
사냥꾼은 툴툴거리며 자리를 떴다.
질문을 던지던 길드 사무소의 여직원이 루페르트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방문한 사냥꾼은 이걸로 전부예요. 토벌대에 누굴 선발할지 정하셨나요?”
루페르트는 자신이 작성한 서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서류엔 지금까지 면접을 본 사냥꾼의 이름과 통찰의 권능으로 파악한 그들의 등급이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었다.
루페르트는 그중 여섯 명을 추릴 생각이었다.
전부 C등급의 사냥꾼.
C등급은 리프니에 등급 기준에선 평범한 정도로 보이지만 실제로 C등급 정도 되는 사냥꾼의 수는 적고 업계에서 나름의 명성과 역전의 기록을 지닌 자들이다.
당연히 몸값은 주점에서 본 어중이떠중이와는 다르다.
그들의 착수금은 인당 3천 탈러.
현재 쓸 수 있는 재산이 2만 탈러니 그중 대부분이 사냥꾼의 고용 비용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남은 2천 탈러로는 메헨부르그의 체재 비용과 루페르트 개인 장비를 사는 데 쓸 예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록에서 C등급에 속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을 여섯 추려 그 목록을 모험자 길드의 여직원에게 전달했다.
목록을 보던 여직원이 살짝 놀란 목소리로 말하며 루페르트를 돌아봤다.
“윔버트, 르종, 도르가스……. 하나 같이 잔뼈가 굵은 사람들을 고르셨네요. 안목이 있으신가 봐요?”
모험자 길드에 의뢰해서 양질의 사냥꾼을 소개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엔 적지 않은 수수료를 모험자 길드에 지급해야 한다.
한정된 금액 안에 최대한 많은 사냥꾼을 선발해야 하는 루페르트로선 안 될 일이다.
루페르트는 자신이 직접 선발하겠다고 하고 중개만 부탁했다. 그가 길드에 빌린 건, 방 하나와 루시아라는 이름의 똑 부러진 여직원 하나.
비용은 고작 5백 탈러가 들었다.
만약 길드를 통해 이들을 소개받았다면 최소한 3천 탈러는 나갔을지도 모른다.
과열된 도시의 경기는 길드의 물가마저 올려놓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솜씨 좋은 사냥꾼들을 모집하는 일은 끝났다. 다음은 그들과 함께 메헨부르그의 야수가 있다는 어두운 숲으로 가서 야수를 사냥하는 일이다.
본격적인 퀘스트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악재가 루페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루페르트가 시장을 돌며 자신이 사용할 장비를 보던 중이었다.
조그만 사환 하나가 루페르트에게 달려가 급히 길드로 와 줄 것을 요청했다.
“무슨 일이냐?”
루페르트가 사환에게 묻자 사환은 자신은 잘 모른다며 그냥 빨리 와 달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루페르트는 뭔가 꺼림칙한 예감을 느끼며 모험자 길드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루페르트는 심상치 않은 공기를 느꼈다.
입구에 떡 버티고 선 떡대 좋은 두 사내가 팔짱을 낀 채 루페르트에게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루페르트는 그들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분이에요.”
루페르트가 들어오자마자 루시아가 루페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루페르트는 차분한 얼굴로 길드 사무소 안을 살폈다. 문가에 서 있던 사내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길드 안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건의 원인은 그들이 아니다.
루페르트는 사내들 사이에 선 화려한 예복을 입은 청년과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소녀를 차가운 눈동자에 담았다.
“당신이 새로 토벌대를 모집한다는 사람인가?”
팽배한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청년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루페르트가 지그시 그를 응시하고 있자, 그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거 실례했군. 나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메헨부르그의 야수를 토벌하기 위해 토벌대를 조직 중인 사람이야.”
“오라버니.”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소녀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루페르트의 시선은 그녀에게 넘어갔다.
제법 예쁘장한 얼굴, 잘 꾸며 놔서 그런지 귀티가 흐른다. 하지만 성격을 보아하니, 경멸이 서린 눈동자와 찌푸린 얼굴이 보여 주듯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우리끼리 처리하면 되지, 굳이 이 사람까지 불러와서 일을 크게 만들어야겠어?”
“나라고 그러고 싶은 게 아니야. 그런데 여기 길드의 관리자분들이 협상을 하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
청년은 소녀에게 유쾌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루페르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청년의 얼굴에 불쾌감 서린 오만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 녀석.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루페르트는 그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 청년이 말했다.
“미안한데, 거기 신사분. 귀족분이신가? 아무튼, 당신과 할 이야기가 있어.”
그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부하들을 향해 손짓했다. 허리가 굽은 사내가 루페르트에게 서류를 가지고 왔다.
그것은 루페르트가 모험자 길드에 넘긴 사냥꾼 목록이었다. 그런데 그 목록에 누군가가 종이가 찢길 정도로 강한 필압으로 사선을 그어 놓았다.
저 청년의 짓거리다.
“당신이 고용하기로 한 사냥꾼들 말인데. 안타깝게도 내가 먼저 찍어 놓은 사람이거든.”
그러자 옆에 있던 루시아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계약이 된 건 아니…….”
“아랫것들은 가만히 있어!”
갑자기 청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루시아에게 일갈했다.
안 그래도 불길한 기류가 흐르던 길드 안에 차가운 폭풍이 휘몰아쳤다.
청년의 부하로 보이는 사내들은 들고 있는 무기를 만지작거리며 길드 사람들에게 위력을 과시했다.
침묵 속에서 청년은 심호흡을 한 차례 하고는 웃는 얼굴로 루페르트를 바라보았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 내가 조금 다혈질이라서 말이지.”
그는 실실 웃으며 품속에서 코담배를 꺼내, 킁킁거리고는 다시 말했다.
“아무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당신이 찍은 사냥꾼 말이야. 내가 길드의 소개를 받고 선점한 사람이니 먼저 채가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당장 철회하고 그 사냥꾼들에게서 손을 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뭘 알았다는 건지 고개를 끄덕이며 루페르트 앞을 지나쳤다.
그런데 그가 채 몇 걸음 걷기도 전의 일이었다.
“무례하군.”
루페르트가 입을 열었다.
더할 나위 없는 기품과 위엄이 서린 어조로.
그 목소리를 들은 청년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고개를 회까닥 루페르트를 향해 돌렸다.
“방금 뭐라고 했냐?”
청년의 얼굴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고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겨우 이런 잔챙이의 협박에 눈 하나 꿈쩍할 루페르트는 아니다.
그는 얼어붙은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무게감을 자랑하며 청년에게 말했다.
“무례하다고 했다.”
“……?!”
흔들림 없는 어조. 두려움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 태도에 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루페르트에게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느꼈다.
‘뭐 하는 사람이지?’
‘어떻게 이 많은 건달들 앞에서 이렇게 당당한 거지?’
혼란스러웠던 그들의 머릿속은 빠르게 정리되며 하나의 가정으로 굳어갔다.
‘설마, 높으신 분의 자제인가?’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는 이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름 모를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핏발 선 눈알을 부르르 떨며 뭔가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입을 열기 전에 화려한 정장을 입은 소녀가 그 옆에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보통내기가 아닌 거 같은데? 일단 이름이라도 물어보는 게 어때?”
“제국에서 어떤 새끼가 내 위에 있겠어?”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곤거렸다.
“솔직히 백 명은 넘잖아.”
“크흠…….”
청년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을 하면서 곁눈질로 루페르트를 힐끗 쳐다봤다.
화려하진 않지만 엄연한 귀족의 복색이다.
수행원은 한 명도 없지만, 밖에 몇 명을 거느리고 있을지는 또 모를 일이다.
청년은 루페르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거 무례하다고 느꼈다면 심심한 사과를 드리는 바이오. 그런데 댁은 누구시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청년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번득였다.
별 볼 일 없는 소 귀족이나 부호의 자제라면 그냥 내버려 두진 않으리라.
최소한 자신에게 덤빈 대가는 여기서 톡톡하게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제깟 놈이 뭐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낯선 청년 쪽을 응시한 순간이었다.
“루페르트 가우저.”
작지만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가 루페르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