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2. 통찰의 만화경 (2)
통찰의 권능에 표시된 지식 평가 항목과 마찬가지로 무력 평가 항목에도 세부적인 능력치가 존재했다.
무력 평가의 경우엔 지식 평가보다 직관적이었다.
< 루페르트 가우저: 무력에 대한 보고 >
근력: 45
민첩: 52
체력: 53
검술: 29
궁술: 51
창술: 3
부술: 22
지식 평가의 점수가 마스터 급의 달인을 기준으로 한 것처럼 무력 평가의 점수도 전사 길드 마스터의 기준으로 배점했다.
평균적인 숫자만 놓고 보면 루페르트의 신체적 능력은 평균 이상이다.
하켄하임에서 먹고 살기 위해 별의별 일을 다 했고 시간이 나면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 같은 격렬한 운동을 즐겼다.
특히 그의 축구 실력은 다른 동네까지 소문이 나서 동네 대항전에 용병으로 뛸 정도로 뛰어났다.
다른 건 몰라도 공놀이에 있어서 루페르트는 모든 황제를 통틀어 최고의 실력자일 것이다.
이 세상이 축구로 하나 될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그의 치세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루페르트 가우저.”
이곳은 리프니에의 신전.
리프니에가 자신의 능력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루페르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 여신님.”
“리프니에.”
리프니에가 딱딱한 어조로 주의를 줬다.
여신님이라는 어휘가 바깥세상에선 딱 이단으로 몰리기 좋기 때문이다.
유일신 호라를 숭배하는 제국에서 호라 이외에 다른 신을 믿는 것은 국법보다 무섭다는 교회법에 어긋난다.
“네. 리프니에.”
리프니에의 뜻을 잘 아는 루페르트는 즉시 호칭을 정정했다.
소라고둥 안의 여신은 기분이 좋지 않은 거 같았다. 그녀는 대뜸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최근, 너무 무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글쎄요. 무리한다면 무리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단련되고 정련된 소수의 강자들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인간인 당신의 육체는 아직 약해요. 지금처럼 무리를 거듭하다간 버텨 내지 못할 거예요.”
리프니에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루페르트는 여신의 걱정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내가 믿을 것은 내 몸뚱이 하나다. 솔직히 다른 사람보다는 강골이잖아.’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낯선 사람이 저택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발견했다. 수수한 평상복을 걸친 젊은 여성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루페르트는 그 낯선 여성이 저택에 고용된 하녀 피리스라는 걸 알게 되었다.
늘 입던 하녀 복이 아닌 다른 옷을 입어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바깥에 나갔다 오는 거야?”
루페르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아마도 둘 간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대화이리라.
단 한 번도 말을 걸어오지 않던 루페르트가 갑자기 말을 걸자 피리스는 놀란 듯 고양이처럼 큰 눈을 치켜뜨고 루페르트를 바라보다 이내 황급히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루페르트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피리스가 자신을 싫어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엄연히 장원의 주인이다.
아랫사람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있다.
바로 잡을 건 바로 잡아야 한다.
루페르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피리스가 한발 빠르게 입을 열었다.
“저,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남작님께서 옮을 수도 있다고요.”
피리스는 황급히 쏟아 내듯 말하고는 입을 가리고 낮은 기침을 했다.
“…….”
잘못 짚었다. 피리스는 자신을 생각해 주느라 그런 말을 한 것이다.
루페르트의 마음이 빠르게 누그러졌다.
“괜찮아. 어차피 방향도 같겠다, 함께 돌아가지.”
그는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피리스가 뒤에서 우물쭈물하자 루페르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난 감기에 잘 안 걸리는 체질이거든.”
“정말요?”
피리스가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바보는 감기에 안 걸린다잖아?”
실제로 루페르트는 제위에 오르기 전은 물론 제위 중에도 잔병치레를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말한 것인데 피리스는 그 모습이 웃긴지 입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루페르트는 그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앞으로 걸어갔다.
길동무가 있는 길은 혼자 걸을 때와 또 풍경이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둘은 특별한 말 없이 저택에 도착했다.
루페르트는 피리스에게서 별다른 악의를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미세하지만 약간의 호의마저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사람이지만 전생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전생엔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뭘 잘못했길래 날 그렇게 싫어했지?’
딱히 실수를 한 기억은 없었다.
그래서 어떤 계기로 미움을 샀는지 알 길이 없다.
루페르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차차 알아 가면 될 일이다.
회귀의 묘미라고 할까.
“콜록! 콜록!”
루페르트는 뒤에서 나는 피리스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나쁜 것들엔 악한 마음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다.
“…….”
유행성 질병도 그중 하나다.
피리스의 감기가 루페르트에게 옮았다.
당황스러운 결과다.
그는 원래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체질이고 다른 건 몰라도 몸뚱이 하나만은 튼튼하다는 자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무리를 거듭한 일정이 그의 면역력을 떨어뜨렸다.
독감은 지독했다.
펄펄 끓을 정도의 고열과 오한에 주야로 시달리고 몸살까지 나다 보니 천하의 루페르트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제국의 미래를 향해 쉬지 않고 질주하던 미래의 황제는 침대에 누운 채 몸이 낫기를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침대 위에서 루페르트는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리프니에의 말을 뼈저리게 상기했다.
‘공부를 너무 했더니 더 이상 바보가 아니게 됐군.’
뒤늦은 후회였다.
아픈 것보다 고통스러운 건 귀중한 3일을 그냥 날려 버렸고 앞으로도 며칠을 날려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약간의 호재는 있었다.
“아직도 몸이 달군 숯처럼 뜨겁네요.”
피리스가 마른 천으로 루페니에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정성스레 닦아 냈다.
부드러운 손놀림과 천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신형과 하늘거리는 빨간 머리칼, 그리고 은은하게 풍겨 오는 좋은 향기.
미인의 정성 어린 간호를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피리스는 그의 얼굴을 닦고 화병의 꽃을 갈고 해열제를 물 그릇에 타서 루페르트에게 먹였다.
“고마워. 피리스.”
“천만의 말씀이에요. 저 때문에 루페르트 님께서 이렇게 되셨는데요. 루페르트 님이 나을 때까지 당연히 제가 곁에서 모셔 드려야죠.”
전생과 달리 피리스는 예의 바르고 착한 소녀였다. 말도 점잖게 하려고 했고 행동거지에도 남에게 배운 게 아닌 스스로 우러나오는 기품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루페르트의 간호를 마치고 방구석에 있는 팔걸이가 없는 의자 위에 앉아 대기했다.
한참 동안 새침하게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는 갑자기 치마 안에서 커다란 책 하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치마 안 어디에 그런 공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큰 책을 허벅지 위에 앉혀 두고 정독하기 시작했다.
루페르트는 슬며시 시선을 돌려 피리스가 읽는 책의 제목을 읽었다.
[ 마법 전서, 헨드릭 반 네헤겐 ]
마법에 관한 입문서로 보인다.
‘역시 피리스는 마법 쪽에 뜻을 둔 모양이네.’
사각사각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분 좋은 고요 속에서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 루페르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의사와 피리스는 그가 누워 있길 청했고 본인도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다고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 여신의 신전으로. ]
소라고둥, 아니 리프니에가 그를 호출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뭐죠?”
신전에 들어서자마자 소라고둥 안에서 질책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루페르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답했다.
“루페르트 가우저입니다.”
“이름을 묻는 게 아니에요. 루페르트 가우저. 다시 물을게요. 당신은 뭐였죠?”
루페르트는 잠시 침묵했다.
여신의 저의가 뭔지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곧 그는 여신의 뜻을 헤아렸다.
“황제…… 입니다.”
“바로 그거예요.”
목에 건 소라고둥이 살짝 움직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 리프니에의 낭랑한 목소리가 신전 안에 메아리쳤다.
“당신은 모든 방면에서 최고가 될 필요가 없어요. 루페르트 가우저. 당신은 남들을 부리는 입장이지, 부림 당하는 처지가 아니잖아요. 자신을 좀 더 소중히 하세요.”
“…….”
맞는 말이다. 반박하기 어렵다.
“그리고 너무 급하게 무언가를 하려 하지 마세요. 지금처럼 그렇게 자신을 깎아 내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당신은 금방 지쳐 버리고 말 테니까요.”
“제가 지친다고요?”
약간의 반발심이 섞인 음성.
리프리네가 곧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인간이 지닌 내면의 불꽃은 때로는 신조차 놀라게 할 정도로 맹렬하게 불타오르곤 하지만 인간의 열정이란 그들의 운명이 그러하듯 무한하진 않거든요.”
리프니에게 힘주어 말했다.
“첫 회귀부터 이렇게 해 버리면 당신은 금방 지쳐 버릴 거예요.”
“…….”
병환으로 창백한 루페르트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의 두 눈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비명으로 얼룩진 불타는 테타우.
전생의 기억.
루페르트의 두 눈에 형형한 빛이 번득였다.
그는 고개를 들었고 힘차게 가로저었다.
“……제국을 구하기 전까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한 평 남짓한 신전 안에 긴 침묵이 흐르고 지나갔다.
“당신의 뜻이 그렇다면 저는 말리지 않겠어요. 아무튼, 제가 당신을 이곳으로 부른 건 훈계 이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어서랍니다.”
리프니에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페르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어떤 목적인가요?”
“신전 바깥을 보세요.”
신전 뒤엔 익숙한 위버하임 저택의 후면과 잘 관리된 나무 몇 그루, 그리고 나무 뒤에서 이쪽을 지켜보는 정원사 막스가 있었다.
‘……저 친구.’
노골적으로 이쪽을 감시하고 있다.
“저기 바깥에 이쪽을 염탐하는 정원사가 보이죠?”
“네. 아주 보란 듯이 이쪽을 보고 있네요.”
“건너편에선 신전 안이 보이지 않아 그렇답니다. 아무튼 통찰의 권능을 저 사내에게 사용해 주시겠어요?”
“타인에게도 사용 가능한 겁니까?”
“네, 당신처럼 아주 정확하진 않지만.”
루페르트는 너도밤나무 뒤에서 이쪽을 향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정원사 막스에게 통찰의 권능을 사용했다.
“당신과 달리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 조금 시간이 걸렸다.
직접 마주 본다면 어색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
이윽고 루페르트의 눈앞에 빛나는 문자가 펼쳐졌다.
정원사 막스의 능력치다.
통찰의 만화경은 루페르트 자신의 능력뿐만 아니라 타인의 것도 볼 수 있던 것이다.
“어떤가요? 정원사 막스의 보고가 보이나요?”
“네.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루페르트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
리프니에는 바로 그 차이점에 대해 설명했다.
“아직 제 권능은 미약하답니다. 저의 힘이 미치지 않는 다른 존재의 능력치까지 들여다보는 건 불가능하죠. 당신이 저의 퀘스트를 착실히 수행하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운명의 실로 그 사람을 가늠할 수밖에 없어요.”
“운명의 실요?”
“모든 사람의 운명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답니다. 저는 그 운명의 실타래에서 몇 개의 가닥을 골라 그 사람의 미래를 점치죠. 운명의 실타래에 열거된 것은 그 사람의 잠재적인 미래의 다양한 모습들이랍니다.”
“……그런 게 가능합니까?”
“균형의 여신이란 이름은 장식이 아니랍니다. 평범한 인간의 미래를 보는 것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죠.”
루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간을 역행시켜 그를 과거로 회귀시킬 정도의 힘이 있는 여신이다.
그녀의 말대로 평범한 인간의 운명 정도 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리라.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리프니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가련한 정원사 막스는 당신이 보기에 어떤가요? 밑에 두고 부릴 만한 사람 같나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죠. 가능성의 동물인 인간들은 여신인 저로서도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숨겨진 운명의 실 한 가닥을 감춰 두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저 정원사도……?”
“으음.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가련한 막스에 대한 기대는 접읍시다.”
“…….”
전부터 느끼고 있는 바지만 리프니에는 가차 없는 여신이다.
“아무튼 통찰의 만화경을 타인에게 사용하면 당신은 그 사람의 가치를 알 수 있답니다. 그렇게 파악한 능력으로 당신은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겠지요.”
“여러 가지 일이라…….”
“아까도 말했듯이 루페르트 가우저. 당신은 모든 걸 직접 할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유능한 인재를 찾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겠지요. 통찰의 만화경은 당신이 인재를 찾을 때 큰 역할을 할 거예요.”
실로 맞는 말이다.
리프니에가 그에게 뭘 말하려고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좀 더 천천히 성장하고 주변 사람을 보는 안목을 기르라는 것.
이튿날.
루페르트의 수련은 아침부터 시작됐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극한까지 자신을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것.
그는 휴식을 충분히 즐겼고 하루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했다.
물론 그 결과 그의 성장은 다소 늦어졌지만 루페르트는 서두르지 않았다.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단점을 수정해 나갔다.
1. 개요
종족: 인간 - 서부 저지대인
분류: 범인
성별: 남성
연령: 37세
명성: 알려지지 않음
신체상의 특징: 없음
2. 운명의 실타래
가혹한 포주: E+
게으른 정원사: E-
비루한 걸인: D+
3. 특기사항
- 특별히 없음
4. 등급
E+
< “정원사” 막스 비터핀에 관한 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