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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6화 (6/225)

6화 2. 통찰의 만화경 (3)

통찰의 만화경은 타인의 운명과 자질을 볼 수 있는 영험한 능력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동공에 명백한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

남들이 봤을 때 경악할 정도로 기이한 일이 말이다.

이단 심문관 같은 피곤한 존재가 냄새를 맡으면 곤란해진다.

그래서 꾀를 냈다.

리프니에의 사당이 여신의 힘으로 바깥에선 내부를 볼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하녀들에게 양초나 향 같은 걸 가지고 오라고 명해 신전 안에서 하녀들의 능력치를 보는 것이다.

오늘은 피리스가 신전에 쓸 양초를 가지고 왔다. 루페르트는 신전 안에서 그녀에게 바깥에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후 통찰의 권능으로 풋풋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빨간 머리 아가씨를 들여다보았다.

약간의 기다림 끝에 그녀의 대략적인 운명과 등급이 나타났다.

< “하녀” 피리스 홀리바레스에 관한 보고 >

1. 개요

종족: 인간 - 카스무어인

분류: 범인

성별: 여성

연령: 16세

명성: 알려지지 않음

신체상의 특징: 없음

2. 운명의 실타래

학대당하는 마법사의 아내: E-

군대를 따르는 매춘부: E

스스로 목을 매단 자: F

3. 특기사항

- 특별히 없음

4. 등급

E-

“…….”

루페르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까지 본 사람 중 단연 최악이다.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정원사 막스는 그녀에 비하면 팔자가 핀 것이다.

“흐음. 저 여자의 운명의 실 일부가 정원사 막스와 연결되어 있네요.”

소라고둥 안에서 리프니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루페르트는 이전에 봤던 막스의 가능성 있는 미래 중 하나를 상기했다.

가혹한 포주: E+

“……기분 나쁜 미래군요.”

“가능성 있는 미래지 확정된 미래는 아니에요. 게다가 운명의 실은 대략적인 미래를 보여 주는 것이지 그 사람의 전부를 보여 주는 건 아니랍니다.”

리프니에가 그렇다고 하니 조금은 위안이 됐다.

루페르트는 신전 바깥에 양초를 들고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빨간 머리 소녀를 눈에 담았다.

‘피리스.’

그런데 갑자기 저택 모퉁이 쪽에서 사람 하나가 급히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집사 세바스티안이다.

“루페르트 님은 어디에 계시나?”

피리스는 손가락으로 신전 안을 가리켰다.

“저기요.”

하녀도 아니고 집사가 직접 뛰어온 걸 보니 무언가 일이 생긴 모양이다.

루페르트는 신전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나타나자 집사 세바스티안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트라이아의 선제후 레벤호스트 님의 방문입니다.”

뜻하지 않은 손님의 예방이다.

루페르트의 미간에 희미한 주름이 새겨졌다.

‘선제후 레벤호스트?’

어찌 모르겠는가.

제국의 황제를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일곱 선제후 중 하나.

명목상 신하이면서도 황제 앞에선 상전처럼 굴었던 신교 세력의 우두머리를 말이다.

대부분의 선제후들이 황제를 우습게 봤지만 레벤호스트는 그중에서도 두드러지게 황제를 깔보는 부류였다.

특히 그는 황제와 선제후들이 모인 자리에서 틈만 나면 룸어를 써서 황제를 소외시키는 행동을 일삼았다.

지금 루페르트가 룸어에 집착하는 건 어찌 보면 그 사내의 탓이 팔 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레벤호스트가 나타났다.

나이는 서른 중반.

중키에 풍채 좋은 몸매를 지닌 날카로운 관상의 사내로 앵무새를 연상케 하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화려한 옷을 입고 불사조의 깃을 단 모자를 써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남자였다.

“만나서 반갑다. 본인이 트라이아의 선제후. 비고 레벤호스트다.”

그는 언제나처럼 거만한 태도로 자신을 소개했다.

얄궂은 만남이다.

지금 루페르트는 이 사내에게 대항할 수 없다.

그는 제국의 최상위 제후인 선제후이고 루페르트는 아직 일개 남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뭐라고 하건 지금은 감내해야 한다.

‘뭐, 가끔은 룸어 사전 찾으며 문장 짜내느라 머리 씨름하는 것보단 이런 신선한 자극도 좋겠지.’

다르게 생각하니 의외로 나쁘지 않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제후 옆엔 그와 꼭 닮은 소년이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레벤호스트의 아들이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루페르트를 우습게 봤고, 공개적인 석상에서 몇 번이고 루페르트를 망신 주려고 했던 인간이다.

트라이아가 오크 군세에 멸망 당한 이후엔 황제에 대항하는 반란군까지 조직했으나 결국 진압당해 뒷골목에서 변사했다.

좋은 기억이라곤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일었다.

왜 이들이 루페르트 앞에 나타난 것일까.

루페르트가 기억하기로 그가 직접 선제후들과 대면하는 시기는 약 1년 후 있을 테타우의 궁정 모임에서다.

즉, 이렇게 빠른 시기에 선제후가 직접 루페르트를 만나러 온 건 예정에 없는 일이다.

‘무슨 의도로 온 거지?’

레벤호스트는 응접실 소파에 편안히 앉아 루페르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루페르트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선제후의 도전적인 눈빛을 받아 냈다.

이윽고 선제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소문과는 딴판이군.”

“……어떤 소문 말입니까?”

“듣기 거북할지 모르겠지만, 무지렁이 시골 청년 하나가 황위 계승권자 후보에 올랐다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

“…….”

무지렁이 시골 청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의 루페르트에겐 그보다 어울리는 수식어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시골 청년이 아주 열심히 학업에 매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그 깐깐한 에르바하 교수가 직접 내방해서 가르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선제후는 에르바하 교수의 이야기를 꺼내며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교수를 아는 눈치다.

루페르트가 물었다.

“에르바하 교수님을 알고 계십니까?”

“당연하지. 나도 그 사람에게 룸어를 배웠거든.”

선제후는 데리고 온 시종에게 명해 펜과 종이를 대령하게 한 후 종이 위에 잊힌 고대 제국의 문장을 갈겨썼다.

대충 쓴 것 같은데 힘 있고 정려한 필치다.

레벤호스트에 대한 악감정은 차치하고서라도 루페르트는 솔직히 그의 글자가 감탄스러웠다.

“종이 수천 장, 아니 수만 장은 썼을 거야.”

레벤호스트는 자랑삼아 말하며 곁눈질로 루페르트의 얼굴을 살피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자네도 한 문장 써 보는 건 어떤가?”

생각지 못한 위기. 루페르트는 당황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전 이제 겨우 룸어를 배우기 시작한 초학입니다. 함께 오신 아드님께도 못 미치는데 어찌 공작님의 문장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선제후는 아들의 머리를 매만지며 피식 웃었다.

깜짝 찾아온 위기는 그렇게 넘어간 걸로 보였다.

선제후는 시종을 불러 시간을 물었다.

“벌써 이런 시간인가.”

선제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뭔가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실은 이 주변에 사냥하러 오는 김에 들렀다네. 불편을 끼치지 않았나 모르겠군.”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야말로 생전 처음으로 선제후님의 귀한 존안을 직접 뵈니 생각의 경계가 넓어진 기분입니다.”

능수능란한 대응. 누가 이 청년을 갓 시골에서 상경한 무지렁이라 보겠는가.

실제 선제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곳에 온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다.

레벤호스트는 망토를 둘러매고 시종의 손질을 받다가 갑자기 루페르트를 향해 물었다.

“자네는 황위 계승권자 후보로서 이 제국을 어떻게 생각하나?”

생각지 못한 질문이다.

루페르트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꼈다.

직감적으로 와닿은 것이다.

레벤호스트가 직접 이곳에 온 이유가.

레벤호스트는 제국의 일곱 선제후로서 직접 자신의 눈과 귀로 황위 계승권자 후보를 평가하러 왔다.

이 질문의 대답에 따라 향후 레벤호스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해지게 될 것이다.

선제후 하나를 적으로 돌린다는 게 얼마나 쓰라린 일인지는 황제 루페르트 가우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뼈 있는 질문을 던진 레벤호스트를 담담한 눈으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제국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위기?”

레벤호스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건국 이래 제2의 전성기라 불리는 이 태평성대에 말이야.”

선제후의 말은 틀린 구석이 없었다.

실제로 선제, 철혈대제라 불리운 클라우데 2세의 치세 하에 제국은 대륙 최강국의 위치에 올라섰다. 제국의 군대는 가는 곳마다 승리했고 무력으로 이루어진 평온 속에서 무역과 문화가 꽃폈다. 누구도 제국의 쇠락을 예견하지 못했다.

레벤호스트의 날카로운 시선이 루페르트의 얼굴에 꽂혔다. 그는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다지 긴장할 건 없다.

루페르트 가우저가 누군가? 제국의 멸망을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본 최후의 황제 아니던가?

착잡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현재의 영화는 선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선제는 돌아가시고 황위는 공석인 상태입니다.”

“…….”

레벤호스트는 입을 다물고 경청했다.

“아까 저보고 시골 무지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엄밀히 말하면 맞습니다.”

레벤호스트는 가볍게 웃었고 그의 아들도 킥킥거리고 웃음을 참았다.

루페르트는 계속해서 말했다.

“저 같은 시골 무지렁이가 황위를 두고 다투고 있는 게 작금의 제국의 상태죠. 저처럼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황위에 오른다면 제국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레벤호스트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래도 잘 굴러가지 않을까? 철혈대제가 남긴 유산이 있으니 말이야. 상승 무패의 군대는 여전히 제국의 영토를 지키고 있고 제국의 곳간엔 금은보화가 넘치고 있다. 이런 제국에 위기가 닥쳐오려면 적어도 몇 세대가 흘러야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레벤호스트는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제국엔 일곱 선제후가 있다. 각각의 선제후령은 여간한 나라의 국력을 능가한다. 제국을 쓰러뜨린다는 것은 대륙 최강의 국가 일곱을 연이어 무너뜨려야 한다는 말과 같지.”

레벤호스트의 말은 정론이다.

각각의 선제후는 일국의 왕과 유사한 지위와 힘, 군대를 지닌다.

문제는 거기에서 비롯됐다.

파멸적인 미래를 아는 루페르트는 오만하기까지 한 선제후를 똑바로 노려보며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그 막강한 선제후가 제국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지?”

레벤호스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화살 비와 같은 매서운 눈빛을 받으며 루페르트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자격 없는 자가 황제가 되면 선제후들은 서로 다투게 되겠지요. 아무리 막강한 제국이라고 해도 그 집안부터 흔들리면 바깥의 위협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호시탐탐 제국의 분열을 노리는 타국의 왕들은 모든 힘을 기울여 선제후 간의 다툼을 부추기겠지요. 하지만 자격 없는 황제는 그 다툼을 중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선제후들은 그 황제에게 복종하지 않을 테니까요.”

직접 경험한 일이다.

거짓이 있을 수 없다.

진실이 깃든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본 레벤호스트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이 친구.’

처음 본 관상이 옳았다.

만만한 자가 아니다.

“……선제후 간의 대립과 연합은 최초의 황제 시대부터 엄격히 금한 바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는 약간은 궁색한 어조로 말한 후 자리를 떠났다.

장원을 나서기 전에 그는 배웅하는 젊은이를 돌아보며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이름도 모르고 왔다는 건 레벤호스트가 루페르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 주는 단편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과거형이다.

루페르트는 그렇게 확신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루페르트 가우저. 헤르베르트 가우저의 아들이자 철혈대제 클라우데 2세의 혈족입니다.”

루페르트 가우저.

트라이아의 선제후 레벤호스트는 그 이름을 확실하게 머리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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