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혈왕-309화 (304/450)
  • 60화. 태화 (3)

    조영옥의 상태가 워낙 안 좋았기에 일행은 시체도 정리하지 않은 채 창고지대를 떠나 가까운 민가로 갔다.

    칼찬 무림인들의 등장에 집주인인 중년 부부가 덜덜 떨었지만, 조영빈이 은전 꾸러미를 내밀자 눈빛에 욕심이 들어섰다.

    “혹시 달리 더 필요하신 건....”

    “배고픈데 밥 좀 주시오.”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나리들!”

    남편이 닭을 잡고 아내가 음식을 하는 동안 일행은 적당히 쉬면서 심신을 점검했다.

    강엽은 조영옥의 내상을 초음으로 살펴보았다.

    ‘역시 원기가 많이 상했군.’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공력을 운용하느라 상처가 도졌다.

    원래라면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정양해야 할 만큼 심각한 내상.

    “일단 운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강 무사, 미안하지만 자세한 얘기는 조금 이따가....”

    “손 좀 내밀어보시오.”

    “손이요?”

    조영옥은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강엽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해칠 이유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평생 무를 단련하느라 굳은살이 촘촘히 박힌 손.

    강엽이 그 손을 맞잡자 경맥에서 일어난 따스한 기운이 조영옥의 체내로 흘러들어갔다.

    그것이 무엇인지 헤아린 조영옥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강 무사, 이건....”

    “간단한 술법이오. 임시방편이지만 운기만 하는 것보단 낫겠지.”

    “나은 정도가 아니에요.”

    파리했던 얼굴에 조금이지만 홍조가 돌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몇 년치 수명에 달하는 선천지기를 넘겨받은 것.

    “하아....”

    조영옥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이지만 신공의 호흡이 돌아오며 기파가 안정되었다.

    “고마워요. 벌써 몇 번이나 빚을 졌네요.”

    예를 갖추는 품행에 진심이 깃들었다. 태화문의 이공녀로서 고고한 자존심을 견지했던 그녀가 자신을 낮추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겠지.

    조영옥이 풀썩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면 놈들이 헛똑똑이라 다행이었군요. 만약 기련추마에게 알렸다면 저도 무사치 못했을 텐데....”

    태화문의 이공녀가 잡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면 기련추마는 얼씨구나 하고 춤을 줬을 터.

    하나 배신자들은 공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몰래 산공독을 구했던 것이다.

    “누님, 기련추마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무슨 말이니?”

    “강 무사님이 그자를 격살했거든요.”

    “응?”

    동생의 말에 조영옥은 눈을 끔뻑이다 뒤늦게 이해하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정말로?”

    “예, 제가 똑똑이 봤습니다.”

    조영옥이 침묵을 견지하는 동안 상세한 보고가 이어졌다.

    이윽고 보고가 끝났을 때 그녀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강엽을 향해 헛웃음을 흘렸다.

    “...못 본 사이에 더 강해지셨네요. 하긴, 강 무사는 항상 그랬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군요. 만날 때마다 강해져 있었으니....”

    “공녀도 벽을 넘은 걸로 보이오만.”

    “그래도 제 힘만으로 태화문을 넘는 건 무리죠.”

    “계획이 있소?”

    태화문의 본단이 있는 달주 일대엔 이미 그녀의 용모파기와 함께 문도들이 쫙 깔렸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즉시 태화문에 소식이 전해질 터. 역용으로 정체를 감추지 않는 한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야밤에 담을 넘지 않는 한 잠입은 불가.’

    하지만 조영옥의 성정이라면 살수처럼 몰래 월담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태화문을 얻고자 한다면 정체를 들키는 것을 감수하고 정면으로 들어가야 할 터.

    “일단 대공자를 끌어낼 생각이에요.”

    “어떻게 말이오?”

    “격장지계요. 대공자의 자존심을 건드리겠어요.”

    “스스로를 미끼로 쓰겠다?”

    “성동격서도 생각하고 있죠. 제가 시선을 끄는 동안 지하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는 것. 대공자는 인재 욕심이 많으니 그들을 포섭하고자 살려뒀을 거예요.”

    “대공자를 이길 수 있겠소?”

    “지난 싸움에선 대공자한테 지지 않았어요. 아니, 애초에 저희가 패한 건 압도적인 고수가 있어서였죠.”

    그녀에게 중대한 내상을 입힌 게 대공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는 의미.

    강엽이 미간을 좁혔다.

    “팔대교왕이오?”

    “혈안사군(血眼邪君)이라는 여자였죠. 갑자기 그녀가 끼어든 게 문제였어요.”

    대공자가 혈교의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정황으로 알았지만 팔대교왕까지 현신했을 줄이야.

    “혹시 풍도마장 어르신도 그 여자가?”

    “예, 절 지키시다가....”

    풍도마장이 죽었던 기억을 떠올린 건지 조영옥과 조영빈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떠올랐다.

    “대공자의 성취는 잘 모르겠지만, 저와 그의 생사결로 싸움의 구도를 결정해야 해요.”

    “지하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고 난 뒤엔 태화문 본단을 장악해야 할 테고.”

    “반발이 만만치 않을 거예요. 혈안사군은 싸우러 나갔다고 쳐도, 혈귀들이 진을 쳤을 테니까요.”

    “혈안사군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래야 만의 하나 변수가 발생해도 대응할 수 있으니까.”

    운남에서 싸우고 난 뒤 강엽은 혈교의 전력을 얕잡아보지 않았다.

    만약 혈안사군이 없다 해도 그에 준하는 절세고수가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둬야 하리라.

    “혹시 필요한 게 있소?”

    “손발이 되어줄 사람들이요.”

    “어떻게 대공자를 끌어내겠다는 건지 알겠군. 사람들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요.”

    “역시 강 무사하곤 말이 잘 통하네요.”

    조영옥이 입가를 올리자 강엽도 무심코 그렇다고 대답할 뻔했다.

    둘이 호흡이 척척 맞자 뾰로통한 기색을 내비친 백서희가 커흠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둘이서만 얘기하지 말고 좀 알아듣게 설명해주지?”

    백서희뿐만 아니라 조영빈도 오가는 얘기를 따라가지 못해서 현기증이 난다는 얼굴이었다.

    겸연쩍은 웃은 조영옥이 대답했다.

    “예,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그건....”

    그녀의 입에서 계획이 나왔고, 강엽이 간간이 첨언하며 그녀가 미처 말하지 못한 부분을 짚고 넘어갔다.

    그렇게 설명이 끝났을 때, 백서희와 조영빈은 한껏 벌어진 턱을 다물지 못했다.

    * * *

    활명술로 선천지기를 나누어받은 조영옥은 운기요상을 하면서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 강엽은 기련추마가 거처로 썼던 운화장에 침투해서 혈교의 잔존세력을 밀어버리고, 과거 투기장의 무인들을 위해 마련되었던 약방에 들어갔다.

    내상을 입은 무인들이 죽는 걸 막기 위해 내상약을 골고루 갖춘 장소였다.

    “최상품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쓸 만할 거요.”

    “잘 먹을게요. 그런데....”

    조영옥의 시선이 강엽의 손을 향했다.

    일월신마공을 각성한 영향으로 손등에 새겨진 문신을 가리기 위해 장갑을 끼웠지만, 과거 그녀가 선물해주었던 용린투는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을 알아챈 강엽이 입맛을 다셨다.

    “저번 싸움에서 찢어졌소.”

    “음, 그렇군요. 제가 문주가 되면 태화문의 보고에서 좋은 걸 드릴게요.”

    강엽은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일월의 문신을 숨기고 다니려면 튼튼한 수투가 필요했으니까.

    그렇게 일행은 닷새간 민가에서 신세를 지며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고, 조영옥도 만전은 아니지만 보신경을 펼칠 수준까지는 회복되었다.

    양피지를 펼친 강엽은 자신의 피를 가진 하후진을 혈종술로 쫓았다.

    “금불산(金佛山)이군.”

    중경에서 삼백 리 가량 떨어진 험산.

    하루 동안 달린 끝에 일행은 작고 허름한 사찰에 도착했다.

    향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찰에선 갈색의 가사를 걸친 스님들이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었는데, 무장한 무림인들의 등장에도 지극히 평온한 기색이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말없이 합장을 할 따름.

    조영빈이 당황하며 포권을 올렸다.

    “스님들....”

    그때 스님 중 하나가 손가락을 들어 조용히 뒤쪽의 산봉을 가리켰다.

    “가자.”

    “예?”

    “저쪽에 있는 거 맞다.”

    하후진이 있는 붉은 점은 사찰의 뒤에 있었다.

    ‘협력자였군.’

    아무렴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왔는데 승려들 몰래 숨어들었겠나.

    가파른 길을 타고 산봉에 오른 일행은 곧 작은 암자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강 무사!”

    “돌아왔구나, 강엽 이눔 자식아!”

    가장 앞에서 반긴 사람은 장경이었다. 몇 달 만의 재회였지만 그는 크게 변한 게 없었다.

    딱 한 가지, 평소의 옷 대신 노란 승복을 입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큭, 푸웁...!”

    청송객잔이 그 꼴이 되었으니 괜찮냐는 말부터 나와야 하는데, 어째 웃음부터 나오는 일행이었다.

    강엽이 이죽거렸다.

    “업종 바꾸기로 한 거냐?”

    “염병할.”

    정수리까지 울그락붉그락해진 장경이 면상을 구겼다.

    원래 대머리였기에 승복을 걸쳐도 위화감이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여기 머무르는 동안 매일 한 시진씩 이거 입고 불경 수업을 받으라잖냐.”

    그러고 보니 장경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승복을 입고 있었다. 장경처럼 대머리는 없는지라 스님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강엽은 암자 기둥에 기대고 선 하후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넌 괜찮냐?”

    “뭘 새삼스럽게. 나도 숭산에 있는 동안엔 승복 입고 지냈어, 인마.”

    강엽은 바로 이해했다. 불권과 수련하면서 옷이 수없이 찢어진 탓에 승복을 입었다는 뜻이겠지.

    “반야심경도 매일같이 들어서 이젠 그러려니 해. 듣다 보면 심신이 안정돼서 오히려 좋아.”

    ‘...불교 체질이었나?’

    평소 행실을 보면 절대 아니었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강엽은 일행과 장경, 전강을 소집했다.

    “태화문을 칠 거다.”

    “...진심이냐?”

    장경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조영옥이 나섰다.

    “진심이에요.”

    “음, 이공녀의 상황은 나도 알고 있수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만으로 태화문을 치겠다니. 차라리 당문에 합류하는 게 낫지 않겠소?”

    “태화문을 점령하면 사천의 흑도 방파들에 혈교에 대한 협조를 그만두라는 명령을 내릴 겁니다.”

    지금 이 순간 혈교가 위세를 떨치는 데는 흑도 방파들의 몫이 매우 컸다. 그들이 곳곳에서 혈교에 식량과 말, 병장기 등을 지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보와 은신처도 제공하니 사천삼패를 비롯한 백도 정파가 애를 먹을 수밖에.

    “으음, 일리 없는 말은 아닌데... 강엽, 너도 이공녀의 생각에 찬동하는 거냐?”

    “전황이 어떻지?”

    숙정방에 머물던 당시 단목정을 통해 듣긴 했지만, 장경은 보다 자세히 말해주었다.

    “안 좋지. 위지세가가 당문을 압박하고 있고, 두 교왕이 사천을 제 집 앞마당처럼 쏘다니고 있거든. 아미와 청성이 대응은 하고 있는데, 사실 각자 영역 지키기도 빠듯한 실정이야.”

    “태화문 본단을 친다면 보급을 막을 수 있겠군.”

    결국 조영옥과 같은 의견이었다.

    한숨을 내쉰 장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두 교왕이 나갔다면 태화문 본단은 텅텅 빈 것과 다름없긴 하지. 그래도 태화문은 태화문이야. 번천광야가 작고했어도 용담호혈이다.”

    “나와 서희, 하후진, 이공녀라면 충분해. 그리고... 전강도 함께했으면 하는데.”

    전강까지 합류하면 삼화취정의 고수만 다섯 명. 설령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다 해도 대처할 수 있겠지.

    다만 장경보다는 전강이 내키지 않는 눈초리였다.

    “분타주, 나는....”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거냐?”

    전강의 말이 끝맺기도 전에 장경이 물었다. 자연히 전강은 입을 다물었고, 강엽이 대답해야 했다.

    “판은 확실히 짰다. 한 명도 죽지 않는다고 장담하진 못하지만... 그래, 우리가 이길 거다.”

    “전강,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장경의 말에 전강의 동공이 흔들렸다.

    “지난 이십 년간 날 지켜줬잖냐. 그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하지만 이젠 네 마음을 따르라고.”

    “분타주, 그건 내가, 아니 우리가 저지른 죄업 때문이었소. 나는....”

    “그러니까 이젠 됐다고. 고작 나 하나 지키자고 사람들을 외면했잖아. 그럴 때마다 네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내가 모를 것 같냐?”

    “.......”

    “아라한이 필요한 시대야.”

    삼십 년 전 사마외도를 공포에 빠트렸던 외소림은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사라졌다.

    그러나 혈교가 부활한 지금, 난세의 강호가 은거한 아라한을 다시 부르고 있었다.

    “산중 생활도 청산해야겠군.”

    “어디로 갈 거지?”

    “성도 분타. 혈풍신군인지 뭔지가 성도를 쑥대밭으로 만들 때 같이 탔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모여 재건하고 있다고 들었거든. 낭인들이랑 같이 거기로 갔다가 당문주가 부르면 도와줘야지.”

    “그럼 숙정방에 들렀다 가라.”

    “거긴 왜?”

    “숙정방이 있는 노주에서 타강을 통하면 당문까지 금방 가니까. 단목 방주에게 말하면 배편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그거 끌리는걸.”

    장경이 눈웃음을 쳤다.

    * * *

    왼눈에 검은 안대를 찬 여인.

    혈교에서 혈안사군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그녀는 짜증이 역력한 얼굴로 씨근덕거리고 있었다.

    한껏 시뻘게진 안색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태화문의 경내로 들어온 그녀는 곧장 문주전에 쳐들어갔다.

    살기등등한 기세에도 태화문의 고수들은 감히 막을 엄두도 못 내고 흠칫 물러나느라 바빴다.

    쾅!

    “바쁜 거 모르냐? 왜 사람을 부르고 지랄이야?”

    “...진정하시오.”

    은빛 장포를 입은 수려한 청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혈안사군이 긴 눈썹을 위로 치켜떴다.

    “이봐, 낭군. 네가 내 남편이라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는 없어.”

    태화문의 대공자 조영준. 아비가 죽자마자 누이를 숙청하고 문주의 자리에 오른 그는 성혼하지 않았다. 그를 낭군으로 부른 것은 혈안사군의 독단이었다.

    하지만 대공자는 그 태도를 지적하지 않았다. 비록 성혼하지 않았어도 잠자리는 같이했던 것이다. 그마저도 혈안사군이 강제로 끌어들인 것이지만....

    “수하가 잘 전달하지 못했나 보오. 혈교 본단에서 또다른 교왕이 왔다고 전하라고 했거늘.”

    “아, 그래. 그렇게 말하더라. 근데 그게 뭐? 교왕이라면 나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해? 혈천이나 혈옥(血玉)이라면 몰라도, 그 밑의 것들은 아니야.”

    그때 문이 열리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의 아니게 소제가 누님을 방해했군요.”

    들어온 이는 대공자 못지않게 잘 생긴 청년이었다. 선이 굵은 미남의 등장에 한껏 찌푸려졌던 혈안사군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대공자의 용모만 보고 그를 남편으로 삼을 만큼 그녀는 사내의 얼굴을 밝히는 편이었다.

    “이게 누구야. 혈룡검군(血龍劍君) 아니신가? 폐관에 들은 거 아니었나?”

    “얼마 전에 나왔습니다.”

    “좀 아쉽게 느껴지긴 해. 네가 폐관만 들지 않았어도 내 남편감으로 삼는 건데.”

    “하하, 이미 훌륭한 남편을 구하시지 않았습니까?”

    넉살 좋게 대답한 혈룡검군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두 손을 모았다.

    “사실 전 호위 임무를 수행하는 중입니다. 누님을 여기로 부른 건 다른 분이시지요.”

    “...누구지?”

    혈안사군의 하나뿐인 눈매가 날카롭게 비상했다.

    비록 말석이라 하나 교주와 신녀를 제외하면 가장 존귀한 팔대교왕을 누가 감히 호위로 삼겠는가.

    ‘허수아비 같은 교주일 리는 없고... 신녀가 여기까지 올 이유도 없어. 그럼 없는데?’

    그러다 혈안사군은 자신이 어느 샌가 뒤를 잡혔다는 사실을 깨닫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뭐야.”

    “재밌네. 금호요안(金狐耀眼)을 이식하다니... 본래 그 눈이 누구의 것인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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