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혈왕-301화 (297/450)
  • 59화. 소요 (1)

    음산한 한기가 흐르는 장내였다.

    몇 개의 대황촉으로만 어둠을 밝힌 화려한 대전에서 수려한 이목구비의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교주시여.”

    “신녀인가.”

    별안간 어둠을 뚫고 오는 음색.

    혈교주가 눈을 뜨자 붉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드리운 절세가인이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혈천성군이 도착했습니다.”

    “제물은?”

    “함께 왔나이다.”

    혈교주와 신녀. 혈교를 떠받치는 두 기둥은 잠시 시선을 나누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혈교주였다.

    “일전에 혈음과 혈산이 죽었다고 했었지.”

    “...예.”

    “누구의 소행이라고?”

    “혈음마군은 무당제일검과의 교전에서 빈사지경에 빠졌으나 금마에 의해 살해당했고, 혈산패군은 점창파 장문인의 심상절예를 맞고 절명했습니다.”

    팔대교왕이 죽은 전말을 알고 있는 듯한 태도.

    소문이 멀리 퍼지지 않은 혈산패군의 죽음은 물론, 극소수의 인물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알지 못하는 혈음마군의 죽음에 얽힌 내막까지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하면 모산혈조는 왜 소식이 없는 건가?”

    “혈산패군의 혼백이 말하기를, 모산혈조는 귀영이라는 자와 싸웠다고 했습니다. 다만 혈산패군 역시 누가 이겼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나?”

    “....”

    신녀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모산혈조의 혼백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살아남아서 몸을 숨겼을 수도....”

    “일전에도 이런 적이 있지 않나?”

    신녀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언급 자체를 망설이는 낯빛이었으나 혈교주가 빤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한숨처럼 대답했다.

    “전대 신녀의 혼백께서 소식이 끊겼지요.”

    “명도상인과 단혼마백.”

    같은 사람에게 죽은 자들의 별호.

    “이번이 세 번째다, 신녀여. 귀영과 얽힌 자들의 혼백이 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마땅히 시조의 부활을 위한 대법의 제물이 되어야 할 자들이 왜 돌아오지 못했다고 생각하느냐?”

    “교주시여...!”

    “틀림없이 진조의 후예다. 그 괴물이 교도들의 영성과 피를 취하고, 제 살을 찌우고 있는 것이야.”

    “어찌 참람한 자의 이름을 부르십니까? 그자는...!”

    “거기까지.”

    어둠 속에서 울린 목소리에 신녀가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고, 교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례하구나, 혈천. 허락도 없이 교주전에....”

    “그건 죄송하게 됐습니다, 교주님. 하지만 교주님께서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교도들이 봤다면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나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글쎄요. 두 명은 두려워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우리들의 신과 그 신을 살해한 흉수 말입니다.”

    “...!”

    “그러니 닥치고 의식이나 준비하시오. 기껏 준비했는데 병신짓으로 말아먹지 말고.”

    감히 상전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폭언.

    교주의 눈매가 분노로 떨렸지만 혈천성군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신녀에게만 예를 갖추었다.

    “...혈천성군.”

    “준비해주십시오. 신녀께서 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말은 친절하지만 어조는 단호하다.

    신녀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뒤를 따라온 신유를 발견하고 콧잔등을 찡그렸다.

    “성군, 어찌 외인을 교주전에...!”

    “내공을 금제해놨으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능청맞게 뻔뻔한 말을 지껄이는 작태에 교주와 신녀는 기가 막히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고, 신유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됐다.

    “...내가 지금 뭘 본 거냐?”

    혈교주가 불렀다고 해서 왔더니 팔대교왕이라는 놈이 상전을 찬밥 취급하고, 신녀도 우습게 알고 있었다.

    “혈천, 네놈 설마 혈교주를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뒤에서 실세로 군림하고 있는 건가?”

    “원래부터 그랬다.”

    “무어?”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좀 다르지. 본교는 다른 마교들과 사정이 다르다. 그쪽은 교주가 무소불위의 전권을 휘두르지만, 본교에서 교주란 다른 의미로 쓰인다.”

    혈교주가 말없이 주먹을 쥐는 동안 혈천성군은 느긋하게 제 할 말을 지껄였다.

    “혈신의 핏줄이자 언젠가 돌아올 그분을 위한 그릇. 제 육신을 공양해서 우리들의 신을 담아야 할 인형. 교주는 혈신의 육신으로 쓰일 것이다.”

    “...!”

    혈교가 시조의 강림을 부르짖고 있다는 거야 익히 알려졌지만 그걸 실제로 하려고 들 줄이야.

    “혈마는 먼 옛날에 죽지 않았나?”

    “아니, 그분은 부활하실 것이다. 그리고... 입조심해라.”

    말이 끝나자마자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신유의 목과 관절들을 꽉 쥐었다.

    뿌드드득!

    “크아악!”

    이도 저도 못하고 비명만 토하는 신유를 싸늘하게 내려다본 혈천성군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간신히 그림자에게서 벗어난 신유가 식은땀이 범벅이 된 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허억!”

    “그분을 부를 땐 혈신이나 시조라고 부르도록. 네 육신은 귀중한 제물이니 죽이지는 않겠지만, 고통을 주는 건 어렵지 않다.”

    “차라리 자결을...!”

    “그럴 수야 없지. 자결을 금한다.”

    혈천성군의 말에 턱이 빳빳하게 굳어지는 모습. 혓바닥을 끊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게 됐다.

    그러자 혈교주가 호통을 쳤다.

    “무슨 짓거리냐-!”

    화아악!

    교주전을 흔드는 어마어마한 기파. 아무리 허수아비로 세워졌어도 혈교주는 지고한 존재였다.

    드높은 천장과 굳건한 기둥을 흔드는 기파의 밀도를 감지한 신유가 미간을 굽혔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그만하시지요. 세들어 사시는 분께서 함부로 남의 궁전을 때려부수면 되겠습니까?”

    귀찮다는 듯이 휘젓는 혈천성군의 손짓에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기파. 혈교주가 전횡을 일삼는 교왕을 매섭게 노려보며 입매를 파들거렸다.

    혈천성군이 다시 한번 짜증을 냈다.

    “귀찮으니까 그만하라고.”

    혈교주가 대답을 못하자 혈천성군은 코웃음을 치면서 신유를 향해 손짓을 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허공섭물로 끌려온 신유를 무시하면서 신녀를 돌아봤다.

    “자, 이제 길을 열으실 차례입니다.”

    * * *

    그곳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젊고 아름다운 남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원이 무공을 익힌 고수였다.

    신유가 그 사실을 알아보고 질문하려고 할 때 혈교주가 한발 앞서 입을 열었다.

    “당신과 같은 제물들이오.”

    “...혈마에게 가는 길을 연다고 했었지. 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물은 뭐고?”

    버릇처럼 혈마의 이름을 내뱉은 신유가 뒤늦게 아차 했지만 혈교주는 문제 삼지 않았다.

    멀리서 신녀와 함께 의식을 행하고 있는 혈천성군을 차갑게 응시하면서 말을 이어나갈 따름.

    “시조께선 천 년 전에 패하셔서 목숨을 잃으셨소. 하나 절반의 혼백이 남아 있었지. 그 혼백은 그분의 충신들과 함께 ‘연옥(煉獄)’이라 불리는 곳에 잠들었소이다.”

    “연옥?”

    강호 무림을 제 집 안방처럼 쏘다녔던 신유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

    “나도 잘은 모르오. 경교(景敎)를 믿는 자들이 쓰는 말이라고 하던데... 아무튼 연옥으로 가려면 시조의 후손인 이 몸의 피를 열쇠 삼아 신녀가 길을 열어야 하오.”

    “그럼 제물들은 뭔가?”

    “그건....”

    대답을 이어가던 혈교주는 멀리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혈천성군의 시선을 느끼고 말끝을 흐렸다.

    “들어가보면 알 수 있을 거요.”

    “으음.”

    혈천성군 휘하의 교성으로부터 길쭉한 석장을 받아든 신녀가 그것을 바닥에 찍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쿠구구구구구궁......!

    “어엇?”

    “바, 바닥이...!”

    지축이 흔들리는 가운데 격한 진동음이 퍼져나가며 천장의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수백 마리의 마귀가 싸움질을 벌이는 아수라도(阿修羅道)를 음각한 벽면. 그것이 좌우로 나뉘면서 그 너머에 있던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힌 신유조차 놀란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동굴? 아니, 동굴도 아니군. 저건....”

    어둠을 뭉뚱그려 만든 듯한 통로.

    벽면 뒤쪽에서 나온 통로는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올 것만 같은 불길한 존재감을 흩뿌렸다.

    그에 제물로 선택된 자들이 불안해하며 주춤거릴 때, 교성들이 그들을 밀어내며 윽박질렀다.

    “한 걸음이라도 물러나면 죽는다. 죽고 싶지 않으면 저 통로로 들어가라.”

    “하지만...!”

    콰직!

    무심코 항변하던 청년이 머리가 으스러지면서 피와 뇌수를 흩뿌리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기함했다.

    하지만 교성들의 서늘한 눈빛이 그들을 노려보자 이를 악물고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도 가봅시다.”

    혈교주의 말에 신유도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일종의 술법진이군.’

    통로 안쪽은 까마득한 어둠이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깊고 어두워서 내가기공의 고수라도 꿰뚫어보기 힘든 암흑천지.

    제물로 낙점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삼화취정에 오른 교성들도 긴장감이 역력한 얼굴로 어둠 속을 연신 힐끔거리고 있었다.

    신녀가 무어라 작게 읊조리는 찰나.

    우우웅!

    그녀의 석장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나오면서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혈천성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신녀가 있어야 편하군.”

    단지 앞길을 비추는 서광이 아니었다. 빛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면서 올바른 길을 알려주었다.

    따라서 신녀를 등불 삼아 앞으로 가면 되지만, 어두운 건 매한가지라서 발밑을 살피기가 어려웠다.

    “으헉!”

    발을 헛디딘 누군가가 휘청거리자 신유가 잽싸게 어깨를 잡고 물었다.

    “괜찮은가?”

    “예, 예....”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네. 잔도나 다름없음이야. 잘못 밟으면 그대로 떨어지니....”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린 신유는 어둠 속에서 우글거리는 덩어리들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인간을 닮았되 온몸에 털이 없으며 시체처럼 창백하기 그지없는 괴물들. 그만 본 게 아닌지 곳곳에서 헛바람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혈교주가 말했다.

    “시귀라는 것이오.”

    “시귀?”

    “흡혈귀가 되지 못한 찌꺼기들. 쓸모가 없어서 오래전에 처분되었던 것들이오.”

    “...그런 것치고는 잘만 살아있는 것 같은데?”

    처분되었다면 죽었어야 하는데 아래쪽의 괴물들은 이쪽을 올려다보면서 입질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흡혈귀라는 건 대체....”

    “잡담은 그만하지? 교주님께서도 제물로 쓰일 것들에게 너무 마음 쓰실 것 없습니다.”

    상전에게 취하기엔 다소 건방진 어투였지만 혈교주는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아예 대꾸하지 않아서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입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상대가 마교의 수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신유는 혈교주의 처지에 딱한 마음이 일었다.

    그야말로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아닌가?

    ‘언제부터 혈교주가 일개 수하에게 휘둘리게 된 건지 원.’

    내심 혀를 끌끌 차고 있을 때였다.

    [이 기운... 누구지?]

    어둠을 밀어내듯 격하게 진동하는 대기.

    동굴 안에서 외치는 것처럼 울림을 띠는 전성에 모두가 당황하는데 신녀가 냉큼 고개를 조아렸다.

    “삼십칠대 신녀 적설란이 호교사천(護敎四天)의 일좌이신 요선(妖仙)께 삼가 인사 올립니다.”

    [...신녀?]

    잠에서 깨어나듯 나른함이 가시는 목소리가 이내 완전히 또렷해졌다.

    [아, 그렇구나. 삼십칠대라... 호연화는?]

    “그분은 오대 전입니다.”

    [흐음, 너무 오래 잠들어서 헷갈린단 말이지. 잠깐씩 깰 때마다 신녀가 바뀌는 기분이야. 그나저나....]

    찰나 신유를 비롯한 제물들을 훑어보는 듯한 시선.

    온몸의 피가 싸늘히 얼어붙는 감각에 모두가 새파랗게 질릴 때 목소리에 웃음기가 어렸다.

    [이런. 어쩐지 익숙한 기척이 있다 싶더니... 검마(劍魔), 그대가 본녀보다 일찍 깨어났군요.]

    ‘검마?’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시선이 혈천성군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

    혈천성군, 아니 검마가 입꼬리를 올렸다.

    “오랜만이오, 요선. 어쩌다 보니 그대보다 먼저 깨어났구려. 이게 몇 년 만에 나눠보는 대화인지....”

    [당신은 언제 일어났지요?]

    “전전대 신녀인 마화령이 들어왔을 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후후, 그럴 거요. 그 시절은 당신이 깊이 잠들었을 때니까. 오히려 내가 지나치게 빨리 깨어났지.”

    [...보통 몇 마디 나누고 나면 수마가 몰려오는데도 멀쩡하군요. 혹시?]

    “그렇소. 때가 온 거요. 주군과 함께 천하를 질타할 약속의 때가! 우리가 완전히 깨어났다는 건 그분이 돌아오실 날이 가까워졌다는 뜻!”

    [아아...!]

    환희로 가득찬 목소리였다. 요선은 진정 복락에 겨운 목소리로 환호하고 있었다.

    [드디어 이 연옥을 나갈 때가 왔구나! 얼마나 오랜 오욕의 세월을 참고 견뎌왔던가...!]

    “그대를 위해 새로운 몸을 준비했소. 당금 천하에 여덟 손가락 안에 든다는 절대고수부터 젊은 것들까지 다양하게 준비해놨으니 마음에 드는 몸을 골라주시오. 이혼대법으로 몸을 옮기는 걸 도와주겠소이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제물을 준비한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제물로 공양된 사람들 중 대다수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신유는 아니었다.

    견문이 넓은 천하팔존답게 이혼대법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혈교의 속셈을 깨달은 것이다.

    “이 찢어죽일 놈들이! 내 육신을 내줄 것 같으...!”

    [없는데?]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듯한 기색.

    검마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없다니?”

    [혹시 삼화취정에 오른 여아는 없나요? 기왕이면 젊고 아름다운 아이로. 아무리 급해도 중늙은이는 좀....]

    “....”

    진심으로 꺼려하는 태도에 혈교의 중진들은 망연해졌고, 검마는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꼭두각시인 혈교주가 그딴 말을 했다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걷어찼겠지만, 상대가 그와 같은 호교사천인 만큼 예의를 갖춰야 했다.

    “...일단 아무거나 골라주시오. 그대가 원한 몸은 일선에 나간 교도들에게 찾아보라고 할 테니까.”

    [어쩔 수 없군요. 대신 저 늙은이는 살려줘요.]

    “신유를 말하는 거요?”

    [이름은 모르겠고, 아무튼 쓸모가 있어 보이는군요. 새로운 육신으로 삼지는 못해도 다른 용도로 쓰면 괜찮겠지요.]

    그렇게 요선이 새로운 몸이 될 후보를 고르자 다른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뭔지는 몰라도 그녀에게 간택되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

    하나 안심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나머지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쓸모가 없으니 버려야지.”

    [다른 사천을 위한 몸으로 예비하지 않고요?]

    “그들을 위한 후보는 따로 있소.”

    검마가 턱짓을 해보이자 이제껏 잠잠했던 교성들이 제물들을 밀치기 시작했다.

    “살려줘!”

    “아, 안 돼! 아아아악!”

    천장단애 아래로 떨어지는 제물들의 절규.

    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귀들은 간만의 포식에 기쁨의 포효를 터뜨리며 아가리를 벌렸다.

    콰직! 으적으적...!

    “이런 쳐죽일 놈들을 봤나-!”

    신유가 분노했으나, 힘없는 자의 분노는 겁쟁이의 침묵과 다를 바 없었다.

    조소를 흘린 검마가 턱짓했다.

    “데려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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