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사냥 (7)
학살극은 계속 이어졌다.
“사, 살려... 컥!”
“끄으윽....”
손가락 하나만 까딱여도 혈목이 등짝을 꿰뚫는다.
몇 명이 죽어나자빠진 뒤에야 술사들도 상황을 인지하고, 숨을 죽인 채 입도 뻐끔거리지 않았다.
“.......”
그제서야 무분별한 공격을 멈추고 장내를 주시하는 적발의 여인.
기침만 해도 철퇴를 후려맞는 황당한 사태에서 강엽 역시 당혹스럽기는 여느 술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군. 조금만 움직여도 공격한다. 그렇다고 감정적인 것도 아니야.’
살아있으니까 공격한다. 눈앞에서 알짱거리니까 죽인다.
그 행동엔 선악도, 감정도 없다.
‘하지만 초음엔 반응하지 않았어. 흡혈귀라면 초음을 인지하고 있을 만도 한데....’
강엽이 혈목보다 초음을 먼저 각성한 데 반해 여인은 혈목은 써도 초음은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도 강엽이 어둠 속에 녹아들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
시험 삼아 손가락을 움직여봐도 반응하지 않는 걸 보면 암신도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여차하면 이번에 얻은 능력으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나?’
진조를 만났을 때, 단순히 흡혈귀 비슷한 존재에 대한 경고만 들은 것은 아니었다.
소마동의 피를 마시면서 여섯 번째 능력을 깨울 조건을 채운 것.
그렇게 여섯 번째 능력을 쓸지 말지 각을 잡는 묘한 상황 속에서 여인이 느닷없이 먼저 움직였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뒤로 나자빠진 것이다.
“...아.”
넙죽 쓰러져 있던 술사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가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여인이 다시 공격할 기색이 보이지 않자 다른 술사들과 함께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지금이야! 정신을 잃었을 때 조정해야 한다!”
“침! 누가 침 갖고 있나!?”
누군가 건넨 대침을 빼앗다시피 가져간 술사들이 여인의 요혈 위로 빼곡하게 침을 놓기 시작했다.
수인을 맺고 음산하게 진언을 중얼거리자 찰박거리는 핏물이 피안개로 화해 여인의 모공에 흡수된다.
진땀을 빼며 작업하는 술사들의 모습에 강엽이 공력을 끌어올렸다.
‘차라리 지금 죽이는 게 낫겠어.’
안 그래도 교성이 있는데 이 여인까지 가세하면 유이강 측이 너무 불리했다.
딱히 두 세력이 힘의 균형을 이루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혈교가 우세해지는 것은 피해야 할 터.
어차피 여인이 혈목을 쓸 줄 안다는 걸 확인했으니 자신 역시 혈목을 불러내서 술사들을 처리해도 위화감은 없으리라.
그렇게 혈목을 불러내려고 할 때.
‘이런.’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의 기척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자신을 숨길 생각도 없는 듯 광포한 기세를 가감없이 드러내며 오는 사내.
“이게 무슨 꼬락서니냐?”
장내에 들어온 자색 장삼의 중년인이 노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쏘아보자 술사들이 흠칫했다.
“말해라, 술사들. 중요한 싸움을 앞둔 지금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말이다.”
언성을 높이지 않았지만 언제든 활화산처럼 폭발할 수 있는 분노였기에 더 무서웠다.
옆에서 심윤이 말리지 았았다면 무릎 꿇고 목숨부터 구걸했을 정도로.
“사고가 일어난 모양입니다.”
“사고?”
“예, 여기 오기 전에 작업장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거기서 일어난 술법진의 폭주가 여기까지 영향을 미쳐서 ‘불괴강시(不壞僵尸)’가 잠시 깨어난 겁니다.”
잠시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하는 심윤이었다.
작금의 사태가 술사들의 잘못 때문이 아님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노기를 거두시지....”
“건방진 놈.”
명도상인의 손이 빛살처럼 움직인다 싶은 순간, 심윤은 목이 졸린 채 번쩍 들어올려졌다.
“대제자님!”
“대사형!”
술사들이 기겁했다. 그들 중엔 심윤보다 나이가 많은 자도 있었지만 그보다 윗서열은 없었다.
명도상인의 시커먼 눈동자가 숨이 막혀 켁켁거리는 심윤을 파헤칠 듯이 들여다보았다.
“오냐오냐 봐주었더니 분수도 모르고 기어오르는구나. 본교에서 지위도 없는 놈이 모산혈조의 대제자랍시고 감히 내 앞에서 훈수를 놔?”
그 말에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강엽의 눈에도 기광이 일렁거렸다.
‘평범한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모산혈조의 대제자였을 줄이야.
‘이놈이 모산혈조의 상황을 알고 있겠군.’
원래라면 진작에 죽었어야 할 모산혈조가 어떤 수를 써서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훗날 모산혈조를 만났을 때 어찌 죽일지 결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지금 명도상인의 손에 죽지 않는다면 말이다.
명도상인에게 잡힌 심윤의 목은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이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는 그 상태에서도 본인이 할 말을 했다.
“끄윽! 사고, 원인은... 제가, 조사하겠... 만약, 사고가 이들 잘못, 이라면....”
“잘못이라면?”
손아귀의 힘이 약간 풀린 것인지 심윤이 한결 알아듣기 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흡! 이들의 목숨을... 거두겠습니다.”
“....”
무겁게 이어지는 적막. 명도상인의 서늘한 시선이 심윤의 일그러진 낯짝에 꽂혔다.
“...좋아. 지금은 네 말을 따라주마. 더불어 네놈을 한 번 살려줬음을 잊지 말도록.”
“큭, 각골...명심....”
흥 하고 코웃음을 친 명도상인이 심윤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죽은 술사의 시신과 충돌해서 몇 바퀴를 구른 심윤이 앓는 신음을 흘리며 일어났다. 어찌나 세게 조였는지 목에 시뻘건 자국이 남아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착각하지 마라. 전쟁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냥 넘어가준 것뿐. 전쟁이 끝나면 네놈은 내뱉은 말을 반드시 책임져야 할 것이야.”
“그야 이를 말씀입니까.”
심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입가를 씰룩거린 명도상인이 그를 고깝게 쳐다보다 술사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괴강시는 출전할 수 있나?”
“아, 예. 지금 막 조정 작업이 끝났습니다. 교성께서 명하시면 언제든 투입할 수 있습니다.”
“...좋아. 불괴강시를 즉시 옮기도록.”
그 말에 강엽이 내심 혀를 찼다.
이렇게 되면 불괴강시를 없애버리겠다는 계획은 시작도 전에 수포로 돌아가는 셈이었다.
잠시 후 혈령교위들이 들어와서 석관을 짊어지고 사라지자 명도상인이 대뜸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예?”
심윤이 눈을 껌뻑이자 명도상인이 석관을 가리켰다.
“한때 교의 신녀(神女)로 불렸던 여자가, 이지를 상실한 강시가 되어 그 신성한 옥체를 외간 사내들에게 내보이는 걸 말이다.”
“음, 신녀가 불괴강시의 소재가 된 건 그녀 자신의 의지라고 들었습니다만....”
“하지만 교에서는 저 여자를 실패작이라 규명했지. 네놈 사부인 모산혈조도 그리 말하지 않았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불리지요. 신녀라는 표본이 있기에 대계는 성공할 겁니다.”
“...그런가.”
잠시나마 감상적으로 변했던 명도상인의 인상이 다시 철인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럼 아까 했던 얘기로 돌아가지. 흑상의 병력이 얼마나 모였다고?”
“세 명의 흑상이 총 사백 명을 보냈습니다. 호연장은 장주가 죽어서 오십 명밖에 못 보냈습니다만....”
“사백이라.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가.”
하지만 나흘 만에 사백 명이나 되는 병력을 끌어모은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간밤에 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자기들 딴에는 있는 병력 없는 병력 다 끌어모았다고 하더군요. 아마 숨겨둔 병력이 따로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놈들도 바보가 아니라면 전쟁이 끝난 뒤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흑상들을 추궁할까요?”
“됐다. 그냥 두도록. 한 줌도 안 되는 병력을 쥐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는데 어쩌겠나. 그 정도는 못 본 척 눈 감아줘야지.”
이윽고 두 사람이 떠난 뒤에야 어둠 속에 숨어있던 강엽 역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다행히 두 번에 걸친 사고로 혈령교위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기에 빠져나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불괴강시, 모산혈조의 대제자, 교성....’
죽여야 할 놈들만 세 명이었다. 아니, 한 놈은 들어야 할 게 있으니 무조건 생포해야겠지.
* * *
“아, 왔네요.”
당묘정의 말에 한데 모인 일행의 시선.
창밖에서 박쥐 한 마리가 창문을 콕콕 두들기고 있었다.
지하 도시인 암시장에서 박쥐는 그리 보기 어려운 짐승이 아니나, 야생의 박쥐가 사람 사는 곳에 찾아온 것은 명백히 이질적인 상황.
하지만 앞서 강엽에게 언질을 들었던 당묘정은 당황하지 않고 창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날개를 접은 박쥐가 통통통 창틀에서 내려와서는, 물고 있던 작은 죽통을 퉤 뱉은 다음 그녀를 빤히 올려다본다.
짐승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시선.
“강 무사님이신가요?”
박쥐가 작게 고갯짓을 하며 그녀의 물음에 긍정으로 응했다.
사역술을 쓸 땐 짐승을 조종할 수 있으나, 의사소통엔 한계가 있기에 죽통으로 전갈을 보낸 것.
급하게 휘갈겨 쓴 쪽지를 빠른 속도로 읽은 당묘정이 다른 일행에게도 종이를 건넸다.
야차마곤이 읽고 청수에게, 청수가 소창후에게 건네며 일행 모두가 강엽의 전갈을 읽었다.
“불괴강시, 교성, 모산혈조의 대제자라.”
“어마어마한 거물들이 모였군요. 유이강이라는 자도 대담하구요. 벽력탄을 쓰다니....”
북쪽 구역의 장원들이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은 암시장 내부에도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흑상들이 전쟁을 벌일 거라는 소문에 장사를 접은 상인들이 속출하기까지.
“누가 이기든 암시장의 판도가 바뀌겠군요.”
“혈교가 이겨서는 안 되네. 그건 무조건 막아야 해.”
“태화문이 개입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그럴 수 있다는 거잖아요. 강 시주도 확실하지는 않다고 했고요.”
소창후의 말에 박쥐가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자 일행이 한숨을 흘리면서 침음했다.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당묘정이 말했다.
“문제는 불괴강시군요.”
“교성이 아니라?”
야차마곤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자 당묘정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
“물론 교성도 어려운 상대지만, 그런 교성이 유이강이란 흑상을 상대하기 위해 불괴강시를 데려왔다면 이유는 크게 둘로 추측할 수 있어요. 불괴강시의 힘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거나, 유이강의 힘이 만만치 않아서 불괴강시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라거나.”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군요.”
청수가 의견을 보태자 당묘정의 입가에 떫은 기색이 어렸다.
“최악은 불괴강시가 교성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는 거죠. 강 무사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일행의 시선이 탁자에 앉은 박쥐에게 향하자 박쥐가 사람처럼 날개 달린 앞발을 힘겹게 움직이며 탁상 위에 무언가 휘적거렸다.
붓글씨도 아니고 박쥐의 몸으로 쓴 것이기에 그냥 보면 뭔가 하겠지만, 남달리 안법이 발달한 일행은 용케 박쥐가 쓰는 글자를 알아보았다.
“삼화취정...!”
“점입가경이군. 그럼 혈교엔 삼화취정의 고수가 두 명이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안색이 거무죽죽해진 일행을 둘러본 박쥐가 쪽지 위로 올라가서 한 글자를 가리켰다.
“유이강도 그만큼 고수라고요?”
다시 고개를 주억이는 박쥐의 모습.
혼란에 빠진 일행을 향해 자신을 믿어보라는 듯이 짜리몽땅한 앞발로 가슴을 탕탕 두들겼다.
참으로 개떡같은 의사 표현이었지만 당묘정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깜짝 놀랐다.
“강 무사님이 한 명을 맡으시겠다고요?”
박쥐가 맞다는 듯이 날개를 쫙 펼치고 홰를 치자 일행의 표정이 묘해졌다.
“하지만 강 무사님이라도 삼화취정의 고수는....”
당묘정은 당문에서 강엽이 그녀의 숙부를 일순간이나마 밀어붙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당우경이 사정을 봐주었기에 가능했던 일.
설사 혈교의 고수들이 당우경보다 약하다고 해도, 과연 강엽의 무공으로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
“정 안 되면 협공해야지. 삼화취정의 고수를 홀로 감당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받아친 야차마곤이 흑곤을 꽉 꼬나쥐고는 결의를 다지듯 말을 이었다.
“사마외도를 앞에 두고 물러날 순 없는 법! 자네들이 빠진다면 나 혼자서라도 싸우겠네.”
“그거야말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이군요. 저 역시 복호승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겁니다.”
야차마곤과 소창후가 차례대로 각오를 밝히자 청수 역시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불리하면 퇴각하는 것이 맞지만 해볼 만한 것 같군요. 견주지도 않고 도망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세 사람과 박쥐의 눈길이 당묘정에게 쏠렸다.
잠시 입을 다물었던 그녀 역시 이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일행의 의지에 동조했다.
“하긴 이제 와서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요.”
도망치고 싶어도 암시장의 무인들이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막고 있었다. 북쪽 구역을 습격한 흉수들을 잡기 전까지는 누구도 나갈 수 없다는 구실로.
아마 유이강이 외부의 조력을 얻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흑상들이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리라.
“강 무사님, 저희는 언제 가면 될까요?”
그러자 박쥐가 다시 앞발로 글자를 써내려갔다.
-지금 바로 오시오.
* * *
‘단순히 흑상들을 습격하는 걸로 끝날 리가 없어.’
유이강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강엽은 유이강이 준비해둔 수가 하나가 아닐 거라 믿었다.
벽력탄을 동원한 기습 작전은 확실히 흑상에게도 유효한 타격을 입혔지만, 정작 내실을 들여다보면 그렇게까지 크게 실속을 챙겼다고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
병력을 교환한 비율로 보면 저쪽의 압승이지만, 정작 중요 인물들을 암살하는 데는 실패했으니까.
물론 호연 장주를 비롯해서 다수의 고수를 잃은 호연장은 피해가 컸지만, 이쪽의 주력이 혈교임을 감안하면 호연장이 입은 피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만약 유이강이 준비한 수가 벽력탄을 동원한 습격이 전부였다면 살수들은 후퇴하지 않았겠지.’
전력을 총동원해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거나 암시장을 뚫고 탈출을 기도했을 터.
그럼에도 유이강은 둘 중 어느 것도 택하지 않고 자신의 본거지에 틀어박혔다.
유이강이 어떤 수를 준비했는지 헤아릴 수는 없으나, 강엽은 그가 단순히 수성을 하다 산화하는 것을 택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고작 그만한 인물이었다면 혈교가 불괴강시라는 초강수를 두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던 자가 이제 와서 적들이 집결할 시간을 주는 건 합리적이지 않아.’
강엽도 뻔히 예측한 것을 오랫동안 흑상으로 암시장에서 군림했던 인물이 모른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적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 것은 아마....
“왠지 시야가 뿌얘진 것 같은데...?”
누군가 중얼거린 말에 몇몇 사람들이 동감을 표하면서 불안한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백서희가 옆에서 작게 속닥거렸다.
“이거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아?”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흐리진 않아도, 지하 도시인 암시장에 안개가 끼는 것은 상리에 어긋난다.
“이 지하 도시는 원래 흑룡교의 사유지였지.”
“그럼 이거 역시....”
두 사람도 겪어보았던 흑룡교의 안개.
안개에 흐르는 인위적인 기운을 통찰한 강엽이 미간을 좁히며 전방을 주시했다.
“벽력탄부터 쓴 이유가 있었군. 이런 데서 벽력탄을 쓰면 아군도 피해를 입을 테니까.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재고 떨이를 한 거야.”
애초에 벽력탄을 동원한 습격은 간보기였을 뿐.
‘흑상들도 당황하고 있다.’
흑상들을 호위한 고수들이 웅성거리는 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전혀 몰랐던 듯싶었다.
혈교의 술사들이 나서봤지만 지하 도시 전역에 흐르는 술법진의 조화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섣불리 술법에 개입한 술사들이 각혈을 하는 사태가 속출하자 심윤이 서둘러 불러들인다.
심윤이 고개를 가로젓자 명도상인을 비롯한 흑상들의 이맛살에 깊은 시름이 어렸다.
시간이 갈수록 눈에 띄게 짙어지는 회색빛 짙은 운무.
그러나 흑룡교의 술법은 단순히 안개를 불러내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궁...!
지하 도시 전체가 출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