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혈왕-196화 (196/450)
  • 35화. 난전 (1)

    쿠구구구구쿵......!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연쇄적으로 울리는 굉음.

    수십 년간 안전했던 암시장이 흔들리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이성을 유지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젠장, 말들을 진정시켜!”

    “당황하지 마라! 일시적인 현상이다!”

    누군가 그렇게 내뱉었지만 지진은 점점 기세를 더해가더니, 종국엔 땅이 쩌저적 갈라지면서 그 위에 있던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말들이 미쳐 날뛰면서 주인을 짓밟았고, 무인들은 공황에 빠져 비명을 지르고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설마 적들과 싸우기 전에 지진을 만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쿠르르르릉......!

    흔들림은 강엽과 백서희의 발밑까지 이어졌다.

    강엽은 당황하는 대신 백서희를 안고 땅을 박차고 뛰었다. 방금까지 두 사람이 있던 자리가 푹 꺼졌다.

    백서희가 바람결에 마구 나부끼는 긴 머리카락을 누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너무 이상한데... 아무리 술법이 괴력난신 같다고 해도 그렇지, 지진을 일으킨다고?”

    술법의 힘이 이토록 강대하다면 진작에 술사들이 강호 무림을 지배했을 것이다.

    비록 그녀가 술법의 문외한이라지만 이만한 규모의 술법이 비상식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강엽이 말했다.

    “환각이다.”

    “뭐?”

    “감각을 닫고 내면에 집중해 봐.”

    혈공진기의 공능으로 강엽은 술법진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환각임을 알고 있었다.

    하나 혈공진기가 없어도 백서희 같은 고수라면 내면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술법진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

    “...아, 정말이네. 진짜가 아니었잖아?”

    다시 눈을 뜨니 쩍 갈라진 균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땅이 흔들리는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진짜가 아니어도 수백 명을 한꺼번에 환각에 빠트린 건 대단하지.”

    아마 지하 도시에 깔린 술법진의 공능을 빌렸을 테지만, 술법 한 방으로 수백 명을 제압하는 것은 압권이라 할 만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날 리가 없다는 거다.’

    과연 안개 너머에서 흐릿한 그림자들이 다가왔다.

    시커먼 흉갑을 걸친 검객들. 이미 몇 명이나 죽였는지, 검날을 타고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멀쩡히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 선두의 청년이 잠시 멈칫하고는 겸연쩍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허참, 이거 벌써 깨어난 놈들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중얼거리는 청년의 뒤편엔 수백 명은 족히 넘는 검객들이 몰려와서 살기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청년이 짤막하게 내뱉었다.

    “죽여라.”

    말 한마디에 일단의 무인들이 몸을 날렸다. 높이 치켜든 검에선 닿기만 해도 중독될 것 같은 독기가 줄줄이 뿜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느려.”

    냉소를 흘린 백서희의 신형이 희미해지는 찰나, 한 줄기 바람이 검객들을 통과했다.

    촤아아아아악!

    살기 넘치게 달려들던 기세가 무색하게도 허망하게 피를 뿌리는 검객들의 몸뚱이.

    “이런.”

    그제서야 두 사람이 예상보다 더한 고수라는 것을 깨달은 청년의 얼굴에 낭패감이 떠올랐다.

    그런 청년을 지긋이 응시한 강엽이 불쑥 물었다.

    “흑룡교인가?”

    수백 명의 무인들을 환각에 빠트린 안개.

    이들이 오랜 세월 암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하나, 흑룡교의 술법에 조예가 있지 않고선 이만한 규모의 술법진을 발동하지 못하리라.

    청년이 피식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부정할 순 없겠지. 네 말대로 우리는 흑룡교다.”

    먼저 암시장에 자리를 잡은 유이강이 백도 정파에게 쫓기는 흑룡교의 잔당들을 휘하로 들였던 것이다.

    백서희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하, 이건 뭐... 그럼 마교끼리 싸운단 얘기야?”

    “그 말을 들으니 혈귀놈들은 아닌가 보군. 아마 흑상이 데려온 고수들이겠지. 하지만 전장에서 적으로 만난 이상 처리할 뿐이다.”

    두 사람이 만만치 않은 적수임을 알았을 텐데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게 부하들을 잃은 원한 때문인지, 무공을 견주어보고 싶다는 호승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청년이 검파를 고쳐잡자 소름끼치는 살의가 대기를 일렁거렸다.

    중단전을 개방했을 뿐만 아니라 하단전의 축기량 역시 상당한 사내의 기파. 강엽은 몰라도, 백서희가 상대한다면 쉽사리 승산을 점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내 역시 백서희보다는 강엽이 더 고수라는 것을 알아봤는지 강엽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내가 저놈을 맡으면 너희는 저 여자를 처리해라. 자존심 세우지 말고 차륜전으로....”

    하지만 검객들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암기 세례가 쏟아졌다. 흉갑이 미처 가리지 못한 목을 절묘하게 노리는 솜씨.

    뜻밖의 기습에 검객들이 경호성을 지르는 찰나, 한 줄기 전음이 강엽의 귓가를 뚫고 들어왔다.

    [이봐, 여기다!]

    암벽 위에서 손짓을 하는 사람의 모습.

    안개를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서인지 복면을 쓴 사내가 재차 전음을 보냈다.

    [뭘 망설이고 있어? 뒈지고 싶지 않으면 얼른 이쪽으로 오라고! 같은 편이니까!]

    강엽이 백서희를 슬쩍 돌아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서 흑룡교의 잔당과 싸울 이유도 없지 않냐는 몸짓이었다.

    암묵적인 동의를 나눈 두 사람이 즉시 은신술을 펼쳤다.

    “이 연놈들이 어딜 도망가!?”

    뒤에서 사내가 노호성을 질렀지만 작정하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두 사람을 쫓지는 못했다.

    암벽 위에 바짝 누운 땅딸막한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지다니?

    깜짝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그의 목에 문득 차가운 검날이 와닿았다.

    “당신 누구야?”

    차갑게 느껴지는 미성.

    사내가 목울대를 꼴깍 움직였다.

    “이, 이봐, 진정하라고, 소저.... 이래봬도 구해줬잖아.”

    “좀 전에 같은 편이라고 했었지. 누구 밑에 있나?”

    갈색 단삼을 입은 사내는 아무리 봐도 혈교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호연장에서 본 것도 아니다.

    “그, 대답은 해줄게. 근데 여기 좀 벗어나면 안 되나? 저놈들이 금방 쫓아올 텐데....”

    “흠.”

    강엽의 눈짓을 받은 백서희가 검을 거두자 그제서야 푸하 한숨을 쉬며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따라와라. 자세한 설명은 가면서 해줄 테니까.”

    * * *

    사내는 상당한 고수였지만, 백서희처럼 내면의 감각에 집중해서 술법을 뿌리친 것은 아니었다.

    “운이 좋았지. 안개를 보자마자 이상해서 피독주를 물어봤는데 효험이 있더라고.”

    “피독주?”

    “암시장에선 별별 일이 다 일어나니까. 여기서 독살은 흔해빠진 일이지. 만약을 위해서 은수저나 피독주쯤은 갖고 다녀야 한다고.”

    그건 아마 사내가 오랫동안 흑상을 보필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였겠지.

    “뭣도 모르는 놈들은 당했지만... 나처럼 오래 구른 놈들은 피독주쯤은 갖고 있어서.”

    “그래서 당신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건가?”

    강엽의 물음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좌익에서 왔다.”

    “강룡방주가 보냈군.”

    강엽은 명도상인을 제외한 두 흑상이 군세의 좌우 날개에서 부하들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원래는 서 대인에게 가서 조언을 구하려고 했었지. 그놈들이 길을 막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지만.”

    조언이라. 굳이 그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강룡방주의 상황도 그리 여유롭진 않다는 뜻이겠지.

    복잡한 골목길을 통과해서 한 집의 쪽문을 두들긴 사내가 작게 말했다.

    “나다. 문 열어.”

    안쪽에서 걸개를 빼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 틈으로 나온 눈빛이 일행을 샅샅이 살폈다.

    “처음 보는 놈들인데. 이 녀석들이 서 대인의 사람들이라고?”

    “어, 그게....”

    사내가 우물쭈물할 때 강엽이 말했다.

    “그쪽의 도움을 받기는 글렀다. 유이강, 아니, 흑룡교의 세력에게 공격받고 있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안쪽에 있는 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친구의 말대로야. 살벌한 놈들이 진을 치고 있어. 서 대인 쪽도 안개 때문에 고생하는 건 매한가지고... 나 혼자 그놈들을 뚫고 서 대인을 뵙는 건 무리라고.”

    “수백 명? 유이강에게 그만한 병력이 있다고?”

    “우리 방주님도 이백 명쯤 끌고 오셨는데 유이강이라고 그쯤 없겠냐? 이 친구들 말로는 흑룡교라고 하더라고.”

    “부처님 맙소사....”

    혈교의 편에 빌붙은 주제에 부처님을 찾는 것도 우습지만, 저도 모르게 부처를 찾을 만큼 이 전쟁은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안쪽에 있는 자가 물었다.

    “너, 아니 너희들은 누구지?”

    “우린 호연장에서 왔다.”

    혈교와 흑룡교가 전쟁을 벌이는 거라면 굳이 그 사이에 끼어들어 피를 흘릴 이유가 없다.

    시운이 따른다면 둘이 공멸할 수도 있을 테고, 한쪽이 살아남더라도 온전하진 못할 테니까.

    만약 유이강이 밀렸다면 도와주었겠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나름 잘 준비해서 싸우는 모양이고.

    물론 이들에게 그러한 속내까지 밝힐 순 없었다.

    “우린 이쯤에서 물러나지.”

    “뭐라고?”

    “같은 편이긴 하지만 한 소속은 아니니까. 우린 다른 데서 쉬겠다.”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돌리는 찰나였다.

    “기다려보게.”

    문이 열리면서 드러난 안쪽.

    복면을 쓴 초로인이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채 두 사람을 응시했다.

    직감적으로 그의 정체를 깨달은 강엽이 눈매를 좁힐 때, 강룡방주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호연장에서 왔다고?”

    “그렇습니다만.”

    “피해를 많이 입었다는 말은 들었지. 소마동이 죽었다는 말도 들었고. 웬 한 쌍의 남녀가 소마동을 대신해서 사람들을 쫓아냈다던데....”

    살수들의 습격이 일어난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꽤나 상세히 알고 있다. 새삼 암시장에서 흑상의 정보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냥 이 장원에서 쉬게.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이런 때일수록 더더욱 힘을 합쳐야지.”

    “침착하신 걸 보니 별로 당황하지 않으신 것 같군요.”

    “사실 굉장히 당황했다네. 하지만 어쩌겠나? 서 대인이 구출하러 올 때까지 기다릴밖에.”

    말은 그렇게 해도 두 마교가 치고받을 동안 뒷짐 지고 기다릴 생각인 것이다. 남은 전력만이라도 최대한 온전하게 보전할 목적으로.

    “방은 많으니 적당히 한 곳 골라잡게나.”

    자기 집도 아니면서 집주인인 양 행세한다.

    아마 원래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은 제거했으리라. 강엽은 집 안에서 풍기는 희미한 피냄새를 맡았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노부의 호의를 거절하겠다는 건가?”

    강룡방주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자 그를 호종하는 무인들이 매서운 눈초리를 쏟아낸다.

    그 시선을 적당히 끊어낸 강엽이 태연하게 말했다.

    “동료들이 온 것 같아서 말입니다.”

    “으음...?”

    강룡방주의 노안이 삐딱하게 기울어지는 순간.

    한 박자 빠르게 뭔가를 알아차린 고수들이 경악했다.

    “으하하하하하하!”

    천지가 떠나가라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 근육질의 거한.

    고수의 몸놀림은 가볍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그가 떨어지자 묵직한 충격이 지면을 강타했다.

    두 발을 넓게 벌려 몸을 지탱하는 고수들을 둘러본 거한이 흑곤으로 어깨를 툭툭 치며 씩 웃었다.

    “그동안 하는 일이 없어서 지루했네. 이제야 제대로 싸워볼 수 있겠군!”

    야차마곤의 뒤를 이어 그동안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일행의 면면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각각 반대편의 지붕 위에 표홀하게 착지해서 강룡방의 고수들을 굽어보는 청수와 소창후.

    동시에 그림처럼 단아한 용모를 뽐내는 당묘정이 야차마곤의 뒤에서 소리없이 나타났다.

    일행을 쭉 둘러본 강엽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불가와 도가의 신공으로 호흡하는 세 사람은 그렇다 치고, 당묘정까지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닌가?

    “복면 안 써도 되겠소?”

    “괜찮더라고요.”

    당묘정이 배시시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이 안개는 세 분의 심령을 침습하지 못했어요. 저도 이런 술법에 대항하는 수단을 가져왔고요.”

    붉은 글씨가 적힌 노란 괴황지를 꺼내들었다. 도사들이 사악한 술법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부적.

    “혹시나 모산파의 술사들과 싸울 때를 대비해서 가져온 건데... 흑룡교의 술법에 쓸 줄은 몰랐네요.”

    강엽이 박쥐로 급히 안개가 흑룡교의 술법임을 밝힌 덕분에 빨리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야차마곤이 물었다.

    “한데 이놈들은 누구인가? 집안 가득 피냄새가 나는 걸 보니 좋은 일을 하는 자들 같진 않은데.”

    “강룡방주라고, 혈교에 빌붙은 흑상입니다.”

    “어허, 마구니였구나!”

    죽일 놈들을 찾아낸 전직 파계승이 엄격하고 근엄하게 흑곤을 쿵 찍었다.

    * * *

    일행이 장내를 정리한 것은 일 각이 지나서였다.

    강룡방의 고수들은 악착같이 싸웠으나, 중단전을 개방한 고수만 네 명인 일행을 당해내진 못했다.

    일행 중에 가장 쳐지는 소창후와 당묘정도 어지간한 무인들은 무릎 꿇릴 수 있는 절정고수들.

    “아, 제길... 실수했군. 설마 이런 놈들일 줄이야.”

    강엽과 백서희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내가 피식 웃으면서 피를 울컥 토해냈다. 간신히 벽에 기댔던 그는 정신을 잃은 건지 옆으로 형편없이 쓰러졌다.

    상황이 이 지경이 이르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한 강룡방주가 뒤늦게 치를 떨었다.

    “이, 이놈들... 네놈들은 뭐냐?”

    “낭인전, 무당, 아미, 당문.”

    “무어라?”

    “누군지 물어서 대답해준 것이오. 궁금증이 풀렸소?”

    “...!”

    설마 천하를 대표하는 대문파의 무인들이 암시장에 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걸까.

    충격을 받은 강룡방주를 내버려둔 강엽이 야차마곤에게 말했다.

    “선배님께선 강룡방주를 출구까지 데려가주십시오.”

    “음? 출구는 뭐하러?”

    “흑상의 명령을 받은 무인들이 출구를 지키고 있으니까요. 아군의 전력이라면 어떻게든 밀고 들어올 수 있겠지만 저자를 이용하면 무혈입성할 수 있습니다.”

    굳이 강룡방주가 있는 곳으로 온 목적이 이것이었다. 그를 이용해서 경비가 삼엄한 출구를 열 생각.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강룡방주의 노안에 당혹감이 번졌다.

    “노부가 협조하리라 생각하나?”

    “살고 싶다면 협조해야지. 까놓고 말해서 우린 방주가 죽어도 상관없소. 방주가 협력하지 않아도 혈교를 잡을 테니까. 겸사겸사 흑룡교까지 잡으면 더 좋고.”

    “유이강과 서태진... 두 놈이 치고받는 동안 어부지리를 취할 셈이군.”

    강룡방주가 땅이 꺼져라 탄식했다.

    “암시장이 문을 닫겠구만. 평생을 일군 터전이 이렇게 송두리째 날아가는가.”

    누가 승리하든 암시장은 존속할 수 없었다. 그나마 혈교가 이긴다면 가능성이 있었지만....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이런 말이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혈교가 이겼어도 방주는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겼을 것이오. 혈교가 흑상을 놔둘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 그렇겠지. 어쩌면 서태진의 제안을 수락했을 때부터 이렇게 끝날 운명이었을지도... 하지만 자네들에게 협조한다면 노부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방주의 부하들 중 누구 한 명 죽지 않았소. 저들을 데리고 강룡방에 돌아가서 조용히 산다면, 남은 여생을 비참하게 보내지는 않을 거요.”

    물론 이 싸움이 끝난 뒤에 혈교가 강룡방주를 내버려둘지는 강엽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강룡방주가 알아서 할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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