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52화
삼두는 미카엘에게 경고했다.
천계가 무너지기 싫으면 이대로 물러나라고.
하지만 미카엘은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한낱 인간 때문에 뒤로 물러난다면 천계왕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나.
미카엘은 삼두의 말을 거부했다.
“이번에는 그대쪽에서 양보하게.”
[바보같은 선택을 하다니.]
삼두의 목소리에 걱정이 뭍어 있었다.
미카엘이 아닌 천계와 모두에 대한 걱정.
미카엘은 의문이 들었다.
지옥계의 수문장이자 2인자가 어찌 이리 겁을 집어먹고 있는 걸까.
대체 무엇 때문에.
“신선제가 신계를 엉망으로 만들 때도 이정도로 두려워하지 않은 그대가 왜 지금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하네.”
[내가 계속 말하고 있잖아. 제2의 파천혈신을 강림하게 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파천제가 그렇게 강하나? 내가 볼 때는 신선제보다 약해보이던데.”
인간을 초월한 각성자.
신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남자.
하나 그뿐이었다.
그 옛날 파천혈신만큼 압도적으로 강해보이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힘으로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
미카엘의 느낌은 이러했다.
반면 삼두의 생각을 달랐다.
이준이 간간히 보이는 살기는 파천혈신, 지금의 신선제를 뛰어넘을 때가 있었다.
그뿐인가.
염라대왕에게 듣기론 전대 신선제가 이준에게 선물까지 줬다고 했다.
그 선물은 바로 천극자의 정수.
‘전대 신선제의 무공이겠지.’
잠들어 있는 정수가 깨어나면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어쩌면 신계에서 가장 강한 신선제도 뛰어넘을지 모른다.
이게 염라대왕의 생각이었다.
[지금의 너와 붙어도 용호상박일 것이다.]
삼두의 말에 미카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존심이 상하는 발언.
천계가 힘을 잃었다지만 이건 도가 지나친 말이었다.
“그렇다면 더욱 저 아이에게 있는 힘을 가져야겠네. 명색에 신인데 인간에게 질 수 없지 않나.”
도발에 오히려 미카엘이 폭주를 해버렸다.
박혁진이 가진 힘을 반드시 흡수하겠다는 의지가 눈빛에 담겨 있었다.
[내가 널 막을 것이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네.”
미카엘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하늘에서 수 백개의 빛기둥이 내려왔다.
미카엘 가문의 정예이자 천계왕의 친위대였다.
하나 같이 막강한 힘을 지닌 자들.
숫자 또한 많았다.
인간 진형이 너무도 불리했다.
신과 싸울 수 있는 자가 박혁진과 삼두, 그리고 파랑이 뿐이었으니까.
“이래도 나와 싸울 수 있겠나?”
미카엘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한껏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천계왕 치고는 너무 없어보였다.
인간을 상대함에 있어서 친위대까지 대동한 게 아닌가.
[치사해. 저게 무슨 신이야.]
파랑이는 미카엘의 면전에 대고 모욕을 했다.
이에 미카엘이 은은한 분노를 내비쳤다.
“마물 따위가!”
파랑이가 삼두의 뒤에 숨어서 반항했다.
[신은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고 들었어! 그런데 넌 아니잖아.]
“인계에 내려와서 별 꼴을 다 겪는군.”
[그러게 왜 내려와. 험한 꼴 보기 전에 다시 올라가는 게 어때?]
삼두의 제안에 미카엘이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자네가 할 입장이 아니네. 내가 말하는 입장이지.”
[빌어먹을. 내 경고도 무시하고 싸우려나보군. 지옥계와 신선계에서도 움직일 거야.]
“아네. 그래서 이제 그만 시간을 끌려해.”
천계왕의 친위대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창을 쥔 천사들.
수백의 천사가 박혁진과 삼두에게 날아갔다.
* * *
염라대왕 앞.
몸에 붕대를 감은 남자가 염왕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대왕. 저를 인계로 내려보내주십시오.”
“불가하다.”
“다시 한번 청하겠나이다. 저를 내려보내주십시오.”
“아직 내 몸은 정상이 아니야. 사자들을 내려보낼 생각이니 돌아가서 정양하거라.”
“허락하실 때까지 여기에 있겠나이다.”
일 사자가 엎드린 채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사자들이 입을 열었다.
“일 사자. 대왕의 말을 들으십시오. 그 몸으로 어딜 내려간다는 말입니까?”
“인계는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사자들의 간절한 음성에도 일 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이고 두야.”
염라대왕이 이마를 붙잡았다.
인계의 일로 인해 일 사자를 뺀 나머지 사자를 소집했다.
한데 어디서 들었는지.
이곳에 몸을 이끌고 온 것이다.
정양해야할 놈이 말이다.
눈을 질끈 감았던 염라대왕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옥의 율법을 사자인 네가 모를 일은 없을 텐데 그 아이 때문이더냐.”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나이다.”
“본왕이 너를 사자의 우두머리로 임명했을 때 했던 말이 무엇이더냐.”
“모든 연은 끊어졌다하셨나이다.”
“그런데?”
“…….”
일 사자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염라대왕이 음성이 이어졌다.
“모두가 인과율을 어기니 너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 것이냐.”
“소신이 어찌 불경한 마음을 지니겠나이까.”
“한데! 네 짓거리는 뭐냔 말이냐!”
염라대왕이 호통을 쳤다.
염라전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 어느때보다 분노했다.
삼두와 더불어 지옥계의 이인자로 불리는 일사자가 지옥의 규칙을 어기려 하는 게 아닌가.
“송구하옵나이다.”
“이러라고 네 기억을 안 지운 줄 아느냐.”
“이번 딱 한 번만… 눈을 감아주시면 안 되겠나이까?”
“네가 감히!”
쾅!
염라대왕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지옥목으로 만든 강철보다 단단한 책상이 산산조각 났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염라전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옥기가 이곳에 있는 모두를 휘감았다.
“본왕보고 규율을 어기라 말한 것이렸다?”
“크윽!”
일사자가 고통에 쓰러졌다.
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한번 그 따위 망언을 지껄였다간 아끼는 너라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니라!”
염라대왕의 호통이 끝나자.
주변을 압박하던 힘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가 자리에 앉았다.
“꼴도보기 싫다. 돌아가라.”
염라대왕이 일사자를 쫓아냈다.
일사자는 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염라전을 나갔다.
터벅터벅.
축 늘어진 어깨에는 힘이 없었다.
그 뒤를 사자들이 쫓아갔다.
“하아아.”
염라대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옥계에서 일하려면 과거의 기억은 없어야했다.
사자가 되면 과거의 기억을 지우기 마련.
하나 일 사자는 애초에 기억을 지우지 않았다.
굉장히 고지식하여 규칙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옛 인연을 봐도 모른척 했다.
이런 일을 무려 억겁의 세월 동안 해왔다.
헌데 그 고지식하던 일 사자가.
인간의 전생 각성으로 인해 흔들렸다.
“저대로 놔둬도 괜찮겠나이까?”
염라전의 관리자가 새로운 책상을 들고오면서 말했다.
“본왕의 말을 어기겠지.”
“허면 큰 일이 아닙니까? 지금 당장 나찰과 야차를 보내겠나이다.”
“됐다.”
“일 사자를 잃을지 모르나이다.”
“본왕이 막는다한들 녀석은 어떻게든 인계로 내려가 박혁진을 구하려 할 것이다.”
일 사자의 정체는 뇌군 연지호였다.
전생에 박혁진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일사자를 몰아 세우셨나이까?”
“지옥계를 다스리는 이가 누구더냐. 본왕아니겠느냐. 한데 내 새끼가 지옥계의 규칙을 어기려 하니 따끔하게 혼낸 것이다.”
관리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염라대왕의 입장이고, 한 사람의 생각으로서는 신선계나 천계도 신계의 율을 어기는데 왜 우리만 규칙을 지켜야하는지 모르겠구나.”
“아!”
관리자는 그제야 이해했다.
염라대왕의 입장으로는 규칙을 어기라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수하의 일탈을 모르는 척 눈은 감아줄 수 있다는 말 아닌가.
지옥계가 생긴 이래 단 한번도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었다.
“단, 이번이 마지막이다. 율을 어기기 시작하면 끝이 없느니라.”
아끼는 수하에 대한 염라대왕의 배려였다.
* * *
“일 사자. 이러시면 안 됩니다.”
“대왕께서 아시기라도 하면 뇌옥만으로는 안 끝날 겁니다.”
“우릴 밑어주시오.”
사자들은 숙소에서 환복하는 일사자를 말렸다.
하나 소용이 없었다.
일 사자는 꿋꿋하게 환복했다.
마지막으로 검을 챙기며 몸을 돌렸다.
“너희를 못 믿는 게 아니다. 내가 그 아이를 구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야.”
일 사자가 사자전각을 나섰다.
옷을 갈아 입었으나 여전히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그였다.
옷 사이로 피가 물들고 있었다.
지독한 상처.
벌어진 피부는 좀처럼 낫지 않았다.
염라대왕이 각종 영약을 먹인 덕분에 이 정도였다.
아니었으면 진작에 목숨을 잃고도 남았을 테다.
“가자.”
일 사자가 앞장 섰다.
사자들이 머뭇거리더니 이내 그를 따랐다.
“에라 모르겠다.”
“대왕께서 혼내시면 같이 혼납시다.”
“죽기야 하겠습니까.”
일 사자가 피식 웃었다.
사자들은 인계의 문을 향해 사라졌다.
일 사자부터 인계에 나타났다.
모두가 지옥계에서 넘어오자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천계의 기는?”
“학교 쪽에 있소. 설마 기운도 잘 못 느끼오?”
이 사자의 물음에 일 사자가 미소만 지었다.
“그 몸으로 어떻게 싸우려고 하시오. 내 뒤에 있으시오.”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어.”
“기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양반이 말은 잘하시오.”
이 사자가 투덜거리고 있는데 삼 사자가 다급히 외쳤다.
“천계의 공격이 시작된 듯 해요.”
사자들이 더욱 빠르게 경공을 펼쳤다.
공간을 압축하듯 앞으로 쭉 뻗어나갔다.
그들이 학교에 도착했을 때 미카엘의 친위대가 창을 들고 날오는 게 보였다.
파직-
일 사자의 몸이 뇌전으로 휩싸였다.
검은 전류.
발에 지옥기가 가득 담기자.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친위대의 앞을 가로 막았다.
쾅!
일 사자의 검에 창을 부딪힌 친위대가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다른 사자들도 미카엘의 친위대 앞에 불쑥 나타났다.
쿵쿵쿵!
[왜 이제야 온 거냐.]
삼두가 버럭 소리쳤다.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다.
상대는 수백 명의 신들.
한 번의 격돌만으로도 패배가 결정 났다.
사자들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큰일을 치렀을 것이다.
“수문장님. 저희도 최대한 빨리 온 겁니다.”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일 사자는 대왕의 명도 거부하고 내려왔어요.”
“미친놈이냐. 대왕의 명을 왜 거부해?”
“시끄러워. 너 아니어도 피곤하니 말 걸지 마.”
일 사자가 삼두를 제쳐두고 미카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천계의 왕을 뵈오이다.”
“나를 막기 위해 지옥계에서 많은 인원을 보냈어.”
“천계왕에 비해서는 보잘 것 없습니다.”
일 사자는 미카엘을 돌려 깠다.
저승사자의 숫자는 백 명.
미카엘이 인계에 데려온 친위대만 사백 명이 넘는다.
최대 네 배.
천계왕씩이나 되서 이리 많은 인원을 데려와서 쓰겠냐는 말투였다.
“신선계가 나타나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겠어. 날 이해하게.”
“천계왕의 앞을 막는 절 용서해주십시오.”
일 사자는 박혁진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대신 미카엘을 막겠다는 의지가 검을 타고 흘러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삼두가 외쳤다.
[다친 몸으로 그 무공은 무리야!]
“살면서 네 걱정을 다 받는군.”
[닥치고 뒤로 꺼져. 천계왕은 내가 맡을 테니까 넌 쩌리나 처리해.]
삼두가 일 사자의 앞에 섰다.
“너도 나와 마찬가지 아닌가. 잘난 체 말고 너나 천계왕의 친위대를 상대해”
파직-
일 사자가 검은 번개를 뿌리며 사라졌다.
흑뇌.
지옥기에 뇌속성을 가미한 무공.
지옥검결 중 뇌검이었다.
“1결 뇌류.”
미카엘의 지근거리에서 나타난 일 사자가 발검을 하였다.
검에 감싸인 흑뇌가 뿌려지면서 미카엘을 훑고 지나갔다.
뇌전이 물처럼 흘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일 사자의 신형이 미카엘의 사방에서 나타났다.
방금 전과 같은 모습으로 검을 휘두르는 일 사자.
상대의 타이밍을 뺏으려는 듯.
일사자의 검은 불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미카엘의 살을 베고, 복부를 뚫었다.
뇌기의 물살이 해일처럼 들이쳤다.
“큽.”
일사자의 입가에서 선혈이 흘렀다.
무리하게 내공을 운용하니 내상을 입은 것이다.
[미련한 놈! 저 몸으로 지옥검결을 쓰는 건 자살행위야.]
그런데도 공격을 끝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지옥검결 1결 뇌류를 끝내기 위해 미카엘을 베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