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9화
공간 전이 마법.
사람뿐만 아니라 물체 등을 원하는 위치로 이동시키는 게 가능했다.
적어도 S급 이상의 각성자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여기까지는 놀랄 게 없었다.
이준이 재밌다고 말한 이유는 바로 거리였다.
어디에서 마법을 썼는지 알아내려 했으나.
주변에는 익숙한 기운뿐이었다.
기감을 확장시켜도 마법사로 생각되는 각성자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내용이야?”
한지유의 물음이 이준이 대답했다.
“날 만나고 싶대.”
“누가?”
“날 성가셔하는 놈이겠지.”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준은 그녀에게 말해줄 생각이 없는지 미소만 지었다.
한편.
그리에스는 눈이 깊어졌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천계가 알아낸 모양이었다.
그들의 대리인인 사자를 보낸듯 했다.
‘날 이렇게 빨리 찾아낼 줄은 몰랐어.’
한국은 천계의 관할이 아니었다.
신선계의 영역.
그것도 한국은 파천제라는 유능한 인간이 있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 최대한 늦게 들킬 줄 알았다.
“넌 여기에 있어.”
“괜찮겠어?”
그리에스의 걱정.
상대는 신을 모시는 이들이다.
신을 모시는 이들은 강했다.
단순히 강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신을 받드는 이들답게 걸맞는 힘을 가졌다.
신이 그들에게 가호를 내린 것.
자신의 대리인이 누군가에게 맞으면 신의 위신이 떨어질 터.
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사도에게 힘을 준 것이다.
이준이 이를 알 리 없었다.
그러니 저렇게 태연한 거다.
“괜찮아. 경고만 하고 올거니까.”
한편 이준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상대의 명백한 도발이었다.
공간 전이 마법을 사용한 것까진 좋았다.
한데 자신이 있는 사신가 안까지 공간 전이 마법을 사용한 건 선을 넘은 것.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자신을, 사신가를 무시한 댓가가 어떤 것인지.
톡톡히 치루게 할 작정이었다.
물론 이번에는 그냥 경고만 할 터.
본격적인 응징은 저들이 제대로 움직인 이후부터였다.
* * *
그날 저녁 명동 대성당
옛날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이 지금은 폐건물로 방치되어 있었다.
균열이 생성되는 지역.
레드라인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이준이 홀로 나타났다.
아니, 정확히는 삼두와 파랑이를 대동한 채였다.
[그놈들 정신 나갔군. 저래보여도 세계 랭킹 1위 각성자인데 말이야.]
[머리가 없나봐.]
[죽고 싶어서 안달이라니… 아주 큰 죄를 짓고 있어.]
을씨년스러운 곳이었지만.
삼두와 파랑이가 떠드니.
이준의 귀는 왁자지껄했다.
“조용히 좀 해라 집중이 안 된다.”
[엄살 떨지마라. 수 천키로에 있는 인기척도 느끼는 게 너 아닌가.]
이준은 집중하지 않아도 근처의 기척은 전부 읽을 수 있었다.
기감을 확장한다면 수 천 키로의 인기척도 느끼는 게 가능했다.
이준은 자연경 끝자락에 든 각성자였으니까.
그 위의 경지가 바로 탈신경.
4대 신계 왕의 경지였다.
이준은 인간을 초월한지 오래됐다.
그가 허공을 향해 말했다.
“사람을 불러놓고 안 나오는 건 무슨 예의냐?”
이준의 말에도 주위는 조용했다.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가 있는 곳은 바람만이 가득했다.
“날 시험하려면 대가를 치뤄야하는데 괜찮겠어?”
쿵.
이준은 기세를 드러내리 않았다.
대신 발을 굴려 숨어 있는 이들을 스스로 나오게 했다.
“후웁!”
“으억!”
“컥.”
곳곳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허공에 뿌려지는 피.
숨어 있던 철의 사제들이 쓰러지며 의식을 잃었다.
“그만.”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준의 발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제지시켰다.
이에 이준이 씩 웃었다.
“이게 너희가 원하는 거 아니었어?”
이준의 발 빝에서 계속해서 기파가 흘러나오자.
보다못한 우두머리가 단검으로 땅을 찍었다.
지잉-
단검으로 찍은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속에서 신성력과 함께 철이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앞을 가로 막은 강철.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문이 생겼다.
하나 상대는 이준이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소꿉장난일뿐.
발끝에서 기운을 보내기라도 한다면 저들의 목숨은 이미 끊겨 있을 것이다.
“윽!”
우두머리도 신음을 했다.
그 또한 당황스러운 상태였다.
파천제는 세계 랭킹 1위의 각성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이를 자신있게 만나자고 한 이유는 바로 신성력이 있기 때문.
우두머리는 신의 가호를 믿었다.
상대가 세계 랭킹 1위라고 한들.
신의 가호가 내려진 자신과 사제들을 어쩌지 못할 거라 여겼다.
‘신성력은 마력이나 내공과는 별개. 파천제가 랭킹 1위라도 신의 힘 앞에는 무력할 텐데….’
신의 가호 효과는 상대의 마력과 내공을 무력화 시키는 게 특징이었다.
마력과 내공의 완전한 카운터.
그들 앞에선 그 어떠한 각성자라도 공평했다.
‘왜 저놈에게는 신의 가호가 안 통한단 말이냐.’
우두머리, 안테로가 당황해 했다.
파천제를 자신있게 불렀것만.
신의 힘이 안 통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우선 놈의 의중을 먼저 들어보자.’
직접 몸을 움직여 이준을 죽이는 건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잠깐!”
안테로가 무기를 놓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마치 항복한다는 표현 같았다.
이준은 그제야 압박을 풀었다.
안테로와 사제를 짓누르는 힘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고 싶은 말을 해봐. 들었는데 마음에 안 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이준의 오만한 말에 안테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은 신을 모시는 사도.
인간 중에 자신보다 더 고귀한 존재는 없었다.
하나 지금은 화보다도 이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게 먼저였다.
“난 철의 신을 모시는 사도이다.”
“그런데?”
“한국에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신탁을 받았다. 우리에게 그 드래곤을 넘겨줬으면 한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준이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 모습에 안테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너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신의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이준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자.
안테로의 미소는 더욱 짙어져만 갔다.
내면에 갈등이 생긴 것.
결국에는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돌아온 건 전혀 다른 대답이었다.
“싫어.”
“아주 좋은 생, 응? 지금 싫다고 한 것인가?”
안테로가 당황해했다.
이준의 대답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듯 싶었다.
“내 구역에 떨어졌으니 내 거야. 신탁이 내려온 건 내 알바 아니야.”
“감히 신탁을 거절하는 것이냐.”
안테로가 분노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신을 모독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사제들도 마찬가지.
이준의 발언에 그들의 손에는 신성력이 맺혀 있었다.
“신을 모독하는 행위는 오직 징벌뿐.”
“용서하지 않겠다.”
“너희가 신을 믿든 말든 상관 없는데 나한테 강요하지 말라고 이 새끼들아.”
이준이 기세를 드러냈다.
사신기가 사방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신박한 자살법이군.]
[제 주제들을 모르는 것 같아.]
[큭큭. 천계 이 새끼들이 애꿎은 목숨만 머리고 있어. 이준이 누구의 제자인지 뻔히 알면서 말이야.]
삼두가 끅끅거리며 웃었다.
신이 최고라고 믿는 자들.
신을 위해선 목숨까지도 바치는 이들이었다.
“안테로 님. 천벌을 내리소서.”
“파천제에게 천벌을!”
사제들의 목소리에 안테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파천제에게 신성력이 안 통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천벌은 그 다음이야.’
안테로 또한 신을 모독한 이준에게 분노 했으나.
곧바로 이성을 되찾았다.
상대는 신성력이 안통하는 사람.
지금 공격해봤자 헛수고였다.
“우린 파천제와 이야기를 나누러 왔을 뿐이다. 모두 신성력을 집어넣어라.”
“안테로 님!”
“어서.”
안테로의 말에 사제들이 하는 수 없이 신성력을 집어 넣었다.
“파천제. 그대의 생각을 잘 알았다. 다음번에는 이대로 안 끝날 테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깝네. 이참에 귀찮은 것들을 전부 죽일 수 있었는데 말이야.”
이준의 말에 안테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핏 장난으로 들리는 말.
하나 그는 전혀 장난을 치지 않았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다.
“다음에 보자.”
안테로가 사제들을 데리고 황급히 사라졌다.
이준은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다시 찾아올터.
그때 처리하면 됐다.
* * *
안테로는 사제들과 함께 안가로 왔다.
“안테로 님. 파천제에게 왜 천벌을 안 내리셨습니까?”
“신의 자비라고 해두지.”
“아.”
“자비….”
“그자가 신을 모독하는 바람에 넓게 보지 못했습니다.”
신의 자비는 죄를 지은 사람을 한 번 용서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죄를 사해줄까?
그건 또 아니었다.
죽기 전에 참회를 하라는 뜻.
결말은 똑같았다.
“파천제를 끌어들일 무대에 제단을 준비해야겠다.”
“굳이 제단까지 설치할 필요가 있습니까?”
“세계 랭킹 1위의 각성자다. 그에 걸맞는 최후를 주는 게 우리의 일이다.”
“알겠습니다.”
“제단 곳곳에 신성력을 가득 담은 물건을 배치하는 것도 잊지 마라.”
“예 안테로 님.”
사제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방 안에 놓인 탁자에 앉은 안테로가 생각에 잠겼다.
‘제단이 놓여 있는 한 신성력은 반드시 통할 것이다. 그때 네놈이 신을 모독한 죄를 달게 받게 할 테다.’
안테로가 이를 갈았다.
신을 모독한 자에게는 죽음뿐.
절대 살려줘선 안 됐다.
한편.
명동 대성당을 다녀온 이후로 이준은 사신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널 보고 쫄아서 오지 않은 거야.]
삼두의 말에 그리에스가 고개를 저었다.
“신의 사도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아.”
그녀는 삼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하네.”
이준이 빙그레 웃고 있을 때였다.
“주군! 큰일 났습니다.”
김봉팔이 다급히 다가왔다.
“뭔데 그래?”
“이걸 보십시오.”
그가 이준에게 최신 뉴스를 공유했다.
홀로그램 창을 통해 김봉팔이 공유한 뉴스를 봤다.
“헛짓거리 하고 있었네.”
뉴스를 본 이준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심각한 일입니다. 저희 가문을 뺀 나머지 가문들이 죄다 무공을 사용할 수 없다 합니다.”
“사신가 각성자들 전부 무공을 쓸 수 있어?”
“전부는 아닙니다.”
“누가 사용을 못하는데?”
“이제 갓 들어온 신입들이 못 합니다.”
“사신가의 무공을 아직 익히지 못 했지?”
“예, 주군.”
“우리 무공은 문제 없다는 거네.”
확인할 게 더 있었다.
이준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통화음이 몇번 울리기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용건이야?
“신기지가도 무공을 사용할 수 없어?”
-어. 일반인이 된 느낌이야.
“너도 그래?”
-나만 무공을 사용할 수 있어.
사신가의 무공만이 아니었다.
장백검문의 무공 또한 사용이 가능했다.
“알았어. 당분간은 가솔들 게이트 못 나가게 해. 확인할 게 있어서 끊는다.”
이준은 한지유와의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 전화했다.
통화음이 딱 한번 울리자.
-준아. 웬 일이야?
박정연이 전화를 받았다.
“누나 뉴스 봤지?
-응. 우리 가문도 비상이야.
“누나는 무공 사용 가능하지?”
-난 가능하지. 그건 왜?
“아무것도 아니야. 다음에 다시 전화할게.”
이준이 제 할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확인해본 결과 사신가를 비롯한 선문에 속한 무공은 전부 사용이 가능했다.
“신성력을 참 재밌게도 쓴다.”
[여태 준비한 게 무공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나? 안타깝게도 대실패를 했군.]
삼두는 사제들을 불쌍하게 생각했다.
무공을 무력화시키려고 개고생했을 터.
그들의 헛수고가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놈들의 수작도 봤겠다. 이제 움직여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