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6화
푸른 등불 꽃의 효과가 발휘됐다.
“으으으읍!”
백무생의 피부에 핏줄이 울퉁불퉁 올라왔다.
마력이 지나가는 회로였다.
마족답게 마력이 검은색이었다.
“버텨봐야 소용없어.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체념해.”
이준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백무생은 갖은 욕을 퍼붓고 싶었으나.
그럴 정신이 없었다.
푸른 등불 꽃에 대항하기도 바빴다.
내부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게 흑마력으로 막았다.
하지만 얼마나 강한 정화력을 지녔는지.
군주의 마력조차 정화를 하고 있었다.
“으윽!”
백무생이 안간힘을 썼다.
가진 내공과 흑마력을 총동원해 내부를 보호하자.
푸른 등불 꽃의 정화력이 상당히 낮아졌다.
결국에는 푸른 등불 꽃의 효과를 무효화시켰다.
“허어억….”
백무생이 고개를 푹 숙이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몸은 이미 땀으로 가득했다.
마치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와, 푸른 등불 꽃의 효과를 무효화시켜? SS급 아티팩트인데 개쩌네.”
이준은 놀라 하는 말과 달리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더 골려줄 생각을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업!”
이준이 백무생의 얼굴을 붙잡았다.
“넌 계속 반항해. 난 네 흑마력이 사라질 때까지 푸른 등불의 꽃을 입속에 집어 넣을 테니까.”
그가 백무생의 입속에 푸른 등불 꽃을 강제로 밀어 넣었다.
하나의 꽃을 무력화시키는 것만도 힘든 일.
쉴 새 없이 입으로 다시 정화력이 강한 꽃이 들어오니.
다급히 흑마력을 끌어올려 대항했다.
이준은 백무생의 앞에 아예 자리를 깔았다.
“이번에는 꽃을 무력화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30분? 1시간?”
흥미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는 이준.
백무생은 그를 죽일 듯 보다가 이내 정신을 집중했다.
“아차, 까먹은 게 있어. 너한테 도움이 되는 걸 깔아줄게.”
이준의 몸에서 무지막지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끈적끈적하고 살기가 짙은 마기였다.
“너라면 공기 중에 떠도는 마기로 힘을 대신하겠지? 내 힘을 가져다 써도 좋아. 마음껏 정화해.”
이준은 백무생을 도와줬다.
마기는 백무생의 흑마력이 가장 좋아하는 기운.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굉장히 비슷했다.
백무생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준이 어떤 의도로 자기를 도와주는지는 모르나.
우선 살고 볼 일이었다.
공기 중에 강한 마기가 있자.
백무생이 푸른 등불 꽃을 무력화하는 시간도 짧아졌다.
“허억… 허어억….”
“고생했네.”
“너 이새, 억!”
“말할 시간이 어딨어. 계속 해야지.”
이준은 백무생에게 쉬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푸른 등불 꽃이 입 안으로 들어오자.
백무생은 꽃을 무력화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내가 네놈을 꼭 죽여버리고 말겠다. 갈기갈기 찢어 마계의 개밥으로 던져주고 말겠어!’
그가 이를 뿌득 갈았다.
이 위기만 넘기면 이준을 꼭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 * *
시간이 계속 흘렀다.
백무생은 여전히 푸른 등불의 꽃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이준과 백무생을 지켜보고 있던 한 신선이 연아린에게 질문했다.
“뇌문. 저자는 왜 군주에게 계속 꽃을 먹이는 겁니까?”
“고문 중이에요.”
“고문 중인 건 아는데 굳이 저렇게 힘들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자르던가, 근맥을 자르던가. 고문하는 방법은 많지 않습니까.”
연아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백무생의 상태가… 어때 보이나요?”
“힘겨워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버틸 만해 보입니다.”
“그게 다인가요?”
“뇌문의 눈에는 다른 게 보이십니까?”
그녀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걸 신선들에게 말했다.
“백무생은 현재 푸른 등불 꽃에 중독되었어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인지…?”
“꽃에 중독됐으면 마력 회로가 파란색으로 변해야 정상 아닙니까?”
신선들은 의문을 표했다.
검은 마력이 정화되면 푸른 마력이 될 터.
한데 백무생은 마력 회로가 아직도 검었다.
“제 말은… 꽃이 없으면 이제 살아가지 못한다는 말이에요.”
“아편처럼 중독됐다는 말입니까!?”
“네… 저 얼굴을 보세요.”
백무생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희열을 떠올리기도 했다.
입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공허한 눈동자까지.
꼭 마약을 한 사람 같았다.
“정말이군요….”
“푸른 등불 꽃이 아편류였습니까?”
“균열 오염을 정화하는 신성한 아티팩트로 알고 있었는데….”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요. 마약 반응을 일으키는 줄 몰랐는데 어떻게 된 건지.”
연아린은 백무생에게서 이준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준은 알았을까.
푸른 등불 꽃이 마약 반응을 일으킨다는 걸.
더욱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백무생이 꽃을 전부 무력화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실상은… 흑마력이 남아있지 않아. 전부 정화됐어. 저 검은 핏줄은 전부 찌꺼기야.”
백무생의 힘이 현저하게 줄어 있었다.
군주도 그렇다고 상급 마족도 아닌.
중급 마족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젠 그마저도 힘든 상태.
백무생이 푸른 등불의 꽃을 무력화시킬수록 힘은 줄어들었다.
결국에는 최하급 마족까지 내려오게 됐다.
그제야 이준은 백무생에게 꽃을 그만 먹였다.
“야 정신 차려봐.”
이준이 발로 백무생을 툭툭 건드렸으나.
백무생은 넋을 놓고 있었다.
이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완전 맛이 갔구만. 푸른 등불 꽃은 일반인들에게 마약이 아닌데 마족은 완전 약쟁이로 만드네.”
이준도 몰랐다.
백무생에게 강제로 먹이다 안 사실이었다.
덕분에 의도한 결과와 다르게 도달하긴 했지만.
새로운 사실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금역 애들한테는 절대 먹지 말라고 해야겠다.”
4대 성지의 금역에 속한 몬스터가 먹으면 낭패.
전력이 누수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었다.
몬스터나 마족에게 푸른 등불 꽃은 완전 독약.
주의가 필요했다.
“그럼 이제 정신을 차리게 해줘야겠지?”
복수의 완성.
마지막 남은 일이었다.
이준은 백무생의 머리에 내공을 주입했다.
백무생은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꼈다.
초점을 흐리고 있던 그가 눈을 제대로 떴다.
“정신이 들어?”
“무슨 말이냐.”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건 아니지?”
“네놈의 장난질에 놀아난다고? 내가!?”
이준이 미소를 보였다.
짓궂은 얼굴에 백무생은 불안함을 느꼈다.
“뭐 달라진 거 없어?”
백무생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그리고 곧바로 고함을 질렀다.
“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그토록 무한하던 흑마력이 텅 비었다.
내부에는 찌꺼기만 가득했다.
마력을 못 돌릴 정도.
강제로 마력을 사용한다면 회로가 망가질 게 뻔했다.
그만큼 엉망이었다.
“뭘 하긴 난 너한테 푸른 등불 꽃만 먹였을 뿐이야.”
“이럴 순… 없어….”
백무생이 망연자실했다.
흑마력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자하신공으로 쌓은 내공이 전부 사라졌다.
심지어 단전이 전부 막혀 있는 게 아닌가.
“흑마력과 내공이 전부 사라졌다니….”
“자하신공은 내가 거둬갔어. 넌 마족인데 선계의 무공을 왜 사용해. 이건 규칙 위반 아니냐? 안 그래요?”
이준이 연아린을 향해 물었다.
“맞아. 무공은 지옥계와 신선계의 전유물. 마족은 사용할 수 없어.”
“들었지? 그러니까 억울해 하지마. 대신 마나하트는 그대로 놔뒀잖아. 나니까 배려해주지, 사부였다면 넌 그냥 뒈졌다?”
“으아아악! 죽여버리겠다!”
백무생이 일어나 이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최하급 마족이 된 상태.
군주급이 아니었다.
깃털같이 가벼웠던 몸도 현재는 굼떴다.
몸이 제 뜻대로 움직이질 않자.
백무생이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
“하, 이 새끼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네.”
“그 주둥이를 뭉개버리고 말겠다!”
그가 다시 일어나 이준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깡!
검이 두 동강 나고 말았다.
“너 겁나 약해졌구나?”
이준이 히죽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
계속된 모욕에 백무생은 가슴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최하급 마족은 되려나? 아니면 마물급?”
“입 닥치지 못하겠느냐!”
백무생이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이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마계에 마물을 키우는 사육장이 있다던데 맞아? 군주의 기억 속에는 약하거나 잘못한 하급 마족을 벌로 사육장에 집어넣더라고.”
이준은 그 말을 하면서 백무생을 지그시 쳐다봤다.
이에 백무생은 화를 내는 걸 멈추고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서, 설마 나를…!?”
“전직 무림맹주인데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그치?”
“가, 감히 날 천박한 곳에 집어넣을 생각 억!”
이준이 어느새 백무생의 목덜미를 잡았다.
“노, 놓아라!”
“마물들 속에서 잘 살아남아 봐.”
그가 손을 하늘로 뻗었다.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은 마계의 문.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과 함께 하늘에서 누군가가 떨어졌다.
“으아아악!”
마족이었다.
이준은 손으로 빨려 들어온 마족을 향해 말했다.
“보아하니까 상급 마족 같은데 마계 사육장 잘 알지?”
“으으….”
상급 마족은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인계로 내려왔다.
처음 본 인간은 살기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마신을 보는 느낌이었다.
“대답 안 하냐?”
이준이 재차 묻자 중급 마족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아, 압니다.”
“그럼 사육장으로 연결된 포탈을 열어.”
“사, 사육장은 왜…?”
“죽기 싫으면 그냥 열어라.”
이준의 백안이 번들거렸다.
“히에엑!”
상급 마족이 기겁해했다.
두 번 다시 접하고 싶지 않은 눈이었다.
상급 마족이 지체 없이 포탈을 소환했다.
포탈 너머에 비춘 광경.
“겁나 많네.”
몬스터가 우글우글거렸다.
마계인들이 키우는 카오스 몬스터.
전부 보스 몬스터급이었다.
웬만한 마족은 한입 식사 거리.
마계 사육장으로 떨어지는 건 하급 마족에게는 최악이었다.
“어우 징그러.”
이준은 몸을 잘게 떨면서 백무생을 포탈 안으로 던져버렸다.
“아, 안돼!”
“생존 게임 잘해. 야 닫아.”
강력한 마기를 지닌 이준의 말은 중급 마족에게 신과 같았다.
그의 말에 중급 마족이 포탈을 해지했다.
서서히 닫히는 포탈.
“이곳에서 살아만 간다면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다아아아!”
포탈 너머에선 백무생의 절규가 들려왔다.
“응. 안돼. 살 거란 희망은 버리고 지옥에나 떨어져.”
이준은 백무생을 마지막까지 놀려 먹었다.
완전히 닫힌 포탈.
백무생의 마지막은 카오스 몬스터에게 둘러싸인 모습이었다.
“삼두야. 지옥계에 연락해둬. 곧 백무생의 영혼이 지옥으로 갈 거라고.”
[…알겠다.]
삼두는 침을 꿀꺽 삼켰다.
머저리인 줄 알았더니.
하는 행동이 파천혈신과 똑같았다.
아니, 잔인한 짓은 이준이 더 한 수 위였다.
파천혈신은 적어도 적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지 않았으니까.
[저놈하고는 절대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군.]
연아린 또한 같은 심정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 * *
지옥계 사육장.
“오, 오지 마!”
백무생이 검을 휘둘렀다.
깡!
하지만 부러진 검으로는 카오스 몬스터를 상대할 순 없었다.
“가,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빨을 들이대는 것이냐!”
백무생은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카오스 몬스터에게 전혀 위협이 안되는 호통이었다.
되레 카오스 몬스터를 자극했다.
녀석들이 서서히 몰려들었다.
“내가 오만의 주인이다. 네놈들은 나의 종도 안되는 천한 것들이라는 말이다!”
그의 말을 알아먹은 듯.
카오스 몬스터가 움직임을 멈췄다.
“큭큭. 그래야지. 너희 따위가 오만의 군주인 나를 감히, 악!”
백무생이 말을 하다 말고 비명을 질렀다.
멈췄던 몬스터가 아가리를 활짝 열어 백무생의 팔을 잡아 뜯은 것.
그는 졸지에 팔을 하나 잃어버렸다.
“크윽… 너희가 날…”
백무생은 흔들리는 눈으로 카오스 몬스터를 봤다.
녀석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을 하고 있었다.
“저, 저리 가….”
백무생의 애원에도 카오스 몬스터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퍼석!
녀석들의 이빨에 의해 백무생의 얼굴과 다리가 가차 없이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