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무공 천재-584화 (584/705)

제567화

“대왕!”

사자서각의 관리자가 염라전으로 황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대왕께서 말씀하신 서책에 글귀가 적혔습니다!”

“뭐라!?”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봉목이 함지막하게 커졌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어라 쓰여 있더냐.”

“그것이….”

“무엇이기에 그리 뜸을 들이느냐.”

염라대왕이 재촉하자 사자서각의 관리자가 뒷말을 이었다.

“파천혈신의 태어나지 못한 아들이라 적혀 있었나이다.”

“허. 태어나지도 못했던 아이가 자기 힘으로 사자서에 글귀를 남기다니. 역시 신선제의 핏줄인가.”

염라대왕이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사자서는 전생이 쓰인 책이다.

전생서라고 불리기도 했다.

“혹, 금색 테두리의 책에는 이렇다 할 글귀가 안 쓰여졌더냐.”

“예. 대왕. 금색 테두리의 책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나이다.”

“이준의 사자서가 반응했다. 곧 금색 사자서도 반응할 터 무언가 글귀가 새겨지면 바로 본왕에게 보고하거라.”

“그리하겠나이다. 한데 금색 사자서는 독황의 사자서와 같은 분류로 두시지 않았나이까.”

“그랬지.”

“대왕의 반응을 보면 하얀 사자서와 동급일 것 같은데 왜 독황의 사자서와 같이 보관하라 하셨는지 여쭙고 싶나이다.”

사자서에도 등급이 있었다.

일반, 희귀, 특급, 전설, 봉인.

다섯 종류로 분류되어 있었다.

일반은 초록빛으로.

희귀는 파란빛으로.

특급은 빨간빛으로.

전설은 황금색으로 반짝였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현상을 띄었다.

다음 두 등급부터는 특이했다.

“본왕이 눈여겨보라 한 황금 서책의 색이 변한 걸 본 적 있느냐.”

“없사옵나이다.”

사자서각의 관리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태껏 염라대왕이 말한 걸 본 적이 있었던가.

사자서각의 관리자를 맡은 이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황금서가 바로 봉인 등급이니라.”

“헉! 보, 봉인 등급이라면 뇌봉과 뇌전검왕보다 한 단계 윗 등급이 아니 옵니까. 그리고 황금색도 보이지만 검은색 빛도 띤다고 전대 각주가 말했나이다.”

봉인 등급의 사자서는 황금색을 띠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검은색을 보이기도 했다.

“전대 각주가 또 무어라 말했느냐.”

“봉인 등급은… 인계의 위험한 존재들. 천살성이라 했습니다.”

“제대로 들었구나. 맞다. 네게 눈여겨보라 한 책이 바로 천살성의 사자서이다.”

사자서각의 관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살성의 사자서는 그도 처음 보았다.

그저 전설 등급의 책인 줄 알았건만.

천살성의 사자서라니.

심장이 미친 듯 쿵쾅거렸다.

하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염라대왕의 충격적인 말은 지금부터였다.

“그 사자서의 주인이 누구인지 예상한 모양이구나.”

“파천자… 이준이 아니나이까.”

“정답이니라. 이준은 천살성을 지닌 존재이지.”

“자, 잠깐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 주시겠나이까.”

“네가 당황한 걸 안다. 이준의 사자서가 두 개라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렇… 나이다. 분명 이준은 신선제의 태어나지 못한 아들의 환생….”

이준의 사자서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책의 색깔도 하얀색.

이 책의 등급은 논외.

사자서에서 아예 분류를 따로 해놓은 것이다.

파천혈신의 전생을 논외로 분류해 놓은 것처럼.

그만큼 특별 관리에 포함된 사자서였다.

지옥계를 다스리는 염라대왕조차 그 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었다.

“이준이 만약 천살성에게 잡아 먹혔다면 논외 등급의 사자서가 알아서 찢겨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준은 어떻더냐. 천살성을 품고 있느니라. 그래서 두 개의 사자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준이 논외 등급의 사자서를 지닌 존재라 봉인 등급의 사자서도 같이 존재할 수 있는 건지….”

“틀렸다. 봉인 등급은 논외 등급과 같은 선상에 있다.”

“그 말은 처음 들어봅나이다.”

“본왕만이 아는 사실이지. 곧 알게 될 터이니 사자서각의 관리자인 네게 알려 주겠다. 너는 신살룡이란 이명을 들어본 적 있느냐?”

“신살룡, 신살룡….”

사자서각의 관리자가 곰곰이 생각을 했다.

떠올릴 듯 말 듯 누군지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순간!

뇌리에 번개가 스쳐 지나갔다.

“천극자의 손자 왕휘의 이명으로 알고 있나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걸로 알고 있나이다.”

“신살룡 왕휘가 천살성의 정체이니라.”

“헉!”

사자서각의 관리자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신살룡 왕휘.

천극자 손자로 약관도 안되어 죽었다.

천극자는 천하제일임과 동시에 갖가지 잡다한 무공 또한 극의에 이르렀다.

능력이 하늘에 닿아서 그런걸까.

아니면 죽은 제 손자를 살리고 싶어서 그런지.

그의 무공인 진천사신무 중 사신기에 손자의 자아를 이식했다.

무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은 물론 적에 대한 일말의 자비도 없는 성격.

파괴적인 무공까지.

천극자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염라대왕은 얼마나 놀라 했는가.

지옥계로 올라와야 할 망자가 천살성에 잠들었다.

전무후무한 일.

억겁의 세월을 한 염라대왕도 처음 겪는 일이기에 당황했다.

원래라면 인과율을 어긴 천극자를 징치해야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인과율을 어긴것도 아니었다.

죽으면 쓰여지는 사자서각의 책에 신살룡의 기록이 적힌 것.

이 때문에 염라대왕은 고심해야 했다.

천극자를 징치하기에는 인간치고 너무 강했다.

아니, 강한 정도가 아니라 이미 신의 경지에 있었다.

그런 자를 적으로 돌리는 건 미친 짓.

신계가 발칵 뒤집힐 수도 있었다.

그래서 천극자에게 제안을 했다.

이번 일은 눈을 감아주겠다고.

대신 수명이 다하면 신계로 올라와 신선계를 다스리는 조건을 내걸었다.

천극자도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걸 알기에 순순히 염라대왕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준의 사자서책이 두 개인 이유였다.

그는 무극자에게 무공을 배웠으나.

무극자의 무공은 천극자에게서 나왔으니까.

무극자가 무공을 새롭게 만든다 해도 천극자의 무공을 바탕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무공에 담겨 있는 요체는 어디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준에게 천살성의 사자서도 있는 것이다.

“본왕이 네게 왜 이런 말을 해 주는지 알겠지?”

“천살성의 사자서를 눈여겨보라는 소리 아니옵니까?”

“맞다. 천살성의 사자서도 조만간 눈을 뜨게 되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신계도 말이옵니까?”

“신계도 포함이겠지. 신계의 왕들이 파천혈신을 위험하게 여긴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천살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는데도 전대 신선제의 무공을 극성으로 익혔다. 마신이 돼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였는데 말이야.”

“알겠나이다. 천살성의 사자서가 반응하면 대왕께 바로 알리겠나이다.”

“그럼 가보거라.”

사자서각의 관리자가 인사하고 나갔다.

염라대왕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망자를 분류하면서 구천옥의 금지에 있는 천극자를 떠올렸다.

‘예나 지금이나 그에게 도움을 받는구나.’

천극자는 여느 인간과 달랐다.

충분히 욕심을 부릴 수도 있었으나.

신계로 올라 고분고분 맡은 일에 충실했다.

신선계를 잘 다스리기도 했으며 천계와 마계가 싸울 때 마신을 죽이고 전쟁을 종식시켰다.

이후에는 신선제의 자리를 놔두고 구천옥의 금지에 은둔했으나.

그가 남겨둔 씨앗들이 있었다.

파천혈신이라는 인간은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이제는 든든하게 신선계를 다스렸다.

파천자는 어떤가.

신계에서 못한 일을 인간인 그가 하고 있었다.

구천옥의 죄인을 소멸시키고 마계의 마족으로부터 인계를 지켰다.

그도 아슬아슬한 점이 있긴 하지만 항상 고비를 잘 넘겼다.

인계의 드문 강자.

이준이 있어서 인계율이 망가지지 않고 있었다.

‘천극자의 의도대로 될지 이번에는 모르겠구나.’

천극자는 자신에게 말했다.

이준이라면 언젠가 제 사부를 뛰어넘을 거라고.

그 시작이 천살성을 잠재우는 게 아닌 깨우는 거라고 말했다.

아무리 이준의 천살성이 여태까지의 천살성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존재였다.

과연 완전한 천살성이 이준과 공존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떠올랐다.

* * *

구천옥의 금지.

천극자는 동굴 안에서 가부좌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번쩍!

그의 안광이 반짝이다가 이내 사라졌다.

“슬슬 때가 왔어.”

천극자의 말투는 씁쓸함이 잔뜩 배어있었다.

“이 할애비는 항상 널 지키지 못하구나, 휘야.”

그가 공허하게 중얼거렸다.

휘.

손자의 이름이었다.

신계로 올라와 억겁을 살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손자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도 너로 인해. 극이와 준이는 살게 될 것이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구나.”

천극자는 사손인 이준을 알고 있었다.

염라대왕을 통해 제자인 설극이 이준과 연을 닿게 만든 것도 그였다.

이준은 천살성을 타고난 인간.

천살성의 그릇이 없는 상태였다.

이를 알고 천극자는 제자인 설극을 이용해 이준에게 무공을 전달시켰다.

그로 인해 천살성의 그릇 만들어지고 내용물까지 채워졌다.

심지어 그 내용물은 마신지체와 합일을 이뤘으니.

천극자가 생각했던 계획이 완벽히 이루어진 것.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대비했다.

“휘아 네게는 죽어서 영원히 용서를 비마. 지금의 할애비는 극이가 가장 중요하다.”

아들을 잃고 손자까지 잃었을 때 나타났던 아이.

설극은 그에게 아들이자 손자 같은 존재였다.

삶의 의지를 잃었던 그에게 희망의 불씨를 피워준 제자.

배울 것이 없어 하산할 나이가 됐으면서 사발을 든다고 끝까지 옆에 있었다.

천수를 누리고 이제 우화등선할 때가 왔을 때야 간신히 제자를 하산시켰다.

제자인 설극에게 자신의 죽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오열을 했을 터.

자기 꿈도 펼치지 않고 평생 산에 틀어박힐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죽기 전에 제자의 혼인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핑계로 하산시킨 것이다.

“천살성인 너의 희생으로 극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이 할애비는 모든 것이든 할 생각이다. 만약 극이를 살릴 수 없다면… 이 신계를 부수고 말 터. 휘 너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게 하겠다.”

천살성이 완전히 눈을 뜨면 몸의 주인은 천살성에게 잠식당해야 정상이었다.

절대 공존이 안 됐다.

하나는 소멸 돼야 하는 게 이치였다.

손자인 왕휘는 이미 죽었다.

손자가 이준의 몸을 차지하게 된다면 제자인 설극이 아파할 게 눈에 선했다.

자신의 욕심으로 제자를 아프게 할 생각이 없었다.

손자인 휘가 눈을 완전히 뜨게 된다 하더라도 얼마 살지 못할 테니까.

그럴 바에는 쓸모를 다 하고 사라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남은 사람은 행복해야 했으니까.

천극자가 손자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하는 이유였다.

그가 욕심을 부린다면 정말 적은 시간이라도 일찍 죽은 손자를 인간의 모습으로 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제자를 위해 사용하려 했다.

“이 할애비가 약속하마.”

천극자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는 안심이 안 됐다.

분명 제자인 설극은 신선제의 권한을 허무하게 사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사용하려던 주경아를 구하는 게 아닌 다른 용도로 말이다.

왕의 권한은 딱 한 번.

그 이후로는 권한을 사용할 수 없다.

떼를 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기에 설극은 막장으로 나가려 할 터다.

그의 사부였던 천극자는 제자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말이 안 통하면 무력 행사하는 게 습관.

하나 그건 인계에서나 통하는 일.

신계는 율법으로 인해 힘에 제약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리 제자가 강하다 하더라도.

탈신경의 경지에 있다 하더라도 영원한 소멸은 막지 못할 것이다.

구천옥의 금지에 있는 것도 다 이때를 위한 발판.

벌을 받는 것과 동시에 신계의 율법을 무시할 힘을 쌓으려고 이곳에 있었다.

“이따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게 고통은 또 한 번 가족을 잃는 것이다.”

제자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는 여러 개.

그중 하나가 사손인 이준이.

손자인 천살성이 신계의 율법을 부숴줄 거라 믿었다.

다음은 자신의 차례였다.

신계의 율법이 부서지면 잠시동안 기능이 엉망이 되니까.

그때 모든 걸 정리할 생각이었다.

“너희가 신계에 와서까지 고통을 받는 건 모두 나의 욕심 때문이니, 모든 걸 정상으로 돌리는 것도 내 몫이니라.”

천극자는 설극이 고통을 받는 것도.

주경아가 고통을 받는 것도.

인과율을 어겨서 생긴 악이라 여겼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