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6화
대한민국의 모든 각성자가 군산 선유도 게이트로 모여들고 있었다.
웅성웅성.
선유도 게이트 앞은 수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게이트의 색은 검었으나.
각성자들은 개의치 않아 했다.
무려 백호였다.
사신수 중 서쪽을 관장하는 수호 영물.
선유도 게이트에서 기연이라도 얻는 날엔 인생이 활짝 피는 것이다.
꽃길 예약.
각성자들이 불나방처럼 선유도 게이트에 몰려든 이유였다.
“게이트에서 엄청난 마력이 느껴져.”
“안에 백호가 있는 게 확실해.”
“절대종에 해당하니 각오 단단히 해야겠어.”
각성자들은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장비를 점검했다.
그 후, 파티를 맺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패왕도가 훈련 각성자 출신입니다. A급이 파티 구합니다.”
“신룡사 출신 B급 각성자가 파티 구합니다. 뒤에서 서포터 역할 잘할 자신 있습니다.”
“백문의가 각성자요. 의원이 필요한 파티는 날 데려가시오. 많은 도움이 될 것이오.”
다양한 출신의 각성자가 파티를 구하고 있었다.
그때.
“비키시오!”
뒤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몸을 돌려 새로 등장한 무리를 보았다.
그들의 무복에는 ‘금룡(金龍)’이란 단어가 쓰여 있었다.
“금룡황가?”
“다 쓰러졌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망하긴 개뿔! 저게 어딜 봐서 망한 가문의 기세야.”
제일 선두에서 걸어오는 남자.
금룡황가의 가주, 황바울이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금룡황가의 소가주는 절름발이라고 하지 않았어?”
“나도 그렇게 들었는데… 그래서 금룡황가의 가주가 아들의 장애를 고치기 위해 영약을 백방으로 알아봤는데도 결국 고치지 못했다고 전해졌잖아.”
“그럼 저건 뭐지?”
황바울의 걸음걸이는 위풍당당했다.
애초에 장애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의문에 싸여 있는 사이.
금룡황가의 각성자와 황바울이 선유도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금룡황가의 각성자들은 준비해 온 바리케이드를 선유도 게이트에 쳤다.
“뭐 하는 짓인가?”
“여긴 블랙존 게이트입니다. AA급 각성자도 위험한 곳이지요.”
“그런데?”
“저희 금룡황가가 이 게이트를 공략해 볼까 합니다.”
“하하하하.”
주변이 웃음바다로 변했다.
오대 가문과 마벽도 아닌.
몰락했던 금룡황가가.
최근에 다시 가문을 일으켜 세웠다지만 객기를 부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등급도 안 되면서 블랙존 게이트에 들어가려는 자신들과 마찬가지였다.
“금룡황가는 블랙존에 들어갈 자격이라도 따로 있는 모양이야.”
“우린 가능합니다. 여러분 모두를 데리고서도 게이트 공략이 가능하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헛소리 마라. 최상위 각성자 아니면 시도조차 못 해 볼 일이다.”
각성자들의 무시에 황바울 옆에 있던 남자가 도를 빼 들려고 했다.
남자가 도를 한 번만 그어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죽을 것이다.
그만큼 엄청난 무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황바울의 명령에 행동을 멈추었다.
황바울의 말은 절대적.
어기는 건 죽음밖에 없었다.
“저희의 만류에도 여러분들은 선유도 게이트 공략을 하실 것 아닙니까?”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이미 우리 파티는 게이트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금룡황가가 친 바리케이드를 치우거나 그들과 싸워서라도 게이트에 들어갈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저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함께?”
“모두 다 같이?”
“블랙존 게이트는 인원 제한이 없습니다. 이곳에 모인 모두가 들어갈 수도 있죠. 그러면 차라리 전원 파티를 맺는 게 살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황바울의 말에 각성자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맞는 말이었다.
파티의 인원이 많을수록 게이트에서 살 확률이 높았다.
일리가 있어서 그런지.
아직 파티를 맺지 못한 각성자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말하십시오.”
“C급인 저도 가능할까요?”
모두의 시선이 황바울의 입에 집중되었다.
그가 어떤 말을 할까.
C급이 블랙존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블랙존 게이트에서 등급이 낮은 각성자를 보호하면서 싸우는 건 더욱 미친 짓.
당연히 거절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됩니다. 단, 저희의 말을 무조건 따라 주셔야 합니다.”
“따, 따를 수 있어요.”
“대주. 저분을 보호해 줘.”
“가주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C급 각성자가 금룡황가의 보호를 받게 되자.
등급이 낮은 각성자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었다.
“저도 금룡황가의 곁에서 싸우고 싶습니다.”
“절 받아 주십시오.”
“한 명도 빼지 않고 갈 테니 질서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금룡황가와 함께 게이트 공략에 참가하겠다는 각성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기존에 파티를 형성했던 파티원들이 난감해했다.
“어쩔까요? 모든 파티가 금룡황가로 붙을 눈친데.”
“저희도 같이 공략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파티원들의 이탈.
심지어 파티장으로 있던 이들도 금룡황가 쪽으로 가는 일이 생겼다.
그런 모습을 보니 불안감에 휩싸인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직 정하지 못한 파티를 본 황바울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같이 공략하는 게 서로 좋겠지.”
“합류하겠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결국 모든 파티가 금룡황가와 함께 하기로 했다.
“저희를 믿고 따라오신다면 적어도 목숨을 잃을 일은 없을 겁니다.”
황바울은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각성자들에게 신뢰감을 주었다.
그리고는 블랙존 게이트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금룡황가와 각성자들이 게이트로 몸을 던졌다.
* * *
빌딩의 건물을 부수며 날아가 처박히는 한 사람.
일필제가의 가주 제영일이었다.
“퉷!”
빌딩 수 채는 부수고서야 멈춘 몸.
그가 땅바닥에 피를 뱉으면서 일어났다.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내 힘을 눈치채지 못한 건 당신입니다. 제 가주.”
사형준이 사용한 무공, 천룡격.
전신이 무기화되는 박투술이었다.
사형준의 음성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발이 제영일의 위로 떨어졌다.
콰앙!
제영일은 간발의 차이로 사형준의 천룡격을 피했다.
하나 사형준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천룡격은 따로 초식이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오로지 싸움 감각에 의지하는 무공.
천룡격을 배운 무인이 싸움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 몇 배의 힘을 주었다.
심지어 뇌기를 다루는 무공.
청룡의 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무공이기에 파괴력은 어마무시했다.
사형준의 권강이 바람을 찢으면서 제영일에게 뻗어 갔다.
“흡!”
그그그극!
제영일이 검으로 간신히 권강의 경로를 비틀었다.
“이놈!”
사형준은 제영일에게 틈을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약하다 해서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그의 손과 발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제영일의 몸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네놈에게 내가 질 것 같으냐!”
제영일의 검이 완연한 빛을 뿜어냈다.
길이도 더욱 길어졌지만 마치 도망처럼 두께도 넓어졌다.
핏빛 도강을 연상케 한 검이 사형준을 양단했다.
하나.
“헉!”
제영일은 기겁해야만 했다.
일격필살로 사용한 도강이 사형준의 손가락에 잡힌 것 아닌가.
만년한철도 쉽게 벨 수 있는 힘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사형준의 손가락 따위에 가로막힌 것이다.
사형준은 제영일이 놀라거나 말거나.
어떤 말도 건네지 않고 남아 있는 주먹을 휘둘렀다.
엄청난 풍압감과 함께 뻗어지는 팔.
이 주먹에 제대로 맞는다면 몸이 뻥 뚫려 버릴 것만 같았다.
사형준이 팔을 완전히 뻗으려는 그때였다.
어디선가 핏빛 도강이 날아와 사형준과 제영일을 갈라놓았다.
일그러진 사형준의 얼굴.
제영일을 죽이지 못해 인상을 찌푸린 것이다.
사형준이 뒤로 몸을 빼자.
핏빛 도강은 바닥을 긁고 사라졌다.
“허억…!”
제영일은 죽었다가 살아난 느낌이었다.
누가 자신을 살려 줬나 고개를 돌렸다.
“제 가주 우리가 왔소.”
“그분께서 혹시 몰라 우릴 보냈는데 다행인 것 같소.”
“나머진 우리에게 맡겨 주시오.”
“…고맙소이다.”
나타난 이들은 제영일과 같이 황바울에게 충성을 맹세한 중소 가문의 가주들이었다.
그들은 인피면구나 변장도 하지 않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퍽-
류한길이 아수라파천강으로 제영일의 수하를 혈수로 만들어 버리곤 외쳤다.
“내 오늘 혈마의 무서움을 보여 주겠다!”
적이 생각보다 많이 나타났다.
강하기도 했고.
그렇다고 밀리는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다.
하찮은 벌레로 보던 이들에게 당한다는 건 류한길로서 평생의 치욕으로 남을 테니까.
“깡그리 재로 만들어 주겠다!”
류한길은 아수라파천강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며 적을 향해 쇄도했다.
* * *
“크허억!”
류한길이 실 끊긴 연처럼 날아가 처박혔다.
“푸웁!”
진병철도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아직… 더 할 수 이….”
조민석 또한 의식을 잃었다.
박영섭과 정현재 또한 마찬가지.
의식을 붙잡고 서 있는 사람은 사형준과 김봉팔뿐이었다.
“X발. 난 항상 이런 일에 껴 있는 거지?”
“후욱… 네 팔자로 여겨. 후욱.”
“애들이랑 같이 선유도나 조사하러 갈걸. 젠장. 더럽게 운 없네.”
김봉팔의 몸은 피투성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창백한 혈색.
떨리는 손과 발.
희미한 초점.
온전히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이준에게 맷집 단련이 안 됐다면 이미 쓰러지고 말았으리라.
“너희들만 남았군 그래.”
“무극대도 별 볼 일 없어. 안 그렇소, 민 가주.”
“후후,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 강했지 않소. 그저 우리가 더 강한 것뿐이라오.”
“크크크. 맞는 말이오. 우리가 더 강한 것뿐이지.”
황바울에게 충성한 대가로 힘을 얻은 중소 가문의 가주들이 음흉하게 웃었다.
김봉팔이 그걸 가만히 듣고 있겠나.
“지랄하네. 질 것 같으니까 수로 밀어붙인 씹새끼들이 어디서 기고만장해하고 있냐.”
중소 가문 가주들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주둥이는 살아 있나 보구나.”
핏빛 도강이 허공을 갈랐다.
사형준이 움직였으나.
푸확-
핏빛 도강의 속도가 더 빨랐다.
“큭. 개 같은 새끼들… 계속 해 봐라, 내가 어디 죽나 X발 놈들아.”
“후욱 부단주 입… 다물어 내기가 후욱 흩어진다….”
김봉팔의 기운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말도 다 못 하고 허억… 죽어서 귀신 되면 단주가 책임질… 것이오…?”
“아니….”
“그러면 닥치시오. 나 말 좀 더 하고 죽을 거니까….”
“…주군의 연락은?”
“없소….”
“…….”
사형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세계 랭킹에 이름이 올랐으며 한국 랭킹 3위에 있었다.
사실 우쭐해진 건 당연했다.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에 해당했으니까.
이제는 주군인 이준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이없는 곳에서 발목이 잡혀 버렸다.
“부단주. 내가 저들을….”
“지랄하지… 마시오. 나보다 단주가 후우욱… 경공이 더 빠르지 않소. 내가 막을 테니 주군 좀… 찾아보시오….”
“부단주.”
“내가 단주보다 뛰어난 건 맷집이라는 걸 알아두시오.”
김봉팔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가 익힌 신수호심공의 내공이 몸에 빠르게 돌았다.
여전히 내공이 공기 빠진 풍선처럼 흘러 나가고 있었으나.
시간을 끌 정도는 됐다.
그의 특성인 절대 방어도 쓰지 않았고 말이다.
“저 새끼 중 한 명은 내가 꼭… 데리고 간다.”
“미안하다. 부단주.”
“나 불사신이오. 이번에도 죽지 않고 살아갈 것이오.”
“주군을 찾아서 데려오겠다.”
“그 괴물 같은 양반이 날 보면 죽이겠다고 화를 버럭버럭 낼 것만 같군.”
김봉팔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준은 츤데레 같은 성격을 지녔다.
자기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약하다고 개같이 훈련을 굴리면서 다그쳤다.
그러면서도 회복할 수 있게 값진 영약을 쥐여 줬다.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빨리 가시오. 얼마 버티지 못하오.”
극성으로 끌어 올린 내공을 풀어놓으니.
주변 대기가 요동쳤다.
사형준은 김봉팔을 뒤로하고 경공을 펼쳤다.
“우리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너흰 나부터 넘어, 새꺄.”
사형준에게 붙으려 한 이들의 앞을 김봉팔이 가로막았다.
사형준은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쳤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결계! 그래서 지원군이 못 왔구나!”
사형준 앞에 두꺼운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가 권강으로 결계를 때렸다.
쿵-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게 다였다.
“내가 빠져나가지 못하면 부단주는 개죽음만 당하는 거다.”
그는 결계를 향해 연신 주먹을 휘둘렀다.
마지막 모든 힘을 다해 결계를 부쉈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결계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의 앞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그 꼴은 뭐지? 사 단주.”
“주군!”
4대 성지의 금역에 있었던 이준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