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1화
[내가 맡았던 아이들이 제일 강한 것 같은데….]
청룡의 중얼거림.
도발할 생각은 없었으나.
가만히 있을 흑염마조가 아니었다.
[네가 가르친 아이들이 누구냐.]
[딱 봐도 모르나?]
청룡은 모습을 드러내며 박혁진과 박정연을 보았다.
두 사람을 S급에 도달하게 한 게 바로 청룡이었다.
흑염마조도 곧바로 눈치챘다.
[본좌도 한두 명만 집중적으로 가르친다면 그보다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자신 있다!]
누가 강한 무인을 못 만드냐는 듯.
흑염마조가 소리쳤다.
[그러면 이러는 건 어떠하냐.]
[뭐냐.]
[네 말은 언제나 불안해.]
현무가 끼어들며 의견을 제시했다.
흑염마조와 청룡의 시선이 현무에게로 쏠렸다.
[인원을 나눠 키워 보는 건 어떠냐. 아이들을 제일 많이 성장시킨 신수가 이기는 걸로 하자.]
[좋다. 그런 거라면 자신 있지.]
[내키지는 않지만 따르도록 하겠다.]
흑염마조와 청룡이 현무의 의견에 동의했다.
[가르침 받을 신수를 선택하는 건 아이들에게 위임하도록 하겠다.]
현무도 아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의 이야기를 전부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한 명씩 어떤 신수 밑에서 수련할지 골라라.]
갑작스러운 현무의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벙쪘다.
주작인 흑염마조 밑에서 수련하는 것도 행운.
그런데 이제는 배우고 싶은 신수를 선택하라고까지 한다.
좋긴 하지만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어떤 신수 밑에서 배울지 선택하라니.”
“너무 뜬금없어서 혼란스러운데….”
박정연을 비롯한 아이들 모두 패닉이 왔다.
갑자기 신수를 선택하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한 것이다.
그때 흑염마조가 아이들을 재촉했다.
[어서 고르거라!]
[당연히 지혜의 상징인 날 고르겠지.]
[어림없는 소리. 강한 힘을 원한다면 나 청룡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는 게 현명하다.]
[흥. 본좌가 바로 파천혈신의 훈련을 옆에서 본 신수이다. 또한 파천자 이준의 성장을 돕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기 싸움을 하는 건 빼놓지 않았다.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
세 신수는 강렬한 눈빛을 뿜어내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어서 내게 오라.]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
[본좌의 밑에서 수련하면 저 두 놈이 키운 놈들보다 배는 강할 것이다.]
그들은 각자 아이들에게 어필했다.
다만 어떤 식으로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든지.
아니면 체계적인 수련 방법이 어떤 것인지 등.
자세한 설명 없이 두루뭉술하게 어필했다.
선택하기 애매할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제일 먼저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전 현무를 선택하겠어요.”
[여기서 제일 똑똑한 것 같더니 굉장히 현명한 선택이다.]
한지유였다.
그녀는 현무가 신수를 고르라고 했을 때부터 이미 답을 내린 상태였다.
그녀의 무공은 장백검문의 무공.
복마 3종을 지니고 있었다.
복마 3종은 빛 속성 무공이기도 했지만 극음인 빙 속성의 무공이기도 했다.
현무의 속성은 빙, 얼음이었다.
한지유가 강해지려면 흑염마조가 아닌 현무가 가장 적당했다.
그랬기에 망설이지 않고 정한 것이다.
[똑똑한 아이인 줄 알았더니 실망이군.]
[난 이미 예상했던 바이다.]
흑염마조와 청룡이 한지유에게서 미련을 버렸다.
대신 다른 아이들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보았다.
그런데.
“저도 현무 님을 선택할게요.”
현무가 연달아 아이들의 선택을 받았다.
[구음절맥을 타고났던 아이, 너 또한 잘 선택했다. 네 천무 중 현무 계열 무공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 주겠다.]
현무는 의기양양했다.
흑염마조와 청룡은 아직 선택받지 못한 상태.
그런데 재능 넘치는 아이 둘이나 자기를 선택했다.
다른 아이들도 재능은 있지만 한지유와 이지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재능 면에서 상위권에 속한 두 명.
흑염마조와 청룡의 자존심을 구겨 버리기에 충분했다.
[실망이군. 천무의 꽃은 주작계 무공인데 보는 눈이 없어.]
[화려한 청룡계열 무공을 포기하다니. 후회할 선택이다.]
두 신수는 이지안의 선택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어쩌랴.
자기에게 맞는 신수가 현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흑염마조와 청룡은 이지안에게 미련을 버렸다.
물론 조바심은 들었다.
아이들의 선택은 인기의 척도이기도 했으니까.
“난 다시 청룡 님한테 갈래.”
“그럼 나도.”
그전에 청룡에게 배운 적이 있었던 박정연과 박혁진은 똑같은 선택을 했다.
[너희들의 선택은 이미 알고 있었다.]
[흥. 네놈한테 배우다가 날 선택하면 지랄할까 봐 하는 수 없이 선택한 거겠지.]
[조급함이 느껴진다, 주작.]
[무, 무슨! 아니다.]
흑염마조는 말을 더듬은 후 이글거리는 눈으로 한 아이를 보았다.
허수였다.
이준이 가장 아끼는 후배.
4대 성지의 금역도 허수에게는 숨기지 않았다.
이준 다음으로 자기를 가장 많이 접한 인간이기도 했고.
흑염마조는 허수에게 마치 ‘자신을 선택해라 아니면 죽이겠다’라고 협박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허수가 다급히 선택했다.
“저, 전 흑염마조 님을 서, 선택하겠습니다.”
[옳은 선택이다.]
[협박에 의한 선택이군.]
[주작의 체면을 봐서 눈감아 주지.]
현무와 청룡의 목소리를 애써 모른 척하는 흑염마조였다.
아이들은 그렇게 하나둘씩 신수를 선택해 갔다.
* * *
지잉-
이준이 벨렌 로레스와 함께 포탈에서 나왔다.
그를 맞이하기 위해 한민성 이사장이 직접 마중 나와 있었다.
“갔던 일은 잘…!?”
이준 혼자 넘어올 줄 알았는데 낯선 여자와 같이 포탈에서 나오자.
한민성이 흠칫했다.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신지?”
그러면서도 자기의 본분은 잊지 않은 한민성이었다.
벨렌 로레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그녀의 정체를 아는 건 이준밖에 없었다.
“제 친구예요.”
“친구 말입니까?”
이준의 친구.
각성자, 특히 힘이 지배하는 시대에 친구라는 단어는 많은 걸 포함하고 있었다.
이준의 친구.
이 무게가 얼마나 큰지 한민성은 잘 알았다.
어떤 누가 세계 랭킹 1위 각성자의 친구가 될 수 있겠나.
그에 걸맞은 각성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그러니 더 의문.
이번에 폐쇄적이던 해외가 교류를 허용하면서 많은 정보가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해외 각성자의 정보였다.
한민성은 아무리 떠올려 봐도 눈앞에 보이는 이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처음 뵐게요. 벨렌 로레스라고 해요.”
“벨렌 로레스… 로레스… 로레스!?”
한민성이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눈을 크게 떴다.
스페인의 최고 명문가.
일전에 망했지만 마지막 남은 생존자가 재건한 가문.
이 또한 최근에서야 들은 정보였다.
“로레스 가문의 가주셨습니까?”
“변변찮은 이름이에요.”
“어떤 누가 로레스 가문을 변변찮게 여기겠습니까. 푸른 등불의 꽃을 보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레스 가문이 재건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푸른 등불의 꽃이었다.
푸른 등불의 꽃은 균열 오염을 제거하고 게이트를 다신 열지 못하게 했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귀한 물건.
극소량밖에 없어 부르는 게 값이었다.
한데 스페인의 로레스 가문이 소유한 푸른 등불의 꽃은 꽤 많았다.
전 세계에 팔 만큼의 양.
망했던 가문을 단번에 일으킬 만큼 엄청난 값어치를 했다.
가치로 따지면 계승의 꽃과 같았다.
“서로 돕고 살아야죠.”
“모두가 로레스 가주님처럼 생각했다면 가문끼리의 전쟁은 없었을 겁니다. 지금은 곳곳에서 게이트가 나타나 힘을 합치고 있지만 세상이 평화로우면 다시 이권 다툼을 할 겁니다.”
한민성은 그녀에게 경고했다.
푸른 등불의 꽃으로 인해 로레스 가문이 다시 위험에 빠질 거라고 말이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벨렌 로레스의 정체를 몰랐을 때의 이야기였다.
“저도 우려한 부분이긴 했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녀는 한민성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파천자 님의 친구분이시라면 건드릴 가문이 없겠지만 그래도 탐욕적인 인간들은 무슨 짓이든 할 겁니다.”
“그래서 제 이름을 알릴까 해요.”
“좋은 방법입니다. 각성자의 이명만큼 주변을 억제하기 좋은 건 없지요.”
“이사장님이 도와주시겠어요?”
“물론입니다. 저희 신기지가가 로레스 가주님에 대한 소문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신기지가의 정보력은 한국에서도 으뜸이었다.
사이버 정보대는 어떤가.
인터넷을 통해 여론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비선만큼 유능한 이들이 사이버 정보대였으니까.
“그러면 제가 암흑대제라는 걸 소문 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자, 잠시만!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제 이명을 소문내 달라고 했어요.”
“그 전에 마, 말입니다.”
“제가 암흑대제라는 말이요?”
“로, 로레스 가주님이 암흑대제!?”
한민성은 고개를 돌려 이준을 보았다.
무어라 말을 해 달라는 표시였다.
“벨렌. 정체를 밝혀도 괜찮겠어?”
“안 그래도 푸른 등불의 꽃 때문에 날파리가 꼬이기 시작했어. 이제 내 정체를 밝힐 때야.”
한때 스페인에서 최강의 가문이라고 불리었지만 한 번 폭삭 망했던 가문.
예전처럼 넘보지 못할 불가침의 성역이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접근해 오지는 않았지만 몇몇 가문들이 은근 무시하듯 접선해 왔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정체를 밝힐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미친놈들이네. 상대가 암흑대제인 것도 모르고.”
이준의 말에 벨렌 로레스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옆에서 눈을 크게 뜨고 있던 한민성이 화들짝 놀랐다.
이준이 인정한 것이다.
그녀가 암흑대제라는 걸.
“암흑대제는 50대 남자라는 설이 있었는데….”
“다른 소문은 없었어요?”
“음양인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그래도 이렇게 어리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다 그런 반응이었어요.”
한민성은 그녀의 정체를 안 즉시 비선에게 신호를 보냈다.
엄청난 정보.
로레스 가문을 일으켜 세운 사람이 암흑대제라는 사실.
신기지가로부터 이 소문이 흘러간다면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된다.
이 소문이 퍼지는 그 순간부터 신기지가는 벨렌 로레스가 암흑대제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
연이 있었나.
언제 이 사실을 알게 됐나.
암흑대제와 신기지가의 관계는 어떤 사이일까.
갖은 추측이 난무할 거다.
그 혼란한 틈을 타고 신기지가는 필요한 이득을 취하면 된다.
“이사장님. 바쁘실 것 같은데 일 보세요.”
“그래요. 전 이준하고 같이 학교를 구경할까 해요.”
“큼. 역시 강하신 분들은 눈치도 빨라서 제가 힘듭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도 영광이었어요.”
벨렌 로레스와 이준이 배려 아닌 배려를 해 줘 한민성은 인사를 하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가자. 구경시켜 줄게.”
“괜찮아. 넌 내상을 돌봐. 나 혼자 둘러봐도 돼.”
“얼마나 걸린다고 내가 안내해 줄게. 어디가 보고 싶어?”
“각사학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 있다던데.”
“특별 1반이 수련했던 장소가 가장 유명해.”
“그쪽부터 보자.”
“그래.”
이준은 내상 치료를 뒤로 미뤘다.
치료를 한다고 해서 바로 나을 것도 아니었다.
현재도 몸 내부에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혼원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런데도 상처 치료는 더뎠다.
자가 복원력이 뛰어난 혼원의 기운이 말이다.
이 정도면 꽤 많은 시간을 요양으로 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 전에 멀리까지 온 친구를 챙겨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별거는 없어. 그냥 무공을 수련한 흔적이 운동장 바닥에 남아 있다는 정도가 다야.”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이준과 벨렌 로레스는 웃으면서 특별 1반이 수련했던 장소로 이동했다.
* * *
흑염마조를 선택한 인원은 허수, 진경수, 조용석, 정예나 그리고 정예은이었다.
허수는 협박 아닌 협박에 의해.
진경수와 조용석은 흑염마조가 이준의 성장을 도왔다는 소리에 선택했다.
참 이준 추종자다운 생각이었다.
정예나는 어떤가.
그녀는 독공의 소유자로 흑염마조에게 조언을 듣는다면 더 강력한 무공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이는 정예은도 마찬가지.
암기술은 기본이고, 대장장이를 주 직업으로 삼으려는 그녀에게 흑염마조는 가장 필요한 조력자였다.
대장장이는 불의 가호를 받아야지만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흑염마조를 선택했다.
한데 아이들은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후회가 들었다.
[청룡과 현무에게 배운 아이들보다 성장 못 하면 너흰 본좌의 손에 바비큐가 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흑염마조는 생각보다 경쟁심이 뛰어났다.
특히 신수 중에 현무에게 지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