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3화
이준의 무력에 이휘마저 흔들렸다.
‘분명 평범했어. 무공을 사용할 때도 기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이휘는 각성자의 기에 민감했다.
스승인 베네로딕의 기운도 읽는 게 그였다.
한데!
어째서 이준의 기는 읽을 수 없는 것인가.
‘세계 랭킹이 맞는 거야?’
다른 순위는 변동이 좀 있었다.
하지만 1, 2, 3위는 고정.
그렇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 봤자 가짜 랭킹에 불과하다 여겼으니까.
‘이대로… 당할 순 없어.’
이휘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팔에 새겨진 마법 각인.
전투 준비를 했다.
이휘에게 고개를 돌린 이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 제대로 할 마음이 생겼냐?”
“네놈이 자초한 일이야. 나중에 날 원망하지 마.”
“이휘야. 그런 말은 너보다 약한 놈한테 하는 거야. 난 거기에 해당하지 않아.”
이준이 모든 기운을 회수했다.
가솔들을 공포에 빠뜨렸던 기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각성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평범한 이준이 뒷짐을 진 채 최미진을 가리켰다.
“정확히 30분. 그때 동안 날 쓰러트리지 못하면 네 엄마는 생기가 다 빠져 죽을 거야. 네 안에 있는 역겨운 걸 사용해서라도 날 즐겁게 해 봐. 혹시 알아? 너희들을 살려 줄지.”
이준의 도발에 이휘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렸을 적에는 버러지만도 못했던 인간이 이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했던 눈으로 저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굴욕적이었다.
“언제까지 오만하게 구는지 보자!”
이휘는 참지 못하고 이준을 향해 움직였다.
그가 사용한 마법은 텔레포트.
눈 깜빡할 찰나, 이준의 지척에 나타났다.
쾅!
이휘의 주먹이 이준의 팔을 강타했다.
“장난치면 네 엄마 죽는다니까.”
이준의 발이 복부를 때리려고 뻗어 오자 이휘가 뒤로 빼려고 했다.
“…!?”
그러나 이준의 팔에 맞닿은 주먹이 자석이라도 된 듯.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뒤로 몸을 빼지도 못하고 이준의 발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커헉!”
얼마나 강하게 차였는지 여러 건물을 부수고도 뒤로 계속 처박혔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섰지만.
“억.”
중력에 이끌려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텔레포트 쓸 마력을 아껴 줘서 고맙지?”
이휘는 다시 연무장 바닥에 처박혔다.
이준의 흡공에 의해 자석처럼 이끌려 연무장으로 온 것이다.
“이 버러지 새끼가 날 가지고 놀아?”
이휘의 몸에서 불길한 기운이 치솟았다.
마기였다.
내공으로 이루어진 마기가 아닌, 마력으로 이루어진 마기.
흑마력이었다.
“그래. 진작부터 그걸 썼어야지. 시간 아깝게 벌써 5분이나 지났잖아.”
이휘의 기세는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흑마력은 악마의 기운.
몬스터보다 더 고차원의 존재가 뿜어내는 마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마법 인장이 새겨진 이휘의 두 팔이 흉측하게 변했다.
악마에게 신체의 일부를 주는 대신 주어지는 힘이었다.
“크르. 죽인다.”
“개새끼냐. 울음소리를 내게?”
이준은 여전히 말장난을 하는 중이었다.
이휘의 힘에도 그는 심각해 하지 않았다.
혼원신공에 대한 신뢰.
자신의 등급에 대한 믿음이 가득했다.
이준이 자신만만해 하는 사이.
이휘가 사라졌다.
이에 이준도 땅을 박찼다.
쾅!
콰광!
허공에서 굉음이 연신 울려 퍼졌다.
이준과 이휘가 공수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움직임은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
마치 버퍼링이라도 걸린 듯.
충돌음이 뒤늦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휘가 하늘에 나타났다.
그리고 양손을 위로 올렸다.
가고일의 팔에서 흘러나오는 흑마력.
하늘 위에 모인 흑마력이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었다.
“블랙 메테오.”
검붉은 마법진에서 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신가를 뒤덮을 만한 크기였다.
“죽어어어엇!”
이휘의 팔이 아래로 떨어지자 메테오가 지상을 향해 돌진했다.
이준은 연무장에 서서 하늘을 볼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악마의 힘도 혼원신공보다는 못하네. 굳이 패천기공은 안 써도 되겠어.”
이준이 손을 옆으로 뻗자 허리춤에 있던 파멸겁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파멸겁은 제2의 형태로 흑염을 두르고 있었다.
“투경.”
이준이 손바닥을 활짝 펼치자 파멸겁이 메테오를 향해 쏘아져 갔다.
거대한 불의 돌덩이에 비해 파멸겁은 작은 작살에 불과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지만 그 계란은 무엇보다 단단하고 강했다.
파멸겁이 메테오에 부딪히는 순간 빛이 주변을 삼켰다.
* * *
“…….”
이준과 이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사형준은 눈을 감아야 했다.
하늘에서 뿜어지는 빛이 너무 강렬했으니까.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던 것도 잠시.
하늘이 다시 색을 찾았다.
사형준을 비롯한 가솔 모두가 감았던 눈을 떴다.
“으음….”
“그 커다란 메테오를 어떻게?”
메테오에 담겨 있던 거력.
사신가만이 아니라 서울 전체를 날려 버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거력이 담긴 메테오는 온데간데없고 하늘에는 오롯이 창 하나만이 떠 있었다.
고고한 자태를 뿜어내며 말이다.
파멸겁을 본 무극대원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가주님 말입니다… 더 강해지신 것 같지 않습니까?”
“저 등급에서 어떻게 더 강해질 수가 있는 거지?”
“이휘를 가지고 놀고 있어요.”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군요.”
그들의 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준의 압도적인 강함은 자주 봤다.
그의 무력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준의 무력은 공포스러울 지경.
전같이 파멸적인 기세를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소름이 돋았다.
과연 저 실력이 다일까.
제대로 된 실력을 보인 걸까.
무극대는 의문이었다.
그때 모두의 귀에 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15분.”
“네, 네놈이! 이렇게 강할 리가 없잖아.”
“시간 흐른다. 널 끔찍이 아끼는 엄마를 죽이고 싶나 보지?”
이휘가 떨리는 눈으로 최미진을 바라보았다.
생기가 빨리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미 머리는 새하얀 백발이 된 지 오래.
피부는 주름이 가득했다.
이제는 얼굴에 검버섯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인정할 수 없어어어!”
이휘가 무작정 마법을 날리기 시작했다.
체술 마법사이나 일반적인 마법도 사용할 수 있었다.
건물 위로 떨어지는 불덩이들.
사신가가 쑥대밭이 됐는데도 이준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었다.
이휘의 광란은 한참이나 벌어졌다.
“25분.”
“으아아악!”
이휘가 이성을 잃은 상태로 이준에게 달려들었다.
푹-
이준의 손이 그의 어깨를 관통했다.
“컥!”
“한쪽 어깨만 가져가면 다른 쪽 어깨가 서운해할 거야.”
이준은 이휘가 다시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양팔을 잘라 버렸다.
더 잔인한 건.
“대신 마나는 그대로 놔둘게.”
서클은 그냥 둬 버렸다.
마법사에겐 서클이 생명이기도 했지만 마법 인장을 맺게 하는 손도 중요했다.
마법을 사용하려면 인장을 그려야 했으니까.
그런 이휘의 팔을 잘라버리는 건 사형 선고나 다름 없었다.
“크윽… 그냥 죽… 여….”
“그래 줄까? 나도 널 살려 주기 싫었는데 네가 죽여 달라고 하니까 소원대로 해 줄게.”
이준이 팔을 들어 올려 이휘의 심장을 향해 겨눴다.
“…그만…! 제발… 그만하거…라.”
이휘가 죽임을 당할 것 같자 최미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준은 최미진에게 사용한 흡자결을 거둬들였다.
“허억… 허억….”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그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휘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눈물겹네.”
이준의 눈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남의 자식이 아프던 말던.
자기 자식만은 끔찍이 챙기는 최미진이었다.
“…휘야. 정신 차리 허억… 거라….”
“어머… 니….”
“이 어미가 너만은 꼭 허억… 살려 주마….”
최미진이 이휘의 볼을 쓰다듬은 후 이준에게로 갔다.
몸을 가누기도 힘들 텐데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주 님… 저는 죽이셔도… 됩니다. 휘만은… 살려 주세… 요….”
자식이 죽으려 하자 그제야 항복한 최미진이었다.
이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그녀는 기어서 이준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죄는… 이 어미가 지었어요. 제발 휘라도….”
“사 대주.”
“예. 주군.”
“가주를 능멸한 죄는 뭐지?”
“즉참입니다.”
“권왕의 안주인께서 이를 몰랐을 리는 없을 텐데요.”
“…제가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살려 주시겠어요…?”
“이미 기회는 충분히 드렸습니다.”
“정녕… 우리 모자를 다 죽일 생각이십니까.”
“큭. 하하하하!”
이준은 목청이 터져라 웃었다.
웃음을 뚝 그치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저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거지?”
이준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사신가의 정문 방향.
오백 명은 훌쩍 넘어 보이는 인원이 연무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 * *
새로 나타난 이들은 흩어졌던 패왕도가의 각성자였다.
그들을 한데 뭉친 사람은 이휘와 함께 귀국한 최우곤이었다.
“패왕도가의 각성자가 이휘와 같은 흑마력을 가진 것도 모자라…. 사신가의 정문을 넘었어.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이준의 음성에는 살기가 뚝뚝 묻어나왔다.
사신가를 망가트리려 했던 이휘와 이신을 용서할 생각 따위는 없어 보였다.
“저, 저들은….”
최미진이 당황해했다.
올 거면 더 빨리 올 것이지 하필 안 좋은 순간에 나타났다.
“미진… 휘야!”
최우곤이 이휘를 발견하고 달려가려는 순간.
그의 세상이 기울어졌다.
“어?”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자 안에 있던 오장육부를 토해 냈다.
최우곤뿐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던 패왕도가의 각성자들도 모두 반으로 잘려 죽었다.
등장하자마자 퇴장.
혼원신공이 대성 하자 천살성과 마신지체가 각성했다.
천살성의 살기에 삼켜지진 않았지만, 감정이 꽤나 죽은 상태.
피를 잔뜩 뒤집어쓴다고 흥분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죽인다 해도 감정에 동요가 없었다.
일말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으니.
손을 씀에 있어 더욱 잔혹했다.
이준은 최미진을 내려다보고는 몸을 돌렸다.
연무장을 돌며 무언가를 찾았다.
원하던 걸 발견했는지.
이준이 광폭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 결과 허공에 블랙존 게이트가 열렸다.
[닫혀 있던 블랙존 게이트를 강제로 열었습니다.]
[타 게이트 주인의 등장에 보스 몬스터가 흥분합니다.]
[당신을 살피던 보스 몬스터가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떱니다.]
[보스 몬스터는 당신이 볼일을 끝내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블랙급 보스 몬스터는 이준이 어떤 존재인지 금방 눈치채버렸다.
그가 게이트에서 무슨 일을 하던 빨리 일을 끝내고 돌아갔으면 했다.
“살려는 주죠. 이 게이트에서 살아 나온다면 말입니다.”
이준이 손짓하자 이신과 이휘가 허공을 날아왔다.
먼저 이신을 블랙급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던져 버렸다.
“안 돼!”
인간의 등장에 몬스터가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하나 이준의 존재로 인해 섣부르게 행동하지 못했다.
강아지인 양 눈치를 보며 이준에게 꼬리를 흔드는 몬스터들.
이준은 녀석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 줬다.
“난 상관하지 말고 알아서 해.”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몬스터들이 이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블랙급 몬스터는 인간보다 지능이 높았다.
저 무시무시한 존재와 바닥에 던져 진 인간과의 관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서로 적대적인 관계.
블랙급 몬스터는 이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버려진 인간을 최대한 잔인하게 먹어 치웠다.
“넌 악마 같은 놈이다! 내가 진작 너부터 죽였어야 했는데!”
최미진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아들이 몬스터에게 찢겨 죽는 모습을 보았다.
안 그래도 아들을 끔찍이도 아끼는 그녀였으니.
이준을 저주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게 내 것을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이휘가 공중에 뜨더니 게이트로 날아가 나뒹굴었다.
“으아아악!”
어느새 블랙급 몬스터에게 둘러싸였다.
그 잘난 마법도 사용할 수 없었다.
맛있는 고기를 본 듯.
몬스터가 이빨을 드러내며 침을 뚝뚝 흘려대니 두려움이 올라온 이휘였다.
“휘야!”
최미진이 이휘가 떨어진 게이트로 달려갔다.
그녀가 공포에 떤 이휘를 부둥켜안았다.
그러면서 이준을 노려봤다.
“죽어서도 널 저주하겠어!”
“그러든지.”
이준이 몸을 돌리곤 게이트를 닫아 버렸다.
정적이 흘렀다.
제 손을 더럽히지 않고 게이트를 이용해 상대방의 목숨을 취해버린 이준.
깔끔하긴 했지만 이준이 무섭게만 느껴지는 가솔들이었다.
그래도 한 때는 가족이던 이들.
그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한 사형준이 이준에게 다가갔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아직 안 끝났어.”
사신가에서 제일 높은 건물.
백호각의 지붕 위에 있던 그림자가 이준의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이준은 그 그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