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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무공 천재-397화 (395/705)

제393화

쿵!

땅이 잘게 떨렸다.

그 어느 때보다 작은 진동.

무극군림보의 사보인 멸이 펼쳐진 게 맞나 싶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긴장했던 천외천이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지주의 눈은 찢어질 듯 커졌다.

“며, 멸보!”

비명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멸보의 위력이 눈에 드러났다.

도쿄 타워로 진격하던 사혈림 강시와 몬스터, 암사회의 각성자들이 먼지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래같이 부서지는 육체들.

진동이 닿은 곳은 사람이나 건물 가릴 것 없이 소멸됐다.

“그 노괴의 무공을 다… 이어받은 거야…?”

지주의 몸이 잘게 떨렸다.

생명의 숨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무.

광범위하게 펼쳐진 무공이 생명을 말살했다.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노괴의 무공은 천주 사형도 힘겹게 완성했어….”

하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믿기 힘든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멸보.

파천혈신이 가장 애용하는 무공이었다.

그저 진각으로 보이지만 각종 진의와 깨달음이 담긴 무공이었다.

그뿐인가.

일보도 아니고 무려 사 보다.

파천혈신이 네 걸음을 걸으면 살아 숨 쉬는 생명이 없다 하여 붙여진 게 멸보란 이름이었다.

“아닐 거야. 천주 사형도 아니고 하찮은 각성자 따위가 어떻게!”

지주가 격하게 부정했다.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신마회를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파천혈신이 다시 살아나지 않은 이상은 불가능했다.

“후욱… 후욱….”

지주가 흔들리는 눈으로 부정하는 사이 이준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무극군림보에 무극기를 집어넣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사보 하나만으로도 벅찼던 내공.

위력만큼 힘 소모도 컸다.

괜히 무공명에 멸이 들어간 게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그 많던 사혈림 강시와 몬스터, 암사회의 각성자가 사라졌다.

오직 서 있는 사람은 이준과 지주, 은서단뿐.

은서단과 싸우던 존자들도 모두가 사라진 상태였다.

“혼원신공이 아니었으면 그로기가 됐겠어.”

현재도 내부에선 혼원신공이 혼신의 힘으로 내공을 회복하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단전을 채우는 그때 정적이 깨졌다.

숨을 돌리는 건 아주 잠깐이었다.

도쿄 타워 게이트에 몰려든 적을 막은 것뿐.

타 구역 게이트를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까지 한꺼번에 처리하는 건 무리였다.

“은서단! 멍하니 있지 말고 이 틈에 적의 숫자를 줄여!”

이준의 반말에도 은서단은 화들짝 놀라기만 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파천혈신의 제자를 다시 모시기 싫다던 그녀의 의지와는 달리.

몸과 마음은 이미 이준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그녀가 타 구역 게이트로 움직였다.

“이제 우리 둘만 남았네.”

“너, 너!”

“이제 어떻게 하냐. 네 쫄따구인 존자들도 다 죽었는데.”

이준이 지주를 향해 씩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

지주의 얼굴은 수치로 가득했다.

“그러니까 가만히 일본에서만 활동하지, 왜 나를 자극해. 아니었으면 더 오래 살 수 있었잖아.”

“다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

“곧 죽을 거면서 입만 살았네.”

“실수한 거야.”

“뭘.”

“넌 이곳에 왔으면 안 됐어.”

“뭔 개소리야.”

이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묻자 떨고 있던 지주의 음성이 잦아들었다.

“너로 인해 이곳은 더 큰 재앙을 맞이할 거거든.”

지주의 말에 대꾸하려던 이준은 흑염마조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작은 주인! 살생을 멈춰야겠다.]

‘왜?’

[우리가 놈들을 죽일수록 게이트의 힘이 커지고 있다.]

‘뭐!?’

이준이 뒤늦게 도쿄 타워 게이트를 보았다.

파직-

파지지직-

적들이 자폭하지 않았음에도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균열의 양은 더 많아졌다.

‘어떻게 된 거야?’

[게이트가 죽은 자의 영혼까지 흡수한 모양이다.]

‘게이트 근처에서 생명을 죽이면 그 힘이 게이트로 들어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하지만 이 정도로 커질 힘은 아닌데.’

적들이 게이트로 자폭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이는 게 나았다.

자폭은 게이트에 생명, 내공, 마력, 혼. 네 가지를 다 바치는 거지만.

자폭하기 전에 죽이는 건 혼만 흡수하는 거니까.

역천진이 발동하는 조건은 생명, 내공, 마력, 혼.

이 네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지만 열린다.

그게 아니라면 역천진은 작동하지 않는다.

“깔깔깔. 이제 눈치챘느냐.”

“무슨 짓을 한 거지?”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그저 역천진을 역으로 돌렸을 뿐이지. 네 힘이 역천진을 본래대로 작동하게 해 준 거야.”

“역천진을 역으로 설치했다고?”

무표정하던 이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당했다.

그것도 완벽하게.

역천진은 하늘을 거스르는 진법.

세상에 퍼진 생명과 혼을 끌어들이는 진이라 할 수 있었다.

역천진이 계속 펼쳐져 있으면 오행이 망가진다.

오행은 우주 만물의 근원.

물, 나무, 불, 흙, 쇠는 세상을 지탱하는 뿌리였다.

오행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지만 세상이 유지가 된다.

그 어느 하나라도 강성하거나 약하면 부조화로 인해 재앙이 시작되는 법.

이 때문에 역천진은 금지된 진법이었다.

허나 이걸 역으로 펼치면 어떻게 될까.

역천진이란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순천진.

흡수가 아닌, 방출이었다.

오히려 가진 기운을 모아 퍼트리는 것.

이를 순천진이라 했다.

“깔깔깔. 고맙구나. 네 덕에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어.”

“X발. 당했네.”

“넌 어차피 우릴 못 막는다.”

“너희들이 이곳으로 넘어오는 건 못 막지. 하지만 천외천이 하려는 일은 막을 수 있어.”

“호호호.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게 아니냐. 우리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 한들 앞으로 네가 상대할 이들은 괴물이다.”

“백마존을 말하는 거지?”

“그것까지 안단 말이냐? 정말 위험한 놈이구나.”

“천외천에 대해서는 빠삭해.”

“그래서 내가 당한 건가?”

“반성해도 늦었어.”

“하나만 물어보자.”

“그러든지.”

“노괴의 무공은… 어떻게 얻었느냐.”

“날 떠보는 거야? 파천혈신이 살아 있는지 없는지?”

“거짓말은 안 하마.”

“파천혈신의 무공은 각성자 시스템으로 얻었어.”

“그게… 가능하느냐?”

“가능하니까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지. 그리고 사부님은 살아 계셔.”

“사부? 파천혈신을 말하는 건가?”

“어.”

“맙…소사!”

지주가 식겁했다.

두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맺혔다.

그녀의 뇌에 각인된 공포는 생각보다 큰 것 같았다.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건 사실이니깐.’

이준은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떨어져 있을 뿐.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무극자 사부가 있었다.

“원하는 건 다 들었지?”

“하, 하나만 더.”

“저기요. 당신이랑 난 적이거든요?”

“그는 어디에 있느냐.”

“알아서 뭐 하게. 뒤통수쳤으면서 이제라도 사과하게?”

“호호. 사과? 난 그를 배신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과거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부가 어디에 있는지 왜 궁금한데.”

“물어볼 게 있다.”

“뭐.”

“왜… 우리에게 무공을 전수해 줬으면서 제자로는 인정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

“평생 그의 수발을 들었다. 헌데 왜! 날 인정해 주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당신 하는 짓을 봐. 사부가 하지 말란 걸 기어코 했으면서 인정은 무슨.”

“내가 처음부터 이랬는지 아느냐! 그가 날 인정해 줬으면 나도 이러지는….”

“떼는 그만 써. 어린 애도 아니고 사부께서도 이유가 있으셨겠지. 평생 수발을 들었다면서 사부 성격도 모르네.”

무극자 사부를 처음 겪었을 때는 굉장히 무뚝뚝했다.

사제지간이 맞나 싶을 정도.

매정했으며 칭찬에 인색했다.

지금은 어떤가.

그 누구보다 자신을 아꼈다.

자신을 하나뿐인 제자라 하지만 옛일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천외천에 대해서 말할 때는 입을 닫거나 분노했지만 씁쓸함도 묻어났다.

“넌 그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아니. 나도 잘 몰라. 그래도 이것만큼은 알아. 자기가 거둬 키운 사람은 끔찍이 아낀다는 걸 말이야.”

만약 사부가 천지인의 주인을 제자로 여기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사형제가 있다고 말했을까.

황금이 또한 자신에게 대사형이 있다고 이야기까지 했다.

무극자 사부는 그저 저들에게 매정했을 뿐.

천지인의 주인을 제자로 여기고 있었다.

아니었다면 사부의 성격에 배신당하고 그들을 살려 뒀을까.

파천혈신의 이름으로 신마회란 단체를 세상에서 지웠을 터다.

하지만 사부는 은거를 택하지 않았나.

이것만으로도 사부가 천지인의 주인을 제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럴 리 없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지주가 버럭 소리쳤다.

“믿지 말든가. 이제 그만 끝내자. 적하고 너무 말을 많이 했어.”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탁이 있다.”

“이 사람이 진짜!”

“날 상대했던 무공을 사용해 주지 않겠느냐.”

“무극기?”

“그 무공의 이름이 무극기더냐. 그 노괴답구나.”

지주가 피식 웃고는 품에서 부채를 꺼내 들었다.

그녀의 독문병기인 칠풍선이 활짝 펼쳐졌다.

“내가 익힌 무공은 풍뢰공과 구하청뢰선법이다. 무극기에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나 최선을 다하마.”

그녀가 이준을 향해 칠풍선을 휘둘렀다.

미풍이 불더니 칠풍선이 지나간 자리에 뇌기가 들이쳤다.

지주가 진심을 다해 공격하자 이준 또한 무극기로 맞받아쳤다.

콰앙!

회색 아지랑이와 뇌의 바람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 * *

한 전각 앞에서 현판을 조각하고 있던 무극자의 손이 멈췄다.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셋째에 이어 둘째도 죽었구나.”

[슬프시겠어요.]

“슬프긴 누가 슬프다는 거냐. 노부를 배신한 놈이다. 내 손수 응징하지 못한 게 한이야.”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신다. 배신당한 직후에도 무극자 님은 기회가 있으셨어요. 그런데 공자들을 죽이지 않으셨잖아요.]

“쓸데없는 소릴.”

[슬퍼하셔도 돼요.]

“사부를 배신한 배은망덕한 놈이다. 아주 잘 죽었느니라.”

무극자가 버럭 내는 화에 황금이가 한숨을 쉬었다.

제자 앞에서는 그렇게 감정을 잘 숨기더니 자신 앞에서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아아. 공자들 앞에서 진작 사부란 소리를 하셨으면 이런 일도 안 생겼잖아요.]

“누가 내 제자라는 것이냐. 노부가 인정하는 제자는 준이 한 명뿐이니라.”

[저 똥고집.]

“많이 컸구나.”

[무극자 님보다 제가 더 오래 살았어요.]

“크흠. 아무튼 속이 다 후련하다.”

무극자의 말과는 달리 얼굴은 그리 좋지 못했다.

회한이 담긴 표정이었다.

“첫째 놈만 남았어. 그 전에 준이의 관문을 진행해야겠구나.”

[막내 공자가 첫째 공자를 이길 수 있을까요?]

“천살성에 마신지체까지 지닌 아이니라. 준이라면 뜻을 이룰 것이다.”

[무극자 님도 마신지체를 타고나서 피의 길을 걸으셨는데 막내 공자는 천살성의 운명까지 있으니… 걱정이에요.]

“노부의 역천마신지체는 완전한 마신지체라 할 수 없다.”

무극자가 파천혈신이라 불리게 된 건 그의 과거도 있지만 역천마신지체가 가장 결정적이었다.

역천마신지체는 역천과 마신이 반반 섞인 특이한 신체였다.

굉장히 불안정한 신체.

이를 타고난 이는 평생 고독과 피를 보는 악마가 된다고 고서에서도 나왔다.

마신지체이나 마신지체가 아니었던 무극자.

이 저주받은 운명의 굴레에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역천마신지체의 광기는 인간이 버틸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파천혈신이라는 고금제일인이라 이성을 유지한 채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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