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4화
“전생보다 더 강한 것 같은데.”
이준이 허공을 응시하면서 중얼거렸다.
그가 보고 있는 자리는 지주가 있었던 곳이었다.
무극기로 쉽게 이길 수는 있었으나 지주의 무력은 생각과는 달랐다.
“SS급 끝자락도 넘기기 직전이었어.”
지주가 자신과 비등한 무공 등급을 지녔으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다행히 지주의 무공은 자신의 하위 무공.
특히 혼원신공과 무극기에는 무기력할 정도로 약하기에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백마존이나 천주도 더 강해져서 나타나는 거 아니야?”
거의 100% 확실했다.
존자들도 전생과는 달리 경지가 높았다.
자신과 특별반 아이들이 성장하듯이.
천외천 또한 강해졌다.
혼원문의 관문에 들지 않았다면 지주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으리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눈앞에 닥친 상황부터 정리하자.”
지주와 치고받고 싸워서 그런지.
도쿄 타워 게이트의 힘이 충만해졌다.
게이트에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상당했다.
파지직-
곧 터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차피 천외천이 넘어오는 건 못 막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게이트를 어떻게 처리하냐인데.”
이준이 턱을 매만졌다.
이곳은 일본.
한국이 아니었다.
타국이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인가.
특히 일본은 수시로 한국을 넘보던 국가.
이참에 망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스즈키 씨랑 약속한 것도 있으니 살려 줘야겠지?”
마음을 접었다.
일본에서 손을 떼면 많은 생명이 죽어 나갈 터.
타국 사람이라도 생명을 지닌 건 다 똑같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몬스터가 인간을 학살하는 걸 두고 볼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게 일본을 살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조야. 애들 좀 불러야겠다.”
[누구? 테구르?]
“걔 말고 네 부하들 전부 소환 가능하지?”
[가능은 하다. 무슨 생각이지?]
“게이트를 막아야 할 거 아니야. 지주도 죽였는데 가만히 있다가 게이트가 터지면 억울하잖아?”
[오지랖인가? 작은 주인은 선한 역할은 아닌데.]
“나 개착하거든?”
[크크! 들었던 것 중 제일 웃겼다. 큰 주인에게 말해 줘야겠군.]
“이게 날 뭐로 보고.”
[이득 없인 움직이지 않는 인간.]
흑염마조가 팩트를 꽂아 넣었다.
아주 정확했다.
양심이나 생명에 대한 존중은 쥐꼬리만큼만 있다.
이준을 움직이는 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바로 이득.
수지타산이 맞는지 계산하고 행동하는 게 바로 그였다.
“잔말 말고 쫄따구 소환해.”
[그러지. 크크.]
흑염마조의 웃음소리가 이준의 귀에 콕콕 박혔다.
적나라한 비웃음이었다.
이준은 흑염마조에게 1패를 해서 분했지만 참았다.
나중에 되갚아 줄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그가 허공에 손을 내리긋자.
-[몬스터]
[제1군단 샤크로아] - 자율행동(휴식 중)
[제2군단 페어리] - 자율행동(꽃 심기 중)
[제3군단 스케먼] - 자율행동(기강 확립 중)
[제4군단 웨어파드] - 자율행동(기강 확립 중)
+수행할 수 있는 행동
몬스터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창이 떴다.
이준은 수행 행동 앞에 +자를 눌렀다.
-수행할 수 있는 행동
[게이트 공격]
[게이트 방어]
[탐사]
[보급]
[자율행동](현재)
이준은 행동을 모두 공격으로 바꿨다.
이번엔 웨어파드까지 동원했다.
그러자 금역 소속 몬스터들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를 공격하면 되겠습니까?]
[부상자는 놔두고 가도 될까요?]
[스케먼은 이상 없습니다요.]
[저, 저도 출격합니까.]
‘전투가 끝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불렀네. 몬스터가 게이트 밖으로 나와서 너희들이 해결해 줘야겠어.’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싸그리 쓸어버리겠습니다.]
샥쿠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전의 전투로 인해 자신감이 크게 상승한 녀석이었다.
이젠 레드급 몬스터가 아닌, 블랙급 몬스터.
훈련할수록 등급의 성장도 같이 이루고 있었다.
‘준비하고 바로 나와.’
[예!]
[네.]
[알겠습니다요.]
[저, 저도입니까?]
[아직 군기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모양입니다요. 일 끝내고 기강을 확실하게 잡아 놓겠습니다요. 헤헤.]
몬스터 상태창에 기강 확립 중이라더니.
테구르가 웨어파드를 잡고 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봤다면 기절하겠다. 스케먼이 웨어파드의 군기를 잡을 줄 누가 알았겠어.’
스케먼의 등급은 그린에서 블루.
그것도 일꾼 몬스터였다.
공격력은 젬병.
하나 웨어파드는 공격력이 최상위에 속한 몬스터였다.
블루급 몬스터긴 하나 백호의 수호성이기도 했다.
그런 몬스터가 일꾼 몬스터에게 기강을 잡히고 있는 게 말이 되나.
‘족보가 꼬여도 엄청 꼬였네.’
이준이 이렇게 만든 것이다.
이게 바로 계승의 꽃의 위력.
몬스터의 서열도 뒤바꿀 만큼 강력했다.
물론 웨어파드들도 계승의 꽃을 먹으면 서열이 다시 바뀔 테지만 그건 아직 멀었다.
‘이참에 몬스터도 수집해야겠다. 뱀파이어 로드가 꽤 돈이 되니 녀석은 꼭 수하로 둬야겠다.’
이준은 금역의 몬스터에게 명령을 내리면서도 제 이득을 생각했다.
정리를 끝낸 그가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일본의 심각한 균열. 이대로 괜찮은가.]
[일본의 몰락. 영토의 2/3가 균열로 뒤덮인 상황. 다음은 어느 국가일까.]
[극악한 상황 속에 창제의 고군분투! 가문연맹과 마벽에 도움을 요청하다.]
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우리도 위험할 수 있는데 굳이 일본을 도와줘야 함?]
[킹정. 지원군 보내지 말자. 어차피 일본 망했음. 가 봐야 헛수고임.]
[창제가 도움을 요청했다잖아. 일본이 망하면 다음은 한국이라 판단했겠지.]
[마벽에까지 동원 요청한 걸 보면 맞말. 이참에 도와주고 생색내자.]
누구는 도와주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였고 어떤 이는 그래도 이웃 국가인데 자비를 베풀자고 했다.
그들이 서로 의견 대립하고 있을 때였다.
[가문연맹 기사 떴다. 링크!!]
[마벽도 같이 입장을 냈네.]
그들이 기사를 클릭했다.
[가문연맹은 각 가문의 의견을 존중. 참전은 자율적 참가.]
[가문연맹의 잡음. 의견이 한곳으로 모이지 않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가문연맹 소속 대다수가 참전 거부.]
반면 마벽은 간단하게 의견을 일치시켰다.
[마벽의 마련, 살막, 뇌전홍가 전원 참전.]
[가문연맹과 대조되는 마벽. 개과천선을 실천 중.]
이를 본 사람들이 가문연맹을 욕했다.
[와, 가문연맹 개썩었네.]
[뒤통수 쎄게 맞은 느낌임.]
[창제 때문에 관심에 벗어나 있었을 뿐, 연맹 소속 가문은 부패투성이야.]
[모르는 놈도 있었냐?]
[킹받네. 누구는 일본 구한다고 혼자 가서 싸우고 있는데.]
[일본에 혼자 간 것도 내부 싸움으로 인한 거 아님?]
[그건 아니야. 창제 앞에서 기싸움이 가능하냐?]
[ㅆㅇㅈ. 그냥 자기 목숨 아까워서 지원 안 나가는 거지.]
[ㅅㅂㄹㅁ들.]
[저딴 놈들이 각성자라고 설쳐대는 꼴 못 보겠다.]
의견이 갈리던 이들이 어느새 합심하여 가문연맹을 비난했다.
하나의 목표가 생기니 자연스레 동맹을 한 것이다.
한편 검제와 괴개를 비롯한 각성자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검왕, 철왕, 신기학사, 진씨 가주까지.
오대 가문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결집해 있었다.
“이놈은 언제오는고.”
“왔소.”
“시간이 없는데 빨리빨리 안 와?”
괴개가 혈마악, 아니 이제는 혈마가 된 류한길을 나무랐다.
“준비하느라 늦었소.”
“어쭈 말이 짧다?”
“새로운 단체의 수장이 됐으니 괴개께서도 본인을 존중해 주시오.”
괴개가 한마디를 더 하려고 하자 검제가 말렸다.
“그만하고 가자. 우리가 떠드는 사이 일본인들의 목숨이 날아가고 있을 거다.”
검제의 말에 수긍하는 괴개였다.
얼마나 급하면 창제가 자신들을 부를까.
최대한 빨리 일본으로 넘어가야 했다.
“각자 맡은 구역 기억하고 있겠지?”
“예. 전 바로 교토로 진입하겠습니다.”
진씨 가주인 진병철이 대답했다.
“조심하게나. 창제의 말로는 몬스터가 굉장히 강하다고 하네. 카오스 몬스터까지 있으니 몸을 살피면서 싸워야 할 게야.”
“명심하겠습니다.”
“가세.”
검제와 괴개가 몸을 돌렸다.
그들을 향해 검왕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몸조심하세요.”
“오냐. 갔다 오마.”
이에 질세라 철왕도 괴개를 향해 입을 열었지만.
“아버지. 강녕….”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걱정은. 네 몸이나 챙기거라.”
본전도 뽑지 못했다.
그들은 마중 나온 이들을 뒤로하고 땅을 박차며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다.
* * *
이준은 게이트 파괴가 아닌 봉쇄를 택했다.
[블랙존 게이트인 ‘어둠의 숲’을 닫았습니다.]
[타 게이트의 주인이 문을 강제로 닫아 소속 보스 몬스터가 분노했습니다.]
[레드존 게이트인 ‘보물 사냥꾼의 해협’을 닫았습니다.]
[주인이 없는 게이트입니다.]
게이트의 주인이 있으면 격분했다는 메시지가 올라왔지만, 게이트에 주인이 없으면 아무런 것도 뜨지 않았다.
“게이트 밖으로 나온 몬스터는 패턴 없이 죽일 수 있으니 그사이 처치하면 게임 끝이야.”
이준은 도쿄 타워 주변 게이트를 닫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타워 아래에 펼쳐진 역천진.
여전히 생명과 혼, 마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백마존이 소환되는 장소는 여기가 아니야. 그럴 생각이었으면 대놓고 역천진을 펼치지 않았겠지.”
지주의 자신감?
아니다.
지주는 굉장히 철저한 인물.
사람의 심리를 굉장히 잘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싸울 자리에 역천진을 설치한다?
지주를 모른 사람이라면 멍청하다고 생각했을 터.
하지만 지주는 심리전을 자주 거는 적이었다.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다.
“기의 흐름을 파악해 보자.”
이준은 혼원신공을 끌어 올려 역천진의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살폈다.
‘확실히 도쿄는 아니야. 역천진의 기운은 바다를 향하고 있어.’
도쿄의 내륙을 가로지르는 방향.
한국 쪽이었다.
‘한국으로 넘어오는 천외천은 모두 죽였어. 우리나라는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중국인가?’
한국의 옆 나라는 일본만이 아니고 중국도 있었다.
중국은 인주로 인해 무정부 상태.
현재 일본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나마 원래부터 강했던 중국 각성자들이라 지금까지 몬스터에게 버티고 있는 것.
하지만 전과를 달리 확실히 많이 약해져 있었다.
태국이나 베트남이 전력을 다해 중국을 친다면 먹힐 정도였다.
“천외천의 본진은 중국이었으니까 백마존이 소환되는 장소도 중국일 확률이 가장 높아.”
천외천은 무림인이면서 동시에 중국인이기도 했다.
“확실히 알아보자.”
혹시라는 생각에 이준은 마안을 작동시켰다.
역천진의 흐름이 더욱 자세히 보였다.
전까지만 해도 일본 내륙을 넘어 바다로 향하는 게 보였는데 지금은 어떤가.
하늘 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중국이 맞네. 안심하고 게이트를 닫을 수 있겠어.”
일본에 백마존이 나타난다면 상황은 꽤 힘들어진다.
지금 당장만 해도 금역의 몬스터와 흑염마조의 수하들을 모조리 불렀다.
게다가 오대 가문과 마벽도 지원을 오고 있는 상황.
그들이 백마존과 맞닥뜨린다면 피해가 극심할 것이다.
백마존이 중국으로 소환되는 걸 알게 되자 편안해진 이준이 게이트를 닫으려고 움직이려 했다.
“가주…님?”
“…가…주.”
그때 이준을 붙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성이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너희들이 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인주에게 죽었던 사신가의 가솔들이었다.
이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