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4화
그 무렵.
청룡이 사는 게이트에는 천둥 번개가 치고 있었다.
파직-
쾅!
한 줄기 뇌전이 땅에 직격했다.
[이제야 사람답구나.]
청룡의 목소리에도 검을 움직이는 잘생긴 청년.
박혁진의 검이 일자로 그어졌다.
검에서 쏘아진 반월의 기운이 멀리 있는 산에 적중하자 큰 굉음이 들려왔다.
쾅!
잠시 후 드러난 광경은 산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다.
검강도 아닌, 고작 검기에 의해 말이다.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도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그였다.
예전같이 흥분하면서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당연한 듯.
사라진 산을 바로 보다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가 몸을 돌리니 뒤에는 박정연이 서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 정도?”
대신 박정연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호들갑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 같았다.
“전뢰검법이 완벽에 가까운데? 그렇죠?”
[전뢰검법은 대성했고, 뇌신공도 10성에 올랐으니 어디 가서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 깐깐하던 청룡이 박정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수의 말이었다.
어디 가서 죽지 않을 것.
인간의 기준이 아닌 신수의 기준은 가마득하게 높았다.
그런 자가 인정을 한 거다.
“너무 오래 걸렸어.”
“곧 나갈 수 있다는 게 어디야.”
“이제 준이 발목은 잡지 않겠지?”
박혁진은 청룡을 바라봤다.
청룡의 대답이 들려오길 기다렸다.
[혼원의 전인 말고는 너희를 상대할 수 있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태양지체를 타고난 너는 능력을 깨운 순간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운명이다.]
청룡은 박정연을 가리켰다.
그녀는 하늘이 내려 준 천고의 신체를 타고났다.
태양지체의 소유자.
남자라면 모든 사람의 위에 군림하는 제왕의 운명이요.
여자라면 철혈의 여제가 되는 운명이었다.
마신지체와는 정반대의 신체가 바로 태양지체였다.
[단, 조심해야 할 인간이 있다.]
“누군데요?”
[역천지체를 타고난 인간을 조심해라. 그놈만은 꼭 피해야 할 것이다. 네가 태양지체를 타고났다는 걸 아는 순간 역천지체의 소유자는 너만을 노릴 것이다.]
“왜요?”
[마신의 약점이 바로 너이기 때문이다.]
“왜 제가 마신의 약점이에요?”
[그건 차후에 알게 될 것이야.]
청룡도 박정연을 가르치기 전까지 그녀가 태양지체를 가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태양지체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신체.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박정연을 처음 봤을 때 무골이라고만 여겼건만.
뇌신공이 8성에 이르니 환골탈태를 했다.
그리고 갖게 된 게 바로 저 태양지체였다.
박혁진도 똑같이 환골탈태를 겪었지만 그는 근골만 더 좋아졌을 뿐 태양지체를 얻지 못했다.
오직 박정연에게만 나타난 현상.
그때 불현듯 역천지체가 태양지체를 잡아먹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청룡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그녀에게 예언한 거다.
“궁금한데 말해 주시면 안 돼요?”
[그동안 천기를 많이 누설했다. 불가하다.]
청룡의 단호함에 박정연은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면 계속 수련하거라.]
“이제 곧 준이를 볼 수 있겠지?”
“준이는 뭐 하고 있을까? 우리 안 보고 싶나?”
“말하니까 더 보고 싶다.”
“그러니까. 준이가 외로워할까 봐 걱정이야.”
“야.”
“응?”
“그건 걱정하지 마. 나가면 내가 옆에 있을 거니까.”
“누나 그거 알아?”
“뭐?”
“준이는 누나 같은 스타일 극혐해.”
“뒤질래? 아니거든. 준이가 나 좋다고 했거든!”
“걔가 착해서 사람한테 상처를 못 줘.”
“안 되겠다. 오늘 너부터 죽여 줄게.”
박정연이 검을 뽑아 박혁진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관심은 온통 이준 하나였다.
어떻게 해야 친구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몸은 괜찮은지.
혼자 외로워하지는 않는지.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
이곳에 있으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준을 걱정했다.
지켜보던 청룡이 고개를 저었다.
둘의 머리를 열어 보고 싶은 심정.
서로에 대한 믿음과 유대감이 굉장히 깊었다.
[태양지체의 소유자가 좋아하는 혼원의 계승자라… 역천이 이를 가만히 둘지 모르겠구나.]
* * *
미야와키 가문과 조금 떨어진 고층 건물 안.
미즈노 뱅크의 소유주인 미즈노 요시오가 비서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미야와키 절 주변에 뿌려 놓은 사독연이 사라졌어?”
“예. 회장님. 수하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합니다.”
“몬스터의 짓이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긴 몬스터는 그분들에 의해 튀어나온 것이니 몬스터가 미야와키 가를 공격할 이유가 없지. 그러면?”
“미야와키의 손님으로 보이는 남자가 절 안으로 들어간 후에 사독연이 사라졌다는 보고입니다.”
“손님? 누군데.”
“알아보는 중입니다.”
“빨리 알아내. 사사키 가주 님의 근심을 덜어 드려야지.”
“예!”
“강한 놈으로 보내. 미야와키를 도와주려고 온 놈이면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하니까.”
미즈노 뱅크는 사사키 가문에 속한 하부 단체였다.
사사키 가문이 도쿄에 신경을 쓸 때 지방은 하부 단체들이 처리할 수 있도록 일을 위임했다.
미즈노 뱅크는 오사카의 일을 맡았다.
그중 미야와키를 견제하는 게 제일 우선.
원래라면 미야와키를 견제할 실력이 되지 못했으나 사사키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견제가 가능했다.
순수한 힘으로는 미즈노 뱅크가 미야와키를 견제할 수는 없었다.
사사키 가문의 힘과 금력을 이용해 미야와키를 약화시킨 상황.
이대로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른다면 미야와키는 쓰러질 것이다.
“이미 정예들이 가 있습니다.”
요시오가 담배를 입에 물고 창가로 갔다.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솟고 있었다.
미즈노 뱅크가 있는 곳.
아니, 미즈노의 영역은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았는지 아주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의 세상이 되는 게 머지않았어.”
“미리 축하드립니다. 오사카를 다스리게 되실 회의 지부장님.”
“하하. 회의 지부장이라 듣기 좋아.”
“후쿠오카는 이미 게이트 연계를 끝냈다 합니다.”
“우린?”
“저희도 곧 작업이 마무리될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사키 가주님께 잘 보일 기회다. 실수 없이 처리하도록. 가 봐.”
비서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복도로 나온 남자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미야와키 가문의 절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각성자가 전화를 받았다.
“뭐라십니까?”
[회장님의 명이 떨어졌다. 미야와키가로 들어간 남자가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면 죽이라신다.]
“아무래도 위험한 놈인 것 같습니다.”
[근거는?]
“절 안쪽에서 폭발적인 귀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요화를 깨우기 위해서 온 건가?]
“그런 듯합니다.”
[그러면 빨리 죽여. 요화를 못 깨우게 막아.]
“옛!”
그들은 자객의 모습을 한 미즈노 뱅크 각성자가 전화를 끊었다.
“명이 떨어졌어.”
“또 남자만 죽이래?”
“어.”
“미야와키도 끝인데 가주랑 딸은 왜 살려 두는 거야?”
“회장님께서 요화를 얻길 원하신다.”
“잡아다가 고문하면 될 일 아닌가?”
“높은 곳에 있다가 밑바닥에 떨어지면 어떤 기분이겠냐.”
“엿 같지.”
“이후에는?”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려고 발악하지 않아?”
“보통은 그래. 하지만 밑바닥보다 더 아래인 시궁창으로 떨어지면?”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어.”
“영혼을 팔게 되어 있다. 그때 미야와키에 손을 내미는 거지. 회장님의 손을 잡은 미야와키는 평생을 회장님께 충성할 거다. 처참하게 짓밟혀 봤으니, 감히 배신할 생각 따위는 못 한다. 이게 바로 회장님께서 경쟁자를 처리하는 방법이다.”
“무섭군….”
복면을 쓴 각성자가 침을 삼켰다.
그는 미즈노 뱅크 회장을 따른 지 얼마 안 된 신입이었다.
그렇기에 회장의 일 처리가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진행이 너무 더디달까.
그냥 쓱싹 죽이고 미야와키 가문을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 그였다.
하나 조장이 말한 건 몸부터 정신까지 붕괴시키는 방법이었다.
천천히 사람을 무너트려서 꼼짝 못 하게 하는 수법.
인내심 많은 사람이 아니면 시도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제 이 짓거리도 얼마 남지 않았어. 요화를 강제로 끄집어내려는 건 마음이 급해졌다는 말이니까.”
“그 요화가 뭐길래.”
“일이 끝나면 설명해 줄게. 임무부터 하자.”
서로 눈을 마주친 복면인들이 경공을 펼쳐 절의 담장을 넘었다.
예전의 미야와키였다면 비상이 떨어졌을 일.
하지만 가문에 사람이 없는 탓에 쉽게 담을 넘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귀기가 넘치는 곳으로 움직였다.
“무슨 귀기가!?”
“위험해. 빨리 저놈을 죽여.”
복면인들이 연못 중앙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암기를 뿌렸다.
단검과 철질려가 허공을 날았다.
* * *
이준은 혼원신공을 이용해 미야와키 칸나의 몸 안에 봉인된 요화를 자극했다.
그러자 엄청난 귀기가 절 주변을 가득 메웠다.
‘이 정도였어?’
혼원신공이 아니었다면 도리어 저 귀기에 잡아 먹혔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귀기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데? 잘만 하면 괜찮은 조력자를 얻겠어.’
미야와키 칸나의 인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은혜를 입으면 배로 갚는 그녀였다.
미야와키에 절실히 필요한 요화를 깨워 주면 은인으로 모시려 할 터.
그녀를 도와주는 게 손해 보는 건 아니었다.
이만한 귀기라면.
굳이 자신이 키우지 않아도 충분히 강할 듯싶었다.
즉시 전력감이랄까.
‘혼원아 빨리 깨워 봐.’
이준의 생각을 아는지.
혼원신공의 내기가 요화를 자극하는 게 강해졌다.
쿵!
미야와키 칸나의 몸이 들썩였다.
쿵!
다시 한번 충격을 받자.
끼아아악!
귀기가 가득 담긴 비명이 울려 퍼졌다.
‘깨어난다!’
미야와키 칸나의 몸속에서 튀어나온 귀기가 인간의 형상을 띠려는 순간!
암기가 두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
“하. 가만히 있으면 조금 이따 뒤질 건데 그새를 못 참고 나오네. 파랑아.”
“뀨!”
이준의 등 뒤에 앉아 있던 파랑이가 울음소리를 내었다.
“죽이지 말고 제압해.”
“뀨뀨!”
[파랑이가 혹한지옥(SS)를 사용했습니다.]
혹한지옥.
주변을 얼음 지대로 만들어 버리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주변 모두가 얼어붙는 건 아니었다.
허공을 가르는 암기가 있는 곳부터 미즈노 뱅크 각성자가 있는 공간만을 얼어붙게 했다.
쩌억!
순식간에 대기가 얼어붙고 결정체가 생겼다.
미즈노 뱅크 각성자들은 자신들의 몸이 얼어붙었는지도 모르는 사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파랑아. 내가 죽이지 말라고 했잖아.”
“뀨우.”
파랑이가 성질을 냈다.
안 죽였다는 표현이었다.
이준은 살수 쪽을 살폈다.
눈살을 찌푸리고 봤는데 이내 표정을 풀었다.
“안 죽였네.”
“뀨!”
파랑이가 이준에게 몸통박치기를 했다.
왜 자기를 의심하냐는 항의였다.
“미안. 죽인 줄 알았어.”
얼어 버린 살수들에게서 미세한 기가 느껴졌다.
얼음 안에서 살아 있는 모양이다.
“막바지 작업을 해야지.”
미야와키 칸나에게서 깨웠던 귀기가 몸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준은 혼원신공으로 강하게 재차 압박했다.
쿵!
끼아아악!
귀기의 울음소리.
그리고 만들어진 사람의 형상.
미야와키 칸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준은 귀기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은서단인가요?”
[……]
“제 말을 들을 수 있을 텐데요. 못 들은 척하는 건가요?”
[…너는… 아니, 당신은 누구야?]
“이준인데요?”
[어떻게… 마주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거야?]
“마주면 천주를 말하는 건가?”
이준이 되묻자 은서단이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래! 천살신 진무열 그자의 기운과 얼굴이 당신에게서 보인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