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1화
이준은 바닥에 쓰러진 사령존자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무릎을 굽히면서 손을 뻗었다.
복부 아래, 단전이 있는 곳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혼원신공의 내기를 몇 가닥 집어넣었다.
“억!”
기절해 있던 사령존자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몸이 들썩임과 동시에 의식을 되찾은 사령존자였다.
“정신이 좀 들어?”
이준은 그의 단전을 깨부수지 않았다.
그저 단전을 자극해서 기절한 놈을 깨운 것뿐이었다.
“내가 왜 누워… 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던 사령존자가 이준을 보자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랐다.
“다짜고짜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뭘 하긴, 네가 한국에 온 이유를 알아내려고 하는 중이지.”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창제라고 해도 일본인인 나를 아무 이유도 없이 겁박할 순 없습니다!”
사령존자가 버럭 소리쳤다.
그는 이준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이어 예상치 못한 말을 들어 버렸다.
“일본인은 개뿔. 너 중국인이잖아. 어디서 사기를 쳐? 내가 만만해?”
“주, 중국인이라니?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떨리는 눈동자만 봐도 네가 거짓말하는지 알겠다.”
“무, 무슨 헛소리를!”
“중국 이름은 여휘, 지주의 측근인 십이존자 중 한 명. 이래도 내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해?”
이준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지만, 사령존자는 그의 말에 식겁한 상태였다.
자신의 정체를 꿰뚫고 있었다.
곧이어 들려오는 말은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암사회의 표면적인 주인은 월령검 마츠모토 아카기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너희 십이존자가 주인으로 있지. 지주가 이 세계로 넘어오길 기다리면서 말이야. 최근엔 지주가 넘어와서 힘을 회복하고 있고. 내 말이 틀렸나?”
“난 지주가 누군지 모른다!”
“계속 발뺌할 셈인가 보네.”
이준의 입가에 번진 미소는 깊어져만 갔다.
그럴수록 사령존자가 느끼는 압박감은 실로 엄청났다.
‘이놈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빨리 도망쳐야 해.’
그는 이준을 본격적으로 겪어 보지 못했다.
하나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았다.
저 칠흑같이 어두운 눈!
그가 봤던 사람 중 가장 무서운 사람이 지니고 있던 눈동자였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오금이 저린 사람.
천외천의 지존.
천주에게서만 봤던 눈빛이었다.
사령존자가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준의 손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넌 나한테 못 벗어나.”
그 말이 끝나자.
콰드득!
“아아아악!”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이준이 사령존자의 발목을 악력으로 우그러트렸다.
사령존자의 비명에 그의 수하들이 움직였지만.
“내가 움직이면 죽는다고 했지?”
이준이 반대쪽 손을 뻗었다.
사령존자의 수하 중 한 명이 이준의 손아귀에 빨려 들어왔다.
“커헉!”
이준은 손에 잡힌 남자의 목을 그대로 꺾어 버렸다.
우드득!
사령존자의 수하가 너무도 쉽게 목숨을 잃었다.
이렇다 할 저항도 못 한 채 죽은 것이다.
동료의 죽음에 움직이려던 나머지 수하들은 돌이 되었다.
“숨소리도 내지 마. 옛날 생각하면 너희 모조리 다 찢어 버리고 싶으니까.”
사령존자 때문에 박혁진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나.
검룡이란 멋들어진 칭호에서 검귀로 변한 이명도 이 때문이었다.
검을 사용하던 팔을 잃었으니 얼마나 분통하고 가슴이 찢어졌을까.
이후 왼쪽 팔을 혹사해가며 좌수검을 익혔다.
힘듬에도 티를 내지 못한 박혁진.
그에겐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미래.
그가 쓰러지면 대한민국은 천외천의 손아귀에 찢기고 갈라져 공중분해 될 게 뻔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처절하게 싸웠던 박혁진을 봤기에 세작질을 한 사령존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최대한 잔인하게.
서서히 고통을 주며, 옛일을 갚아 주는 게 이준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박혁진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챙겨 준 친구였으니까.
이준은 사령존자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빨부터 시작할래 아니면 손가락으로 할래?”
그의 손이 움직이자 사령존자의 턱이 위아래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 * *
“끄아아악!”
사령존자의 비명이 게이트를 가득 메웠다.
피범벅이 된 얼굴과 몸.
대체 고문을 어떻게 했길래 사람이 걸레짝이 되었을까.
손톱은 모두 빠져 있었으며 발목은 절단된 상태였다.
총알이라도 맞았는지 몸 곳곳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기까지 했다.
“다, 다 말할 테니 그, 그만 끄어어억!”
“네가 말하고 싶다고 해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내 허락이 있어야 하지. 안 그래?”
이준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사령존자의 수하들이 벌벌 떨고 있었다.
그의 질문에 고개만 격렬하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두려움에 이성을 잃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
이준의 얼굴에도 피가 조금 튀어 있었다.
그 모습이 피가 흥건한 것보다 더 공포스러웠다.
“봐. 네 부하도 동의하잖아.”
“끄으으으….”
“그래도 말은 할 수 있게 치아는 남겨 놨어. 나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부터 하나씩 뺄걸?”
이준이 하얀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사령존자의 팔을 눌렀다.
“끄아악! 제, 제발 그만 끄윽!”
손가락은 피부를 천천히 파고들었다.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라는 듯.
손가락이 피부를 뚫고 뼈에 닿았다.
우직끈!
뼈가 부서지자 사령존자의 비명도 커졌다.
그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기절했지만, 가만히 놔둘 이준이 아니었다.
“이러면 재미없어. 고문은 너희가 잘하는 거잖아. 당하는 것도 잘해야지.”
혼원신공의 내공을 사령존자의 몸에 주입 시켜 기력을 돋우었다.
엉망이 된 기혈이 붙고 상처가 치료되자 잃었던 정신을 되찾은 사령존자였다.
이준은 그가 기절하면 깨우고 다시 고문하기를 반복했다.
이 행동을 계속하자 사령존자의 얼굴이 50년은 늙었다.
“제발… 날… 죽여 줘.”
“귀중한 인재를 쉽게 죽일 순 없지.”
자살도 하지 못하게 이미 조치한 상태.
이준 허락 없이는 죽지도 못했다.
“원하는… 게… 뭐 크윽… 야….”
“예열을 아직 다 못 했는데, 네가 원하니 본론으로 들어가주지. 지주 지금 뭐 하고 있냐?”
“…너도 알고 있지 않나….”
“지구로 넘어와서 힘을 회복하고 있는 거?”
“그래….”
“그러면 다르게 물어보자. 내 가문에 카오스 게이트를 연 게 너희들이지?”
“…….”
“어쭈? 바로 대답 안 하네?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이준의 손이 움직이는 걸 본 사령존자가 입을 열었다.
“맞다.”
“이유는? 하급 카오스 게이트를 열어서 너희가 취한 이득이 뭐지?”
“죽은 인주를 깨웠다.”
“뭐라고!?”
이준이 뾰족하게 소리쳤다.
인주를 깨웠다니.
말도 안 된다.
인주는 분명 자신의 손에 죽었다.
천살성과 동화하여 완전히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자세히 말해 봐.”
“…이건 몰랐나 보구나….”
“닥치고 빨리 말해.”
“인주의 영혼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인주의 영혼을 깨우려면 막대한 힘이 필요할뿐더러 의식이 진행될 때면 주변으로 그 힘의 파동이 전해지지. 카오스 게이트는 그 파동을 감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리고 너희 가문의 힘도 확인해 볼 겸 게이트를 일으킨 것이기도 했고.”
“골치 아프게 생겼네.”
“네가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지주께는 안 된다.”
“인주 놈 부하들도 다 그렇게 말했어.”
“큭큭! 십선과 우리 십이존자를 같은 선상에 놓지 마라.”
“됐고, 너희가 앞으로 할 일이나 말해.”
“고통 없이 죽여 주겠다면 말하겠다.”
“약속할게.”
이준의 눈은 거짓이 없었다.
이에 사령존자는 암사회의 일을 토해 냈다.
“우린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카오스 게이트를 열 것이다.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면 세상은 엉망이 되겠지.”
“일반 게이트보다 더 위험하긴 해.”
“무엇보다 카오스 게이트의 균열은 또 다른 카오스 게이트를 불러오니 한 번 열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너같이 강력한 힘을 가진 자가 아니면 막거나 정화하긴 힘들 터. 결국에는 세계 각국이 모여 평화 기구를 만들 거고, 그 기구의 핵심은 우리 천외천이 될 것이다.”
“평화 기구는 현시대에서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울…! 설마 세계 각국 정상을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계획인가?”
지주 측이 위험한 건 바로 인간을 강시화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뜻대로 조종하기 위해 영혼을 소멸시키든지 아니면 아예 마음을 개조시키든지.
섭혼, 현혹, 강시술 같은 잡기의 대가가 바로 지주 측 인원.
천외천이라면 세계 각국 인사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크크크.”
사령존자가 음흉하게 웃었다.
이준은 그 웃음에 다른 게 더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천외천의 최종 목표는 천주를 지구에 강림시키는 거야. 전생의 사건을 생각해 보면 카오스 게이트가 나타나고부터 빠르게 천주 측 인원이 지구로 넘어오기 시작했으니까 아마 카오스 게이트와 세계 각국 정상들은 천주를 불러오기 위한 제물이 되겠지.’
다른 게 또 있을 테지만 중요한 건 여기까지였다.
나머지는 지주 측과 부딪혀 보며 알아내는 게 나을 터다.
“내가 아는 건 다 말했으니, 이제 날 죽여 다오.”
“약속이니까 원하는 대로 해 줄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주는 못 이길 것이다.”
“걱정 고맙다.”
이준의 몸에서 무극기가 뿜어져 나와 사령존자와 수하들을 덮쳤다.
“케헥!”
“억!”
“끄으으.”
그들이 목을 움켜잡고 발버둥 쳤다.
무극기는 그들의 내기를 전부 빨아들이곤 이준의 몸으로 돌아왔다.
내기가 전부 빨려 나간 사령존자의 수하들은 목내이가 되었다.
앙상한 뼈만 남은 시체.
이준은 허리춤에 있는 파멸겁을 꺼내 들었다.
철컥-
기본 형태에서 제2 단계로 변한 파멸겁을 사령존자의 몸에 꽂아 넣었다.
푹 소리와 함께 파멸겁이 불타올랐다.
끼아아악-!
파멸겁 위로 연기가 빠져나오면서 비명을 지르고 사라졌다.
“영혼을 완전히 지우면 소생은 못 시키겠지.”
인주 때는 죽이기만 했지. 지금처럼 흑염으로 영혼까지 말살하진 못했다.
지주가 인주도 살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뒤처리도 완벽하게 했을 터.
인주의 영혼이 강해 지주가 그를 살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대충 들었지?”
파멸겁으로 사령존자의 수하까지 없앤 이준이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천외…천이었어?”
“응. 너희가 상대한 놈들은 강시였고.”
“강시!”
“어쩐지 이상하게 고통을 느끼지 못한 것 같더라.”
“그래도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야.”
학생들의 특수한 교복은 여기저기 찢어졌고, 그 사이로 상처도 보였다.
“오늘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천외천인지 아닌지 판단할 자료를 만들어야겠어.”
“동감이야.”
한지유는 예감이 적중했다는 얼굴이었고, 박은비는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 천외천의 탈을 쓴 자라니.
사람 좋은 웃음을 한 건 정체를 숨기기 위한 수법.
하마터면 저들의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고 여겼다.
“천외천의 얼굴을 모두 아는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
이준이 박은비를 다독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시험을 진행해.”
“알았어.”
“선생님! 하나만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진경수가 손을 번쩍 들며 가려던 이준을 붙잡았다.
“뭔데요?”
“적들은 어떻게 게이트에 들어왔습니까?”
“아무래도.”
이준은 사령존자가 있던 자리로 가서 하나의 돌을 집어 들었다.
파멸겁의 열기에도 불탄 흔적이 없는 돌.
이준은 그 돌을 학생들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이것 때문일 거예요. 개방의 돌이라고 게이트를 강제로 여는 아티팩트입니다. 설마 이게 지금 나올 줄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