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0화
지잉-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사령존자.
그의 눈에 거대한 세계수가 보였다.
세계수가 있는 곳이 게이트의 중앙.
그와 부하들은 세계수로 향했다.
채쟁챙챙!
도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어느 지점에 도달하자 걸음을 멈췄다.
“잘 싸우고 있군.”
“개입할까요?”
“아니다. 조금 더 지켜보자.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극적으로 나타나 줘야지.”
사령존자와 수하들은 멀리서 싸우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수백 명과 여덟 명의 싸움.
나이가 어린 것치곤 정말 잘 싸우고 있었다.
“경이로운 광경이군. 삼악은 초절정, 이 세계의 등급으로 AA급 초입과 완숙에 든 놈들 아닌가? 그런 놈들을 상대하고 있다니 후기지수의 수준을 뛰어넘는 아이들이야. 구미가 당기는군그래.”
“수라강시의 맹공도 버티고 있습니다. 강시로 만들면 요긴하게 잘 쓰일 것 같습니다.”
수라강시는 목석같은 남자들을 말했다.
이지를 상실한 채 주인의 명령만 따르는 종.
초절정 고수를 상대로 개발된 강시였다.
“하지만 버티는 것도 이젠 끝이군.”
사령존자의 말대로 학생들이 점점 밀렸다.
순간, 수라강시의 힘이 강해졌다.
몸에서 엄청난 사기가 뿜어져 나온 것.
그때부터 학생들의 몸에 난 상처가 많아졌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직이다.”
사령존자는 학생들이 좀 더 밀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할 때야말로 자신이 나타날 타이밍이라 여겼다.
수라강시의 손톱이 단발머리 여자의 심장에 파고들려는 순간!
“지금이다!”
사령존자의 몸이 움직였다.
꺼지듯 사라진 신형.
그가 나타난 곳은 수라강시의 바로 뒤편이었다.
퍼석!
사령존자의 손에 수라강시의 머리통이 단번에 부서졌다.
뇌수가 줄줄 흐르며 몸만 남은 수라강시가 옆으로 쓰러졌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단발머리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죽을 줄만 알았던 단발머리 여자.
박은비가 눈을 뜨고 남자를 봤다.
20대 후반에 호감형 얼굴을 가진 남자가 보이자.
“가, 감사합니다.”
저도 모르게 고맙단 인사를 한 박은비였다.
“그, 그런데 누구세요? 어떻게 게이트에 들어오셨어요?”
“게이트가 열려 있길래 들어왔는데 너희가 위험해 보여서 개입했어. 사정은 나중에 말하고 여기부터 정리하자.”
“네? 네.”
사령존자는 수하와 대화를 나누던 말투가 아니었다.
평범한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가 종을 든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뒤로 뺐다.
딸랑!
종소리가 났다.
동시에 수라강시는 한층 더 난폭해졌다.
“소울디펜스는 몬스터를 소탕한다!”
“예! 마스터.”
사령존자의 명령에 아홉의 수하들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끝나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학생들이 해치웠던 고스트웍이 바닥을 뚫고 나타나는 게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령존자의 힘에 의해 데스템플러도 일어났다.
그 모습에 박은비가 놀라서 외쳤다.
“강령술!?”
고스트웍과 데스템플러가 수라강시와 격돌했다.
고스트웍만 있다면 몰라도 데스템플러까지 있었다.
아무리 수라강시라도 데스템플러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퍼벅!
쾅!
데스템플러의 검강과 흑마법이 공중을 수놓았다.
학생들과 싸울 때보다 더 강한 것 같은 데스템플러들.
되살아난 몬스터의 활약 덕에 수라강시가 괴멸 직전이었다.
이제 남은 건 삼악뿐.
사령존자는 수하에게 고갯짓을 했다.
사령존자와 수하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삼악이 빈틈을 보이자 등에 비수를 꽂아 넣었다.
푹!
“컥!”
“비, 비겁한!”
“여기서 허무하게…!”
기습에 쓰러진 삼악이 울분을 토했다.
전리품을 가지고 일본으로 가면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었는데,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대결이 아닌, 기습으로 인해 말이다.
삼악으로선 굉장히 억울한 일이었다.
“후욱… 후욱….”
“꼬추를 허억… 떼버렸어야 했는데 젠장!”
“산 게 어디냐 하악….”
몬스터와 싸우고 내공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삼악과 싸웠다.
연일 벌어진 격전에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
바로 엎어져 쉬고 싶었지만, 새로 나타난 이들을 경계했다.
죽었던 고스트웍과 데스템플러가 되살아난 상황.
삼악이 쓰러졌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었다.
숨을 고른 한지유가 사령존자를 향해 말했다.
“도움은 감사해요. 그런데 이곳에 어떻게 들어오셨죠?”
학생들이 무기를 들고 있는 걸 본 사령존자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아차, 미안. 얘들 때문에 이러는구나.”
그러자 되살아났던 고스트웍과 데스템플러가 허물어졌다.
바닥에는 가루만 남았다.
바람이 불자 가루는 허공에 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됐지? 경계 풀어도 돼.”
“제 질문에 먼저 대답해 주시겠어요?”
모르는 사람의 호의를 공짜로 받는 건 위험한 일.
특히 게이트 안에서는 더 경계해야 했다.
“레드존 게이트를 공략하러 가는 길에 지나가다가 쓰러진 사람을 봤어. 그가 말하길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이곳에 악인들이 들어갔다고 해서 우리도 들어온 거야. 막상 들어와 보니까 너희가 공격받길래 개입한 거고.”
사령존자의 해명 같은 말에 그의 수하가 발끈했다.
“마스터. 그냥 가시죠. 목숨을 구해 줬음에도 오히려 저희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냥 도와주지 말고 가자고 했잖아요.”
“착한 마스터 때문에 우리만 고생이지.”
사령존자의 수하들이 불만을 터트렸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길드장과 길드원의 대화 같았다.
그래서일까.
생명의 구함을 받은 박은비가 나서서 상황을 중재했다.
“지안아. 저분이 내 목숨을 구해 줬어.”
“저도 봤습니다.”
허수까지 나서서 말하자 그제야 한지유가 의심을 거뒀다.
삼악도 게이트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이고 못 들어올까.
문제는 삼악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서슴지 않고 들어와서 도와준 행동이었다.
한지유는 이 부분이 찜찜했다.
‘삼악이 게이트에 들어갔단 말을 듣고도 따라 들어왔어. 정의의 사도일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예상한 사령존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정체를 안 밝혀서 의심하는 것 같으니 시원하게 말해야겠다. 난 야마시타 쿄스케, 일본에서 활동하던 각성자야.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어.”
“사령존자!?”
“저 사람이 그 유명한 사령존자라고?”
“사령존자가 그렇게 유명합니까?”
허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박은비가 대답해 줬다.
“힘없는 사람들과 이재민들을 도와주며 얻은 게 사령존자란 이명이야. 일본에서는 꽤 유명해. 우리나라에서는 아는 사람만 알지만.”
“이제 우리에 대한 의심이 풀린 건가?”
사령존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웃었다.
그 안에 숨겨진 음흉한 속내.
하나 겉모습으로는 절대 그의 뱀 같은 마음을 파악할 수 없었다.
* * *
무사고 본부석은 안절부절못했다.
한민성은 다리만 떨 뿐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게이트에 손녀가 두 명이나 있는 괴개도 마찬가지.
묵묵부답이었다.
특히 진병철은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싸우고 있는 진경수를 보며 응원하기까지 했으니까.
“이참에 저 변태 놈의 고추를 확 뽑아 버려서 네 이명을 높이거라 아들아.”
그들의 태도에 선생들이 더 난리였다.
“진 가주님은 아들이 걱정되시지 않습니까?”
“한지유 학생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신기지가에 큰 타격이 있을 거예요. 한 이사장님. 뭐라고 말씀 좀 해 보세요.”
“암독 어르신, 정말 이대로 보고만 계실 겁니까?”
“지금이라도 가서 놈들을 죽여야 합니다.”
탁!
괴개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자 선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창제가 지켜보자고 하지 않더냐.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괴개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도 손녀들이 걱정스러운지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이준은 팔짱을 낀 채 시선을 화면에 고정하고 있었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하나였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삼악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목석같은 남자들만 눈여겨보고 있었다.
‘수라강시야. 천외천이 이렇게 멍청하게 모습을 드러내진 않을 텐데.’
수라강시만으로는 정보가 부족했다.
강시를 조종하는 남자도 모르는 얼굴.
지켜보면서 정보를 얻어 내야 했다.
무엇보다 적들의 행동이 수상했다.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상한데, 나타났으면 학생들을 빨리 제거하고 사라지는 게 정상 아닌가?
헌데 남자는 수라강시의 힘을 최대한 늦게 끄집어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학생들이 위험에 처했음에도 지원을 가지 않은 것이다.
‘뭐지? 대체 뭘까?’
그때였다.
선생들이 다급하게 비명을 질렀다.
“악.”
“저, 저!”
“위험해!”
화면에는 수라강시의 손톱이 박은비의 심장을 노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준의 눈썹이 꿈틀거린 순간 어떤 남자가 나타나 박은비를 구해 줬다.
“하아아. 다행입니다.”
“십년감수했어요.”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화면에 잡힌 한 남자.
그를 보자 이준이 벌떡 일어났다.
‘너였구나!’
수라강시가 한국에 나타난 이유.
그건 바로 사령존자 여휘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위장 잠입을 하려나 본데 너 오늘 잘 걸렸다.’
옛날이었으면 몰라도 미래를 아는 이상 당해 줄 수는 없었다.
이준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제가 갔다 올게요.”
새로운 남자의 등장에 드디어 이준이 움직이려 하자, 검제와 괴개가 빠르게 눈치챘다.
“저 사람 때문이오?”
“창제의 관심을 받은 남자라… 좋은 쪽이오 아니면 나쁜 쪽이오?”
“보시면 알아요. 갔다 오겠습니다.”
이준이 본부석을 나서 생명의 샘 게이트로 갔다.
무극군림보를 사용하여 금방 도착한 게이트.
그 어느 때 보다 빠르게 행동했다.
자신이 움직인 사이 사령존자가 사라지면 안 되니까.
‘네 정체를 아는 이상 단물을 쪽쪽 빨아 줄게.’
전생에 사령존자가 한국에 나타났을 때는 무명과도 같았다.
일본에서는 유명했지만, 한국에서 아는 사람은 몇 없었다.
천외천에 대항하면서 유명해졌다.
나중에는 한국에서 활동하며 이명을 알렸지만, 그 모든 게 가짜.
박혁진의 별동대가 번번이 천외천에게 패배했던 이유가 바로 사령존자의 세작질 때문이었다.
작은 전투에선 이기게 했지만 큰 전투에서는 거의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했다.
박혁진이 한쪽 팔을 잃은 것도 사령존자 때문이었다.
‘오늘 잘 걸렸다.’
이준이 이를 갈며 게이트로 들어갔다.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다행히 아직 게이트에 남아 있는 사령존자였다.
뭐가 재밌는지 저렇게 웃고 있는지.
곧 웃음이 아닌, 통곡으로 게이트를 꽉 채울 생각이었다.
이준이 일부러 기운을 뿜어냈다.
학생들도 그의 기운을 눈치챘는지 허수가 소리쳤다.
“선생님입니다!”
“선생님!”
“준아!”
“우리가 걱정돼서 온 거야?”
아이들이 반가워하며 인사를 했지만 이준의 시선은 사령존자에게 꽂혀 있었다.
그가 사령존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전 소울디펜스 길드장 야마시타 교스켁!”
이준의 얼굴을 잘 알고 있는 사령존자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사령존자는 인사는커녕 이준의 무지막지한 권경을 맞아야 했다.
얼마나 강하게 때렸는지 얼굴이 뭉개졌다.
뿐인가.
주먹질 한 번으로 기절까지 했다.
이준의 행동에 학생들의 얼굴이 뜨악해졌다.
이곳에 오자마자 냅다 사령존자에게 주먹을 꽂아 넣었으니까.
학생들은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사령존자의 수하들이 기겁하며 이준에게 따졌다.
“마스터!”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이유를 말해 주셔야 할 겁니다. 안 그러면 한국에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그들의 항의에 이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닥치고 가만히 있어. 너희가 이곳에 왜 나타났는지 알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살고 싶으면 아가리 다물어라. 우선은 이 새끼부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