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6화
“윽!”
허수의 참마도가 검에 의해 뒤로 밀렸다.
힘하면 그였는데 데스템플러에게 밀린 거다.
자존심이 상했으나 화도 내지 못했다.
데스템플러의 검기와 마법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으니까.
콰쾅!
결계에 검기와 암흑 마법이 적중했다.
“수야. 빠져. 내가 선두에 설게.”
진경수의 신호에 허수가 옆으로 빠졌다.
진경수가 앞으로 치고 나가면서 데스템플러의 가슴을 주먹으로 뭉개 버렸다.
허수와 정예나가 서포트 하면서 데스템플러를 해치웠지만.
동족이 죽거나 말거나 데스템플러는 결계를 향해 공격했다.
검강으로 데스템플러를 썰고 있던 한지유가 소리쳤다.
“뒤로 빠져야겠어요. 이러다간 현무진을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망가지겠어요.”
“오케이.”
진경수네 조가 뒤로 몸을 뺐다.
달라붙은 데스템플러의 머리를 독수로 녹여 버린 정예나를 끝으로 모두 결계 뒤로 왔다.
쿵쿵!
결계 안은 검기와 마법의 충돌로 흔들렸다.
“깨지는 거 아닙니까?”
허수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현무진에 금이 심하게 가기 시작했다.
제일 큰 금이 일자로 갈라진 순간 현무진은 깨질 것이다.
허수의 말에 이지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괜찮아요.”
그들은 몬스터가 현무진 안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쩌억!
결계의 균열은 더욱 심해졌다.
검기와 암흑 마법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가슴을 졸이고 있을 때.
“다행이다.”
한지유의 입에서 안도의 말이 흘러나왔다.
데스템플러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원거리 공격을 포기하고 근접 공격으로 전환한 것.
그들은 현무진을 향해 검을 세우며 돌격해 왔다.
데스템플러가 현무진으로 들어오자, 한지유가 진법을 가동했다.
“진 안은 안개로 가득할 거예요. 생문은 작은 웅덩이예요. 나오려면 그곳으로 몸을 던지면 돼요.”
“자, 다시 가 보자.”
진경수네 조와 박은비네 조가 현무진으로 들어갔다.
다음으로 이지안이 들어가려는데 한지유가 붙잡았다.
“지안아.”
“네.”
“데스템플러 중에 마법만 사용하는 몬스터를 봤지?”
“네.”
“그 녀석들을 해치워 줘. 난, 숨어 있는 중간 보스 몬스터를 찾아볼게.”
생명의 샘 게이트의 공략 방법은 이준에게 미리 듣고 왔다.
데스템플러들 속에 중간 보스가 숨어 있다는 것.
놈을 처치해야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할 수 있지.”
“맡겨 주세요.”
“빠르게 부탁할게.”
“네.”
한지유가 현무진으로 들어갔다.
이지안은 아직 현무진에 들어오지 않은 데스템플러를 향해 땅을 박찼다.
결계 밖으로 나온 이지안을 보자 데스템플러의 손에 암흑 마법이 맺혔다.
마법만 사용하는 데스 템플러의 수는 열.
검은 그저 장식인 듯, 이지안이 접근해 오는데도 암흑 마법을 날렸다.
보랏빛 화살 수십 개가 허공을 갈랐다.
이지안은 달려가는 속도를 늦추곤 창으로 바닥을 후려쳤다.
“현무의 벽.”
쾅!
흙먼지가 하늘로 튀어 올랐다.
동시에 얼음이 생성되며 흙먼지를 덮었다.
이지안 앞에 생긴 얼음벽.
보랏빛 마법 화살은 그 얼음 벽에 부딪혔다.
먼지가 자욱이 났다.
시야가 가려진 상태.
이지안은 먼지에 몸을 숨기며 데스템플러에게 접근했다.
퍽!
그녀의 손에 들린 백설이 데스템플러의 두개골에 박혔다.
우선 하나.
머리에 박힌 백설을 반대편에서 뽑아 다음 공격을 펼쳤다.
그녀가 펼친 보법은 호보.
호랑이의 발걸음이라 해서 한 번 발을 떼면 반드시 사냥감을 잡는 무공이다.
공격적인 호보가 보조해 주니, 창을 휘두르기 훨씬 수월했다.
그녀의 창이 허공을 일직선으로 갈랐다.
번쩍이면서 하나의 날카로운 기운이 데스템플러를 훑고 지나갔다.
선명한 창기.
검강의 힘을 담고 있는 냉기의 기운이었다.
[적이다!]
[죽여라!]
[지저의 군주에게 제물을!]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되레 데스템플러의 화만 돋우었다.
놈들의 앞에 보랏빛 구체가 생겼다.
점점 커지는 암흑의 기운.
아홉 마리의 데스템플러가 힘을 모아 마법을 펼쳤다.
구체의 힘이 정점에 달하려던 찰나.
이지안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월광.”
쩌적쩍쩍-
그녀의 소리에 맞춰 주변이 얼음 왕국으로 변했다.
대지며, 공기며, 데스템플러며, 구체며.
검은 하늘에 뜬 달마저 하얗게 만든 스킬.
현무계 무공인 월광이었다.
이지안이 마지막으로 창을 그었다.
얼어붙은 모든 게 부서지면서 사라지는 생명.
그렇게 데스템플러 아홉 마리는 영원히 소멸되었다.
“…음.”
이지안의 몸이 휘청였다.
구음절맥이란 사기급 특성을 가졌으나.
그것마저도 힘들게 하는 무공인 월광.
현재 그녀의 몸에는 내공 한 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로선 최선을 다한 공격이었다.
* * *
“……!”
“아닛!”
검제와 괴개의 눈이 커졌다.
이지안의 실력에 기겁한 것이다.
“차, 창제… 저 무공은 대체 무어란 말이오?”
검제가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이준의 무공을 제외하고서라도 이지안이 지닌 무공은 범상치 않았다.
데스템플러 아홉 마리를 단숨에 격살해 버린 빙공.
악인 중 한 명인 빙악의 빙백신장보다 훨씬 강한 빙공으로 보였다.
웅성웅성.
선생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지안의 나이는 고작 17살.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어린아이였다.
아직 무공이 개화하기 전.
17살에 무공이 완성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천재 중의 천재라는 박혁진 또한 18살에 A급을 달았으니까 말이다.
“입학식 날은 어떻게 된 거지?”
“제 실력을 다 보이지 않은 게 아닐까요?”
“실력을 숨길 정도로 강한 각성자라 이 말입니까?”
“창제님의 말을 들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이준에게 향했다.
그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이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사신수호무라는 무공이에요. 앞으로 저희 신력. 아니, 곧 사신가로 바뀔 가문의 대표 무공이 될 겁니다.”
사신가, 사신문.
가문의 이름을 고심한 끝에 사신가로 정했다.
“사신수호무라….”
“허, 저렇게 강한 빙공은 처음 보오.”
검제와 괴개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감탄만을 연발할 뿐이었다.
그보다 선생들은 다른 부분에서 난리가 났다.
“신력의 이름을 버린단 말씀이십니까?”
“그 유서 깊은 가문의 이름을 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가문의 이름을 바꾸는 건 쉽지 않았다.
신력권가란 이름이 대한민국을 떠나 해외에서도 유명한데 갑자기 바꾸면 어떻게 되겠나.
유명세가 싹 사라질 것이다.
몇몇 이들은 바뀐 이름으로 기억할 수 있겠지만, 명성은 다시 쌓아야 했다.
가주들이 가문명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였다.
명성을 다시 쌓는다는 건 그만큼 힘들었으니까.
이준은 그 유서 깊은 가문명을 버리려는 것이다.
창제니까 가능한 이야기.
검제라도 어림없었다.
“저희 가문은 이미 신력의 무공을 전부 포기한 상태예요. 그러니 앞으로는 신력이 아닌, 사신가로 불러 주세요. 조만간 공식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니 그렇게 알고 있으시면 될 것 같네요.”
“시, 신력의 무공을!”
“수, 수미천왕신공도 말입니까?”
“네. 포기했어요.”
“S급 무공을 포기하다니.”
“S급 무공을 버릴 용기에 찬사를 보내야 하나.”
선생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대부분이 아깝다는 얼굴이었다.
“자네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수미천왕신공보다 저 아이가 사용한 무공이 더 나아”
“그래서 등급이 어떻게 되오?”
“비밀이에요.”
괴개의 물음에 이준이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해 주지 않았다.
여기서 SS급 무공이라 그러면 파장이 심할 터.
그냥 넘기기로 했다.
물론 그냥 넘어갈 괴개가 아니었다.
[검제의 손자나 손녀가 SS급 무공을 지녔다고 하던데, 저 아이도 SS급 무공이 맞소? 내 말 안 할 터이니 나한테만 슬쩍 이야기해 주시오.]
대답 안 하면 계속 물어볼 기세였다.
[생각하시는 바입니다.]
[역시! 대체 SS급 무공은 어디에서 얻는 것이오? 게이트는 아닌 것 같고. 창제의 사부님이오?]
[비슷합니다.]
[허. 창제의 사부란 분이 누구기에… 이름이라도 알려 주시면 안 되오?]
[안 됩니다.]
이준이 단호하게 전음을 보내자, 괴개가 단념했다.
사부에 대해선 이야기를 안 하는 이준이었으니.
물어봤자 헛수고일 게 뻔했다.
괴개는 고개를 돌려 화면에 비친 이지안을 보았다.
“다음에는 또 어떤 무공을 사용할지 궁금해. 빨리 내공을 회복에서 싸웠으면 좋겠는데.”
빙공만으로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른 무공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임팩트가 강할 터.
기대감이 무럭무럭 솟았다.
검제도 괴개와 같은 생각이었다.
* * *
현무진 안은 안개로 가득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데스템플러들이 사방으로 마법을 쏘아 댔다.
쾅쾅!
하나 목표가 보이지 않으니 마법은 애꿎은 땅바닥만 때렸다.
퍼석!
한 마리의 데스템플러가 가슴이 뚫린 채 죽었다.
다른 데스템플러는 독수에 녹아 죽었고, 팔과 다리가 잘려 바닥을 기다가 목숨을 잃는 녀석도 있었다.
장시간에 이어진 싸움에 학생들도 점점 지쳐만 갔다.
“허억… 허억… 끝이 없다….”
“…하악… 난 이제 내공이 동났… 하악… 어.”
“…후욱…. 제가 마무리 하겠습…니다.”
허수가 도를 세웠다.
바닥을 드러낸 내공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몇 마리 남지 않은 데스템플러.
처리하고 쉬면 된다는 생각에 무리를 했다.
허수의 도강이 사선을 그으며 데스템플러를 갈랐다.
퍼석!
수 마리가 한꺼번에 재가 되었다.
박은비네 조도 힘을 내며 마지막 몬스터를 해치웠다.
“허억허억!”
“아직 중간밖에 안 왔다니 후욱!”
“선생님한테 훈련을 안 받았으면 진작 쓰러지고 말았을 거야.”
전륜마멸진을 이루던 학생들이 전부 바닥에 드러누웠다.
딱 한 명.
한지유만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기감을 활짝 넓힌 채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지유야. 너도 와서 쉬어.”
정예나가 한지유를 불렀지만, 그녀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계속 집중했다.
한지유의 행동에 바짝 긴장한 학생들.
상급 레드존 게이트라는 걸 잊으면 안 됐다.
한지유가 안개를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러다 검을 번개같이 휘둘렀다.
서걱!
검에 베인 하나의 그림자가 비명을 토했다.
[케켁!]
“어둠에 숨어 있으면 모를 줄 알아?”
한지유의 검이 그림자를 재차 베었다.
하지만 살을 베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날 알아보는 인간이 있다니 위험해.]
그림자는 한지유를 경계했다.
그러면서 마력을 서서히 끌어 올렸다.
이상함을 느낀 한지유가 검강을 휘둘렀다.
서걱!
[케엑!]
이번에는 그림자를 벴다.
하지만 이미 그림자는 자신의 일을 다 했다.
[일어나라. 나의 악령들이여!]
그 말을 끝으로 연기처럼 사라진 그림자였다.
[중간 보스 몬스터인 ‘데호칸’을 제거했습니다.]
[데호칸의 부하들이 흑마법에 의해 되살아났습니다.]
[데스템플러의 악령을 모두 소멸시키십시오.]
학생들의 시스템에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미친!”
“좀비야?”
“언데드 종이 다시 안 살아났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젠장! 상급 게이트가 쉽다 했어.”
학생들은 저마다 낭패 어린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체력이 동난 상황.
그나마 괜찮은 사람은 한지유 한 명뿐이었다.
[지저의 군주에게 선물을 선사하자!]
[군주께서 축복을!]
[끼아아악!]
데스템플러는 저마다 괴성을 지르며 학생들에게 달려들었다.
자리에 누워 있던 학생들은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다시 살아난 데스템플러를 죽여야 자신들이 살 수 있었으니까.
이를 악물며 없는 내공까지 쓰려는데 한지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결계 안으로 들어가요. 구유진을 발동할 동안 모두 내공을 회복하세요. 제가 시간을 끌어 볼게요.”
“괜찮겠어?”
정예나의 말에 한지유가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는 얼마 버티지 못해요. 구유진이 어떻게 데스템플러를 막는지도 잘 모르고. 빨리 내공을 회복하고 도와주셔야 해요.”
“조금만 버텨 줘.”
한지유를 비롯한 학생들이 결계 안쪽으로 이동해 자리를 깔고 운공을 시작했다.
한지유는 데스템플러가 구유진에 들어가는 걸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