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5화
중간고사가 시작된 지 사흘이 지났다.
선생들은 여전히 운동장에 설치된 본부석을 지키고 있었다.
검제와 괴개, 진씨 가주도 자리를 뜨지 않는데 선생들이 쉬러 가겠는가.
화장실을 가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꾸벅꾸벅 조는 선생들.
어떻게든 졸음을 쫓으려고 제 살을 꼬집는 이들.
그럼에도 잠을 못 이겨서 눈을 감는 이들이 속출했다.
물론 예외인 사람도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준.
검제나 괴개가 밤을 새우며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을 때 그는 홀로 자리를 펴고 잤다.
아침이 왔음에도 여전히 자고 있는 이준.
제집 안방처럼 편안해 보였다.
“으하암.”
얼마 후 이준은 느릿느릿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잘 자셨소?”
검제의 말에 이준이 멀뚱멀뚱한 눈으로 대답했다.
“두 분은 안 주무셨어요?”
“화면을 보느라 자는 것도 잊었다오.”
“중요한 것도 없는데 눈 좀 붙이시지.”
“특별 1반 아이들이 계속 싸우는데 어찌 잠을 잘 수 있겠소.”
“끌끌. 우린 안 자도 무리 없으니 걱정 마시오.”
검제, 괴개와는 달리 진병철은 피곤에 찌든 얼굴이었다.
선생들은 졸기라도 했지 진병철은 눈을 부릅뜬 채 잠을 거부했다.
두 어르신이 주무시지 않는데 자기가 어떻게 잘 수 있냐며 고집을 피운 것이다.
“진 가주님은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데요.”
“문제… 없습니다.”
“정신 놨다간 쓰러지겠어요. 운공이라도 하세요.”
“감히 어른들이 계시는데 저 혼자만 심법을 돌리는 건….”
“이제 곧 큰 거 옵니다. 그거 안 볼 거예요?”
“큰 거 말입니까?”
“지금 9차 침공 막았죠?”
이준의 물음에 검제가 대신 말했다.
“그렇네.”
“10차 침공에 중간 보스가 등장해요. 꽤 강한 놈이니 아이들도 긴장해야 할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들은 진병철의 눈이 번쩍 뜨였다.
졸고 있던 한민성 또한 정신을 차렸다.
이준이 이 정도로 말하는 거 보면 꽤 큰 몬스터 웨이브일 터.
특별 1반이 아직까진 세계수를 잘 지키고 있었지만 아직은 모르는 일이었다.
“언제쯤 시작하는 거요?”
“게이트 안은 지금 해가 지고 있으니 한 시간 안에 침공이 시작될 겁니다.”
“아직 시간은 있군.”
“잠시 운공을 해야겠소.”
“저도 실례하겠습니다.”
검제, 괴개 그리고 진병철이 눈을 감고 심법을 돌리기 시작했다.
내공의 장점은 잠을 자지 않고도 피로를 몰아내는 게 가능했다.
물론 아예 잠을 안 자는 건 불가능했지만, AA급이 넘으면 잠을 안 자도 일주일은 버틸 수 있었다.
피곤이 쌓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운기행공을 하는 건 깨끗한 정신으로 화면을 보려는 것.
피로가 있는 상태로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게 어려웠다.
그 때문에 세 사람은 내공으로 피로를 가시게 했다.
그들이 저러니 한민성과 나머지 선생들도 내공을 돌렸다.
“졸지에 보초 서게 생겼네.”
이준은 혼자 눈을 뜨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사람들이 운공을 마치기만을 기다렸다.
한 시간이 거의 다 될 무렵.
검제를 시작으로 하나, 둘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직이오?”
“네. 이제 신호가 올 겁니다.”
이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니터 화면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화면은 특별 1반 학생들의 시스템을 공유받은 거다.
그 덕분에 학생들에게 날아오는 메시지를 본부석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밤이 찾아왔습니다.]
[제10차 침공이 시작됩니다.]
[데스템플러의 침공까지 00:10:00]
“데스템플러!?”
“이 게이트에 데스템플러가 나온단 말이오?”
“레드급 중에 최상위 종에 속한 몬스터 아닙니까?”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데스템플러는 기사형 언데드 몬스터.
데스나이트보다 한 차원 강한 놈이었다.
뿐인가.
마법도 사용했다.
“전 소문만 들었지. 오늘 처음 봅니다.”
“학생들이 저 몬스터를 막을 수 있을까요?”
“10차 침공이라 숫자도 많을 것 같은데.”
“더한 문제가 있습니다. 데스템플러는 리치랑 데스나이트를 합친 놈이지 않습니까?”
“아!”
“세계수에 펼쳐진 결계를 노릴 수 있겠군요.”
여태까지의 몬스터는 결계를 건드리지 못했다.
건드렸다 하더라도 피해는 없었으니.
데미지는 0.
세 결계의 내구도는 100인 셈이다.
하나 데스템플러가 침공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사이면서 암흑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가 바로 데스템플러였으니까.
“마검사 계열을 처음 상대하니 힘들 거예요.”
“음….”
“벌써부터 걱정하면 어떻게 합니까. 고작 중간 보스인데, 최종 보스까지 죽이려면 아직 멀었어요.”
이준의 목소리는 굉장히 태평스러웠다.
학생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지 않았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가차 없고, 매정하달까.
그래도 자기가 키운 학생들 아닌가.
조금이라도 걱정이 담긴 표정을 할 줄 알았건만, 전혀 아니었다.
그 모습에 선생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냉혹하기 이를 데 없다.’
‘저게 창제의 모습. 무섭군.’
‘창제는 학생들을 사지로 내모는 걸 좋아한다더니, 사실이었어.’
선생들은 저마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준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화면을 보고 있었다.
학생들이 성장할수록 테크트리는 계속 주어졌다.
몬스터를 죽여도 마찬가지.
현재도 계속 테크트리 포인트가 들어오고 있었다.
학생들이 데스템플러를 클리어한다면 얼마의 테크트리 포인트가 쌓일까.
적어도 1억 포인트는 넘게 얻을 것이다.
* * *
[밤이 찾아왔습니다.]
[제10차 침공이 시작됩니다.]
[데스템플러의 침공까지 00:10:00]
특별 1반 학생들에게 뜬 메시지였다.
9차 침공까지 막자 어느덧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조심하라는 그놈들 맞지?”
진경수가 정예나에게 말했다.
“그런 것 같은데. 설마 데스템플러일 줄이야.”
“빨리 작전을 짜야 할 것 같습니다.”
“지유, 네 생각은 어때?”
공격조인 진경수와 정예나, 허수가 한지유를 바라보았다.
“전륜마멸진을 펼쳐야겠어요.”
“암 속성을 광 속성으로 막자?”
“네.”
“우리가 조를 이루면 결계 쪽이 빌 텐데.”
“전 따로 몬스터를 상대할 테니, 진 선배랑 예나 언니, 허수가 한 조를 이뤄 주세요. 그리고 은비네도 합류해 줘.”
“알았어.”
데스템플러를 네 명만으로 막기에는 힘들었다.
“우리가 결계를 지켜볼게.”
“은비랑 혜지, 선호 세 명이서 전륜마멸진을 펼칠 수 있지?”
“가능은 한데 네 명보다는 위력이 떨어지지. 그건 왜?”
“준이가 지안이는 따로 내보내라고 했어.”
“지안이 혼자?”
모두가 놀라는 눈치였다.
이지안이 무력을 선보인 건 개학식 날.
지금까진 훈련만 했고, 게이트에 들어와서는 요리만 했다.
1학년 중에 제일 강하다는 건 알지만 데스템플러를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싶었다.
“괜찮겠니?”
“차라리 우리랑 같이 전륜마멸진을 펼치는 게 어때?”
“맞아. 그게 더 안전할 거야.”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가 이지안을 설득했다.
이준의 말이 있었다지만 선택은 이지안의 몫이었으니까.
“전, 가주 오빠 말을 따라야 해요.”
그녀는 특별 1반의 학생이기도 했지만, 신력권가의 가솔이기도 했다.
이준의 말은 그녀에겐 법이었다.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하는 게 가문에 속한 자의 숙명.
이지안도 이에 해당했다.
“그래도….”
“괜찮아요.”
데스템플러를 상대해야 하는데 이지안의 얼굴에는 전혀 무서움이 없었다.
17살짜리 여자아이가 가질 수 없는 평온함을 지녔달까.
그녀를 보고 있던 한지유가 입술을 떼었다.
“네 무공 S급 넘지? SS급인가?”
한지유의 말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뭐!?”
“S급 무공도 찾아보기 힘든데, SS급 무공이 있을 리가!”
“지유야 무슨 소리야. 지안이가 SS급 무공을 가졌다니?”
“지안이를 한동안 지켜봤는데, 등급에 비해 숨겨진 기운이 너무 강해.”
한지유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A급 초입의 각성자.
그들도 모두 거쳐 간 등급이었다.
하나 그때의 무력을 뒤돌아보면 이지안만 하지 않았다.
손을 섞지 않아도 이지안의 실력이 어디에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준이가 키워서 강한 건 당연해. 그런데 내가 예측한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게 문제라는 거야. A급 초입 각성자를 데스템플러와 싸우게 해? 그것도 혼자? 준이가 우릴 위험에 빠트릴 애는 아니잖아.”
“그건 그래.”
“정말… SS급 무공을 가진 거야?”
“맞으면 충격인데.”
“SS급 무공은 박 씨 남매랑 지유만 지닌 줄 알았어.”
“어른들이 알면 기절하겠다.”
그들의 말에 이지안이 쉽게 인정했다.
“맞아요. SS급 무공을 익혔어요.”
“어쩐지.”
한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A급 초입이 어떻게 AA급 초입과 같은 강함을 지닐 수 있었던 건지.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구음절맥의 특성으로 내공은 무한.
무공은 SS급.
이 두 가지만으로도 AA급 초입과 대등해질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이준이 이지안을 홀로 싸우게 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혹독하게 키워서 성장시키려는 것도 있고.
이지안의 인정에 류가을을 비롯한 신입들이 헛바람을 일으켰다.
“헉!”
“더, 더블 S라니!”
“여, 여긴 대체 어떻게 된 곳인가요, 괴, 괴물들만 모여 있어.”
세 사람의 아버지도 혈마악의 무공만 S급.
나머지 살악과 마뇌악은 AA급 무공을 보유했다.
그런데 고등학생 신분을 가진 아이들이 SS급 무공을 가졌단다.
이 얼마나 천지가 개벽할 말인가.
기존 특별 1반 학생들도 상당히 놀란 것 같은데 신입들은 당연했다.
“지안이의 무공은 확인했으니, 이제 걱정할 건 사라졌어요. 시간 다 됐으니 위치로 가요.”
한지유의 말에 학생들은 각자 장비를 챙긴 채 결계 밖으로 나왔다.
* * *
데스템플러는 마검사답게 흑빛 갑주를 찬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상당한 위압감.
중간 보스 몬스터에 해당하는 놈다웠다.
“온다. 전륜마멸진을 펼쳐!”
진경수네 조와 박은비네 조가 전륜마멸진을 펼쳤다.
주 속성은 광, 부 속성은 화였다.
학생들이 전륜마멸진을 펼치는 사이.
데스템플러의 손이 움직였다.
그들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보랏빛 전류들이 생명수를 향해 뻗어 나갔다.
한지유가 복마검법을 사용해 전류를 막았다.
진경수네 조와 박은비네 조도 무공을 사용해 공격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 시선을 끌기용.
100여 마리가 넘는 데스템플러들이 일제히 땅을 박차며 학생들을 덮쳐 왔다.
쾅쾅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곳곳에서 교전이 벌어졌다.
데스템플러의 검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검기가 땅에 닿자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어지럽게 무기를 부딪치는 그때!
땅을 뚫고 나온 보라색 아지랑이가 결계를 향해 휘둘러졌다.
“막아!”
“결계를 보호해야 해!”
결계를 사용하는 건 최대한 자제해야 했다.
게이트 클리어까지 절반이나 남은 상황.
최대한 아꼈다가 나중에 쓰는 게 좋았다.
보라색 아지랑이가 결계를 때리려 하자.
“쳇!”
진경수가 진에서 빠져나와 아지랑이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빠른 사람이 있었다.
은색 창이 반짝이며 허공을 갈랐다.
쩌어억!
한기가 공기를 급속도로 얼리며 세를 불려 갔다.
결계를 공격하려던 아지랑이도 한기에 의해 얼려졌고, 결계에 거의 다다랐던 아지랑이들도 꼿꼿하게 굳어졌다.
은색 창이 다시 한번 번쩍이자.
쾅!
얼어 버린 아지랑이가 일제히 부서졌다.
얼음 파편이 땅에 떨어지며 결계를 가로막았다.
자신의 무력에 감탄할 법도 하지만 이지안은 처음과 똑같은 얼굴로 결계 앞을 지켰다.
“저게 무슨 A급 초입 각성자냐.”
“선생님이 전수해 준 무공입니다. 일반적이겠습니까.”
“진짜 살벌하구만.”
“야! 잡담할 때가 아니야. 읏!”
진경수와 허수가 이지안의 무력에 감탄하는 사이, 정예나 혼자서 데스템플러를 상대하고 있었다.
비사장을 가르고 날아오는 검은 그녀의 목을 노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솥뚜껑만 한 손이 정예나의 앞에 불쑥 나타나더니 검을 잡았다.
진경수의 손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쏘리. 미안하다. 한눈팔다가 X될 뻔했다.”
“싸움 끝나면 너넨 다 죽었어.”
“죄송합니다. 누님.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정예나가 후방으로 빠지고 전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싸움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