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9화
이준은 사람들의 환호에도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을 모두에게 손보였으면 기뻐할 법도 하나, 그의 머릿속은 한 가지로 가득했다.
‘게이트가, 그것도 카오스 종이 왜 신력에 나타난 거지?’
게라간은 카오스 종에서도 하위 몬스터에 속한다.
문제는 카오스 종 몬스터가 게이트를 뚫고 나오기 전의 정찰병이 바로 게라간이었던 것.
그 말은 곧 언제든 다시 카오스 종이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소리였다.
혼돈에서 태어난 존재들.
같은 몬스터조차 꺼리는 놈들이었다.
‘천외천이 카오스 종까지 무릎을 꿇린 건가.’
신력권가에 무려 다섯 개의 게이트가 동시에 열린 게 이상했다.
일부러 누가 고의로 게이트를 연 듯한 상황.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천외천이 음지에서 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대로 알아봐야겠어.’
천외천이 모든 카오스 종을 무릎 꿇리진 않았을 터.
어디까지 진행이 됐는지 캐 봐야 했다.
그들이 하위 종까지 복종시킨 거라면 천만다행.
중위 종까지 복종시키는 건 반드시 박아야 했다.
지주에게 중위 종의 카오스 몬스터가 떨어지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였으니까.
“사 대… 음.”
이준이 사형준을 부르다가 몸이 휘청거렸다.
“주군!”
“괜찮아. 잠깐 현기증이 난 것뿐이야.”
그럴 수밖에.
레드존 게이트를 일제히 박살 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S급에 있는 검제와 괴개는 흉내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게이트의 숫자가 많을수록 파괴하는 데 들어가는 힘은 배로 증가했으니까.
SS급 초입에 있는 이준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 대주는 지금 당장 사대 가문에 연락해서 내가 보자고 전해.”
“명을 받듭니다.”
사형준이 이준의 앞에서 사라졌다.
이준은 혼원신공을 돌리며 내공을 회복시켰다.
“후우우.”
그가 숨을 내쉬곤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돌아가세요.”
“창제 님! 봉문을 깨고 다시 나와 주세요!”
“그 실력 가지고 가문에만 있는 건 국가적 손실입니다.”
“옳소!”
“그동안 저희가 무지했습니다.”
“봉문을 풀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아 주실 분은 창제 님뿐이에요! 안 그런가요, 여러분?”
“맞습니다!”
“창제, 창제!”
사람들은 이준의 이명을 연신 외쳤다.
수천의 목소리가 그 한 명만을 부르고 있었다.
이준이 예상한 결과였다.
생각이 빗나간 건 카오스 종이 출연한 것뿐이다.
“알겠으니 돌아가 주세요. 카오스 종으로 인해 생각할 게 많습니다.”
“와아아아!”
“창제 님이 드디어 밖으로 나오신다!”
“이제 다시 질서가 정립되겠다.”
“발 뻗고 잠잘 수 있게 됐어.”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준이 거절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카오스 종 몬스터를 보고 봉문을 풀겠다는 결단을 내리신 거야.”
“카오스 종 몬스터는 보통 놈들이 아니니까.”
“국민을 걱정하는 분들은 창제 님뿐이야.”
“검제 님도 껴 줘.”
“그분은 당연한 거고.”
“신력도 봉문을 깼으니 나머지 사대 가문도 움직이겠지?”
“사대 가문에 연락을 돌리라는 걸 보면 곧 결정 나지 않을까.”
* * *
특별 1반이 수련하는 운동장에는 거물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누, 누나. 저길 봐! 거, 검제야!”
조용석은 류가을의 어깨를 흔들면서 노인을 가리켰다.
너그러운 인상을 한 검제가 이준과 악수하고 있었다.
“나도 보고 있어….”
“와, 괴개에 검왕, 철왕, 신권까지.”
홍원찬은 운동장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감탄했다.
모두 이름이 무거운 자였으니까.
살악인 그의 아버지보다 영향력이 강한 이들이었다.
“무사고가 정말 엄청난 곳이었구나.”
“그러게….”
류가을은 눈이 개안한 듯했다.
그동안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사마고에선 그녀가 왕이었다.
사마련 총련주가 그녀의 뒷배경이었으니까.
하나 이곳만은 달랐다.
검왕이나 철왕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각성자였고, 신권은….
‘강해.’
괴물이었다.
차세대를 이끌어 갈 각성자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너무도 강했다.
‘검제와 괴개는 말할 것도 없어. 여기가 대한민국 최고 명문인 무사고….’
그녀는 사마련이 왜 항상 가문 연맹회에 한발 밀리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날 이곳에 보낸 이유가 있었구나. 대단해.’
류가을이 감탄하는 사이, 이준은 가주들과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 정연이와 혁진이도 빨리 수련동에서 나와 특별 1반에 들면 좋으련만.”
“아직도 소식이 없어요?”
“전혀 없습니다.”
“성장을 계속 하나 보네요. 그러니 수련동에서 안 나오지.”
“정말입니까?”
“검제 님도 두 남매를 걱정하지 않으시는 걸 보면 잘하고 있다는 거예요.”
“창제 님이 그리 말씀해 주시니 안심입니다.”
검왕이 한결 나은 표정을 한 채 인사를 마쳤다.
다음은 철왕이었다.
“애들을 맡겨 놓고 이제야 제대로 인사를 합니다.”
“괜찮아요.”
졸지에 학부모 면담이 되어 버렸다.
특별 1반의 인원은 거의 오대 가문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제 딸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혼꾸멍을 내주십시오.”
“잘 따라오고 있어요. 예나 학생은 누굴 닮았는지 독공에 조예가 깊습니다. 독도 잘 제조하고요.”
“하하. 가문에서도 자기 할아버지를 제일 닮았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예은이는 철왕 님을 닮았고요?”
“예. 두 아이 모두 제 할아버지를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오히려 밸런스가 잡혀서 좋지 않아요? 예은이는 손재주가 뛰어나서 제조, 제련에서 아주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고 있거든요.”
“창제께서 그리 칭찬해 주시는 걸 보면 재능이 있나 봅니다.”
철왕의 얼굴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어떤 부모가 자식 칭찬을 싫어할까.
그는 두 자매가 다른 특기를 가져서 걱정했지만, 창제의 말에 속이 후련한 표정이었다.
이준이 인사를 마치려고 하자 철왕이 마지막으로 질문을 했다.
“그 혹시… 저 아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을까 합니다.”
철왕의 손가락이 허수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수 말입니까?”
“창제 님과 친하다는 건 들었습니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키우는 녀석이에요. 재능도 무지막지해요. 신의나 충의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 정도로 높게 평가하시는 겁니까?”
“쟤가 가진 특성은 아시나요?”
“모릅니다.”
“도문의 후예예요.”
“도문의 후예?”
철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특성이 뭐? 라는 표정이었다.
“대한민국. 아니, 아시아 전역에서 우리 수보다 도를 잘 다루는 녀석은 없다는 말이죠.”
“헉!”
“예은이의 남자 친구로는 부족함이 없어요. 배경이 부족하단 생각이 드시면 녀석의 뒤에 저희 신력이 있다고 여기시면 마음이 편할 겁니다.”
그때였다.
괴개가 불쑥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거봐라. 내가 걱정할 필요 없다 하지 않았느냐.”
“아버지 된 입장에서 딸의 남자친구가 어떤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잉 쯧. 나와 창제의 안목을 뭐로 보고.”
“아버지께서 먼저 조사를 시켜….”
“시끄럽다!”
괴개가 호통을 쳤다.
내공까지 담아 외치니 철왕은 귀를 막아야만 했다.
“큼큼. 창제.”
“말씀하세요.”
“저 아이 우리가 찜했소. 다른 아이와 짝지어 주지 마시오.”
“허수와 예은이가 알아서 할 일이죠. 전 상관 안 해요.”
“끌끌. 고맙소이다.”
괴개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허수에게로 걸어갔다.
“저 늙은 놈은 어째 나이가 들수록 음흉할꼬.”
“너무 얼굴에 티가 나서 웃기긴 해요. 해맑달까?”
“우리 나이대에선 철이 없다 하는 거라오.”
“괴개 님이 좋은 손주사위 감을 낚아채니 배 아프신 건 아니고요?”
“큼! 그럴 리 있겠소? 저 아이들이 결혼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소. 사람 인생 모르는 것 아니오. 저러다 헤어질 수도….”
“일없다 이놈아!”
검제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괴개가 멀리서 버럭 소리쳤다.
무안한 표정으로 검왕에게 가는 검제.
위엄 가득한 그도 친구인 괴개 앞에선 풀린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허억… 허억… 늦었습니다!”
진씨가문의 가주인 진병철이 거친 호흡을 토해 냈다.
대전에 있던 그는 사형준의 연락을 받고 달려왔다.
거리를 보면 충분히 빨리 온 거였다.
“다들 이제 막 도착했어요.”
“이 무슨 추태를! 감히 제가 어르신들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진병철이 검제와 괴개에게 달려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진경수의 꼰대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행동이었다.
마지막으로 신기가주인 한지웅까지 도착했다.
모두 모이자 이준은 가주들을 모아 본론을 꺼냈다.
“부득이하게 무사고로 오시게 했습니다.”
“괜찮소.”
“애들도 보고 좋소이다.”
검제와 괴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바로 본론을 꺼내자면 신력권가 내에 카오스 종이 튀어나왔어요.”
“오면서 기사를 접했소.”
“허, 카오스 종이라니.”
“춘식아. 카오스 종이 게이트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만이냐?”
“한, 20년은 되었다.”
카오스 종은 강하지만 세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최종 보스인 것처럼 말이다.
어떤 경우에 카오스 종이 나오는지.
역학관계 조사했지만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흐지부지 잊혀 가고 있을 때 다시 카오스 종이 출몰한 것이다.
이준은 검제와 괴개를 향해 물었다.
“두 분은 카오스 종이 언제 튀어나오는지 아세요?”
“모르오.”
“가문에서 열심히 알아봤지만 카오스 종이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오는 이유를 찾지 못했소.”
“카오스 종이 튀어나오는 게이트를 카오스 게이트라 부를게요. 카오스 게이트를 여는 조건은 딱 하나 균열의 틈을 만드는 겁니다.”
“균열의 틈!”
“일반 게이트가 열릴 때 영향을 받는단 말이오?”
“맞습니다. 게이트가 열릴수록 카오스 게이트에서 균열이 생기는 거지요.”
“카오스 게이트를 보다 상위급으로 분류하면 되겠구려.”
“네. 카오스 게이트는 등급 자체가 달라요. 레드, 블랙, 화이트. 이 세 가지밖에 없어요.”
“화이트가 제일 약한 등급이오?”
“화이트가 제일 강한 종이 나오는 등급입니다.”
“이 사실을 창제께서는 어떻게 아셨소?”
검제의 물음에 이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제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셨어요.”
전생의 정보였다.
카오스 게이트의 균열이 제일 강하게 생겼던 건 바로 역천진이 열릴 때였다.
천외천이 이 세계로 넘어오려고 할 때 카오스 게이트가 크게 탄력을 받았다.
“창제의 사부님은 대체.”
“한번 만나 보고 싶소.”
“저도 만나고 싶네요.”
이준이 씁쓸한 표정을 하자 검제와 괴개가 곧바로 이해했다.
이준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잔뜩 담겨 있었으니까.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소.”
“미안하외다.”
“몰라서 그러신 건데요, 뭘. 신경 안 써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게라간은 정찰병에 불과해요.”
“정찰병을 보냈다는 건 곧 쳐들어온다는 말이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곳곳에 카오스 게이트가 열린 게 아니라 저희 신력에만 게이트가 열렸어요. 누가 일부러 게이트를 개방한 듯이요. 전, 강제로 카오스 게이트를 연 이들이 천외천이라 생각해요.”
“일리 있는 말이오. 천외천은 게이트도 강제로 열 수 있으니.”
“걱정되는 건 천외천이 카오스 게이트를 어디까지 복종을 시켰냐는 거예요.”
“우리가 알아내야 할 일이 그것이오?”
“네. 게라간 같이 하위종이면 몰라도 중위종 게이트가 천외천에게 넘어가면 위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