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2화
인주의 평정심이 흔들렸다.
“흑주작!?”
아름다운 검은 깃털 사이에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불꽃이 허공을 떠나 땅에 내려앉았다.
폐허가 된 건물이며, 땅이며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이며.
불이 붙었음에도 멀쩡했다.
거대한 새의 의지에 따라 물체가 소멸할지 결정됐다.
“꾸에엑!”
“킥킥!”
“가아악!”
몸을 숨기고 있던 몬스터만이 검은 불꽃에 영향을 받았다.
육체가 불타면서 뼈째로 녹아내렸다.
잿빛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몬스터들.
아직 불꽃에 닿지 녀석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첫 등장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낸 흑염마조였다.
“어째서… 흑주작이 네 손에 있단 말이냐….”
인주는 벙쪄 있었다.
사흉수의 대적인 사신수.
사흉수는 사신수를 라이벌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사흉수만의 생각이었다.
콧대 높은 사신수들은 사흉수를 자신들과 같은 서열에 두지 않았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사흉수는 그저 흉괴.
사방신과는 격이 현저히 낮은 존재라 여겼다.
그 때문인지 사흉수는 사신수만 나타나면 발작을 일으켰다.
[저 죽일 놈이 나타났다!]
[또 우릴 지옥에 처박으려고 모습을 드러냈어.]
[빌어먹을 개잡놈!]
[인주, 어서 저 흉악한 새 새끼를 죽여라!]
혼돈과 도올이 계약자인 인주를 향해 외쳤다.
하나 인주는 사흉수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의 눈은 흑주작에 꽂혀 움직이지 않았다.
“흑주작은 그 미친 노괴에게만 모습을 보인다고 들었는데….”
그들 사형제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지 못했다.
흑염이 공중에 휘날리면 그곳에 파천혈신이 강림할 것이다.
무림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금언이었다.
“어떻게 네놈 따위가 흑주작까지 가지고 있단 말이냐… 어째서! 어째서 왜!”
놀랐던 인주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흑염마조에서 이준으로 옮겨졌다.
살기 넘치는 시선을 받은 이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들과는 달리 제 인성이 올바르기에 그런 게 아닐까요?”
“말장난 치지 마라!”
“왜 계속 발끈하신데. 저한테 열등감 같은 거 느끼시나? 아, 듣기론 굉장히 못생겼다고 하시던데 지금 얼굴은 꽤 반반하네요. 이것도 열등감에서 기인하셨나?”
이준은 특기인 도발을 시전 했다.
“감히이이!”
인주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뿜어졌다.
파천멸기의 기운.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멸하려는 듯한 폭풍 같은 기세가 주위에 몰아쳤다.
“윽!”
“춘식아.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해!”
“호신강기로는 턱도 없다!”
괴개와 검제가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 호신강기를 펼쳤다.
검은 아지랑이는 호신강기를 비웃듯 종잇장처럼 찢어 버렸다.
고작 기세를 펴낸 것만으로 나온 결과.
인주는 두 사람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괴물이었다.
천만다행인 건 그 괴물을 상대할 미친놈이 아군이라는 것.
“싸우기 전에 흥분하면 안 된다고 당신 사부가 안 가르쳐 줬어요? 그분이라면 분명 잔소리, 아니 호통을 쳤을 텐데?”
“그 입, 놀리지 못하게 찢어 버리겠다!”
쾅-
인주가 땅을 박찼다.
얼마나 힘껏 땅을 박찼는지 바닥에 거대한 웅덩이가 생겼다.
그의 손에는 이준과 대조된 하얀색 창이 들려 있었다.
백룡창.
그의 애병이었다.
웅웅-
백룡창이 울음을 토해냈다.
그럴수록 검은 아지랑이가 백룡창을 감쌌다.
불길한 기운을 머금은 창이 기괴한 소리를 냈다.
끼긱끽끽-
이준의 지척에 다다른 인주가 1초식 환영살을 시전했다.
허공에 창영이 생기며 수십 개에서 수백 개로 나뉘어 공격해 왔다.
“환영살이네.”
이준을 벌집으로 만들기 위해 쏟아지는 수백 개의 창영.
그는 절대방어식을 꺼내 들었다.
“흑룡벽.”
대량 학살에도 좋은 무극창법 전 3초식인 흑룡벽이었다.
쿵!
창대를 바닥에 꽂아 넣자 흙과 돌이 위로 올라와 용의 얼굴을 만들어 창영을 잡아먹었다.
[파천멸기의 파편을 흡수했습니다.]
[혼원신공이 파천멸기의 파편을 정화합니다.]
[무극기의 일부가 돌아왔습니다.]
메시지가 좋은 소식을 알렸지만.
[아직 안 끝났느니라!]
무극자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 * *
TV 화면에 거대한 검은 새가 잡혔다.
“헉!”
“저 몬스터는 뭐냐!?”
“이젠 하다 하다 별 미친 몬스터가나타나네.”
“지, 지린다.”
무사고 학생들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참다못한 어느 여학생이 손을 들어 멍하니 보고 있는 선생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몬스터는 정체가 뭐예요?”
“으, 으응!?”
2학년 5반의 새로운 담임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선생 또한 화면에 잡힌 몬스터가 어떤 종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때 교실 뒤에 있던 차경진이 대신 답했다.
“사신수 중 하나인… 주작입니다.”
“엥?”
“주작은 성스러운 불꽃인 성화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저게 어딜 봐서 성화지?”
“그러게.”
“오히려 불길해 보이는 불꽃인데.”
학생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들이 아는 사신수는 성스러운 존재.
오직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신과 같았다.
그런 존재가 저 불길한 괴조라 말하니 이해가 안 가는 학생들이었다.
“헉! 형님께서 드디어 몬스터를 하나씩 까시는 건가!?”
그런데 허수가 학생들의 궁금증에 기름을 부었다.
“무슨 말이야?”
“너 저 괴조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지?”
정예은과 정예나가 허수를 또렷이 보며 말했다.
“차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 새는 주작이 확실합니다.”
이준 말고 4대 성지의 금역을 유일하게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허수.
그는 이준이 이끄는 몬스터 군단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만해도 얼마나 놀랐던가.
스케먼과 페어리, 그리고 샤크로아까지 포진해 있었다.
뿐이랴.
통곡의 게이트라는 천중호수의 보스 몬스터 또한 그곳에 있으니 그야말로 철옹성이 따로 없었다.
여기에 더해 모든 몬스터가 두려워하는 파랑이까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군단을 거느리고 있는 이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준이 작은 새 한 마리를 데리고 나타났다.
4대 성지의 금역에 있는 몬스터는 파랑이와 더불어 작은 새를 몹시나 두려워했다.
그 작은 새가 바로 화면의 괴조였다.
“중국에서 레드급 보스 몬스터 네 마리를 처치하면서 불바다를 만들었던 게 바로 저분입니다.”
허수의 말을 들은 학생들이 일제히 놀랐다.
학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입 밖으로 말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준이 머리에 항상 있던 새 말이지?”
한지유가 차분한 목소리로 묻자 허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볼 때 한지유는 이준과 특별한 관계였다.
미래에 형수가 될 후보 중 한 명이기에 아주 깍듯하게 대했다.
“맞습니다.”
“준이는 참… 숨기고 있는 게 많아.”
한지유의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섭섭함과 함께 살기도 섞여 있었다.
허수가 그녀의 눈치를 보다가 주변을 살폈다.
‘후우. 정연 누님까지 있었다면 난리가 났을 거야.’
그나마 얌전한 한지유 혼자 있어서 잠잠한 거지.
만약 두 여자가 붙어 있었다면 보이지 않은 견제와 불꽃이 튀었을 터.
정말 다행이었다.
특별반 아이들의 대화에 괴조가 주작이라는 게 기정사실이 됐다.
“홀리쉣!”
“빅 뉴스야! 이, 이거 원스피릿에 올려야겠다.”
“너 이준 팬 카페에 가입했어?”
“나 3등급인 특별 회원이야.”
“헐, 어떻게!? 특별 회원 되기 존나 힘들다고 들었는데.”
“준이 찍사했거든.”
“이 기지배야. 그거 도촬이야.”
“도촬 아닌데? 준이가 손가락으로 브이까지 해 주면서 찍게 해 줬어.”
“저, 정말?”
“응. 카페에 올려도 된다고 허락까지 맡고 올린 거야. 이씨. 말 걸지 마. 나 이 소식 팬 카페에 올려야 해.”
여학생이 각성자 시스템을 켜서 팬 카페에 글을 올렸다.
그녀의 정보로 인해 팬 카페뿐만 아니라 전 커뮤니티가 불타올랐다.
심지어 팬 카페에서 나온 정보로 뉴스까지 보도될 정도였다.
학생들과는 별개로 특별반 아이들의 눈은 허수에게로 향했다.
“또 네가 알고 있는 게 뭐야?”
“우리 사이에 비밀 만들기 있기 없기?”
“절… 죽여도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신수 말고도 아는 게 더 있다는 거네.”
“네 이놈! 알고 있는 걸 전부 실토하지 못할까!”
특별반 아이들은 허수를 들들 볶기 시작했다.
의리 빼면 시체인 허수는 정예은과 정예나의 합공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그에겐 이준과의 약속이 먼저이기에.
‘예은아. 미안하다.’
여친인 정예은의 압박에도 그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 * *
흑룡벽을 뚫고 나온 여러 다발의 창영이 이준의 몸을 꿰뚫으려는 순간!
깡!
까가가강!
그의 심장 바로 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창영을 막은 그림자는 바로 회색 아지랑이였다.
무극기가 주인의 위험을 알고 움직인 것이다.
“휴우우. 십 년 감수했네.”
[이놈아! 정신 똑바로 안 차리느냐.]
‘흑룡벽이 뚫릴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녀석을 얕봤다간 네놈이 먼저 죽을지 모르느니라. 명심하거라.]
‘넵! 확실히 다르네요. 여태 만난 무림인 중에 제일 강해요.’
오직 이준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천하의 누가 파천혈신의 막내 제자였던 무신 사마영에게 감히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또 오느니라!]
무극자 사부의 말대로 창영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차장창창!
이준은 파멸겁으로 백룡창을 막아냈다.
창과 창의 대결.
창영이 생겨났다 깨졌다.
이준의 허벅지에 상처가 나면 인주의 어깨에도 상처가 생겼다.
상처로 인해 피가 공중으로 튀었다.
누구 하나 물러나지 않은 진검승부였다.
“날 아주 잘 흉내를 내는구나!”
“당신이 날 따라 하는 거겠지.”
“넌 그 주둥아리가 문제다.”
인주의 손놀림이 더 빨라졌다.
전에도 빨랐는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속도를 높인 상태였다.
속도를 높이면 무게가 줄어든다.
그렇다는 건 파괴력도 감소한다는 이야기.
하나 인주의 창은 속도뿐만 아니라, 파괴력도 전보다 상승했다.
쾌와 강이 공존하는 창법.
기겁할 노릇은 하나가 더 있었다.
이건 이준도 뜻밖.
창영이 난무하는데 일자로 뻗어오던 창이 뱀처럼 휘었다.
가짜인 공격도 많아진 상황.
자신이 알던 창법과는 다른 부분이 꽤 많았다.
“어?”
이준의 손과 눈이 어지러워졌다.
‘사부님! 백영창법에 환이 있었어요?’
인주가 변과 환을 추가하니 당황스러웠다.
[없지. 저 창법은 놈이 살면서 깨달은 무공이니라.]
‘아.’
무극자 사부가 항상 말하던 경험이었다.
전장에서 1년을 누빈 병사와 30년을 누빈 병사 중 누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까.
후자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컸다.
30년을 전장에서 구른 병사는 살아남는 방식을 알아서 터득했을 터.
햇병아리와는 생명력 자체가 달랐다.
이준과 인주도 마찬가지.
인주는 백영창법만 무려 100년을 훌쩍 넘게 연마했다.
무극자가 옆에 있고 재능충이라 하지만 이준은 무극창법을 고작 6개월밖에 익히지 않았다.
창법에 대한 경험.
무에 관한 경험.
싸움에 대한 이해.
모두 인주에게 밀렸다.
이준이 밀리지 않은 건 백영창법보다 뛰어난 무극창법.
파천멸기보다 한 차원 강한 무극기.
마신지체라는 특별한 신체 등등.
이 모든 걸 지니고 있어 인주에게 여태껏 밀리지 않은 것이다.
방심한다면 이준도 무사하지 못하는 싸움이다.
인주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은 그만큼 위험했으니까.
[안일하게 대응하지 말거라. 적을 죽이겠다는 의지로 무를 행하거라.]
사부의 충고에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변화와 환을 추가한 인주의 창질에 의해 생긴 결과물.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준의 미소는 짙어져만 갔다.
퍽-
인주의 창대에 어깨를 맞은 이준이 뒤로 나뒹굴었다.
자세를 바로잡은 그가 인주를 본 채 중얼거렸다.
“경험? 좆까라 그래요. 내가 가진 힘으로 찍어 눌러 줄 테니까.”
쾅!
이준이 공간을 격하며 인주를 공격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