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1화
펑펑-
오선의 타구봉은 괴개를 노리지 않았다.
애먼 허공을 때릴 뿐.
괴개에게는 그 어떤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하나 괴개는 오선의 타구봉에서 살의를 느꼈다.
‘창제가 왜 탐색전을 길게 하라고 하는지 알겠어.’
겉으로는 애먼 허공을 때리는 타구봉이었으나 자신의 움직임을 미리 봉쇄하고 있었다.
몸을 안 움직이니 저 타구봉에 안 맞은 것뿐이다.
“하앗!”
타구봉은 그저 페이크.
오선의 진짜 공격은 저 짓쳐들어오는 주먹에 있었다.
권강이 공기를 가르고 들어왔다.
‘피해야 한다.’
사방에서 대기가 펑펑 터지고 있었지만 괴개는 피할 곳을 찾았다.
타구봉 때처럼 가만히 있다간 저 권강에 몸이 터져 나갈 것이다.
‘빌어먹을! 맞받아칠 수밖에 없나.’
괴개는 독기를 잔뜩 끌어 올렸다.
두 손에 기를 응집해 오선의 권강을 향해 부딪혀 갔다.
콰앙!
두 사람이 먼지를 뚫고 나왔다.
“사천당가의 무공을 익힌 놈이구나!”
몇 수 손을 교환한 것만으로 괴개가 사천당가의 무공을 계승했다는 걸 깨달은 오선이었다.
그래서인지 괴개에게 거리를 주지 않았다.
무림에서 사천당가는 독과 암기로 유명한 가문.
그들의 무공은 유독 거리에 취약했다.
거리를 내어주지 않으면 당가의 무인을 이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천당가의 무공을 계승한 놈이 하필 나를 만났어!”
오선은 괴개를 몰아붙였다.
괴개가 암기를 날리지 못하게끔 손을 어지럽게 했다.
“읏!”
“취팔권법이라는 것이다, 아이야.”
괴개가 힘을 못 쓰는 이유는 오선의 기이한 공격 루트 때문이었다.
취한 듯하면서도 빠르고 강맹했다.
뿐이랴.
강맹하면서도 유연했으며 권법의 변화가 심했다.
타구봉법도 마찬가지.
권법과 같이 간간이 섞어서 공격해 오는데 정신이 사나울 지경이었다.
‘돌아 버리겠어. 약점이라 생각한 부분을 공격하면 귀신같이 다음 공격이 들어오고 있잖아.’
괴개는 이준의 말에 따라 오선의 무공을 낱낱이 살펴보고 있었다.
반격할 부분이 보이긴 했으나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탐색전만 하다가는 질 것 같다.’
앞서 싸운 검제처럼 초반에는 방어만 하는 중이었다.
아직 상대의 무공을 다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하나 저 변칙적인 공격을 짧은 시간 내에 파악하는 건 힘들었다.
아무리 S등급의 각성자라도 말이다.
‘거리를 벌려서 시간을 더 끌어야겠어.’
우선 적부터 자신에게 떼어 놓을 생각을 했다.
비사장으로 적의 권강을 막으면서 옆구리에 찬 편을 뽑아 들었다.
“하하! 사천당가가 편법이라니 어디 재롱을 피워 보거라.”
오선이 괴개를 비웃었다.
사천당가는 암기와 독으로 유명한 명가.
대표적인 무공으로 만천화우와 적련신장이 유명했다.
이 두 가지 무공도 아닌 편법을 쓰려 하니 얼마나 웃기겠는가.
하지만 오선의 비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촤아악-
괴개의 편이 일자로 펴졌다.
편에 내공을 주입하자 날카로운 돌기가 생기면서 독기가 주위로 퍼졌다.
아무리 오선이 강하다곤 하나 경지로 따지면 괴개보다 반수 아래였다.
그것도 오선이 가진 파천멸기의 기운 덕에 격차가 나지 않은 것이다.
“엇!”
오선의 턱 끝을 스쳐 지나가는 편.
숨을 멈추고 퇴보를 밟아 독기의 유효 사거리에서 황급히 벗어났다.
“사천당가에 독기를 뿜어내는 편법이 있었던가?”
오선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인주가 대신 답해 주었다.
“백사편법이다.”
“백사편법!?”
오선의 눈이 커졌다.
사천당가를 이끄는 당소미조차 익히지 못한 실전된 무공.
만천화우의 수법이나 적련신장은 실전되지 않고 당가에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백사편법은 달랐다.
사천당가를 창건한 이와 그 아래 대에만 백사편법을 익혔을 뿐 제대로 익힌 사람이 없어 실전되어 버렸다.
“어떻게 네놈이 백사편법을 계승한 것이냐!”
백사편법은 오선이 흥분할 만한 무공이었다.
사천당가는 암기와 독으로 유명했지만 백사편법이 유실됐을 때의 이야기.
만약 백사편법이 온전히 내려왔다면 만천화우의 수법보다 첫 번째로 쳐줄 무공이었다.
“오선, 흥분하지 말고 어서 죽여라.”
인주의 외침.
잔뜩 흥분한 오선이 감정을 추슬렀다.
“네놈이 어떻게 백사편법을 익힌지는 모르겠지만, 승리는 내 것이다!”
오선이 두 주먹에 강기를 두른 채 괴개를 향해 쇄도했다.
“거리가 벌어졌으니 이젠 내 차례다.”
괴개는 오선이 접근해 오지 못하게 편을 빠르게 휘둘렀다.
* * *
쾅!
콰광!
폭음이 난무했다.
수십 개의 웅덩이가 생겼다.
괴개가 휘두르는 백사편법이 땅을 후려칠 때마다 대지가 아우성을 쳤다.
“이익!”
오선이 이를 악물고 괴개에게 접근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괴개가 거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오선이 접근해 오면 곧바로 주변에 독을 풀었다.
독기를 뚫고 접근했다 치자.
이후는 어떻게 해야하나.
독기로 인해 내공의 운용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거리를 좁혔다가 다시 뒤로 빠지길 반복했다.
전세 역전.
여유로운 괴개와는 달리 급해진 건 오선이었다.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못하겠느냐!”
펑!
퍼벙!
오선은 괴개의 편을 연신 주먹으로 쳐내면서 외쳤다.
“사천당가의 무공을 계승한 내게 정정당당을 외치다니. 정신 나갔구나. 끌끌. 어디 내게 다다를 수 있는지 힘껏 와보거라.”
괴개는 오선의 분노에 비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러면서 오선의 무공을 천천히 알아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무공은 권법과 타구봉법 그리고 금나수다. 권법과 타구봉법은 성향이 비슷하고 금나수만 달라. 금나수로 권법과 타구봉법의 약점을 보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오선이 사용하는 타구봉법과 권법의 이름은 취팔봉법, 취팔권법이었다.
개방의 방주만 익히는 무공.
두 가지 무공 다 변칙이 심했다.
변화가 극심하니 상대하기 까다로운 건 당연.
이 변칙 공격에 금나수까지 섞자 완벽한 것처럼 보였다.
“상대를 잘못 만난 건 너다. 이눔아.”
천천히 살피니 오히려 괴개에게 이점이 있었다.
오선에겐 원거리로 공격할 무공이 없었던 것.
있어도 봉법이나 권법에 비해 성취도가 훨씬 낮았다.
그래서 더욱 괴개와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거다.
“이 육시랄 놈이! 너 따위가 날 멸시한단 말이렷다!”
쿵!
오선이 진각을 뿌렸다.
그들이 있는 곳이 통째로 흔들렸다.
기세만 돋우고 있는 오선이 못마땅한지 인주가 버럭 소리쳤다.
“오선, 어서 끝내지 못하겠느냐!”
인주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더 이상 지체했다간 인주의 손에 죽을 판.
오선은 독기가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괴개를 향해 뛰어들었다.
적의 무식한 돌진을 바라보면서 독연편을 펼치려는 괴개에게 이준의 전음이 들렸다.
[지금 천독열을 펼치세요.]
괴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의 말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괴개는 편에 내공을 넣어 빳빳이 세웠다.
검의 강도로 변한 편을 땅에 박아넣었다.
“천독열.”
그의 중얼거림에 편에서 대량의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땅은 물론 대기의 공기까지.
이 주변 일대는 괴개의 독기로 가득 찼다.
전이었다면 뒤로 뺐을 오선.
인주의 마지막 경고로 인해 오선은 독기를 뚫으며 앞으로 쇄도했다.
그때였다.
땅을 뚫고 나오기 시작한 초록 기둥.
하나를 시작으로 수 개의 독 기둥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독 기둥은 전부 오선을 피해 갔다.
오선의 주위에만 나타날 뿐 그를 덮치지 못했다.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거라!”
괴개의 앞까지 접근한 오선이 일권을 찌르려는 순간!
“어미 젖은 네놈이 더 필요한 것 같은데 끌끌.”
쾅-
오선의 밑바닥을 뚫고 나온 하나의 기둥이 그를 덮쳤다.
“으아아악!”
오선의 비명이 떠나가라 울려 퍼졌다.
독 기둥이 사라졌다.
괴개가 땅에 박은 편을 꺼냈다.
흐물거리는 편을 옆구리에 차며 말했다.
“이번 싸움도 우리 한국 측이 이겼구먼.”
괴개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인주를 도발했다.
* * *
“저 병신같은 놈.”
인주의 인상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상대를 죽이라고 내보냈더니 도리어 당했다.
두 명씩이나 말이다.
일선과 이선, 적어도 삼선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터.
그들이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허억! 오선이… 죽었….”
칠선은 중얼거리다가 입을 급하게 막았다.
옆에 있는 인주가 짙은 살기를 보이고 있었다.
인주의 심기는 굉장히 불편했다.
그때 상대가 더욱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이번 싸움도 우리 한국 측이 이겼구먼.”
다음은 어쩔 거냐고 도발해 왔다.
“하찮은 벌레 따위 기세등등하구나.”
인주의 폭발적인 기운이 주변을 덮쳤다.
“으음….”
괴개가 신음을 흘렸다.
고작 기세만으로 위축되게 만드는 위압감.
그 짧은 사이 등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S급에 서 있는 괴개가 말이다.
“이제 제 차례네요. 뒤로 빠져 계세요.”
“아, 알았소.”
이준이 괴개의 어깨를 잡아 준 덕에 인주의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본 싸움은 우리인데 벌써부터 흥분하시면 어떡합니까.”
그가 인주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준의 잘생긴 얼굴.
차가운 인상에 대조되는 해맑은 웃음이 인주를 자극했다.
“네놈의 얼굴 마음에 안 들어.”
“억? 처음 듣는 소린데. 제 사부가 자신 말고 두 번째로 잘생겼다고 하셨는데.”
“덜떨어진 새끼구나.”
[저, 저 패륜아가 뭐라고 지껄인 것이냐!]
‘사부님보고 덜떨어진 새끼라네요.’
이준은 인주가 한 말을 무극자 사부에게 다시 한번 전달해 주었다.
[추남이라 불쌍히 여겨 거둬 준 은혜도 모르고!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
사부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사부를 대신해서 애제자인 제가 징치하겠습니다.’
[아무렴! 사부가 잘생겼다고 욕을 먹었는데 애제자인 네가 나서야 하는 건 당연하느니라. 어서 저 더럽게 못생긴 녀석을 없애 버리거라!]
사부의 반응이 재밌어서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참았다.
눈앞에 있는 인주를 먼저 해치워야 했다.
“당신 얼굴에 침 뱉기를 하네요.”
“무슨 소리냐.”
“알 거 없습니다. 대신 하나만 말씀드리죠. 제 사부의 분노를 사서 살려 줄 수 없다는 것. 안타깝지만 죽어 주셔야겠습니다.”
“크하하하.”
인주가 쩌렁쩌렁하게 웃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한 말.
오직 자신의 사부와 사형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애송이가 백영창법을 익혀서 자신감을 내보이는 모습이 얼마나 웃기는지.
웃음을 뚝 그친 인주가 싸늘하게 말했다.
“네놈이 과연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럼요. 전 충분히 자격을 갖췄어요.”
“이래도?”
화아악-
인주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넘실거렸다.
마치 오징어의 다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걸 파천멸기라고 하죠? 당신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준도 똑같이 기세를 피웠다.
인주와는 대조적인 회색의 아지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천멸기!?”
인주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는 십선과 달랐다.
당황은 했지만 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제가 당신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거 아시잖아요. 파천멸기라고 다르겠어요?”
“하긴 내가 그 부분을 간과했군. 인정하지. 하나 넌 나를 따라올 수 없다.”
인주가 한쪽 손을 옆으로 뻗었다.
지잉-
허공에 균열이 생기고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게이트가 하나 더 생기더니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의 몸을 가진 몬스터가 나왔다.
“혼돈과 도올….”
개의 형상을 띤 몬스터가 혼돈.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의 몸을 가진 게 도올이었다.
사흉수가 두 마리나 나타났다.
이준의 멍한 표정에 인주가 승리자의 표정을 했다.
“이제야 네 처지를 깨달았겠지? 이 녀석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널 죽일 수 있지만 세상이 절망에 빠진 모습을 보기 위해 소환한 것이다. 크하하하.”
인주가 또다시 크게 웃었다.
대장전에서 이미 승리한 자의 태도였다.
그러나 이준은 멍한 표정을 집어넣고 어깨를 으쓱했다.
“이를 어쩌나 나한테도 비슷한 녀석이 있는데 말이죠.”
이준이 팔짱을 낌과 동시에 인주가 소환했던 게이트보다 세 배가량은 큰 균열이 생겼다.
그곳에서 검은색으로 뒤덮인 거대한 새가 나타났다.
“사신수라고 아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