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0화
무사고 학생들은 교실에 켜진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대장전은 한국과 중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상이 송출되는 중이다.
“우와아아아!”
“검제께서 이기셨어!”
“난 이기실 줄 알았다고!”
“구라까지 마. 지면 어떡하냐고 옆에서 안절부절못한 주제에.”
학생들은 손에 땀을 쥐며 시청하고 있었다.
천외천이란 위험한 제3의 세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각성자 모두가 경각심을 가졌다.
특히 이번 대장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인방.
창제와 검제, 괴개가 나서는 대장전이다.
저들이 진다면 한국에는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질 거라는 걸 학생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모두 교실에서 영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준 미쳤지 않냐?”
“적만 아니면 진짜….”
“여태까지 봤던 싸움 중에 제일 긴장하고 본 것 같다.”
“게이트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다 저 정도의 무력을 가진 거냐?”
“그러면 진작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을까.”
“이러면 안 되는데…. 더 보고 싶어.”
“우리가 언제 이 위대한 싸움을 보겠냐.”
“쌉인정.”
학생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들.
마치 자신이 대장전에 서 있는 것인 긴장과 흥분으로 소름이 돋았다.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해 적들이 어떤 인간인지 잠시 잊어버렸다.
반면 오랜만에 2학년 5반으로 온 한지유가 숨을 크게 쉬었다.
“하아아.”
그녀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박은비가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지유야 괜찮아?”
“응.”
“안색이 창백해진 것 봐.”
“혜지가 안정제 좀 줘.”
“여기 있어.”
서혜지가 민트 초코 사탕을 까서 한지유에게 내밀었다.
그녀도 사양하지 않았다.
“고마워.”
옛날과는 달리 표현을 많이 하게 된 한지유였다.
특히 몰입을 자주 하게 됐다.
예전에는 감정이 없는 기계와 같았는데, 지금은 그 반대였다.
자신과 연관된 사람에게는 과몰입을 하기 일쑤였다.
“검제께서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그러니까.”
검제는 손자와 손녀도 좋아했지만 한지유도 함께 챙겼다.
똑똑한 건 물론 검에도 소질이 있던 그녀.
검제는 그녀를 친손녀처럼 아꼈다.
그런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으니 걱정이 되는 건 당연했다.
한지유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박은비가 고개를 돌렸다.
“언니. 이제 괴개 님 차례예요.”
“우리 할아버지도 무사하시겠지?”
“그럼요. 소문으로는 검제 님보다 강하시다면서요.”
“괴개님이라면 독수로 적을 꼼짝 못하게 하실 겁니다.”
박은비의 옆에는 정예나가 앉아 있었다.
3학년 반에 있어야 할 그녀.
하나 이곳에는 그녀뿐만 아니라 1학년인 정예은과 허수도 있었다.
특별반 아이들은 2학년 5반에 모여서 영상을 시청했다.
“그래도 걱정되는걸. 다치시지 않았으면 좋겠어.”
“응원과 기도밖에 할 수 없다는 게 답답합니다.”
정예나의 말에 허수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외천이 나타나고부터 무력해지는 걸 느꼈다.
몬스터는 억지로라도 잡을 수 있는데 천외천은 대항 자체가 불가능했다.
현격히 나는 수준차.
등급이 올라갈수록 적이 얼마나 강한지 더욱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럴수록 절망감은 깊어져만 갔다.
“우리도 준이처럼 강했으면 저기에 서 있었겠지?”
“그건 바라지도 않아. 도움만이라도 됐으면 좋겠어.”
정예나와 박은비의 말에 한지유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책상 옆에 놔둔 자신의 연검을 꽉 쥐었다.
“더… 강해지고 말 거야.”
한지유가 홀로 중얼거리자 아이들이 동조했다.
“나도!”
“이대로 불필요한 사람이 될 순 없어.”
“준이한테 더 빡센 수련을 시켜 달라고 하자.”
“돌아오면 제가 말하겠습니다!”
허수가 의욕을 불태우면서 소리쳤다.
특별반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은 2학년 5반 학생들도 자극을 받은 듯했다.
“특별반이 무기력하다고 말하면 우린 뭐가 되냐?”
“C급도 되지 못했는데 우린 쓰레기지.”
“나… 이제부터 훈련 열심히 할 거야.”
“모든 문화 비디오 끊는다.”
“재능충들도 열심히 하는데 우리가 게으름 피우면 나가 뒤져야지.”
“인정이다. X발. 오늘부터 잠 줄이고 수련만 한다.”
“나도.”
특별반의 의지가 무사고 꼴찌 반을 자극하는 꼴이 됐다.
학교 랭킹 최하위였던 이준이 이젠 자신들과 범접할 수 없는 높이로 올라갔다.
자신들이라고 못할 것도 없었다.
“꼴찌들의 반란을 보여 주자고!”
“우오오오!”
2학년 5반도 강해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 * *
괴개가 앞으로 나가고 검제가 이준에게 왔다.
“창제….”
“네.”
“내게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이오?”
“수련을 시킨 것뿐인데요?”
“내 말을 그 초식 수련과 보법 수련만으로 어떻게 이런 효과가 나타나냐 이 말이외다.”
검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싸움의 흥분이 안 가신 모양이다.
“검제께서도 느꼈다시피 초식과 보법 수련은 일반 훈련과 달라요. 내공의 컨트롤을 극도로 세심하게 하는 작업이었어요. 그 효과가 싸우면서 나타난 거지요. 상대의 움직임이 보였죠?”
“…너무도 잘 보였소.”
움직임 뿐이랴.
전신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느낌이었다.
“검제께서는 안력이 높아졌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맞소.”
“안력이 높아진 것도 맞지만 정확한 정답은 아니에요.”
“그렇담 정답은 무엇이오?”
“바로 검제 님의 초식에 있어요.”
“초식?”
검제가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에 이준이 설명했다.
“검제 님이 펼치신 제왕검형이 상대 무공의 파훼법을 가르쳐 줬다고 볼 수 있어요. 제왕검형을 펼치자 몸이 저절로 움직였죠?”
“그렇… 소.”
“내공의 컨트롤 훈련으로 굉장히 예민해져 있는 내기가 초식에 반응해서 안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보이는 겁니다. 내공과 하나가 된 몸이 초식의 경로를 따라 적의 공격 루트를 파훼한 거예요.”
“아.”
“이를 두고 진정한 신검합일이라고 해요.”
“이해가… 됐소.”
검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멍하니 있었다.
그의 몸에서 뇌기가 번쩍였다.
웅장하고 강렬하던 그의 기운이 요동쳤다.
잠깐의 대화만으로 깨달음을 얻은 것.
“더 강해지신 걸 축하드려요.”
이준이 빙그레 웃으며 검제의 앞으로 갔다.
깨달음을 얻을 때는 아무도 건드려선 안 됐다.
하나 저 앞쪽에선 벌써 살기가 난무했다.
자신들이 있는 곳에 닿을 정도.
저 살기 때문에 검제가 벽을 허물지 못할 수 있었다.
그에게 피해가 안 가게끔 이준이 자리를 옮긴 것도 이 때문이다.
“복장을 보니까 오선은 개방의 인물이네.”
괴개의 앞에 타구봉을 쥐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꾀죄죄한 복장에 헝클어진 머리는 딱 개방도를 연상케 했다.
개방도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이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요번에도 우리의 승리네.”
육선과 비슷한 기운을 지닌 오선이었다.
검제보다 강한 괴개라면 충분히 오선을 이길거라 생각했다.
[제자야.]
‘네!’
[각성자 중에 개방의 무공을 익힌 사람이 있느냐?]
‘그러고 보니까 개방의 무공을 익힌 사람은 보지 못했네요. 그런데 왜요?’
[저 아이에게 조심하라고 하거라.]
무극자가 이준에게 경고를 보내왔다.
‘개방의 무공이 강해요?’
[강하기보단 까다롭다. 상대해 본 적이 없다면 분명 당혹스러울 것이니라.]
‘사부님이 말할 정도면 심각하게 까다롭다는 이야기네요.’
무극자 사부는 웬만한 무공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일선과 이선의 무공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
그런데 개방의 무공을 익힌 상대를 보고 경고 어린 말을 한 거다.
그렇다는 건 상당히 위험하는 이야기였다.
괴개가 오선을 쉽게 이길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오선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이준은 곧바로 괴개에게 전음을 보냈다.
[괴개 님. 복장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상대는 개방도입니다.]
[타구봉을 지닌 걸 보니 이자 또한 개방의 방주나 되겠지.]
[개방의 무공은 상대를 안 해 보셨으니 시간을 끌면서 무공을 파악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하리다.]
괴개는 백사편법이 완성된 이후 이준의 말이면 그 어떤 것도 신뢰했다.
나이는 한참이나 어리나 무공에 있어서만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게 이준이었으니까.
마치 모든 무공을 알고 있는 듯한 이준이었기에 괴개는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오선과 괴개는 서로 살기를 보냈다.
눈싸움을 지속하던 두 사람이 드디어 행동을 시작했다.
팟-
괴개는 비사장을 오선은 용음십이수란 수법으로 손을 나눴다.
파공음이 수차례 들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교환된 공수.
오선 또한 괴개와 같이 탐색전을 벌이고 있었다.
“오랑캐치고는 제법이다만 결국 우리 대국 앞에선 하룻강아지일 뿐이다.”
그 짧은 시간에 탐색을 다 끝낸 걸까.
오선이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그의 타구봉이 허공을 갈랐다.
한데 경로가 이상했다.
마치 취한 사람이 애먼 곳을 때리는 듯한 방향이었다.
* * *
늦은 밤.
중국 사천 지역의 어느 공항에는 은밀히 통제가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일반인은 근처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입구가 폐쇄된 상태였다.
“애들한테 잘 전달했지?”
“예. 모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진입하기로 했습니다.”
한 여자에게 보고받은 인물은 인주의 옆에 항상 붙어 있던 당소미였다.
“늦지 않게 도착하라고 해. 인주께서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셨어.”
“일선과 이선이 배를 타고 한국으로 갔다가 된통 당한 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역천진은 준비 해 뒀지?”
“비행기에 물자를 넉넉히 실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도착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역천진을 곳곳에 설치하는 일이야. 그리고 살육제를 여는 거지.”
당소미는 인주에게 따로 명을 받았다.
대장전으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고 있을 때 한국으로 잠입해서 역천진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천외천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
무림에 있는 신마회의 일원을 소환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실수는 없어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인주께서 주신 몬스터들도 이동하고 있지?”
“텔레포트를 시킬 몬스터가 없어서 바다로 이동 중입니다.”
“스케먼 무리만 있으면 해결될 일인데, 어떻게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거야!”
애초의 계획은 스케먼을 이용해 게이트 통로를 뚫는 것이다.
그건 스케먼의 특기였다.
비록 전투용 몬스터는 아니었지만, 이 하나만큼은 정말 뛰어난 무기라 할 수 있었다.
기습할 때 굉장히 유용했으니까.
나라 간의 전쟁에서 특히 위력을 발휘했다.
스케먼만 있으면 모두가 잠든 사이에 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좀 아쉬웠다.
“따로 빠진 인원이 스케먼을 찾고 있지만 소식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찾아. 우린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태국, 인도는 물론, 나아가 서양까지 가야 해. 스케먼은 필수 몬스터야.”
“아이들에게 스케먼을 꼭 찾아오라고 전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당소미가 몸을 돌렸다.
그녀는 대기하고 있던 수백 명의 인원을 향해 외쳤다.
“오랑캐 땅을 피로 물들인다.”
그녀의 한마디에 천외천이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
“드디어 살육제다!”
“피의 맹약을!”
당소미가 매혹적인 미소를 짓곤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머지 인원들도 차례대로 비행이기에 올랐다.
모든 인원이 탑승하자 비행기가 공항을 떴다.
목적지는 한국이었다.
사천 지역뿐만 아니라 중국 곳곳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이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