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화
“아주 난장판이네.”
이준은 공장 내부를 둘러봤다.
바닥에 너부러진 시체만도 가득했다.
적이 아닌 가문 연맹 각성자의 시체들.
무극대를 파견하지 않았다면 신기가주를 비롯해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넌 뭐냐고 이 새끼야!”
주영재가 이준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헉!”
이준이 엄지와 검지로 주영재의 검을 잡았다.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검을 치웠다.
“파랑아, 내려와 있어.”
“뀨!”
어깨에 올라가 있던 파랑이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녀석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다가 입구 쪽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이준은 파랑이를 뒤로하고 주영재의 옆을 지나쳤다.
“이런! 진경수 학생의 학부모님께서 걸레가 되셨잖아?”
말과는 달리 전혀 놀란 구석이 없는 이준의 목소리.
반가운 음성에 힘들지만 진병철이 대꾸를 했다.
“…선생…님께서는 이곳…에 어인 일이십니…까?”
“다 죽어 가면서 대꾸할 힘은 있어요?”
“우리… 경수의 선생님… 이신데 당연히 대답을 해야 하… 지 않겠습니까. 쿨럭쿨럭!”
진병철이 기침을 했다.
피가 한 사발이나 나왔다.
비상약은 한지웅을 줘서 자신이 먹을 약이 없던 것.
이제 죽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학부모님만 아니면 모른 척할 텐데, 절 잘 따르는 진경수 학생을 봐서 제가 큰맘 먹고 비싼 약을 드릴게요.”
이준은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서 뒤적였다.
뱀파이어 로드의 피와 화독초였다.
뱀파이어 로드의 피는 B+ 등급.
일반 피와는 다른 빠른 재생력을 가졌다.
화독초는 어떤가.
검붉은 잎사귀에서 풍기는 독 향을 가지고 있었으나 무려 A급 치료 약이었다.
신의 꽃이라 불리는 계승의 꽃밭 주변에 자란 화독초였다.
파랑이의 관리 지역이라 테구르가 녀석의 허락을 맡아 뽑아다가 자신에게 쥐어 줬다.
위급할 때 사용하라나 뭐라나.
독초였으나 치료에는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목숨이 간당간당하지 않다면 그 어떤 상처도 치료했다.
“소용… 없습니다… 내장이 다 망가져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 입니다. 그 약을 제가 아닌… 신기가주에게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진병철은 자신의 상태를 잘 알기에 치료를 포기했다.
화타라는 신의가 환생을 한다 하더라도 고치기 힘들었다.
“진경수 학생은 포기를 모르는데 학부모인 진 가주께서는 굉장히 포기가 빠르네요.”
“허허… 계산이 빠르…다고 해 주십시오…”
“그런데 전 진 가주를 포기할 수 없어서요. 진경수 학생이 몇 달만 빡세게 훈련하면 A급의 벽을 깰 수도 있는데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할 거예요. 선생의 입장에선 그런 일은 절대 발생하게 하면 안 되죠.”
“우리 경… 수가 말입니까…?”
“그래요.”
진병철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항상 오대 가문의 밑이라고 무시를 받았던 날들.
천재적인 아들을 낳고 꿈을 꿀 수 있었다.
아들이라면 진씨가문을 오대 가문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하니, 기쁨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젠 죽어도… 여한이… 읍!”
이준은 진병철의 입을 다물게 했다.
뱀파이어 로드의 피를 화독초에 들이붓곤 잎 채로 진병철의 입에 쑤셔 넣었다.
“뭘 자꾸 죽는다 그래요. 어차피 살 건데 안 죽으면 쪽팔려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려고 이러실까.”
이준의 과격한 손길에 창고 안으로 들어오던 각성자들의 눈이 커졌다.
성격이 깐깐하며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한 진병철을 거칠 게 다루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는 오대 가문의 아래에 있는 가문 중 제일 강한 곳의 수장이다.
저렇게 함부로 대할 인물이 아니었다.
“커허억!”
화독초를 삼킨 진병철이 허리를 새우처럼 꺾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좀 아플 거예요. 화독초랑 뱀파이어 로드의 피가 고장 난 오장육부를 치료하느라 발생하는 현상이니 조금만 참으세요.”
사람들은 모르는 게 있었다.
A급인 화독초와 B+급인 뱀파이어 로드의 피가 합쳐지면 AA급 치료 약이 된다는 사실을.
뱀파이어 로드의 피는 구한다고 마음을 먹으면 재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나 화독초는 정말 희귀했다.
독 지대에서만 자라는 독초.
그냥 독 지대도 아닌, 뜨거운 화열 지역 속의 독 지대여야 했다.
조건이 까다로운 독초라 그런지 효과는 기가 막혔다.
독은 물론 열양의 기운으로 노폐물을 씻어 낸다.
뱀파이어 로드의 피와 합쳐진다면?
뱀파이어 로드 피의 재생력을 거의 10배에 가까이 증폭시켜 줬다.
그렇기에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각성자도 살릴 수 있는 치료 약이었던 것이다.
* * *
주영재는 검을 휘두른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내가 저딴 애송이한테 겁을 먹었어?’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진정을 시키려고 심호흡을 했지만 좀처럼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저놈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도망칠 기회다.’
몸의 떨림은 중요하지 않았다.
주영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 현장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상관인 사선에게 일의 실패를 알리는 거였다.
저 멍청한 애송이가 길을 비켜 준 덕분에 도망칠 곳이 뻥 뚫려 있었다.
이래서 힘만 센 애송이들이 경험 많은 무인에게 죽는 거다.
‘다음에 만나면 오늘 당한 수모를 배로 갚아 주마.’
주영재가 이준에게 이를 갈고는 발을 떼서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 뭐야?’
그가 당황했다.
몸이 무언가에 의해 속박을 당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원인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찰나.
그의 눈에 아주 귀여운 여우가 시선에 잡혔다.
‘설마!’
원인을 찾았다.
저 파란 동물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특히 자신이 지닌 마기와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을 따르는 몬스터라니! 설마 저들도 우리가 아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가?’
천외천이 가진 계획 중 하나.
게이트의 몬스터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
인간과 양립할 수 없는 몬스터를 조종해 지구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게 천외천의 계획이었다.
‘삼선 이외에는 몬스터를 조종할 수 없어. 사선께서도 시도를 해 보다가 포기하신 일인데 어떻게 된 거지?’
주영재는 혼란스러웠다
듣기론 삼선도 현재는 블루급 몬스터밖에 제어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이상은 목숨을 잃을지언정 반항이 끝도 없다고 하니.
몬스터를 컨트롤하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다.
헌데 저 애송이는 마치 파란 몬스터와 친구 같은 관계처럼 보였다.
‘내가 무슨 생각을! 삼선께서도 어려워하는 일을 애송이 자식이 해낼 리 없잖아? 내 검을 막아서 예민해져 있는 거다.’
주영재는 불안한 감정을 애써 무시했다.
‘우선 이 빌어먹을 속박에서 벗어나야 해.’
그가 몸부림을 치며 파랑이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이.
“쿨럭쿨럭!”
진병철의 입에서 한차례 피가 토해졌다.
검은 피가 아닌 새빨간 붉은 피였다.
심지어 전에는 내장 조각까지 나왔는데 지금은 아주 깔끔하게 액체만 나왔다.
“허억… 허어억….”
“어때요? 기분 상쾌하죠?”
이준이 해맑게 웃으며 진병철에게 물었다.
“허억… 내게 무슨 일이…?”
“무슨 일이 있긴요? 상처가 다 나은 거죠.”
“정말입니까?”
“아니지. 마지막 치료가 남았구나.”
이준은 허리를 숙여 진병철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진병철의 상처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기운을 전부 빨아들였다.
[흡혈마공의 흡자결을 사용했습니다.]
[조잡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조잡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혼원신공이 조잡한 마기를 정화합니다.]
천외천의 마기를 가진 이들에게 당하면 상처에 남은 마기를 꼭 없애야 한다.
아니면 그 마기가 죽을 때까지 괴롭혔다.
천외천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였다.
그들의 마기를 완벽히 치료할 사람은 자신과 파랑이뿐.
동의각주인 이의태나 이지안, 서혜지가 천외천의 마기를 치료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천외천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치료가 가능하면 좋으련만.
이것만은 자신의 영역 밖이었다.
“자, 다 끝났어요.”
진병철은 몸 상태를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몸이 깔끔하게 나았어…!”
“이제 신기가주님 차례예요.”
이준이 다음 차례인 한지웅을 불렀다.
진병철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약을 먹기 꺼렸지만 목숨을 잃은 것보단 나았다.
한지웅은 이준이 건네준 약초를 질겅질겅 씹으며 목구멍으로 넘겼다.
“아차, 진 가주님께 말씀 안 드리린 게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이 약 많이 비싼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공짜 아니었습니까?”
“목숨을 구해 주는데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셔야죠.”
“아, 알겠습니다.”
“이거 이거 진 가주께서 저한테 갚아야 할 게 상당히 많은데 괜찮으려나.”
“제가 최대한 성의를 표시하겠습니다.”
“큼큼. 역시 진 가주님은 말이 잘 통하네요. 우리 진경수 학생은 아버지를 참 잘 둔 것 같습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이곳이 적진인 줄도 모르고 담소를 나누는 이준과 진병철이었다.
두 사람을 지켜 보고 있던 김봉팔과 무극대가 한마디씩 했다.
“여, 역시 가주님. 친해도 뜯어 가는 건 얄짤이 없으셔.”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돼.”
“저 정도로 뜯어 가는 실력이면 몇 년 안에 신력권가가 금력 1위를 찍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몇 년 안에? 난 1년 안에 우리 가문 재산이 두 배로 늘어날 거라고 본다.”
이준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무극대였다.
* * *
쿵!
쿠쿵!
사형준과 오 비서의 싸움은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붙어서 공수를 교대하다가 떨어지고.
다시 땅을 박차 서로 죽일 듯 싸웠다.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이준이 주영재와 여자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딱 보니까 여자가 저 멍청한 놈보다 신분이 높겠네요.’
[이제는 보는 눈이 있구나, 제자야.]
‘다 사부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크흠. 알면 되었다. 앞으로 더 정진하여 사부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거라.]
‘아무렴요.’
[저 정도의 실력이면 꽤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 터인데 어쩔 생각이냐.]
‘이번에는 십선이나 구선처럼 쉽게 죽이면 안 되죠. 잡아다가 심문을 할 생각이에요.’
[사부의 말을 잊은 것이냐? 금제로 인해 심문은 불가할 것이니라. 다른 방법은 생각해보지 않았느냐?]
무극자 사부의 질문에 이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지금까지 너무 생각 없이 죽였다.
십선이나 구선도 죽였으면 안 됐다.
심문을 못하더라도 짜잘한 정보를 얻어야 했던 것.
홧김에 죽인 덕분에 몸만 귀찮아지고 있었다.
이젠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는 하면 안 됐다.
‘금제부터 어떻게 해야죠.’
[누누이 말하지만 제자의 현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느니라.]
‘정말 안되요?’
[불가능하다.]
‘에이 고금제일의 사부님께서 만드신 혼원신공이 있는데 불가능할리가요. 다른 방법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사부님?’
이준이 슬쩍 떠봤다.
칭찬과 함께 치켜세우자 단순한 무극자 사부가 뒤늦게서야 술술 털어놓았다.
[큼큼. 고금제일의 신공인 혼원가지고 못 하는게 없지. 암 그렇고 말고. 제자가 7성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면 어떠하랴. 꼭 금제를 제거하고 정보를 알아내는 방법만 있는게 아니니라.]
됐다!
미끼를 던지니 어김없이 낚였다.
‘전 이미 사부님께서 고안을 생각하고 계셨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괜히 무림인들이 사부님을 무서워해서 벌벌 떤 게 아니죠.’
[홀홀. 다 옛날의 일이니라. 사부의 얼굴에 금칠하지 말거라.]
언제는 칭찬하라고 계속 부추기더니.
참 종잡을 수 없는 사부였다.
[잘 듣거라 제자야. 저놈의 몸에 혼원신공을 주입에 머리를 뺀 모든 혈도를 막아라. 그러면 잠시 금제의 발동이 봉인될 것이다. 그때를 노려 심문하면 된다.]
‘흐흐. 역시 고금제일의 신공이네요.’
[홀홀. 고금제일인이 만들었으니 당연히 고금제일의 신공이지.]
무극자 사부가 기분 좋게 웃었다.
정말 칭찬에 약한 사람.
어째서 파천혈신이란 악명을 달았을까 할 정도로 순진했다.
정말 미스터리.
이제는 사부의 적들이 오히려 빌런이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