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화
“크으윽….”
한지웅이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내공으로 상처를 틀어막으려 했지만, 마기로 인해 상처가 더 벌어지고 있었다.
허현은 한지웅을 내려다보면서 비웃음을 흘렸다.
“가주. ‘그’들의 정체에 너무 눈이 멀어서 내부는 전혀 의심을 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아니면 진법서생이 시전한 혈고독술을 믿으셨나?”
“크윽… 당신이 왜 이런 짓을…?”
“현 시대는 힘이 지배하는 세상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힘을 준다는데 마다한 멍청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멍청한! 풉…!”
한지웅이 버럭 화를 내려다 피를 토하고 말았다.
새빨간 피가 아닌, 검은 피.
죽은피를 토하자 진병철이 급하게 달려왔다.
“신기가주! 괜찮소이까?”
“전 괜찮… 쿨럭쿨럭!”
“안 되겠소. 이거라도 드시오.”
진병철이 품에서 황금색 박지에 감싸진 환약을 한지웅의 입에 밀어 넣었다.
진병철은 자신이 위험할 때 먹으려고 숨겨 둔 비상약을 한지웅에게 준 것이다.
“고맙… 습니다.”
환약으로 인해 응급처치가 되서 그런지.
더는 피를 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처는 깊어만 갔다.
이게 다 마기의 영향 때문.
허현이 받았다는 힘은 천외천의 마인이 사용하는 마기였다.
한지웅이 찡그린 표정을 한 채 허현을 보며 말했다.
“당신은… 천외천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곧게 죽고 싶으면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힘 센 자의 밑으로 들어가는 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저에게 걸맞은 힘까지 주니 ‘그’들의 밑에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허현은 골수까지 천외천을 찬양하고 있었다.
이에 격분한 진병철이 허현을 향해 쇄도했다.
“이 은혜도 모르는 짐승 같은 놈이!”
진병철은 이전보다 강한 무공을 사용했다.
달려가면서 허공에 발길질을 하는 그.
그의 다리가 허공을 강타할 때마다 하얀빛이 번쩍이면서 허현을 향해 날아갔다.
검기와 같은 원거리 공격으로 이를 각기라고 했다.
허현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각기를 보고 식겁을 했다.
“헉!”
콰광-
허현에게 각의 기운이 적중하며 먼지가 일어났다.
서서히 먼지가 가라앉으려는 찰나.
먼지를 뚫고 나온 하나의 도가 진병철의 허벅지를 훑고 지나갔다.
“윽!”
하나 진병철은 AA급 초입.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의 각성자였다.
“쯧. 조금만 깊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허현은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그는 진병철의 각기를 보곤 일부러 식겁한 척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방심한 틈을 타서 공격을 했다.
“네놈이 어떻게?”
“A급인 제가 진가주의 각기를 막아서 놀랍습니까? 크크. 이 모든 게 저분들이 준 힘 덕분입니다. 아니 그런가?”
“맞습니다.”
“힘을 드러내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릴 지경이에요.”
허현이 뒤돌아본 이들은 그가 이끄는 부대였다.
신기지가의 소속으로 모두 식객으로 이루어진 이들이었다.
“…너희 모두 저들과 한패란 말이냐?”
“왜 아니겠습니까.”
“이제 아셨어요? 어머 눈치도 없으셔라.”
짝-
허현의 부대.
만통대가 정체를 드러내자 주영재가 박수를 치며 시선을 모았다.
“장난은 그만치고 끝내는 게 어때? 다른 놈들이 냄새를 맡고 이곳으로 오면 골치 아파져.”
“크크. 알겠습니다.”
만통대 모두가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들은 가진 기운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들의 몸에서 이전에 없던 마기가 가득 보였다.
“뭣들 하느냐! 어서 신기가주를 보호하라!”
진병철이 데려온 각성자와 비선 그리고 지원 병력이 주위를 감쌌다.
그 순간!
푹푹푹-
“윽!”
“억!”
“컥!”
신음이 일제히 들려왔다.
대구의 중소 가문에서 지원 온 각성자들이 비선과 진씨 가문의 인원을 무기로 찔렀다.
그들의 행동에 허현이 웃으며 말했다.
“이를 어쩐답니까. 저들도 우리 편인데.”
허현과는 달리 한지웅과 진병철은 절망에 빠졌다.
계속된 악재로 인해 이곳에서 벗어날 확률이 더 낮아졌기 때문이다.
* * *
“진 가주님!”
한지웅이 진병철을 향해 소리쳤다.
비선과 진씨 가문의 각성자들이 모두 죽었다.
남은 사람은 오직 두 명.
한지웅과 진병철뿐이었다.
허현과 오 비서라는 여자.
그리고 만통대는 집요하게 진병철만을 괴롭혔다.
빨리 끝내겠다는 말과는 달리 양아치처럼 진병철을 가지고 놀았다.
그의 전신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목숨이 끊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으아아악!”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병철은 악을 지르며 저항했지만.
퍽-
그마저도 오 비서의 발길질에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만! 그만하시오!”
“당신도 곧 죽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허현이 악마처럼 웃으며 몸을 돌리려는 그때였다.
쿵.
땅이 진동했다.
쿵.
연이어 들리는 소음.
공장의 건물이 흔들렸다.
곧이어 굉음과 함께 벽을 뚫고 한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을 본 주영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 내가 빨리 끝내라고 했잖아. 괜히 귀찮게.”
주영재가 뒤에 서 있는 수하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로열바이오의 직원들은 새로 나타난 자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이 검을 뽑자 매화 향기가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로 나타난 이들 중 제일 앞에 있는 자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콰르릉-
벽력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으갸갸갸!”
로열바이오 직원 한 명이 장법에 맞아 통구이가 되었다.
단 한 방에 나가떨어진 동료에 어안이 벙벙한 로열바이오의 직원들.
그들은 장법 한 방에 나가떨어질 실력이 아니었다.
검을 뽑은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이.
이준이 파견한 무극대의 대주 사형준의 눈에 한지웅이 들어왔다.
“무극대는 즉시 신기가주를 보호한다.”
“예!”
“맡겨 주쇼. 대주.”
행동이나 말투나 한없이 가벼운 그들이었지만 결코 실력은 낮지 않았다.
“이 새끼들아, 다 뒤지기 싫으면 저리 비켜라.”
김봉팔은 두 손에 기운을 잔뜩 두른 채 벽력신장을 마구마구 쏘아 댔다.
그뿐만이 아니라, 패권을 비롯한 다양한 권법을 구사하면서 주변의 적을 쓸어 갔다.
무극대가 나타나자 상황이 급변했다.
“멍하니 있지 말고 공격하지 못해!”
주영재가 로열바이오의 직원에게 버럭 소리쳤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매화검법을 펼치며 사형준을 공격했다.
사형준은 벽력신장으로 적의 공격을 막곤 패권으로 가슴을 뭉개버렸다.
퍼벅퍽퍽!
깔끔한 공격에 로열바이오의 직원들은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이래서 가주께서 급히 이곳으로 우릴 파견한 것이군.”
수미천왕신공의 내력이 담긴 벽력신장과 패권으로도 적을 사살한 건 다섯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상대가 그만큼 강하다는 소리.
그들에 걸맞게 실력을 더 내보여야될 것 같았다.
“무극대는 적을 제거하라.”
“예!”
사형준의 명령에 한지웅을 보호하고 있던 무극대가 적을 향해 움직였다.
무극대의 파괴력은 막강했다.
100명 전원이 S급 무공인 벽력신장으로 무장한 상황.
처음에는 사형준만이 계승의 꽃을 먹었지만 추후에는 그 인원을 점점 늘려 갔다.
그 결과가 현재의 무극대였다.
무극이라는 이름과 걸맞게 적들을 학살했다.
“엥? 얘들 신기지가의 옷 입고 있는데?”
“부대주. 딱 보면 모르요? 마기를 풀풀 풍기는데.”
“우리 공격하는데 그냥 죽여요.”
“에라 모르겠다. 이거나 처먹어라!”
적들이 당황했다.
처음에는 뭔 병신들이 설치나 했는데, 무시할 놈들이 아니었다.
“약해! 너무 약하다고!”
김봉팔이 벽력신장을 뿌려대면서 입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도 명색에 무극대의 부대주라 그런지.
상대는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쓰러져만 갔다.
“이 김봉팔이를 상대하려면 더 강한 놈을 데려오란 말이야!”
미친개가 포효하며 종횡무진한 덕에 적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전장의 흐름을 본 주영재가 허현을 향해 소리쳤다.
“허현! 그놈을 죽이고 너도 빨리 합류해!”
“예. 장난은 이만 끝내야겠습니다. 편히 가십시오. 당신의 아들도 제가 곧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노옴…!”
피투성이가 된 진병철이 허현의 발을 붙잡았다.
허현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도를 내려치려고 했다.
“사 대주! 진 가주가 위험하네! 저분부터 구해주시게!”
한지웅이 사형준을 애타게 불렀다.
로열바이오의 직원과 싸우고 있던 사형준이 몸을 틀었다.
“어딜 가려고!”
“가려거든 우릴 뿌리치고 가라!”
로열바이오의 직원들이 사형준의 앞을 막아섰지만.
“사라졌어!”
사형준의 신형은 어느새 허현의 앞에 있었다.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오 비서의 다리가 날아왔다.
두 수 만에 진병철을 날려 버린 낙영각이었다.
사형준은 휘두르려던 주먹을 회수 한 채.
몸을 틀어 낙영각을 피했다.
턱.
그리고 발등을 이용해 허현의 도 끝을 막았다.
허현과 오 비서의 눈이 커졌다.
그 짧은 시간에 한 행동.
두 사람이 놀라기에 충분한 움직임이었다.
* * *
사형준은 진병철을 한지웅에게 옮긴 후, 오 비서와 싸우고 있었다.
거의 호각.
용호상박이라 해도 믿을 만큼 누구 하나 밀리지 않았다.
‘신권이 저렇게 강했나?’
한지웅은 애초부터 사형준의 본래 신분을 알고 있었다.
무늬만 후계자를 보호하는 천왕대의 직책을 달고 있을 뿐, 신력권가의 최정예인 권신단의 부단주였다는 것을.
권신단의 부단주는 대대로 차기 권신단주가 되었다.
출셋길이 보장되는 건 물론, 그만큼 강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정보대로라면 사형준은 A급 완숙에서 끝자락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무력은 어떤가.
진씨 가주도 혀를 내두른 여자와 동수를 이루고 있었다.
‘실력을 숨겼다고 하기엔 정보와 갭 차이가 심해.’
그동안 실력을 키웠다는 말.
스무 살 후반의 나이에 A급의 벽을 넘은 건 사형준이 최초일 것이다.
아니, 이준이란 괴물이 한 명 있긴 했지만 논외의 인물.
세상에 이해 안 되는 이들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이준이었다.
‘이준, 그 아이의 곁에 있으면 다 괴물이 되어 가는 건가?’
자신의 딸 아이 또한 이준의 곁에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성장력을 보였다.
어쩌면 최단기 AA급 각성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나.
무튼 이준은 정말 미스터리한 아이였다.
쿵-
쿵-
사형준과 오 비서의 격돌로 인해 주변이 뒤흔들렸다.
충격파로 인해 경지가 낮은 각성자는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우드득.
무극대의 부대주인 김봉팔이 적의 목을 꺾으며 중얼거렸다.
“싸움 한번 살벌하네. 애들한테 저 주위로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해.”
“이미 말해 놨어요.”
“대주는 어째 점점 괴물이 되어 가는 것 같소?”
“우리도 몇 명은 AA급에 들었는데 대주라고 같은 경지에 있을까.”
“하긴, 전 가주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양반이니.”
“이젠 대주에게 개겼다간 초상날 판이다.”
무극대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몸을 떨었다.
무지막지하게 강해진 대주.
현 가주와 더불어 괴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여유 있는 무극대와는 달리, 반대로 다급해진 주영재였다.
“오 비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빨리 끝내지 못해?”
주영재는 화를 내면서도 침을 꼴깍 삼켰다.
상황이 좋지 못했다.
자신의 부하인 로열바이오의 직원과 오 비서, 허현만 남은 상황이었다.
‘알약들은 다 처리했고, 오 비서가 저 떡대를 막는 사이 도망을 쳐야 하나?’
어차피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
허현 멍청한 놈 때문에 시간을 지체했을 뿐.
원래라면 이미 여길 벗어나야 했었다.
‘그래. 나라도 살아서 사선께 일이 틀어졌다고 알려야 해.’
주영재는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살금살금 움직였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부서진 벽 쪽으로 갔다.
하나 한지웅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로열바이오의 사장이 도망치네!”
“흐흐 늦었다! 다음에 또 만나도록 하지.”
주영재가 비웃음을 흘리며 경공을 펼쳤다.
부서진 벽을 통해 나가 버렸다.
아니, 나갔으나 곧장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와야만 했다.
퍽-
“컥.”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니었는지, 바닥에 엎어진 주영재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넌 뭐 하는 새끼야!”
“어? 날 모르네? 나 이 바닥에서 꽤 유명하지 않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학교의 일을 끝내고 곧장 대구로 내려온 이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