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이준은 주영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얼굴을 보니, 여길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너 뭐하냐?”
“헉!”
등 뒤에서 이준의 목소리가 들리자 주영재가 화들짝 놀랐다.
언제 지척까지 왔는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야. 너 천외천에 대해 말해봐라.”
이준의 질문에 무극대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이 자신들의 가주였다.
친구에게도 저런 질문은 안 할 것이다.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냐?”
“이하동문입니다.”
“난 안 볼란다.”
무극대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창피는 그들의 몫이었다.
이준의 질문에 주영재가 코웃음을 쳤다.
“미친놈이군. 적이 정보를 알려달라면 알려주는 병신이 어딨지?”
그럼에도 이준은 아무렇지 않아 했다.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주영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쉽게 좀 가자. 그냥 딱 말해주고 뒤지면 얼마나 좋냐.”
우웅.
이준의 손에 혼원신공의 내기가 맺혔다.
“뭐, 뭐하는 짓이냐! 이거 놓지 못해?”
“네가 천외천에 대해 순순히 안 가르쳐주는데 내가 직접 알아봐야지. 안 그래?”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혼원신공의 내기는 주영재의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흡!”
주영재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혼원신공의 내기가 주영재의 몸을 돌아다니면서 혈도를 차례차례 막아버렸다.
그럴 때마다 주영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가 들었는데 내공을 지닌 사람은 혈도를 다 막아도 1시간은 거뜬히 살아 있을 수 있다네?”
이준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와는 반대로 주영재는 미칠 지경이었다.
내공으로 상대의 기운을 대항하려 했지만 무참히 무너졌다.
혈도가 하나하나 닫힐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그, 그만!”
“그만하면 천외천에 대해 말할래?”
“가능하리라 생각… 하느냐!”
“그러면 나도 그만 못하지.”
이준은 좀 더 빠르게 일을 진행시켰다.
아까까진 자비를 담아 천천히 닫아주었는데, 지금은 한번에 두세 개씩 닫아주고 있었다.
“이 버러지… 새끼가 감히 날…!”
“호, 오랜만에 듣는 소리네.”
이준은 화를 내려다 말았다.
자신 대신 무극자 사부가 주영재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저 하찮은 놈이 누구의 제자보고 감히 버러지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제자야. 안되겠다. 저놈이 제 주제를 모르는구나. 혈도를 하나씩 터트려버려라.]
‘네? 그래도 돼요? 이러다 죽으면 천외천의 정보도 못 알아낼 텐데.’
[무림인은 일반인보다 신체가 튼튼하느니라. 혈도 몇 개 터트린다고 죽지 않는다. 어서 저 빌어먹을 잡것에게 경고를 주거라!]
무극자 사부의 대노에 이준이 민망해했다.
욕을 들은 건 그였는데 도리어 자신의 일인 양 흥분하며 고통을 주라고 부추겼다.
사부의 말에 이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고통을 알리는 신호였을까.
“크아아악!”
주영재가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핏줄과 살이 터져나갔다.
몸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주영재는 금세 혈인이 되었다.
“끄어어억…”
“아프냐? 나도 네가 내 불운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해서 마음이 아프다.”
“끄으으… 제발… 멈… 춰줘…”
주영재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혈도가 터지는 고통에 그의 정신은 가물가물해져만 갔다.
“이제 시작인데 울면 쓰나. 남자가 참을성도 없네.”
이준은 입을 쉬지 않고 놀리면서 주영재의 혈도를 머리만 남겨놓고 전부 닫았다.
“커… 꺽꺽…”
곧 숨이 넘어갈 듯한 상태였다.
주영재의 머릿속은 온통 아픔으로 가득했다.
차라리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여태 겪었던 고통과는 차원이 달랐다.
‘원래 혈도만 닫는데도 이렇게 아파해요?’
[끌끌. 그럴 리가 있겠느냐. 다 혼원신공의 내력 덕분이지. 제자는 혼원신공을 지니고 있으니까 모르지만 혼원은 혼돈 그 자체이니라. 네가 악한 마음을 먹는다면 혼원은 그에 상응하는 성질을 띤다. 고로 저 빌어먹을 놈은 지금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지.]
‘아, 그런 거였어요?’
무서운 무공이었다.
혼원신공이 그런 성질을 띠고 있었는지 오늘 처음 알았다.
무극자 사부의 무공은 알면 알수록 어려웠다.
[홀홀. 이제 물어보거라. 아마 물어보지 않은 것도 다 말할 것이다.]
***
‘저 멍청한 새끼! 그렇게 도망칠 시간이 많았는데.’
오 비서는 사형준과 싸우며 한 눈을 팔았다.
그녀의 신경은 온 통 주영재를 향했다.
혹여나 자신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고작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려고 하는 게 보였다.
‘깔끔하게 다 죽이고 사선께 갔어야 했는데, 실수야.’
그녀의 눈이 깊어졌다.
사형준의 주먹을 발로 막으면서 입술을 옴짝달싹하는 그녀.
전음이 아닌, 무언가 하려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이 검게 번쩍이자 낌새가 이상한 걸 눈치 챈 사형준이 벽력신장을 날렸지만.
쾅!
장력이 바닥에 꽂혔다.
그녀는 사형준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그녀가 향한 곳은 바로 이준과 주영재가 있는 곳이었다.
“크윽! 끄어어억!”
‘사부님. 얘 왜 이래요? 혈도를 막아도 1시간은 버틸 수 있다하지 않으셨어요?’
주영재의 발작에 이준도 당황했다.
무극자 사부를 믿고 고문의 강도를 높였는데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저 애가 문제다.]
‘정장 입은 여자 말이죠.’
이준은 고개를 돌려 공격해 오는 오 비서를 보았다.
[이놈보다 위치가 높을 줄은 알았지만 금령술사일 줄은 몰랐다.]
‘금령술사요?’
[금제에 걸려 있는 놈들을 관리하는 이들이라고 보면 되느니라.]
‘그러니까 저 여자가 이놈한테 금제를 걸고 관리하고 있었다는 거네요?’
[맞다.]
‘그러면 이놈 죽겠네요?’
[죽겠지. 입을 열기 전에 죽을 것이다. 이미 금제가 발동해버렸어.]
‘X됐네요.’
[X됐지.]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콰앙!
오 비서의 날카로운 구두의 굽이 이준을 강타했다.
공장 안을 쩌렁쩌렁하게 소리가 울렸다.
엄청난 공격력에 무극대의 눈이 치켜 떠졌다.
하나 무극대의 놀람과는 달리 도리어 오 비서가 경악을 했다.
“막… 아?”
무려 극성으로 펼친 낙영각이었다.
낙영각은 환의 극의에 달한 각법.
극성으로 펼치면 수십 개의 각력은 진짜로 보였다.
아니, 모두가 진짜 공격이었다.
그런데 이준은 오 비서의 구두를 손으로 잡았다.
그녀가 놀란 이유는 하나.
십선들을 제외하곤 이 공격에 다들 곤혹스러워했다.
그런데 이준은 어떻게 된 게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낙영각을 막아버렸다.
“너희들 정말 사람 귀찮게 한다.”
“억!”
이준의 손이 오 비서의 구두를 지나 종아리를 꽉 붙잡았다.
붙잡은 종아리를 자신 쪽으로 잡아당기자 오 비서가 이준의 품 쪽으로 끌려왔다.
이준은 잡았던 종아리를 놓고 그대로 오 비서의 얼굴을 잡아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쾅!
창고 바닥의 콘크리트가 거미줄처럼 쩌어억 갈라졌다.
“커허억!”
머리가 터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이준이 오 비서를 바닥에 패대기를 친 사이.
“끄어어어…”
주영재가 몸을 들썩이다가 이내 고개를 축 늘어트렸다.
그의 숨이 끊어졌다.
무극대에게 잡혀 있는 허현도 마찬가지.
전신 모공에서 피가 새어 나와 죽어버렸다.
“너는 내가 절대 안 놓쳐.”
이준은 오 비서가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게 혈도를 막아버렸다.
주영재에게 했던 수법보다 훨씬 빠르게 행동했다.
머리의 혈도만 남기고 전부 막혔다.
이제는 금령술도 발동하지 못하고 자폭도 할 수 없었다.
“날 귀찮게 했으니까 알고 있는 걸 다 말해야 죽을 수 있을 거야. 알았지?”
이준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걸 무극대가 보자 흠칫했다.
그 전의 미소는 장난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싸늘한 웃음이었다.
저럴 때마다 상대는 아주 죽어나갔다.
“우린 같은 편인데 왜 이렇게 가주가 무섭냐?”
“방금 못 봤소? 대주님과 막상막하인 여자를 단숨에 제압한 거?”
“괴물 위에 괴물이 있다는 건 우리 가주를 말하는 것 같다.”
“동감이오.”
“나 오줌 마려운데 화장실 좀 갔다 오면 안 되겠지?”
“지금 상황에 무슨 화장실이오. 싸서 말리시오.”
“하, 심문은 또 어떻게 하실지. 생각만 해도 몸이 저릿하다.”
* * *
무극대의 생각대로 이준의 심문은 가차 없었다.
그는 여자라고 봐주지 않았다.
“아아아악!”
오 비서의 비명이 창고를 가득 메웠다.
이준의 검지가 그녀의 허벅지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머리를 제외한 전신 혈도가 닫혀 통증의 감각이 머리로 쏠렸다.
수십 배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 그녀.
몸에서 물이란 물은 죄다 나오고 있었다.
“아흑… 제발… 그… 만…!”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 이쯤에서 질문을 할 테니까 똑바로 말해줬으면 좋겠네.”
마음이 편치 않다는 사람의 얼굴은 굉장히 평온했다.
오 비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음에도 표정은 해맑았다.
오 비서에겐 그게 더 공포스러웠다.
아니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 전부 그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자, 첫 번째 질문. 한국에 너희 세력 어디까지 잠입해 있어?”
“… 우리가 전부… 아악!”
오 비서의 말에 이준의 손가락이 이번엔 어깨를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 그만 하란 말이… 야! 크어어억!”
“그러니까 똑바로 대답해야지. 난 귀찮은 걸 질색하지만 짜증나면 앞뒤 안 재고 죽이거든. 어차피 너희 천외천 본진이 중국이라는 걸 알아. 그쪽 가서 이 잡듯 뒤지다 보면 너희가 알아서 나오지 않겠어? 그러니까 내가 깽판치기 전에 네가 순순히 말하는 게 좋아. 그리고 말이야. 혹시 알아? 내가 널 살려줄지?”
그녀는 이준의 눈동자를 보았다.
말하면서도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천외천에 대해 알면 대게 당혹스러워하거나 두려움이 가득했다.
자신들의 이름값은 그만큼 모두에게 공포스러웠던 것.
그러나 이준은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천외천에 대해 자세히 모르거나.
아니면 자신 있거나.
이준은 후자에 가까웠다.
‘이런 미친 자가 있다니! 여기서 어떻게든 빠져나가 사선께 알려야 해. 위험한 놈이 한국에 있다는 걸 말이야!’
그녀는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준은 천외천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 같였다.
“흐윽… 날… 살려주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할게…”
“거래 성립. 내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대답해줘.”
“약속… 지켜!”
“나 그렇게 나쁜 놈 아니야.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죽이는데 마음 아파한다고.”
이준의 말에 무극대가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준은 오 비서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검산그룹과 신기지가에… 우리의 꼭두각시들이 숨어 있… 다.”
“너희와 같은 실력을 가진 이들은?”
“우리가… 끝이야. 컥! 저, 정말이야! 도왕이 죽고나서 부터 우리는 한국에서 세력을 축소했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목소리에선 어떻게든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렇담 두 번째 질문. 이 약 이게 전부야?”
“전부… 야. 나머진 검산그룹이 가지고… 있어.”
“거짓말은 안 하는 것 같으니 이것만 묻자. 대체 너희의 진짜 목적이 뭐냐? 세계를 정복하는 거라면 굳이 학살을 자행하지 않아도 되잖아? 공포로 군림하면 될 텐데 너희의 행태를 보면 꼭 누군가를 자극하려는 것 같단 말이야.”
“그건 나도 몰라… 난 그저 상부의 명으로… 흐어어억!”
오 비서가 경련을 일으켰다.
눈이 뒤집히면서 피거품을 물었다.
이준이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컥!”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후 몸이 축 늘어졌다.
[금제를 잠시 봉인한 시간이 다 지났느니라.]
우선 알게 된 건 한국에 숨어 있는 천외천의 꼭두각시들이다.
이들만 잡으면 한국은 천외천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는 소리.
내부의 적을 없애는 건 굉장히 큰 소득이었다.
[힘을 키우고 차근차근 적들을 제거하다보면 놈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게 될 것이니라.]
무극자 사부의 말에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신기가주님 들으셨죠?”
“들었네.”
“가주님은 돌아가서 집안일을 해결하세요.”
“검산그룹도 우리 가문과 동시에 해결해야하네.”
“검산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쪽은 제가 맡을 거니까.”
여길 마치면 검산그룹에 한 번 들리려고 했다.
우연인지 아닌지, 때마침 검산그룹이 천외천과 연관이 되어 있다니.
상당히 좋은 명분이었다.
“없애버리기 딱 좋은 날씨네.”
창고 밖은 화장하기 그지없는 날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