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7화
무사고 박물관 지하에 잠들어 있는 아티팩트는 보통 물건이 아니다.
AA급 이상의 아티팩트는 아니나 전부 감정 불가한 물건이었다.
위험한 장비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없어서 지하 깊숙한 곳에 놔둔 것.
“박물관 지하에 아티팩트가 보관되어 있다는 걸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오대 가문의 가주만 알고 있었던 거 잖아요. 당연히 저도 알죠.
전생의 기억을 가진 이준이 모르는 정보는 없었다.
특히 그는 과거 힘이 약해 정보 쪽으로 일을 했다.
그러니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게 당연하지 않나.
이 사실을 말할 수 없기에 은근슬쩍 오대 가문의 수장을 들먹였다.
그는 현재 신력권가의 가주였으니까.
가주가 되었으니 이준도 박물관 지하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알 자격이 충분했다.
“음… 지하의 물건을 가지려면 오대 가문의 동의가 있어야 하네.”
“패왕도가는 사라졌으니 사대 가주의 동의만 구하면 되겠네요?”
“그렇네.”
“신력은 동의한 걸로 처리하면 되고, 신기와 만독, 철혈의 동의를 받으면 문제없겠군요.”
이준이 한지유와 정씨 자매, 그리고 박씨 남매를 쭉 보았다.
마지막에는 한민성 이사장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신기에는 내가 연락해 보겠네.”
“이사장님 말씀 들었지? 각자 부모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허락받아 와.”
“박물관 지하에 어떤 물건이 있길래 가주의 동의까지 필요한 거냐?”
박혁진이 물었지만 이준은 그저 웃기만 했다.
“어서 전화들 해. 좋은 물건 가지고 싶지 않으면 말든가.”
이준이 좋은 물건이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각자 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했다.
‘지하에 있는 물건들은 전부 철장의 망치처럼 게이트를 깨는 열쇠라는 걸 죽어도 모르겠지?’
철장의 망치는 천중 호수를 클리어할 마지막 열쇠.
박물관 지하에 잠든 물건은 철장의 망치와 같은 종류였다.
물론 열쇠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이 물건들은 본업인 장비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파멸겁이나 박씨 남매의 무기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등급의 아티팩트는 검제의 무기.
하나 지하의 물건이 풀리게 되면 AA급 아티팩트가 많이 풀리게 된다.
한국이 보유한 AA급 아티팩트만 적어도 10개 이상은 가지게 되는 것이다.
특별한 무기를 가지지 못한 아이들에게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잠시 후.
“형님께서 동의를 했네.”
“만독도 상관없대요.”
“우린 알아서 하라는데?”
마지막 철혈검가까지 동의를 다 구했다.
“이제 문제없이 박물관 지하 동에 들어갈 수 있는 거죠?”
“전부 동의를 구했으니 들어가도 되네.”
“그러면 가시죠.”
“날 따라오게.”
한민성 이사장이 앞장섰다.
1동 건물을 지나고 2, 3동까지 지나왔다.
3동 끝, 혈신의 지도가 보관되어 있던 장소 끝부분.
벽면엔 호랑이 족자가 걸려 있었는데 한민성이 그 앞으로 가서 호랑이 두 눈을 꾹 눌렀다.
철컥!
그러자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르르릉.
문이 열리는 게 아닌, 방 안 전체가 움직였다.
“내, 내려간다?”
방이 통째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한 5분이 지날 무렵.
아래로 내려가는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족자가 위로 올라가면서 문을 만들었다.
한민성 이사장이 먼저 문으로 나갔다.
“우와. 박물관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어?”
“3동도 아티팩트들이 엄청났는데 여긴 더 하잖아…”
“이것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는 거야?”
아이들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는 위쪽 고풍스러운 박물관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투박하달까.
벽면에 무기가 걸려 있긴 했으나 유리통에 들어 있지 않았다.
대신 주위에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신병도 아닌 물건들에 무슨 놈의 결계를 쳐 놓았는지. 괜히 수호부만 낭비했구나.]
무극자 사부가 혀를 찼다.
그의 눈엔 이곳의 그 어떤 물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파멸겁의 등급이 SSS다.
그에 비해 벽면의 아티팩트는 보잘것없으니.
무극자의 미지근한 반응은 당연했다.
그러나 B급 무기나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아티팩트였다.
***
이준은 장비를 신중하게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가져 나갈 수 있는 아티팩트는 자신과 차경진 포함해서 12개.
이 모든 게 게이트를 클리어할 귀중한 열쇠다.
또한 아이들에게 잘 맞는 장비를 골라야 했으니 두 가지를 잘 생각해야 했다.
“누구부터 골라 줘야 할까.”
이준이 아이들을 훑어봤다.
박혁진이 손을 번쩍 들어 자기부터 골라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녀석은 이곳에 없었다.
“박혁진 어딨어?”
이준이 주위를 둘러보자 박정연이 손가락으로 저 멀리 가리켰다.
“저기.”
“왜 아무 말도 없나 했더니 역시나구만.”
원래라면 자기 거 먼저 골라달라고 졸랐을 박혁진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아무 말도 없어서 의아했는데 혼자 아티팩트를 훑고 있는게 아닌가.
“야! 거기서 뭐 하냐. 개인 행동하면 네 거 안 골라 준다.”
“응…”
박혁진의 목소리는 무언가에 홀려 있는 듯했다.
이준이 박혁진 쪽으로 걸어가자 한민성을 비롯한 모두가 따라왔다.
“뭐 보고 있는데 넋을 놓고 있냐.”
“나… 이 돌 할래.”
박혁진은 무기나 갑옷이 아닌, 형편없어 보이는 돌을 선택했다.
정말 평범하게 생긴 돌이었다.
그의 결정에 지켜보고 있던 한민성 이사장이 말렸다.
“이 돌 말고 다른 걸 선택하는 게 좋을 거예요. 정보를 보는 게 불가해서 이곳에 놔둔 거지, 1동에 있는 아티팩트보다 못해요.”
“아니요. 전 이 돌을 선택하겠습니다.”
박혁진은 확고했다.
선택을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의 선택에 이준이 돌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뇌령석’의 정보를 볼 수 없습니다.]
[뇌령석]
등급: ???
설명: ???
그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자 이준이 혼원신공의 내공을 끌어 올려 보았다.
뇌령석은 이준에게도 정보가 없는 아티팩트였다.
[‘뇌령석’이 정보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뇌령석’의 정보를 볼 수 없습니다.]
이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혼원신공으로 보지 못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혼원신공의 경지가 낮아서 보지 못한 것뿐.
이제는 혼원신공도 7성에 도달한 상태.
그가 보지 못한 건 없다고 자부했는데 자신감이 와장창 부서져 버렸다.
‘사부님. 이거 왜 이래요?’
결국 무극자 사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끌끌. 아직 네 능력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제 능력으로도요?’
[제자의 코가 아주 하늘을 찌르는구나.]
‘전 사부님이 만든 혼원신공을 믿고 말한 건데요?’
[큼큼. 혼원신공이라면 당연히 뇌령석을 볼 수 있지. 1성만 더 높이거라 그러면 보일 것이니라.]
‘아직은 못 본다는 소리네요.’
이준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동안 혼원신공의 성능을 몸소 느껴서 대단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고작 지하에 있는 아티팩트 하나 정보를 알 수 없으니, 혼원신공의 성공을 의심했다.
[음. 아니니라. 사부가 만든 혼원신공을 의심해서는 안 되느니라.]
이 귀신 같은 사부.
의심도 함부로 하지도 못하게 한다.
[저 뇌령석은 이곳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좋으니 저 아이에게 고르라고 하거라.]
무극자 사부의 말이었다.
뇌석령이란 물건의 값어치는 확실했다.
사부의 저 반응이라면 극찬에 가까운 것.
선택을 정말 잘한 거다.
“그래 넌 그 돌 골라라.”
이준이 몸을 돌리려는 찰나.
“준아. 나 이거!”
박정연의 목소리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다.
그녀가 가리키는 건 다름 아닌 도였다.
“누나 그거 검 아니야 도야. 모양이 얍실해서 착각한 거 아니지?”
“알고 있어. 그런데 나 이 도 가지고 싶어.”
그녀가 선택한 도의 이름은 ‘폭풍도’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도와는 달리 도의 넓이가 크지 않았다.
검이라 해도 믿을 만큼 모양이 헷갈렸다.
[폭풍도]
등급: AA
설명: 십대 대장장이에 준하는 이가 폭풍이 몰아치는 언덕에서 제련한 무구입니다. 강력한 바람을 담아 만든 무기로 풍이나, 뇌 속성을 가진 무인들이 사용한다면 상상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효과: 힘 +135, 풍 속성 공격력 +40%, 뇌 속성과 관련된 심법 사용 시 공격력 +100%
못 말리는 남매다.
한 명은 돌덩이에 다른 한 명은 검이 아닌, 도를 선택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엉뚱한 것에 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자기가 가지고 싶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는 없겠지?’
주 무기가 아닌 도를 선택했지만 무기의 등급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박정연이 이곳에서 건져갈 건 딱히 없었다.
그녀가 지닌 검은 신병이었으니까.
심지어 SS급 무기다.
이곳에 있는 그 어떤 아티팩트보다 값어치가 뛰어났다.
“알았어. 누나는 그걸로 해.”
두 명은 골랐으니 이제 다른 사람들 것을 찾아보기 위해 움직였다.
* * *
이준은 아이들에게 적합한 아티팩트를 꼼꼼하게 골라 줬다.
박은비는 기공사라 빙룡수를.
서혜지와 남선호는 음양침통과 무쌍검을 골라줬다.
보법이 약한 허수와 각법을 주로 사용하는 진경수에게는 실피의 바람과 정령왕의 신발을 고르게 했다.
그의 거침없는 행동에 한민성은 입을 떡 벌렸다.
‘저 아티팩트가 뭔지 알고 저러는 걸까?’
수투나, 검, 침통, 신발.
아이들에게 맞는 아티팩트긴 했다.
문제는 저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정보가 없다는 건 다른 말로 감정이 되기 전까지 고철과 같다는 소리다.
아무리 좋은 아티팩트를 가졌다 하더라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F급 무기와 다를 바 없었다.
‘마치 다 알고 고르는 것 같단 말이야.’
한민성은 이준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정예나 학생은 이 단검을 가지세요.”
“저보다 예은이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전 독공을 주로 쓰는데 차라리 장갑을….”
“독장이 주특기인 건 알지만 용독술과 장법만으로는 정예나 학생을 상대하기에 까다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검을 가지고 있으면 어떨까요?”
독공에 단검을 무기로 쓰는 상상을 한 정예나.
하지만 조합이 잘 맞아 보이진 않았다.
“적이 절 까다롭게는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오히려 단검이 독공을 쓰는 데 방해가 될까 걱정이에요.”
“그러니 수련으로 단련을 해야죠. 손으로도 장법을 펼칠 수 있고 단검으로도 독기를 분출할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제가 약한 근접전을 단검으로 보완하는 게 좋다는 거죠?”
“네. 맞아요.”
장법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무공이다.
그렇다는 건 정예나를 상대하는 입장에서 그녀를 치기 위해 근접전을 펼칠 터.
장법이 근접전에 막 약하진 않지만 내기를 손바닥에 모을 시간이 필요했다.
고수들의 싸움에서 찰나의 순간에도 판가름 나는 게 승부다.
이걸 얼마나 잘 극복하냐에 따라 고수와 하수로 나뉘는 거다.
“사천당가의 무공에 단검을 쓰면 적은 분명 정예나 학생을 살수로 착각할 거예요. 그리고 근접전을 해 오면 단검으로 상대하고 그러는 동안 다른 손에는 독장을 쓸 내기를 모아서 공격하면 됩니다. 쉽죠?”
“말은 참 쉬운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무공이 이어질지…”
“정예나 학생의 노력 여하에 따라 A급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달렸어요. 전 충분히 해낼거라 믿어요.”
이준의 응원에 정예나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해 볼게요.”
“잘 생각했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뭘요.”
이준이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정예나의 동생인 정예은의 무기를 골라 주려고 하는데.
“저 선생님.”
“왜?”
“저 가지고 싶은 아티팩트가 있어요.”
“이미 골랐어? 어디 봐 봐. 좋은지 안 좋은지 내가 확인해 볼게.”
“아니요. 안 골랐어요. 제가 가지고 싶은 건 여기에 없거든요.”
“여기에 없다니 무슨 소리야?”
“제가 가지고 싶은 건 선생님한테 있어요.”
“나한테? 뭔데?”
“철장의 망치 저한테 주시면 안 돼요? 대신 제가 골라야 할 아티팩트 선생님이 하나 더 고르세요. 이사장님 그래도 되죠?”
“네? 네. 당사자들끼리 합의하면 안 될 건 없지요.”
정예은의 뜬금없는 소리에 이준이 얼을 탔다.
철장의 망치는 A급이다.
무기도 아니고 장비를 만드는 도구에 불과했다.
야장이나 좋아하는 아티팩트인데 정예은이 철장의 망치를 달라고 하니 멍을 때린 것.
정예은은 박씨 남매처럼 좋은 무기가 있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괜찮은 걸 골라서 나가야 했다.
“철장의 망치가 왜 필요한지 이유를 말해줄래?”
“제가 언니보다 싸움에 대한 재능이 없는 걸 알아요. 그리고 전 싸움보다 독 제조와 암기 제조가 더 좋아요. 제가 가문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철장의 망치가 대장장이에게 굉장히 좋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철장의 망치가 대장장이에게 좋다는 소문은 몇 년 후에나 난다.
현재는 미래가 많이 바뀐 상황.
정예은이 철장의 망치를 원하는 건 딱히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를 가르친 결과 그녀가 관심을 두는 건 제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