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화
공항 게이트에서 나온 이준과 한국 대표 팀을 본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기지 않고 울렸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아시아 학원 대항전의 성과를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일본을 상대로 압도적인 무력을 보였습니다. 국민들은 다 이준 님이 학생이 아닌 선생으로 전환해서 낸 성과라 하는데 인정하십니까?”
“중국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씀해 주세요!”
기자들의 질문은 제각각이었다.
축하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은지.
중구난방식으로 질문이 쏟아졌다.
공항이 시장 바닥이 되자 이준이 기자들을 진정시켰다.
“자, 모두 조용히 해 주세요.”
공항 전체에 이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저 평범한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사위를 압도하는 위압감이 있었다.
난장판이던 공항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저희가 좀 피곤합니다. 질문은 제가 지목해서 딱 30분 동안만 받을게요. 아셨죠?”
이준의 음성에 기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익숙한 얼굴이 있네요. 김서아 기자님 질문해 주세요.”
그의 지목에 김서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준과 일면식이 있다는 자부심에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게이트 정보 매거진의 김서아입니다. 한국 대표 팀에게 질문할 수 있게 해주신 점 감사드리고, 우선 대표 팀의 승전 축하드립니다.”
“대회가 애매하게 끝나서 1위를 하고 돌아온 건 아니긴 하지만 무튼 감사합니다.”
“그럼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한국이 근 20년 만에 일본 대표 팀을 이기는 엄청난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승리를 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과 일본은 숙적인 관계다.
다른 어떤 나라와의 대전은 몰라도 일본은 꼭 이겨야 했다.
그 옛날, 치욕스러운 과거로 인해 일본인들은 항상 한국을 아래로 깔봤다.
게이트가 열린 시점에서는 더욱 심해졌다.
한국의 전력이 약한 걸 빌미로 다시 한국 정벌의 야욕을 드러냈으니까.
하나 이제는 달랐다.
일본이 그토록 자랑하는 유망주를 아예 박살을 냈다.
심지어 한국 대표 중 제일 강하다는 박씨 남매는 출전조차 하지 않고 이겼으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는가.
김서아의 질문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그녀의 물음에 이준은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일본을 이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굳이 꼽자면 재능이 다릅니다.”
“재능이 다르다면 일본 대표 팀과 한국 대표 팀 인원의 잠재 능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검룡과 검화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검제 님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각성자입니다. 일본 유망주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다음 세대는 이 두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빙화, 독화, 암화, 철룡 이 네 사람의 재능도 검룡과 검화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찌 일본 따위에게 질 수 있겠습니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이준에 의해 기자들의 얼굴이 흥분으로 가득찼다.
그들의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가 끌어 올랐다.
그동안 일본에게 겪었던 수모가 싹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저희에게는 더 큰 축복이 있었지 않나요?”
“축복이라면…?”
“여기 빙결장 박은비가 사독 사사키 유우를 가뿐히 이긴 것 말입니다.”
“아!”
“빙결장과 적색쌍검, 음양침에 섬전도까지!”
“한국 대표 팀에서 빙결장의 서열이 어떻게 되지?”
기자들이 놀란 얼굴로 한국 대표 팀을 보았다.
일본 유망주 2위를 이긴 빙결장의 대표 팀 내 서열을 알게 된다면 전력까지 얼추 추측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기자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물어보고 싶었으나 이준으로 인해 꾹 참아야 했다.
“분한 말이지만 제가 대표 팀 내에서 제일 약한 편에 속해요.”
“헉!”
“말도 안 돼!”
“사독을 이겼는데 대표 팀 내 서열이 가장 낮다니!”
“그러면 대체 검룡은 얼마나 강한 거야!”
“검룡이 문제겠습니까? 패력진권을 일합에 이긴 섬전도도 있습니다.”
이젠 일본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과는 비교 불가한 전력.
아시아에서 최강이라고 불리는 중국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유망주를 떠나 이젠 중국 현역 각성자들과 비교를 해야 할 판이었다.
그만큼 한국 대표 팀의 전력은 막강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뒤에 질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서 마지막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까. 사독이 크게 다친 걸로 아는데 일본과의 외교에 큰 문제라도 있을까 우려됩니다. 창왕, 아니 창제께서는 어떤 생각이 있으십니까?”
김서아의 질문에 이준이 씩 웃었다.
“옛날 일본이 했던 질문을 돌려주고 싶네요.”
그러면서 한쪽 카메라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나라라도 보존하고 싶으면 쥐 죽은 듯 있어. 약소국 따위가 깝칠 만큼 한국은 만만한 곳이 아니거든.”
이준은 옛날 일본이 한국을 괴롭힐 때마다 지껄였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
“으아아악!”
고풍스러운 집 안의 물건들이 난장판이 되었다.
잘 나오던 TV는 단검에 의해 아작이 난 상태였다.
“저 새끼 죽여 버리고 말 거야!”
“사 당주님 진정하셔야 합니다.”
“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내 새끼가 중국에서 죽었어!”
“저도 둘째 아가씨의 죽음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각성자로서 몬스터에게 죽는 건 운명입니다.”
“총관은 유우가 몬스터에게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닙니까?”
“… 날 따라와.”
사사키 유우의 엄마인 사사키 미나미가 이를 뿌득 갈며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향한 곳은 사당.
그 안에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가 누워 있었다.
주위에는 사사키 가문의 독술가들이 시체를 살폈다.
혹여라도 암수에 당한 게 있나 더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당주를 뵙습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는 그 시체를 일으켜 세웠다.
“총관은 이 상처를 어떻게 생각해?”
“전류에 당한 상처가… 응?”
총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체의 왼쪽 팔은 오른팔과 달리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내가 처음 봤던 것과는 다른데, 어떻게 된 일인가?”
독술가들이 대답하려 할 때 사사키 미나미가 말을 가로챘다.
“유우의 팔에 감겨진 채찍에 잔여 내공이 깃들어 있었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준 그 새끼가 벌인 짓이라고. 유우의 무기는 검처럼 검갑에 넣어 다니는 무기가 아니야. 팔에 두르고 다니는 거지.”
까드득.
그녀가 총관에서 설명하면서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자신의 딸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그때의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미칠 것만 같았다.
“설마 이준이 허공섭물을 펼쳤을 때 아가씨의 채찍도…!?”
“내 예상은 그래. 유우의 채찍은 우리 사사키 가의 보물이야. 유우가 꺼내는 게 아니면 몸에서 꼼짝도 하지 않을 거야.”
이준의 내공이라도 말이다.
신병의 존재는 여타 무기와 결을 달리했으니까.
이준의 내공에 반응한다 하더라고 다른 사람들처럼 무기를 뺏길리 없다고 여겼는데.
이 때문에 천추의 한을 남긴 것이다.
채찍이 이준의 내기에 반응 안한 건 좋은데 하필 삼매진화를 일으킨 거다.
이 때문에 사사키 유우가 팔에 두른 무기로 인해 통구이가 된 것이다.
“내가 총관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아?”
총관은 당주인 사사키 미나미의 눈을 보았다.
눈동자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곧바로 한국을 향해 쳐들어갈 것만 같은 기세였다.
“설마!?”
“맞아.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거야.”
“안 됩니다! 제가 볼 때 그들은 너무 위험한 존재들입니다. 차라리 첫째 아가씨가 유학에서 돌아올 때까지만 참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번만은 총관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 거야. 내 아이가 저항도 하지 못하고 불에 타 죽었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꼭 복수하고 말 거야.”
사사키 미나미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이준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머릿속에 꽉 차 있었다.
“다시 재고를 해 주십시오. 첫째 아가씨가 돌아오시면 그들의 도움 없이도 복수를 하실 수 있습니다!”
총관이 간곡하게 말했지만 사사키 미나미는 듣지 않았다.
“이미 늦었어.”
그녀가 말을 끝나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자들.
허공에서 떨어진 자들이 건들거리면서 사사키 미나미와 총관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야쿠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총관 말이 심한 거 아닌가. 우리가 질이 안 좋다니.”
“헉! 당신들은….”
총관은 양복을 풀어 헤친 이들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일본 정보기관 그 어디에도 등록이 안 된 자들.
사파의 무공을 쓰면서 마기를 쓰는 저들이 굉장히 꺼림칙했다.
상종하면 절대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하나 자신의 주인은 이미 저들과 손을 잡기로 마음을 먹은 듯 했다.
‘아, 첫째 아가씨만 해외에서 돌아오시면 가능한 복수이거늘.’
3대 째 사사키 가의 당주를 모신 총관이 탄식을 했다.
어쩐지 사사키 가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것만 같았다.
총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에서부터 얼굴 반쪽까지 뱀의 문신을 한 남자가 팔을 벌려 환영했다.
“우리 신마회의 식구가 된 걸 영광으로 생각해.”
“그딴 건 필요없고. 제게 S급 각성자의 힘을 줄 수 있다는 말 지켜야 할 거예요.”
“당연하지. 우린 저 중국의 십선처럼 내 사람들을 이용하고 버리는 짓은 하지 않아. 네 복수도 우리가 대신 해 주지.”
“그렇게만 해준다면 뭐든지 할게요.”
“화끈해서 좋아. 우리 식구가 된 기념으로 선물을 주지.”
남자가 수하들을 향해 눈짓을 했다.
수하 한 명이 시체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움직였다.
그가 시체의 입을 강제로 버리고 엄지손가락만 한 검은 구슬을 입에 넣었다.
찰랑.
그 직후 문신 남자의 손에 들린 종이 흔들렸다.
“유, 유우?”
죽어 있던 시체가 몸을 일으켰다.
“자, 받아.”
남자가 손에 든 종을 사사키 미나미에게 던졌다.
그녀가 종을 받아 들며 눈을 끔뻑였다.
“강시술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네가 우리 신마회에 잘 적응하면 저 아이를 예전으로 돌려 줄 수 있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설마! 생강시를 말하는 거예요?”
생강시란 전설로만 내려오는 강시술이다.
죽은 자를 소생할 수 있는 술법.
생전의 무공을 지닐 수 있었으며 생각이나 말을 할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인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또한 굉장히 강했다.
AA급 각성자는 그냥 찜쩌먹었으니까.
사파 무림인은 생강시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도 꽤 많았다.
몸만 강시지, 이성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게 생강시라는 존재였다.
“생강시?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우린 이걸 천마강시라 부른다.”
남자의 말에 사사키 유우와 총관의 눈이 동그래졌다.
* * *
이준과 아이들은 공항을 나와 무사고로 돌아왔다.
국제 대회에서 이름을 날리고 왔지만 신분은 선생과 학생.
학교 이사장에게 복귀 신고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고생 많이 했어.”
한민성 이사장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말로만 수고했다고 하시는 건 아니죠?”
이준이 은근슬쩍 눈치를 줬다.
국제 대회에서 이름을 알리고 왔으니, 물질적인 보상을 내놓으라고 말이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말.
한민성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어떤 걸 원하는가? 원하는 걸 말해 보게.”
“좀 특별한 걸 받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애들이 중국 갔다가 아주 개고생 했거든요.”
이준의 말을 듣고 있던 아이들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개고생은 너 때문에 했지.’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또 얼마나 굴릴까.’
진저리가 났다.
훈련에 ‘훈’자만 들어도 도망가고 싶달까.
이제 방학까지 별다른 행사도 없으니 주구장창 빡센 훈련만 하게 생겼다.
아이들이 한숨을 푹푹 쉬는 사이.
이준이 입을 열었다.
“무사고 박물관 한 번 더 열어 주세요.”
“아티팩트를 보상으로 원하는 거군. 그 뭐 어렵다고. 알았네. 지금 즉시 가세.”
“제가 원하는 건 1, 2, 3동의 박물관 물건이 아닌, 지하에 있는 아티팩트인데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