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1화
박혁진과 아이들은 이준의 기세를 전력으로 막으며 버텨야 했다.
다행인 건 그들에게 파랑이가 있었다.
녀석이 이준의 강력한 기세를 소멸시켜 줬다.
덕분에 관중들처럼 폭풍에 휩쓸리지 않았다.
“저게… 이준의 진짜 힘이야?”
박혁진이 홀로 중얼거렸다.
압도적인 힘.
이것 말고는 딱히 표현할 수 없었다.
“역시 선생님입니다.”
망연자실한 박혁진과는 달리 허수의 얼굴에 존경심이 가득했다.
허수는 이들 중에서 이준의 실력에 대해서 제일 잘 알고 있는 인물.
저 힘이 끝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준의 진정한 힘은 허공섭물에서 나오는 게 아닌, 무극창법과 무극군림보에서 나왔으니까.
화염의 비를 만들어 낸 건 무극군림보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4대 성지의 금역에서 무공을 연마하던 이준을 보았다.
압도적?
공포스러운 실력 그 자체였다.
이준이 마음먹는다면 이 세상에서 이기지 못할 각성자가 없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이준에 대한 허수의 믿음은 맹목적이었다.
모두가 입을 떡 벌리며 지켜보는 그때.
“저, 저길 봐!”
정예나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의 눈에 붉은색 게이트가 보였다.
아직은 작은 크기에 불과했으나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균열이야!”
“게이트가 열리다니…”
그들은 흠칫 놀랐다.
게이트 한복판에 레드존 게이트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나온 불길한 기류는 상당히 강했다.
저 기류에 레즈존의 난이도가 정해진다.
“아무래도 최상급인 것 같습니다.”
허수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붉은 게이트 옆에 또 다른 구멍이 생기는 게 아닌가!
“헉!”
“더, 더블 게이트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더블 게이트는 말 그대로 생성됐던 게이트 옆에 하나가 더 생성된 걸 말한다.
더블 게이트가 왜 위험하냐면 몬스터가 밖으로 튀어나올 때 더 많은 숫자가 밀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게이트도 위험한데…. 더블 게이트는 위험도가 두 배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한지유의 목소리가 떨렸다.
좀처럼 평정심을 잃지 않던 그녀조차 감정이 흔들렸다.
그녀의 눈에 잡힌 게이트 때문이다.
더블 게이트와 좀 떨어진 곳에서도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것.
지금까지 보지 못한 기현상이었다.
“미쳤어! 더블 게이트가 두 개나 열렸잖아!”
블루존 게이트도 아닌 레드존 게이트가 한꺼번에 네 개나 열렸다.
유례없는 일.
아이들이 놀라기엔 충분했다.
그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이준이 곁으로 돌아왔다.
“뒤로 물러나자.”
“주, 준아 저것 봤어?”
박혁진이 말을 더듬으며 이준에게 물었다.
“어. 아주 잘 보여.”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전에 막아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나라였다면 그럴텐데, 뒤로 물러날 거다.”
“무슨 소리야 그게?”
이준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어려져 있었다.
굉장히 냉소적.
이준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잔뜩 얼어붙었을 미소였다.
“뒤로 물러나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소리야.”
“뭐?”
박혁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준의 말이 이해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가 어벙한 표정을 하자 박정연이 대신 입을 열었다.
“일반인들에게 피해가 갈지 몰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일단 지켜보기나 해.”
“너…!”
박정연도 박혁진과 마찬가지로 놀라 했다.
자신들이 있는 곳은 중국 땅.
한국이 아니라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중국인들에겐 청천벽력같은 말이다.
일반적인 레드존 게이트도 위험했는데 무려 더블 게이트가 두 개나 열린 상황.
검존도 목숨을 잃은 지금.
중국인들을 도와줄 사람은 각국 인사들밖에 없었다.
그들 중에는 이준도 포함됐다.
“중국 측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
“정말 이래도 돼?”
“도와주는 건 우리들 마음인데 지들이 어쩔 거야. 중국 땅이니깐 자기들끼리 해결하게 해야지. 뭐, 나한테 했던 무례를 사과한다면 도와줄 의향은 조금 있지만.”
이준이 짓궂게 웃었다.
아이들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한국 땅이 아닌 중국 땅이라고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걸 지켜보겠다는 인성.
그리고 그동안 받았던 수모를 한꺼번에 돌려주겠다는 마음.
상대한테는 최악이었다.
“우린 앉아서 구경이나 하자.”
이준은 아이들을 이끌고 더블 게이트가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 * *
5M의 거대한 몸집을 가진 몬스터가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자의 얼굴을 가졌으며 온몸이 뾰족한 가시로 되어 있는 몬스터.
레드급인 썬더라이였다.
키아아악!
녀석이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그와 동시에 번쩍 빛이 나면서 낙뢰가 땅으로 떨어졌다.
초토화된 땅이 한 번 더 망가졌다.
그 뒤를 따라 그보다 작은 몸집의 썬더라이가 나왔다.
4M의 크기를 가진 녀석들.
키아!
주변을 둘러보며 울어 댔다.
그러자 녀석들의 몸에서 전류가 흐르며 주변을 잠식했다.
썬더라이 외에도 드라폰도 모습을 드러냈다.
용이 되다 만 이무기의 형태를 지닌, 썬더라이보다 더 큰 7M를 자랑하는 크기를 가졌다.
쉬이익!
드라폰이 혀를 날름거리며 사냥할 먹이를 찾았다.
사악한 뱀의 눈을 지닌 녀석이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한 쪽을 주시했다.
경기장에서 도망친 관중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쉬이익!
드라폰이 입맛을 다신 후 움직이기 시작했다.
뱀과 용 사이의 몬스터라 그런가.
몸이 부유한 채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7M의 드라폰들이 일제히 움직이자 위압감이 엄청났다.
경기장에서 도망쳐 나와 숨을 돌리고 있었던 관중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몬스터의 출몰.
그것도 드라폰은 레드존 게이트의 최상급 몬스터였다.
“드, 드라폰이다!”
“도망쳐!”
“으아아악!”
관중들은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각성자는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일반인들을 놔두고 먼저 도망쳤다.
“비켜!”
“내 앞길 막지 마!”
“너희 때문에 내가 도망을 못 치잖아.”
심지어 진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일반인들에게 살수까지 펼쳤다.
퍽!
“컥!”
“사, 살려 주세요.”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
중국 각성자는 자기 살겠다고 일반인들을 드라폰의 제물로 삼았다.
“으악!”
드라폰의 아가리가 벌려지고.
강철같은 어금니가 수많은 인파 사이로 떨어졌다.
콰직-!
일반인, 각성자 가릴 것 없이 드라폰의 먹이가 되었다.
푸스스스.
먹이를 먹어서 그런지.
드라폰의 아가리가 피로 흥건히 젖었다.
녀석들은 이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더 많은 먹이를 원했다.
퉷!
드라폰들이 초록색 침을 발사하자 건물 곳곳으로 쏟아졌다.
맹독이었다면 건물들이 쉽게 녹았을 터.
하나 드라폰은 맹독을 뿜어내지 않았다.
녀석들의 침이자 스킬.
끈끈이 점액이었다.
초록색 점액들이 늘어졌다.
서로 붙는 점액이 도망치지 못하게 관중들을 감쌌다.
“아, 안 돼!”
“여기서 죽을 수 없어. 난 나갈 거야.”
한 각성자가 쇠 파이프에 내공을 주입해 검기를 날렸다.
하지만 멍청한 짓이었다.
검기가 점액을 흡수했다.
푸확!
곧이어 검기에 명중한 곳이 분수처럼 터지며 사람들을 덮쳤다.
“악.”
“몸에서 액체가 떨어지지 않아.”
“이, 이것 좀 떼 줘!”
사람들이 초록색 점액에 파묻혀 애원했다.
“모두 진정들 하시오.”
“흥분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도울 테니 함께 이 상황을 해결해 나갑시다.”
정말 다행인 건 각국 인솔자들도 이곳에 있었다.
중국의 각성자는 자기만 살겠다고 같은 나라 사람도 죽이면서 도망쳤는데.
각국 인솔자는 그래도 사람들을 돕겠다고 움직였다.
그들이 후미에 있었던 이유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얼굴에 희망이 생겼다.
각국 인솔자의 등급은 AA급.
레드급 몬스터를 해치우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학생들이지만 A급 각성자도 즐비했으니 충분히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다 같이 힘을 합치면 못 헤쳐나갈 일도 없소.”
* * *
이곳에는 드라폰만 있는 게 아니었다.
드라폰 못지않게 흉포한 썬더라이도 존재했다.
기세 좋게 나섰던 각국 인사들은 보기 좋게 나가떨어졌다.
“크윽…”
“천수! 괜찮소이까?”
“힘들 것 같소이다.”
“나도… 마찬가지요.”
퍽!
드라폰의 꼬리에 강타당한 태국의 인솔자가 즉사했다.
“선생님!”
“으아아악!”
그의 복수를 하기 위해 태국 대표팀원들이 드라폰에 달려들었지만.
파지지직-
강한 전류가 날아와 그들을 통구이로 만들었다.
공기 중에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한 각성자를 본 일반인들이 공포에 휩쓸렸다.
드라폰과 썬더라이가 사이좋게 먹이를 향해 다가왔다.
“살고… 싶어.”
“누가 좀 구해 줘…!”
“제발!”
사람들은 간절히 기도했다.
이곳에서 몬스터에게 죽고 싶지 않았다.
저 섬뜩한 아가리에 씹히는 이들을 보며 얼마나 떨었던가.
이제 자신의 차례가 왔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무서웠다.
뼈째로 씹히는 파육음 소리는 심연에 숨어 있는 공포를 모조리 끄집어냈다.
“X발! 지원군은 언제 오는 거야!”
“구해 달라고 미친놈들아.”
“시, 싫어! 죽기 싫다고!”
“아아악! 저리가!”
사람들이 공포에 점점 미쳐 갔다.
그들의 눈과 코로 물이란 물은 다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몬스터는 사람들이 절망에 빠졌든 말든 상관치 않았다.
녀석들의 목적은 오로지 살육.
인간을 잡아먹고 죽이는 것밖에 없었다.
드라폰과 썬더라이가 몸을 움직였다.
사람들을 향해 달려든 몬스터들.
몬스터의 공격에 남아 있는 각국 대표와 학생들은 체념했다.
‘여기까지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에서 죽는 게 한이구나.’
‘아이들만이라도 살려서 돌려보내야 했건만… 다 내 실수다.’
인솔자들은 저마다 후회를 했다.
아시아 학원 대항전에 참가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국가에서 인재였다.
차후 세계를 이끌어 갈 각성자.
한데 중국에서 덧없이 죽게 생겼다.
자신을 포함한 학생들이 죽게 되면 국가에 공백이 생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게 다 자신들의 운명인 것을.
“모두 무기를 드시오. 죽더라도 최선을 다해 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소?”
“옳은 말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이가 좋은 건 아니지만 차 한잔 나눠 보지 못한 게 아쉽소.”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꼭 차를 마십시다.”
“좋소. 그럼 가 봅시다.”
인솔자들과 학생들이 전신의 내공을 폭발시켰다.
남아 있는 내공까지 싹싹 끌어모아 무기에 담았다.
최후의 결전.
드라폰과 썬더라이가 달려들자 그들도 몬스터를 향해 쇄도를 했다.
아니, 쇄도를 하려는 순간.
퍽!
적색 창이 날아와 드라폰의 머리에 박혔다.
꾸에에엑!
단 한 방에 쓰러진 드라폰.
갑자기 등장한 위험인물로 인해 몬스터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진짜 더 이상 못 봐주겠구먼. 중국 각성자 새끼들 금수만도 못한 건 알았지만 진짜 짐승이 따로 없네. 뭐, 나야 대화를 나눌 환경을 조성해줘서 고맙지만 말이야.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난 이준이 전장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