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창왕!”
“어디에 계시다가 이제야 나타났습니까.”
인솔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준은 한줄기 구원의 빛이었다.
그가 누구와 싸우고 오든 상관없는 그들.
이 자리에 이준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고전하고 있던 모양이네.”
이준이 드라폰과 썬더라이를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에.
끼이익…
쉬익…
몬스터들이 몸을 잔뜩 움츠러들였다.
이준의 곁에 파랑이와 마조가 있었기 때문.
두 녀석은 태생이 블랙급이다.
썬더라이와 드라폰이 최상급 몬스터라 해도 파랑이와 마조에겐 상대가 안 됐다.
[작은 주인 놈아.]
‘왜?’
[저놈들 나한테 줄 테냐?]
‘네가 상대하려고? 꽤 많은데?’
[지금 날 무시하는 것이냐?]
‘너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잖아. 걱정돼서 그렇지.’
[작은 주인 놈아가 걱정할 정도로 난 약하지 않다.]
마조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 주인에 그 영물.
무극자 사부와 오랜 시간 함께해서 그런지.
콧대가 굉장히 높았다.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지랄발광을 할 터.
마조의 실력도 볼 겸 허락을 했다.
‘마음대로 해라.’
이준은 몬스터에게서 등을 돌렸다.
무방비의 상태이지만 녀석들은 이준을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몬스터가 밖으로 나왔는데 중국 각성자들은 뭐 하느라 지원을 안 오고 있데?”
이준이 사람들의 아픈 구석을 찔렀다.
지원은커녕 있던 각성자들도 자기 살겠다고 살수를 펼쳤다.
“중국 측 각성자들이 지원 올 동안만 시간을 끌어 줄게.”
“감사합니다.”
“살았어!”
인솔자와 학생들이 안도를 했다.
이준의 실력이라면 썬더라이와 드라폰에게 시간을 끌 수 있다 여겼다.
그렇게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무려 30분 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대치만 한 상황.
이준이 중국인들을 향해 무심히 말했다.
“너희를 구하러 올 생각이 없나 봐.”
“……”
중국인들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려 30분이나 시간이 흐른 시점.
몬스터가 나타나면 각 가문에 비상이 떨어진다.
최대 출동 시간은 15분.
그 이상을 넘기지 않았다.
그러나 출동 시간의 두 배가 흘렀다.
그렇다는 건 이들을 버렸다는 이야기.
이곳에 있는 숫자만 해도 어림잡아 십만은 되었다.
중국인의 머릿수 치고는 작지만 결코 작은 목숨이 아니다.
그럼에도 중국은 가차 없이 저들의 목숨을 포기한 거다.
“에휴. 중국 놈들이란.”
이준의 비하에도 사람들은 뭐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그들도 회의감이 들었다.
나라에서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이준이 아닌 중국 측에 화가 났다.
저들의 얼굴에 분노가 어린 걸 본 이준.
그가 슬쩍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를 살려 주면 나한테 뭘 해 줄 거냐?”
“…저희가 살아 나갈 수 있습니까?”
“내가 너흴 살려 줄 수 있어.”
“왜입니까?”
“왜긴, 너흰 각성자가 아니잖아.”
“당신은 검존을 죽였습니다. 그분을 죽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내가 검존을 죽였다 해도 게이트는 열렸어. 어떤 개자식이 무대 아래에 균열을 만드는 진법을 깔아 놨거든.”
이준의 말에 사람들이 어리둥절했다.
균열을 열 진법을 깔았다니.
들어 보지 못한 말이었다.
세상에 균열을 만들 진법이 존재할까.
그들은 이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믿지 않아도 돼. 검존이 안 죽었다 해도 그놈은 쟤들을 상대할 수 없거든. 그리고 지금도 봐.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지원 온 각성자는 없잖아?”
이준의 말은 중국인의 가슴을 후벼팠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이쯤 되면 지원군이 나타날 만도 한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너희는 버려졌다니까.”
이준이 그들의 처지를 꼬집어 줬다.
절망스러운 얼굴을 한 그들의 귀로 이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살려 주면 너흰 뭘 해 줄 거냐?”
“…저희는 각성자도 아닙니다. 당신께서 원하는 게 있다 해도 저희는 주지 못할 겁니다.”
“없긴 왜 없어. 있는데.”
“……무엇을 원하십니까?”
“글쎄, 그건 너희들이 더 잘 알지 않을까? 내가 검존을 죽인 건 각성자 대 각성자의 대결이다. 하지만 너희는 달라. 난 적어도 일반인은 안 건드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왜 왔겠어. 위험에 처한 너희를 구해 주러 왔지. 안 그래?”
이준의 말은 논리정연하지 않았다.
딱히 설득력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저 한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직접적으로 무엇을 원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무시할 존재가 아니라고.
여태 한국 같은 조그만 나라에서 중국의 검존을 뛰어넘을 강자가 태어날 리 없다 애써 부정했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조금 전까지 전율스러운 공포를 뿌리던 이준의 말이었다.
웅성웅성.
“이준 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의 시야가 짧았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말했다.
한 명이 동조하기 시작하자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
* * *
‘마조야. 이제 네 차례야.’
[이 몸이 나설 차롄가?]
마조가 이준의 품에서 나왔다.
그의 어깨를 밟으며 머리로 올라간 마조가 한껏 날개를 펼쳤다.
녀석이 하늘을 날았다.
끼이이익!
마조가 허공을 빙빙 돌며 울었다.
굉장히 불길한 울음소리였다.
녀석이 하늘을 돌다 하강했다.
녀석의 목표는 썬더라이와 드라폰.
마조의 비행에 썬더라이와 드라폰이 경계를 했다.
자신들과는 다른 존재가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죽지 않으려면 먼저 공격을 해야 했다.
썬더라이는 방전을, 드라폰은 침액을 뿌렸다.
몬스터의 공격을 유유히 뿌리치며 녀석들 사이를 나는 마조.
마조의 비행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된 공격을 피하며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지루해지려는 무렵.
화르륵-!
드디어 마조의 불꽃이 일어났다.
흑염.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마조가 지나간 자리에 흑염의 길이 열렸다.
흑염에 닿은 건 어떤 물체든 간에 녹아 사라졌다.
몬스터도 마찬가지였다.
썬더라이와 드라폰의 몸에 붙은 지옥의 불꽃으로 인해.
끼아아악!
꾸에엑!
두 종족의 무리가 비명을 질렀다.
귀가 찢어질 정도로 듣기 힘든 소리였다.
썬더라이와 드라폰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지 주변의 건물을 마구 부수는 몬스터.
그들을 향해 마조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쌔애액-!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마조가 썬더라이를 향해 날아갔다.
퍼억-
썬더라이의 몸을 뚫고 나온 마조가 다음 몬스터를 향해.
죽으면 그다음 몬스터를 향해 날았다.
퍼벅퍽퍽-
몬스터들은 피할 수도 없었다.
마조의 속도는 가히 전광석화 같았다.
이 수많은 몬스터를 일거에 제압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10분이 지날 무렵.
[마조가 썬더라이를 처치했습니다.]
[마조가 썬더라이를 처치했습니다.]
[마조가 드라폰을 처치했습니다.]
[마조가 드라폰을 처치했습니다.]
……
……
[마조가 레드급 보스 몬스터인 썬라이를 처치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5,000,000p가 지급됩니다.]
[마조가 레드급 보스 몬스터 썬더드…]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5…]
[마조가 레드급 보스 몬스터 드펄드를…]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5…]
[마조가 레드급 보스 몬스터 드레어를…]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5,000,000p가 지급됩니다.]
[마조의 성장도가 5%로 올랐습니다.]
고통에 울부짖는 몬스터는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바닥에 누워 있는 시체뿐.
그마저도 흑염에 의해 재가 되어 사라졌다.
마조가 의기양양한 모습을 하며 돌아왔다.
[나의 힘을 봤냐? 작은 주인아.]
마조의 몸에는 몬스터의 혈액이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
혼자서 저 많은 몬스터를 처리했으면 조금이라도 이물질이 묻을 만 한데, 녀석의 털은 아주 깨끗했다.
오히려 윤기가 더 날 정도였다.
‘생각보다… 강하네….’
이준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생각 이상으로 강한 마조.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저 많은 몬스터를 혼자 쓸어버리는 걸까.
‘이건… 밸런스 붕괴야!’
이준은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맞다.
밸런스 붕괴.
마조는 개사기 영물이었다.
그냥 일반 몬스터였다면 백번 양보할 터.
저기에 있는 몬스터 중 레드급 보스 몬스터만 무려 네 마리나 됐다.
상식적으로 갓 태어난 몬스터가 보스 몬스터를 죽일 수 있을까.
상대의 먹이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나 마조는 그 상식을 가뿐히 무너트렸다.
레드급 보스 몬스터는 밥이라는 듯.
가볍게 해치웠다.
파랑이보다 더한 사기 영물이 여기에 있었다.
물론 힘을 사용한 대가가 있긴 했다.
[이 작은 주인 놈아가! 눈깔이 삐어도 단단히 삐었… 음 안 되겠다. 오랜만에 힘을 사용하니 졸리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
마조의 음성이 급격히 작아졌다.
마조는 이준의 머리 위에서 내려와 품 안으로 들어갔다.
[끌끌. 녀석. 실력이 아직 죽지 않았어.]
‘사부. 쟤 원래 이래요?’
[뭐가 말이냐?]
‘상식적으로 저게 말이 되냐고요. 어떻게 보면 파랑이보다 훨씬 강하잖아요.’
파랑이는 점점 크면서 태생이 블랙으로 변했다.
현재는 레드급이며 성장형 몬스터였다.
마조는 애초에 태생이 블랙급.
태어나자마자 레드급에 있었으며 그냥 사기에 가까운 영물이었다.
소설로 치면 먼치킨급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마조는 상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끌끌. 녀석의 정체를 안다면 그런 말도 쏙 들어갈 것이니라.]
‘정체가 뭔데요?’
[가르쳐 주랴?]
‘네.’
[싫다 이눔아, 끌끌.]
무극자 사부가 그 말을 남기곤 사라졌다.
나이를 거꾸로 잡순 노인네였다.
* * *
이준과 멀리 떨어져 있는 당소미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커져 있었다.
파멸겁을 봤을 때보다 더 넋을 잃은 채였다.
그녀가 멍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흑염을 뿌리는 마조가 하늘에 뜨면 파천혈신이 도래한다…”
파천혈신이 나타날 때마다 들리는 말이었다.
이 구절은 무림에서 금기가 됐다.
입에 담아선 안 되는 말.
자칫 입에 담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하여 금언이 되었다.
그 말을 당소미가 무림이 아닌 지구에서 중얼거렸다.
“흑염마조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야…”
흑염마조는 혈신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혈신 못지않게 파괴적인 성향이 강해 나타날 때면 도시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다.
검은 불꽃이 지나간 자리는 시체와 혈향조차 남기지 않았다.
무.
애초에 없었던 자리였던 것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의 제왕이라는 흑염마조의 등장에 당소미가 패닉에 빠졌다.
역천진을 만들고 있던 이들도 같은 표정이다.
그들도 흑염마조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마겁에 흑염마조라니! 대체 저 녀석의 정체가 뭐야?”
백영창법, 마겁, 흑염마조.
혈신과 관련된 것만 무려 세 가지나 됐다.
이건 당소미의 선에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모두 사천으로 철수해. 난 십선이 있는 서안으로 가야겠어.”
“역천진은 어떻게…?”
“역천진이 문제가 아니야. 흑염마조가 하늘에 떴다고 인주께서 알아야 해!”
당소미의 행동이 다급해졌다.
그녀의 명령에 수하들도 바빠졌다.
설치하던 역천진을 그대로 두고 당소미와 함께 이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