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9화
웅성웅성.
관중들이 무대 아래를 보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이 상황은 또 뭐야?”
“그러게 말이다….”
“지금의 상황을 뇌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누가 설명 좀 해 줘.”
조금 전의 큰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연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두 명의 각성자.
그들이 이준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관중들에게 다 들렸다.
“이준이 든 무기가 대체 뭔데?”
“저 창이 그렇게 대단한 거야?”
“무기가 비싸 보이긴 하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누구야? 아는 사람 있어?”
관중이 십선과 구선의 정체를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인주의 최측근인 십선의 존재는 검존 이외에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관중들이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누군데 이준의 앞에 나선 거야?”
“생김새로 봐선 우리나라 사람인 것 같은데.”
“검존의 측근일 수도?”
“제일 일리 있는 말이긴 해.”
이준에 의해 검존이 죽었다.
아시아 학원 대항전에는 굉장히 많은 이목이 몰려 있었다.
그중 중국이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
아시아 학원 대항전의 개최국.
이 대회에서 중국이 이겨야지만 세계에 아직도 중국이 아시아 최강이라고 알릴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저들이 검존의 측근이란 가정이 가장 들어맞았다.
“그런데 검존의 측근이 왜 이준의 무기를 노리는 거야?”
“들리는 말로는 저 창이 마겁이라는데?”
“이름 한 번 강렬하다.”
“적색 창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더니.”
“저 창 때문에 검존을 죽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중국인들에게 검존은 하늘이었다.
이 넓은 대륙의 절대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천마와 활불을 대신해 나라를 바로 잡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죽었다.
한국의 창왕이란 어린 놈에게 말이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패닉이 왔다.
앞으로 누구에게 의존을 해야 하는지.
검존을 대체할 만한 각성자가 있는지.
머리를 돌려야만 했다.
하나 검존의 뒤를 이을 만한 인재가 마땅찮았다.
그래서 패닉이 왔는데 이준의 앞에 기세 좋게 두 사람이 나타난 게 아닌가.
꺼져 가는 불씨가 살아났다.
“그래! 검존이 한국의 창왕 따위에게 힘 없이 죽을리 없지.”
“저 마겁이란 무기 때문일 거야.”
“무기만 뺏으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중국인들이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좀 전 압도적인 이준의 무력을 잊어버린 듯하다.
아니,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중국은 언제나 가장 강력한 국가라고.
한국에게 중국이 졌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새로 나타난 이들에게 막연한 기대를 보였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좀 세 보이잖아.”
“혹시 검존이 숨겨 둔 비밀 병기 아닐까? 봐 봐. 젊잖아.”
“특이하긴 하다. 한 사람은 얼굴이 굉장히 젊은데 수염이 길게 나 있어.”
“멋이겠지. 우리 나라에 각성자가 얼마나 많아. 눈에 띄려면 개성이 강해야해.”
“맞는 말이야.”
옛날 농구란 스포츠가 있던 시절.
미국의 NBA 농구 선수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미지를 중요시 했다.
관중들에게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장치가 바로 이미지였으니까.
중국인들은 저들도 NBA스타와 같은 행동을 한다고 여겼다.
수많은 각성자 속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 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곧 싸울 기세인데?”
그때였다.
무대 아래에는 폭풍 같은 기세가 몰아쳤다.
이준이 내보인 기운 못지않게 강력했다.
그리고 그 태풍이 잠잠해졌을 때는 엄청난 광경이 재현됐다.
앞서 이준이 펼쳤던 무구의 비.
허공섭물이 펼쳐진 게 아닌가.
심지어 이준이 선보였던 개수보다 훨씬 많았다.
이곳에 있는 관중의 전 무기를 동원한 것 같은 양이었다.
또 다시 찾아온 정적.
하지만 그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와아아아!”
“개쩔어!”
“휘이익! 검존 님의 복수를 해 주세요!”
“이름 모를 각성자님 화이팅입니다!”
“저 새끼 죽여 버려!”
중국인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십선을 응원했다.
이준을 박살 낼 새로운 각성자.
십선이 검존의 복수를 해 줄 거라고 중국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또 한 번의 허공섭물이 펼쳐진 광경.
이준은 저 장관을 보고 놀랄 법도 했으나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서 뭐?”
그리고 혼원신공을 전력으로 끌어 올렸다.
이준의 몸에서 확산된 기세가 십선의 기와 충돌했다.
쿠궁.
두 사람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좀 하군.”
십선이 희미하게 웃었다.
서로의 전력을 알아보는데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서 할 만하다는 미소였다.
그러나 그건 십선의 오산.
이준이 무극자의 무공을 계승했다는 걸 몰랐을 때의 이야기였다.
두 사람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주변의 대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음?”
기 싸움을 옆에서 지켜보던 구선 악불기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공을 끌어 올려 저항했지만.
‘압박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준의 기세를 소멸시키지 못했다.
도리어 점점 거세지는 압박에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뭐냐? 이 익숙한 느낌은?’
구선이 고개를 들어 이준을 보았다.
어디선가 많이 마주 보았던 기세였다.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빌어먹을 기억이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인주님의 무공을 익혀서 그런가 불쾌하군. 꼭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어.’
그러면서 좀 더 이준을 지켜봤다.
그나마 뒤편으로 물러난 구선은 형편이 좋았으나 십선은 달랐다.
‘크흡!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기 싸움에선 전혀 밀리지 않았다.
대신 무릎이 저절로 꿇리려 하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뇌와 몸이 따로 놀았다.
‘내 몸이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
구선은 싸우기도 전에 추태를 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
“가랏!”
그가 들고 있는 검을 허공을 향해 내리그었다.
그의 검을 타고 수십 갈래의 검기가 이준을 향해 쏟아졌다.
그뿐인가.
하늘에 뜬 무구의 비 또한 이준을 죽이기 위해 날아갔다.
구선의 검기가 이준에게 폭사했다.
쾅쾅쾅!
육중한 폭음과 함께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먼지가 피어난 사이를 뚫고 날아드는 수천 개의 검들.
하나하나가 굉장한 위력을 지녔다.
“어떠냐.”
구선이 먼지구름에 쌓인 이준을 향해 말했다.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도 막는데 정신이 없을 터였다.
“십선! 위험하오!”
피슝!
“허억!”
십선이 급히 몸을 틀었다.
쾅!
그의 바로 옆에 박힌 하나의 창.
파멸겁이었다.
얼마나 빠르고 강력한 투창이었던지.
반응을 하지 못했다.
만약 뒤에서 구선이 알려 주지 않았다면… 치명상을 당했을지 몰랐다.
“…이노오오옴!”
고작 애송이의 공격에 당황했다는 생각에 십선이 대노했다.
그가 자랑하는 청운적하검을 펼치기 위해 몸을 날리려는 순간!
먼지구름이 걷혔다.
십선의 눈에 보인 건 너무나도 멀쩡한 이준이었다.
“아깝네.
무극창법의 2초식 투경이 빗나가자 이준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얼굴은 전혀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네놈…!”
이준을 보는 십선의 눈이 커져 있었다.
자신이 날린 무구의 비가 너무도 멀쩡한 게 아닌가.
하나라도 이준에게 폭사해야 정상이었는데 전혀 공격이 안 들어먹은 듯싶었다.
***
십선의 공격이 있을 때 무극자의 목소리가 이준의 귀에 들렸다.
[제자야.]
‘네?’
[저 무기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회수를 해라.]
‘저걸 전부 다요?’
[못 하느냐? 설마 아니겠지? 내 제자씩이나 되어 가지고 저딴 조잡한 잡기술 따위를 제어하지 못할 리 없느니라. 제자가 무능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무극자가 은근슬쩍 도발했다.
그도 이준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리 말을 한 것이다.
‘까짓 거 못할 것도 없죠. 저 사부의 수제자 되는 사람입니다.’
이준이 파멸겁을 이용해 수십 다발의 검기를 막아 냈다.
그러면서 저 수많은 무구의 비를 향해 기를 보냈다.
하나 둘, 열, 스물.
날아오는 무기를 제어하면서 공격을 멈추게 했다.
‘나 천잰가?’
너무도 쉬웠다.
무구를 제어한다고 생각하니 날아오는 무기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랐다.
전체를 통제했을 때는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상대가 날려 보낸 수천의 무기를 제어하는 게 그냥 물체를 들어 올린 것보다 수 배는 어려웠으니까.
이 모든 게 혼원신공 덕분이었다.
SSS급 신공은 사람의 상식을 가뿐히 뛰어넘을 만큼 무궁무진하게 사용이 가능했다.
[천재는 무슨. 당연한 걸 가지고.]
‘쳇. 칭찬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헉. 큰 주인 지금 뭐 한 거냐? 성을 내도 모자랄 판에?]
무극자의 반응에 마조가 놀랐다.
원래라면 그것밖에 못하느냐.
자만하지 말아라.
내기의 컨트롤이 불안정했다 등.
무심한 말로 상처를 줬을 건데 한다는 말이 당연하다는 말이었다.
다른 제자와는 확연히 다르게 대하는 무극자의 태도에 마조가 놀란 건 당연했다.
‘화를 왜 내? 내가 이렇게 잘했는데.’
[작은 주인 놈아는 큰 주인이 너그러워졌을 때 만난 걸 다행이라 생각해라. 아니었다면 작은 주인 놈아는 사마영처럼 오금이 저렸을 거다.]
‘사부 많이 나쁜 사람이었네요.’
[됐고 집중이나 하거라.]
불리할 때만 화제를 돌리는 게 무극자의 특징.
물론 이준도 똑같았지만 무극자가 더 했다.
‘우선 한 방만요.’
이준은 파멸겁을 잡은 채 내기를 밀어 넣었다.
웅웅.
파멸겁에 내기가 잔뜩 주입됐다.
‘무극창법 2초식 투경’
그가 나지막하게 되뇌곤.
피슝!
앞을 향해 힘껏 쏘아 보냈다.
쾅!
아깝게 빗나간 걸 본 이준이 아쉬워했다.
“아깝네.”
[바로 전륜마멸진을 펼쳐 보거라.]
‘네.’
[전륜마멸진을 펼쳤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살상력이 100% 증가합니다.]
[어떤 속성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준의 발밑에 붉은색 진법이 반짝였다.
‘그리고요?’
[주 속성을 화로 부 속성을 독으로 하거라.]
이준은 무극자 사부가 말한 대로 행동했다.
[주 속성을 ‘화’로 선택하셨습니다.]
[전륜마멸진의 속성이 화 속성으로 전환됩니다.]
[부 속성을 선택하십시오.]
‘부 속성 독.’
[부 속성을 ‘독’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전륜마멸진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화 속성 공격력 +250%]
[수 속성 저항력 -100%]
[독 속성 공격력 +100%]
[광 속성 저항력 -50%]
전륜마멸진의 설정을 맞췄다.
‘이제 뭐 합니까?’
[무극군림보의 일보를 밟아라.]
‘네!’
신력권가에서 한 번 사용했던 기술.
허공섭물에 삼매진화를 뿌리는 것.
여기에 더해 전륜마멸진의 효과까지 가미한 거다.
만약 이 기술이 상대방에 폭사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왜 자신은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무림에서 정점을 찍었던 사부의 경험과 자신의 일천한 경험의 차이였다.
자신이 강해진 지 고작 반년이 넘었다.
무공을 어떻게 사용할지 생각을 쥐어 짜내도 사부의 생각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했다.
아직 한참은 부족한 자신.
사부를 보면 배울 게 참 많았다.
새로운 방법을 사용해 무공을 쓴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뭘 믿고 설치냐고 했지?”
척-
땅에 박혀 있던 파멸겁이 저절로 뽑혀 이준의 손으로 돌아왔다.
“바로 내 사부의 힘이야.”
화르륵-
이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무기에 불이 붙었다.
하나를 시작으로 수십 개, 수백 개가 불에 타올랐다.
종래에는 하늘에 뜬 전체에 불이 붙었다.
“어디 불 맛 좀 한번 볼래?”
이준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상대를 꼭 죽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낼 때마다 보이는 미소였다.
그 미소에는 섬뜩함이 맺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