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8화
“마겁을 개방했어!”
당소미의 눈이 커졌다.
허공에 홀로 뜬 적색 창이 고고하게 자태를 드러낸 모습.
혈신 말고 마겁을 개방한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뿐인가.
나이도 약관(20살)이 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소미를 충격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마겁이 개방됐다는 말씀이십니까?”
은일도 당소미처럼 덩달아 놀랐다.
“그…래….”
마겁은 노괴가 사라지고 천주가 얻었다.
하나 그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무기는 온데간데없고 쓸모없는 막대기만 남았다.
천주가 죽을힘을 써서 예전의 강력하던 때로 돌려놓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주인을 가리는 병기.
마겁은 마병이었다.
천주가 강제로 힘을 개방하려 하자 짜증이 났는지.
마겁이 되려 천주를 잡아먹으려 했다.
이때 천주가 얼마나 식겁을 했던가.
위험한 물건이나 모두가 탐내는 병기.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얻지 못하게 천주가 봉인을 해 버렸다.
그런 마병이 이 세계에서 눈을 떴으니 은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헉!”
은일이 헛바람을 내뱉었다.
무기의 비로 인해 초토화된 무대 바닥이 훤히 드러났다.
“소, 소미 님 큰일입니다!”
은일이 놀란 이유는 무대 바닥에 펼쳐 놓은 진법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무대 바닥에는 신마회를 소환할 수단.
역천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기의 비로 인해 망가져 버렸다.
심지어 그곳에서 진한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마겁이 힘을 개방하다니….”
당소미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소미 님!”
은일이 그녀를 크게 부르고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 내가 넋을 잃고 있었어.”
“지금 마기의 폭주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은일의 말에 당소미의 시선이 무대 아래쪽을 향했다.
“되는 일이 없어.”
은오가 죽고 나서부터 왠지 일이 꼬여만 갔다.
인주가 블랙존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오기 전까지 모든 일을 마칠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보기 좋게 틀어지고 있었다.
“게이트 폭풍이 일어나기 전입니다.”
게이트 폭풍이란 안전한 지대에 인위적으로 열리는 게이트를 말한다.
대기가 어그러질 때만 일어나는 현상.
만약 인위적으로 균열이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폭발, 흡수, 몬스터 웨이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될 만큼 게이트 폭풍은 위험했다.
“수치로 보면 어떤 등급이야?”
“적어도 레드존 최상급 게이트 두, 세 개가 한꺼번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은일이 그녀에게 물었다.
“철수해.”
“그래도 되겠습니까? 둘 중 하나라도 취해야 입장이 난처해지시지 않을 텐데…”
“봉인이 풀린 마겁을 사용하고 있어. 저놈한테서 저 마병을 뺏을 수 있어?”
“…저희의 전력이라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가능은 할지 몰라도 희생이 너무 클 거야. 난 저놈한테 당가의 목숨이 모두 도륙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그렇다면 게이트 폭풍이라도!”
당소미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차라리 게이트 폭풍이 일어나게 해. 그리고 우린 경기장 외곽. 아니, 이참에 이 도시 전체를 역천진으로 엮는 게 좋겠어.”
“구선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상관없어. 우리의 계획만 실패하지 않으면 돼.”
“알겠습니다.”
은일이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소미도 몸을 돌렸다.
마겁을 보는 눈에선 미련이 잔뜩 남아 있었다.
‘저 마겁만 회수하면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만회할 수 있을 텐데…’
가뜩이나 구선이 아니꼽게 보고 있었다.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기 위해선 저 마겁이 간절히 필요했으나.
‘아니야. 분명 나 말고 다른 놈이 나설 거야. 이 근처에 있는 사람이… 십선과 구선이면 무조건 난입 하겠지.’
그녀가 장담했다.
십선과 구선은 성격이 아주 급한 인물들.
마겁을 본다면 분명 나설 거라 예견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치자 미련 없이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 * *
이준은 파멸겁을 회수하고 정예은과 무대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응?”
그가 갑자기 서자.
“…왜 그러세요?”
정예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행동은 매우 공손했다.
그녀는 레드존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서 이준을 한없이 우러러봤다.
하늘 같은 존재.
이준은 암기술뿐만이 아니라 독공에도 조예가 매우 깊었다.
독에 관해서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했다.
레드존 게이트 이후 이준을 매우 존경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두려움까지 추가되었다.
“아무래도 엿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네.”
이준이 주변을 훑어보았다.
땅 아래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나오는 아지랑이.
역겹고 지독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 저급한 마기는 뭐냐. 빨리 치워라.]
“그럴 생각이야.”
마조의 말에 이준이 파랑이를 꺼냈다.
“파랑아, 이곳에 있는 마기 좀 먹어 치워.”
“뀨우!”
파랑이가 입을 활짝 벌려 마기를 빨아들였다.
녀석으로 인해 그나마 대기가 안정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쿵.
쿵.
두 명의 인형이 초토화된 무대로 떨어졌다.
마기를 흡수하고 있던 파랑이가 주둥이를 다물었다.
그리고 몸을 낮춰 낯선 이들을 경계했다.
“너흰…?”
이준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렸다.
전생에 직접 보진 못했지만 소문으로 익히 들어 본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손에 잡힌 파멸겁을 보고 있었다.
‘십선 감목경, 구선 악불기! 거물이 나타났어.’
십선 감목경은 청성파의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었다.
청운적하검을 주로 사용했으면 천풍무형신권 또한 굉장히 능숙하게 사용했다.
구선 악불기는 어떤가.
오직 사일검법 하나 가지고 중국 각성자를 굴복시켰다고 전해졌다.
화경에 오른 고수들.
이곳의 등급으로 따지면 S급 초입에 있는 자들이었다.
십선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은 두 사람이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눈에 익은 놈이잖아?]
마조가 아는 척을 했다.
‘쟤들 알아?’
[잘 알지. 사마영 따까리들이다. 정말 살아 있었구나?]
저들은 마조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시대의 마조는 굉장히 컸다.
일반 새보다 족히 10배는 컸으며 먹이로는 호랑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하늘의 포식자였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의 마조는 새끼.
몸집이 굉장히 작아 녀석이 마조인지 눈치채지 못했다.
‘쟤들 어때? 강해?’
[지금의 네 실력이라면 이길 수 있다. 파멸겁도 있으니 웬만해서는 작은 주인 놈아가 이긴다.]
‘그거참 반가운 소리네.’
이준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전생에는 상대조차 할 수 없었던 놈들이다.
악마 같은 존재로 각인되어 있어서 긴장이 됐지만 마조의 말에 편안해졌다.
“예은아.”
“네?”
“애들한테 가 있어.”
“…선생님은요?”
“난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파랑아 네가 나 대신 애들 좀 돌봐 줘야겠다.”
“뀨우!”
파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땅을 박차고 폴짝 뛰어서 정예은의 품에 안겼다.
“어서 가.”
“…네.”
이준의 말에 정예은은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대기석에 정예은만 돌아오자.
“준이는?”
“할 일 있다고 저 먼저 가 있으래요.”
“저 녀석…”
박혁진이 이준의 앞에 서 있는 이들을 보았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자신의 할아버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아니, 할아버지를 볼 때보다 더 숨을 쉬기 힘들었다.
고작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기도를 가졌다.
“예은이랑 파랑이를 보낸 걸 봐서는 싸우려나 봐.”
정예은만 왔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이준은 항상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파랑이를 딸려 보내 자신들을 보호하게 했다.
레드존 게이트에서 수없이 겪어 본 일.
박혁진의 직감으론 이준이 저 두 사람과 싸우려 하는 것 같았다.
“저들이 누군데?”
“중국 측 각성자가 아닐까?”
“음…”
박정연이 신음을 토했다.
이준이 벌인 짓은 상당히 컸다.
무려 검존을 죽였다.
여기에 일본 인솔자인 권령까지.
가차 없이 목을 따 버렸다.
중국이나 일본 측에서 가만히 있는 것도 웃기지 않나.
이준이 엄청난 무위를 내보였어도 중국 측 입장에선 이준은 적이었다.
나라를 상대로 선전포고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저렇게 강한 각성자가 있었습니까?”
허수의 물음에 박혁진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천마와 활불은 실종됐다.
그들 말고는 중국 각성자 중에 제일 강했던 사람은 검존 진천우였다.
“중국에서 전력을 숨기고 있었던 게 아니면 이해가 안 될 정도의 강함이야.”
“꼭 검제 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
박혁진은 이준의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유심히 보았다.
흰색 무복을 입고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도복 같았다.
도사의 모습을 한 두 사람.
한 사람은 수염도 멋들어지게 나 있었다.
미염공이라 불리었던 관우의 수염처럼 말이다.
“내 생각도 그래.”
* * *
구선 악불기가 이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 무기의 봉인을 푼 것이냐.”
그는 다짜고짜 물었지만 이준은 순순히 대답해 줬다.
“알아서 풀리던데?”
“알아서 풀려? 허.”
악불기가 인상을 찌푸렸다.
알아서 풀렸으면 천주가 마겁을 봉인시켰을까.
마겁에게 주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 함부로 잡지도 못한다.
그런 마병이 알아서 봉인이 풀렸다니 기가 막혔다.
악불기가 헛웃음을 보이는 사이, 십선 감목경이 버럭 소리쳤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게 어떤 물건인지 알고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는지 아느냐!”
“이거? 파멸겁. 아, 너희가 부르는 이름대로라면 마겁이라고 해야하나?”
“마겁을 알아?”
십선의 눈이 커졌다.
“알면 안 돼?”
“어떻게 네깟 놈이 마겁을 알 수가 있지?”
“됐고. 너희가 나타난 목적을 이뤄야 할 거 아니야. 이거 안 가져가?”
이준이 파멸겁을 흔들어 보았다.
구선과 십선의 눈이 빛났다.
무려 봉인이 풀린 마겁이었다.
그냥 마겁을 가지고 가도 칭찬을 받아 마땅할진데 봉인이 풀린 마겁을 인주에게 바친다면?
굉장히 좋아할 것이다.
주군의 기쁨은 수하의 기쁨.
주군이 기뻐한다면 어떤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는 두 사람이었다.
“안 그래도 그럴 작정이었다. 십선 그대가 먼저 나서겠소?”
“구선이 양보를 해 준다면 제가 나가겠습니다.”
“그렇담, 십선이 먼저 선공을 취하시오.”
“고맙습니다.”
십선 감목경이 구선 악불기에게 포권을 취했다.
몸을 돌린 감목경이 검을 꺼내 들었다.
촤앙-
청명한 검명이 울려 퍼졌다.
파멸겁보단 아니지만 그가 들고 있는 검도 명검에 속했다.
명검을 들어 이준을 겨눈 감목경.
“나와 싸우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라.”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 감목경을 본 이준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혼자 싸우려고? 후회할 텐데?”
“좀 전에 보였던 허공섭물 가지고 어깨를 당당히 펴고 있는 것이냐?”
“그렇다면?”
“애송이 놈이로고.”
쿵!
감목경의 오른쪽 발이 땅을 강타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금 전 사용했던 이준의 허공섭물을 그대로 따라 한 게 아닌가.
“이걸 말하면 본도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