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그 시각.
수련장에서 훈련하고 있던 사형준이 옆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도련님?”
천왕대 또한 익숙한 기에 하던 수련을 멈춘 상태.
그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저 멀리서 느껴진 건 분명 이준의 기였다.
여러 번 느껴보았지만 적응되지 않은 그의 기운.
패기를 넘어서 심연 속에 묻혀 있는 두려움을 모조리 끄집어 내는 공포였다.
천왕대가 몸을 떨었다.
“대주. 도련님이 있는 곳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래야할 듯 싶다. 모두 수련을 중지하고 날 따라라.”
“예!”
사형준을 비롯한 천왕대가 경공을 펼쳤다.
주위 나무와 건물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담장을 넘어 천왕대가 도착한 곳은 가문의 보급창고.
만품각이었다.
경공을 달리던 사형준이 자리에 섰다.
앞에 펼쳐진 엄청난 광경이 눈이 부릅 떠졌다.
천왕대 또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을 더듬었다.
“대, 대주! 저, 저게 뭡니까?”
“난… 이제 안 놀랄 줄 알았는데, 놀랄 게 또 있었어…”
“저분의 끝은 어디까지인 거야?”
천왕대가 놀라는 사이.
이준의 흉포한 기운을 느낀 신력권가의 각성자들이 만품각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모여든 각성자들 모두 천왕대와 같은 표정이다.
경악.
그 표정 말고는 표현할 수 있는게 없었다.
“내가 뭘 본 거지?”
“형님. 내 뺨 좀 때려 주시오.”
짝!
뺨을 때렸는데도, 보고 있는 광경은 변하지 않았다.
허공에 나무를 비롯한 신력권가의 각성자로 보이는 이들이 둥실 떠 있었다.
각성자들은 허공에 뜬 채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몸을 속박한 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허공섭물이야….”
“이준 도련님께서 허공섭물을 쓰고 계셔!”
“일제만 쓴다는 무공!”
“그렇다면 저분이 S급 각성자라도 된다는 말이야?”
“헉!”
“가주님도 AA급 각성자인데...”
“믿기지가 않아. 저 나이에 S급 이라니!”
몰려든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경악에 차 있는 얼굴에서 점점 흥분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S급 각성자.
드디어 가문에서 철혈검가의 검제와 같은 등급이 나온 것이다.
그것도 18살 고등학생의 나이에.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이건 대서특필감이다.
전 세계에서도 전무후무한 일.
아시아 전역은 물론 마법을 익힌 서양의 그 어떠한 천재도 이준을 뛰어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이곳으로 모여든 각성자들의 생각은 똑같았다.
괴물.
그것도 괴물 중에서도 감히 넘 볼 수 없는 최상위 포식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그 최상위 포식자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신력권가의 각성자들이 모여든 지금.
부정부패로 썩어 빠진 만품각을 본보기 삼을 작정이다.
이것은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앞으로 자신과, 자신이 이끌 가문에 거슬리는 자들은 모조리 제거하겠다는 뜻.
손에 피를 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 * *
이준이 만품각을 손보려고 마음먹은 순간.
무극자 사부의 음성이 들려왔다.
[제자야. 사부가 재밌는 걸 가르쳐 주랴?]
‘사부님 저 교육중이라 바쁩니다.’
[끌끌. 제자가 이곳을 공포로 몰아넣으려하는 것 같은데, 아쉽구나. 사부가 옛날 옛적 썼던 효과적인 방법이 있거늘.]
이준은 솔깃했다.
사부가 썼던 방법이라니.
괴짜 사부지만, 사람을 어떻게 괴롭히는지.
아주 잘 아는 분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사부는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갔을까.
‘제자가 잠시 사부님의 대단한 무공에 흥분을 했나봅니다.’
[홀홀. 계속 흥분하려무나. 암, 혼원신공은 최고의 무공이니라.]
이준의 칭찬에 자신이 만든 무공에 금칠을 한 무극자였다.
한동안 이준의 칭찬이 이어졌다.
듣고 있던 무극자는 흐뭇해했다.
[그만하면 되었느니라. 사부는 그저 제자에게 혼원신공이 대단한 무공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고 싶었느니라.]
무극자가 뻔뻔스럽게 말했다.
‘이제 사부님이 사용하셨던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오냐. 잘 듣거라. 무극군림보는 네 개의 특성이 있다. 이름 하여 염, 패, 파, 멸. 이름 한 번 멋지지 않느냐.]
‘아주 강렬합니다.’
[끌끌 사부가 지었느니라. 아무튼 이 중 무극군림보(파)가 공포로 몰아넣기 아주 좋지. 네 영역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부술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공이니라.]
이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설명을 들으니 완전 잔혹 무자비한 무공 아닌가.
만품각을 공포에 몰아넣으려는 건 맞지만, 대량학살을 하려는 건 아니다.
뭐, 몇 명은 죽일 수 있지.
그러나 무극자 사부가 말한 건 전부 죽이라는 것 아닌가.
이준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가문을 손에 넣기 위해 압도적인 힘을 보여줄 필요는 있었으나 미친 폭군이 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지, 무극자 사부의 음성이 들렸다.
[무극군림보(파)는 아직 제자는 넘볼 수 없는 무공이니라. 무극기를 배우지 않으면 흉내도 낼 수 없음이야.]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서 사부님이 말씀하신 방법은 뭔데요?’
[무극군림보(염). 무극군림보(파)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하지만, 이 또한 네게는 쓸 만한 무공이니라.]
‘무극군림보(염)….’
이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머릿속에 무극군림보(염)이 떠올랐다.
백발을 흩날리는 남자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수천 명으로 보이는 무인들이 보였다.
백발의 남자를 향해 달려드는 무리들.
백발남자는 무인들이 달려오든 상관치 않았다.
그저 산책을 한 듯, 사뿐히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백발남자가 다리를 들어 올려 땅을 찍자.
“헉!”
이준의 눈이 부릅떠졌다.
대체 사부의 무공 중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지 않은 무공이 있기나 한 걸까.
[홀홀. 내가 너의 사부이니라.]
‘언제나 존경하고 또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제자이다.]
무극창법의 최후 초식인 환영을 봤을 때처럼 전율스러웠다.
가슴이 뛰었다.
새로운 무공은 언제나 흥분되게 했다.
조금 전 보았던 무공이 자신의 것이라니.
새삼 느꼈다.
자신은 이제 전생의 실패자가 아니라고.
가문의 각성자들이 넋 놓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형준을 비롯한 무리가 보내는 시선은 존경이 담긴 시선.
반대로 감히 자신의 눈앞에서 비리를 저지르려 했던 만품각의 각성자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이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를 압박하고, 이끌고 있었다.
이것이 압도적인 힘, 압도적인 권력!
아버지 이건무가 왜 힘에 그리 미친 듯이 집착했는지 이해가 갔다.
힘에 미쳐 자신의 힘을 얻으려 했던 그가, 되레 자신의 힘에 의해 앞으로 모든 걸 잃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시작에 불과한 지금도 이리 짜릿한데, 그땐 어떤 기분일지 상상조차 가질 않았다.
이준이 씩 웃으면서 오른쪽 발을 무릎까지 들어올렸다.
바닥을 향해 내려쳐진 발.
평소의 무극군림보였다면, 땅이 갈라지며 지진이 일어났을 테지만.
쿵!
큰 진동음밖에 들리지 않았다.
대신 주변으로 비명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으악!”
“부, 불이야!”
“내, 내 손이 타, 타고 있어!”
“이것 좀 어떻게 해봐!”
허공에 떠 있는 나무들이 불에 탔다.
만품각의 각성자들의 몸에도 불이 붙었다.
다만, 각성자들의 몸에 붙은 불은 일부분.
나무처럼 뿌리에서부터 잎사귀까지, 전부 태워버린 게 아니다.
[에잉. 쯧쯧. 내기의 분배가 형편없구나. 아직 멀었어. 무극기를 터득했으면 순식간에 지옥으로 만들었을 터인데.]
무극자는 현 상황이 마음에 안든 모양이다.
그와는 반대로 이준은 자기가 사용한 무공에 넋이 나갔다.
단전에 그토록 많던 내공이 싹 비워진 만큼, 엄청난 광경을 만들어낸 무극군림보(염)였다.
* * *
화르륵-!
“아악!”
“사, 살려줘!”
“죽기 싫단 말이야!”
“안... 돼!”
만품각은 비명으로 가득했다.
귀를 찢을 듯한 목소리들.
살려달라고 악에 바친 음성이 이곳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들의 비명은 주위를 더욱 공포로 몰아넣었다.
천왕대가 이준을 말릴 법도 한데, 그들은 지금 말릴 정신이 없었다.
“삼매진화라니!”
“허공섭물에 삼매진화까지 쓰셨어.”
허공에 뜬 사물에 점화를 하는 것.
말은 쉬워 보이지만, 상승의 무학이었다.
어중간한 사람?
대한민국에서 검제 말고는 흉내조차 못내는 엄청난 무공이었다.
“이것 말고 또 다른 게 있으신 건 아니겠지?”
천왕대가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저 앞에 홀로 서 있는 사람이 천왕대의 주인이다.
자신들이 모시는 인물이다.
자랑스러웠고, 자부심이 절로 생겨났다.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주인이었으니까.
“부대주.”
“왜?”
“낙향 신청 넣는다면서요?”
“내가아아? 언제? 난 천왕대에서 뼈를 묻을 건데?”
“야야. 부대주한테 그만 물어. 이준 도련님이 존나 뛰어나니까 바로 태세전환 한 게 이 부대주란 형이야.”
“크흠. 애들 다 들리게 너무 크게 말한 거 아니냐.”
부대주가 민망한 얼굴을 했다.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고개를 돌려 사형준에게 말했다.
“이준 도련님께서 S급에 드셨다는 걸 대주는 아셨습니까?”
“아니….”
사형준이 고개를 저었다.
이준 도련님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AA급에서도 격차는 심했다. AA급 내부에서도 격차는 엄청났다.
초입이냐 완숙이냐 절정, 끝자락이냐에 따라 가진 힘은 아득하게 차이 난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수록 벽은 두, 세배로 높아진다고 가주께 들었다.
AA급 내부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도 바늘구멍 통과하는 일인데.
AA급에서 S급으로 가는 길은 더욱 험난한 가시밭길.
재능 있는 각성자도 평생 수련해도 넘을까 말까한 길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준 도련님은 그 벽을 뛰어넘은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분을 모시는 걸 수도….”
사형준이 홀로 중얼거렸다.
비명이 점점 잦아들 무렵.
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 대주 왔네?”
후두두둑.
이준이 고개를 돌리자, 허공에 떠 있던 것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 썩어버린 곳을 도려내는 중이야.”
이준은 일부러 크게 말했다.
이곳에 모여 있는 모두가 들리게끔 말이다.
걸리는 게 있는 각성자들은 움찔거렸다.
그들의 귀에 또렷이 박힌 말.
썩어버린 곳을 도려낸다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던 그들이었다.
다시 말해, 앞으로 이준의 뜻에 거스르는 존재는 다 제거한다는 뜻.
[우릴 두고 하는 말인 건가?]
[저,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
[젠장. 우릴 두고 하는 말이었어.]
[만품각주를 아무렇지 않게 해치운 걸 보면… 다음은 우리 일거야.]
[아닙니다. 저길 보십시오. 만품각주는 피해가 없습니다.]
신력권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그들의 눈이 일제히 전태풍에게 돌아갔다.
전태풍만이 온전했다.
그 어떤 그을림도 없었다.
그저 몸을 사시나무 떨듯 부들거리고 있을 뿐이다.
반대로 만품각 인원은 어떤가.
바닥에 쓰러진 채 작은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상반된 모습이다.
[그렇지. 명색에 권신단주님의 아우 되시는 분인데 아무리 후계자라 해도 그렇게 막나가지는 않겠지. 가문의 절반 이상을 들어낸다는 뜻인데.]
[휴.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저희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는 소리군요.]
[무조건 권신단주님 밑으로 붙어야 돼. 아니면 우리도 저들처럼 될지 몰라.]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이다.
한편, 이준은 신력권가의 각 부대를 이끄는 각성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쯤 되면 올 때가 됐는데.’
이만한 기운을 선보였으면 권신단주가 나타나야 했다.
그는 신력권가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사람.
이런 큰 소란이 일어나면 당연히 그가 와야 한다.
그는 권신단주이기 전에 신력의 총관이었으니까.
‘나타나기 전까지 저놈을 상대하면 되겠네.’
이준이 전태풍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준과 눈이 마주친 전태풍이 기겁을 했다.
“히이익!”
눈만 마주쳤는데도 경기를 일으켰다.
두려움과 공포에 전태풍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극한의 공포감에 실례를 하고 만 것이다.
뚜벅뚜벅.
이준이 전태풍에게로 걸어갔다.
“오, 오지 마!”
“오지 마가 아니고, ‘오지마세요.’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봐?”
“죄,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사, 살려 주세요. 살려만 주신다면 뭐라도 하겠습니다.”
“네 형인 권신단주에게 대신 죄를 물어도 되나? 안 그래도 니 형도 꼴 보기 싫었는데 잘 됐네.”
“그… 그건.”
전태풍이 입을 다물고 눈알을 굴렸다.
이준이 형에게 죄를 묻게 된다면 자기도 결국은 무사하지 못할 터.
여태 갑질 할 수 있었던 건 형이 있던 덕분이었는데 그 형이 사라지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거기다가 죄를 옴팡 뒤집어 쓴 형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하나, 지금 이 자리에서 안 된다고 하면 진짜 죽을지도 몰랐다.
지금 죽을래, 내일모레 죽을래? 정도의 차이.
대답을 못하고 몸만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를 바라본 이준이 씩 웃었다.
‘왔네.’
마침 이곳에 권신단주 전경훈이 도착했다.
사람들의 사이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 보려는 것 같았다.
‘재밌네. 아주 재밌어. 네 동생이 판을 깔아주는구만?’
이준은 권신단주가 이곳에 왔다는 걸 모른 척 했다.
“왜 대답을 못해? 후계자를 무시하는 거야? 이것도 하극상인데, 어디 한번 언제까지 개기는지 한번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