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이준이 손을 들어올리려는 순간.
지켜만 보고 있던 권신단주 전경훈이 나섰다.
“도련님! 멈추십시오.”
“경훈이 왔어?”
예상 밖의 일이다.
인파 사이에 숨어서 지켜보려던 것 아니었나?
그의 동생인 전태풍에게 손을 휘두르려고 하자,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 전경훈이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교육중이야.”
“제가 봤을 때는 교육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신 것 같은데, 아닙니까?”
“어. 아니야.”
전경훈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준의 행동은 도가 지나쳤다.
개망나니인 이신도 이따위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막 후계자가 된 이준은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의 동생이라곤 하나.
만품각주인 전태풍도 A급 각성자였다.
후계자로서 고위 각성자의 신망을 얻는 것도 모자랄 판국에.
동생의 수하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힘으로 신력권가를 휘어잡으려는 모양인데, 큰 실수를 한 거야. 신력권가를 너무 얕잡아봤어.’
강자존의 시대라 하지만 강자와 지도자는 같은 뜻이 아니었다.
물론 지도자에게 강한 힘이 필요한 건 맞았지만.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그 힘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이끄느냐, 자신만의 세력을 어떻게 구축해나가는지도 중요하다.
강한 힘이 있다 해도 진정으로 따르는 무인들이 하나도 없다면 세력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예가 바로 이신이었다.
물론 현재의 이준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떨어지는 존재지만, 이준이 급부상하기 전까진 나이에 비해 뛰어난 무공을 지닌 자였다.
실력행사와 강압으로 충성을 강요했다면, 진작 신력권가의 각성자들은 이신에게 복종을 하지 않았을까?
하나, 그의 거지같은 성격 때문에 신력권가의 어떤 각성자도 그를 신임하지 않았다.
그냥 월급 주니까 하는 거지 뭐… 정도의 직장인 마인드.
신력권가의 위상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었던 이유에는 이런 상황도 큰 지분을 차지했다.
즉, 가문의 각성자에게 막무가내로 실력행사를 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자존심이 강한 신력의 각성자들.
폭력으로 복종을 강요했다면 오히려 반발이 더 클 것이다.
‘실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아직 어려.’
전경훈이 속으로 웃었다.
만품각의 주변은 아수라장.
각성자들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주변의 각성자를 봐라.
두려움 가득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이준을 괴물 보듯 보고 있었다.
그걸로 끝이다.
‘얼굴을 보면 두려워할지언정 저들의 충성은 얻지 못할 거야.’
전경훈은 확신을 가졌다.
이준이 실력만 믿고 까부는 애송이라고 치부했다.
“교육이라 하기엔 바닥에 쓰러진 만품각의 인원들의 피해가 큽니다. 여기서 그만하시는 게 도련님의 이미지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안 끝났다 그러네. 기다려봐. 야. 만품각주, 하던 이야기 마저 해야지?”
“히이익!?”
이준이 막무가내로 나왔다.
‘멍청한 새끼. 제 무덤을 파는구나.’
전경훈이 이준을 비웃었다.
자신의 앞에서 동생에게 겁을 줬다.
안 봐도 뻔했다.
동생을 이용해 권신단의 단주인 자신을 압박하려는 모양.
너무 얕은 수에 혀를 내둘렀다.
겨우 협박 정도에 넘어갈 자신이 아니다.
정말로 자신을 압박하려고 했으면, 동생도 바닥에 쓰러진 이들처럼 만들어야 했을 터.
자신이 나타났을 때까지도 동생은 멀쩡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이준은 동생을 어쩌지 못할 거다. 자신과 척을 지려는 게 아니면 몰라도.
그러나 전경훈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준이 몸을 굽혀 전태풍의 발을 잡았다.
“아까 했던 말을 이어서 해볼까? 네가 저기 누워 있는 놈들처럼 될래? 아니면 네 형한테 물을까? 둘 중 하나만 골라.”
이준은 친절히 두 개의 선택지를 주었다.
전태풍이 우물쭈물하자.
푸쉬이이!
이준의 손에서 녹색 빛이 났다.
그러더니 전태풍의 신발에서 아지랑이가 피는 게 아닌가.
“아아아악! 내 발!”
전태풍이 비명을 질렀다.
신발은 어느새 부식되어 사라졌다.
그의 맨발이 점점 검게 물들어만 갔다.
이준이 사용한 건 만독수.
C급 무공이지만 혼원신공으로 운용하니 그 어떤 독공보다 무서웠다.
발의 부패는 빠르게 진행됐다.
곧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발목을 절단해야할 상황이 올지 몰랐다.
“아악! 혀, 형! 사, 살려줘. 제바아아알!”
그래도 형제라 그런지.
전태풍도 전경훈에게 애원만 하고, 이준의 물음엔 대답하지 않았다.
‘저, 저 미친 자식이!’
전경훈도 이준의 가차 없는 행동에 당황했다.
설마 자기가 있는 앞에서 동생에게 위해를 가할 줄 상상이라도 했겠나.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지금 같이 행동하지 못할 거다.
“그만! 그만하십시오! 만품각주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벌을 내린단 말씀이십니까?”
이준이 사용하던 만독수를 거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전경훈을 향해 말했다.
“가르쳐줘?”
“예. 알려주십시오. 하지만 이 일이 도련님의 기분에 따라 만품각을 어지럽혔다면 권신단주이자, 총관인 전 이 일을 가주님께 알릴 수밖에 없습니다.”
“네가 감당할 일이 아닌데?”
이준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미소를 띠고 있지만, 그 안은 진한 살기로 가득했다.
이준의 미소를 본 전경훈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 웃음은 뭐야?’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불안한 기분을 지우기 위해 이준을 향해 물었다.
“제가 감당해야할 부분이면 하겠습니다. 말씀해보십시오.”
“네 동생이 만품각의 보급품에 손댔다는 것. 이 하나만으로 내가 이 덜떨어진 새끼를 죽일 수 있다는 거 알지?”
후계자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
그건 바로 가문에 해가 되는 이를 처단할 수 있는 권한이다.
가주의 승인 없이도 말이다.
물론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만품각주의 위치와 등급.
신력권가 안에서도 서열이 높았다.
그를 제거하는 건 가주의 승인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그럴 리가! 저놈이 어떻게 태풍이가 보급품에 손댔다는 걸 알지?’
동생과 자신밖에 모르는 일.
가주도 보급품과 관련된 사항은 몰랐다.
‘저 녀석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아낸 건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보급품을 빼돌렸다는 증거는 없어. 무조건 잡아 떼야해. 만약 이 일이 나와 엮여 있다는 걸 가문의 각성자들이 알기라도 하면 내 명예는 바닥을 칠거야.’
그런 일만은 없어야 한다.
“만품각주가 보급품을 빼돌렸다니요! 그랬다면 제가 먼저 알았을 겁니다.”
“동생이라고 보호하려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제 인생을 신력권가에 바쳤습니다. 부정부패가 있었다면 제가 나서서 해결했을 겁니다. 하지만 만품각주가 보급품을 빼돌렸다는 정보는 없었습니다. 안 그래?”
전경훈이 강하게 말했다.
그 뒤에 줄줄이 나타나는 사람들.
신력권가 최강의 단체인 권신단이었다.
“그렇습니다. 만품각주에 관해 올라온 보고는 없었습니다.”
“형준이 네가 말해봐.”
“없었… 습니다.”
전경훈이 권신단의 부단주였던 사형준을 꼭 집어 말했다.
사형준은 이준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올곧은 성격의 그인 만큼 가문에 부정이 있었다면 곧바로 알렸을 터.
그런 그의 성격을 아는지라 전경훈도 사형준에게 자신의 치부를 절대 드러내지 않았을 거다.
즉, 그가 모르고 있는 건 당연했다.
다른 부대의 대장들에게도 똑같이 답했다.
모두가 아니라고 입증하는 모양새.
끝으로.
“비익단주도 말해보게.”
“저도 들은 바…”
그때였다.
신력권가의 정보단을 맡은 비익단의 단주의 말이 끊겼다.
이준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잘 생각하고 말해. 네가 하는 말에 따라서 판도는 변하니까.”
협박성 말투가 아니어서 그런지.
“비익단에 올라온 정보에는 만품각주에 대한 비리는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비익단주조차 모르는 일 아닙니까. 허위정보를 가지고 만품각주를 저리 만드신 겁니까?”
전경훈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게임은 끝났다.
자신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면 역풍을 맞을 터.
손속을 잔인하게 놀린 이준은 이제 신력권가의 각성자들에게 신뢰를 잃을 거다.
“그러면 문제인데?”
이준이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께서 한 행동은 지나치셨습니다. 가주께 바로 보고해야할 내용이지만, 후계자인 도련님을 체면을 봐서 사과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구한테 사과를 해?”
“당연히 만품각주과 저 누워있는 각성자들에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뭔 개소리야. 내가 왜 저 새끼한테 사과를 하는데?”
“문제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신력권가에서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소리지. 누가 일부러 막지 않은 이상 비리를 못 알아낼 리가 없지 않나? 그것도 아니면 신력권가의 능력이 형편없던지.”
이준이 전경훈을 비롯한 각 부대의 대장들을 차례차례 보며 말했다.
“도련님께선 증거라도 있으신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증거? 있지.”
이준이 품에서 책자를 꺼냈다.
암상의 한주인에게 받은 장부.
여기에는 전태풍에 대한 비리는 물론 전경훈의 비리까지 싹 다 쓰여 있었다.
증거가 있다는 말에 전경훈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제가… 봐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던지.”
이준은 일부러 전경훈의 발밑에 책자를 던졌다.
모욕에 가까운 짓이지만, 전경훈은 꾹 참았다.
우선은 증거라는 책자를 봐야 했으니까.
전경훈이 허리를 숙여 책을 집어 펼쳤다.
‘X발! 이게 뭐야!”
전경훈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책자에 적힌 내용을 읽어가고 있었다.
아래로 내릴수록 가관이다.
동생의 비리는 물론, 가문 내 권력을 잡은 인사들의 비리까지.
죄다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일치하기도 했다.
‘신력권가의 비리 장부가 왜 저 자식의 손에 있냐고!’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문서를 만들어 놓지 않았다.
증거가 될만 한 건 모두 소각했다고 여겼건만.
빼박 증거가 모두 쓰여 있었다.
“어때? 네 동생이 많이도 해 먹었더군. 이래도 발뺌할 거냐?”
“……”
전경훈은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책 안에 있는 결정적인 증거.
지금은 여기서 벗어나 시급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것만이 동생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책을 더 넘기자, 전경훈의 행동을 멈췄다.
“봤나보네. 네 비리?”
“어디서… 이 장부를 얻으신 겁니까?”
“왜? 나한테 장부를 넘겨준 사람을 찾아서 죽이게?”
전경훈의 손이 떨려왔다.
자신이 여태껏 해왔던 모든 비리가 적혀 있었다.
신력권가의 부대장들을 꾀려고 접대한 내용과 그들의 독특한 성적 취향 등.
더러운 것들까지 전부 쓰여 있었다.
‘끝이야….’
뇌에 과부하가 걸렸다.
이준을 낭떠러지에서 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당했다.
이 장부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자신은 파멸이다.
여태껏 쌓아놓았던 부와 명성은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날 터.
반면 가문의 비리를 한발 앞서 잡아낸 이준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밖에 없었다.
털썩.
이준의 말을 반박하던 전경훈이 무릎을 꿇었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어. 여기서 살아야만 해. 다행인 건 이곳에 오기 전에 패력진권 님을 만났다는 거야. 그게 아니었으면 난 완전 끝이었겠어.’
패력진권 이민욱과 나뉘었던 이야기.
이준의 약점이 될 만한 걸 찾아서 망가트리기로 했다.
그 일은 이민욱이 맡기로 했으니, 지금의 상황에서만 벗어나면 반격의 기회는 올 거다.
“용서… 해주십시오.”
권신단주가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모자라 용서까지 빌고 있는 게 아닌가.
신력권가의 각성자들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렇게 아니라고 잡아 때더니, 네 비리가 담긴 걸 보니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 제 부도덕한 잘못입니다. 도련님께서 친히 벌을 내려주십시오.”
“네가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야. 난 여기 장부에 적힌 놈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거든.”
이준이 옆으로 팔을 뻗었다.
“어어?”
그러자 비익단주의 몸이 허공을 붕 떠서 이준의 손아귀에 잡혔다.
“내가 아까 말 잘하라고 했지?”
우드득.
“크어억!”
이준의 손가락이 비익단주의 어깨를 파고들어가 뼈를 단번에 부숴버렸다.
엄청난 고통에 비익단주가 눈을 까뒤집었다.
“어디서 감히 신력권가의 물건에 손을 대? 가문에 먹칠을 하는 것도 정도껏이지. 신력권가를 망치고 있는 너흴 쉽게 죽일 생각이 없어.”
비익단주의 혈을 짚어 기절한 그를 깨웠다.
“허어억!”
방금 전 느꼈던 고통에 비명을 토해낸 비익단주가 이준에게 애원했다.
“아아악! 죄, 죄송합니다! 제발 살려 주십… 컥!”
비익단주의 외침에 주변에 있는 각성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슬금슬금.
뒤로 도망치는 이들을 향해 이준이 경고했다.
“여기서 도망치다가 나한테 걸리면 그땐 지옥을 경험하게 해주지. 어디 움직여봐.”
이준의 서슬 퍼런 말에 자리를 벗어나려던 이들이 모두 멈췄다.
그들은 곧이어 들려오는 비익단주의 비명을 음악처럼 계속 들어야만 했다.